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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K라는 평판, 탁월성으로 빛낼 때

김현진 | 366호 (2023년 04월 Issue 1)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이나 자체 예능 영상 댓글을 보면 가끔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얼핏 흘겨봐도 수십 개에 달하는 언어들이 댓글 창을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다 보면 대형 음반 시장인 미국, 일본 팬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일대 국가 출신 팬들이 차지하는 지분이 많다는 사실에도 놀라게 됩니다. 이들은 BTS 멤버들이 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모습만 봐도 “내 모습이랑 너무 비슷하다”며 동질감을 느끼고 꿈을 강요당하는 노래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를 강요하는 ‘아시안 엄마’, 우리 집에도 있다”며 공감합니다. 그만큼 이들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느끼는 친근감, 동질감은 남달라 보였습니다.

실제로 BTS의 연간 국가별 유튜브 조회 수(2021년 3월∼2022년 2월)는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미국, 한국, 필리핀, 브라질, 태국, 베트남 순입니다. 상위 10개국 중 절반이 동남아시아 및 인도에서 나온겁니다.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K-컬처의 힘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지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내년 2월 총선을 앞둔 인도네시아의 일부 정당이 표심을 잡기 위한 선전 도구로 K-팝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인 그린드라당은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공연 티켓을 추첨을 통해 증정하기로 했는데 추첨에 응모하려면 블랙핑크 굿즈를 착용한 채 대선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얼굴이 그려진 광고판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계가 K-팝에 주목한 것은 유권자의 60%에 달하는 MZ세대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고조된 동남아시아는 소비 기지 및 생산 기지 모두로서 그 활용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을 통해 불거진 경제적,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 기업에 중국 등에 치우친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 체계 재편을 촉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풍부한 자원과 인구를 바탕으로 연간 국민총생산(GDP) 규모가 3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6개 주요 경제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10∼35세 청장년층 인구가 2031년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점쳐지는 등 젊은 인구 구조가 주는 성장 잠재력이 일단 매력적입니다.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미 많은 한국 기업이 쓴 맛을 본 바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란 이유로 한국과 비슷한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Z세대 소비자들은 국가별, 때로는 지역별로 무수한 다양성을 자랑하고 선진 소비자로서의 마인드 또한 전 세계 평균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베트남은 한국에서 종이 빨대를 도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대나무, 사탕수수, 연꽃 줄기 등을 활용한 친환경 빨대를 사용해 왔고, 인도네시아에선 종교적 영향으로 기부 문화가 매우 활성화돼 있습니다. 현지 소비자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K-로 시작하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는 한 스페인 기자의 질문에 BTS 리더 RM이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싸워서 쟁취한 품질 보증(프리미엄 라벨)과 같다”고 답해 칭송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실제 K-팝과 K-드라마가 그랬듯 해외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결국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가 있고, 가장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연마해온 ‘탁월성’이었다는 분석들이 많습니다.

선배 기업인들의 시행착오를 분석함에 더해 젊은 경제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동남아시아의 투자 환경과 소비자 지형을 끊임없이 관찰한다면 이곳에서 K라는 평판은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프리미엄 라벨’ 덕에 한국과 한국 기업을 보는 시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다시 보는 기회의 땅 동남아시아에서 탁월성을 발휘할 기회를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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