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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t of New York

‘당장 필요 없는 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

조엘 킴벡 | 365호 (2023년 03월 Issue 2)

편집자주

틸다 스윈튼, 기네스 팰트로, 브래드피트 등 시대의스타들과 작업하며 뉴욕에서 활약중인 조엘 킴벡 스튜디오핸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Hint of New York' 연재를 시작합니다.
킴벡 디렉터가 뉴욕에서 보고 느낀 패션, 뷰티 업계의 트렌드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가장 빠르고 글로벌한 마켓 인사이트를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Article at a Glance


패션 업계의 중심이 온라인에서 다시 오프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에 따라 과거 익숙했던 오프라인의 경험을 신선하게 재해석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가구, 생활용품 등을 선보이는 것이다. 이들 제품은 고가이고 실용성도 떨어지지만 출시하는 대로 솔드아웃 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브랜드 세계관에 감화된 팬들이 이들 브랜드가 내놓은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신선하게 여겼기에 일어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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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패션 산업에도 거대한 난관이었다. 금방 이뤄질 줄 알았던 일상으로의 회복에도 예상보다도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패션 산업 전반에도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가 요구됐다.

코로나19 이전 패션계의 화두는 이미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피지컬(Physical)보다는 디지털(Digital)이었다. 온라인과 디지털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아우르고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줄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패션 산업 전반에서 디지털을 이식하기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팬데믹 초기에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노력이 적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유롭게 밖에 나가고 사람들과 왕래하기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 온라인과 디지털의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위용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실제로 작년 가을 뉴욕, 밀라노, 파리로 이어진 패션위크만 살펴봐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바로 현실에서 현장의 규모와 브랜드의 세계관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패션쇼나 이벤트를 구현해낸 작업들에 더욱 열광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디지털에 기반해 유니크한 세계관을 구현해 내며 남다른 감각을 뽐내던 패션 디자이너들은 거의 종적을 감췄을 정도였다. 파리 패션위크의 전체 공식 쇼 스케줄에 참여한 브랜드를 통틀어 오직 디지털만으로 쇼를 진행 한 경우는 단 1건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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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장벽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매장들로 향하는 발길 또한 증가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이제 더 이상 판매가 주목적인 공간이 아니다. 코어 고객과 직접 접촉하고 소통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이자 더 나아가서는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고객층과 첫 대면을 하게 되는 장으로 변모했다. 어차피 구매는 오프라인 매장보다는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 더욱 편리해진 시대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역시 오프라인 매장의 ‘목적’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현실 세계에 기반한 오프라인 매장과 피지컬 쇼, 이벤트의 트렌드가 다시금 고개를 들자 기업과 브랜드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해석해서 보여주는 방식’에 더욱 관심 갖고 집중하게 됐다. 과거 오프라인이 ‘노멀(Normal)’로 여겨지던 세상에 이어 디지털이 ‘뉴노멀(New Normal)’로 불리던 세상을 지나니 다시금 오프라인 중심의 접근 방식이 신선해 보이게 됐다. 이에 따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새로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새로울 수도 있는’ 콘셉트에 대한 접근이 시작됐다.

가구,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축하다

그 중심에선 루이뷔통의 행보가 눈에 띈다. 루이뷔통이 최근 여성복과 남성복 컬렉션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카테고리가 바로 가구와 라이프스타일 제품, 즉 홈웨어(Homeware)이다. ‘아트 오브 리빙(Art of Living)’이라고 명명한 이 카테고리에는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세계관을 구축해 줄 다양한 디자인을 입은 가구와 홈웨어들이 가득하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장 아트디렉터인 마르셀 반더스가 가죽 제품을 연결 이음새로 사용해 디자인한 길게 누울 수 있는 소파는 4만 달러, 한화로 약 5200만 원에 달하지만 판매 시작 즉시 매진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에 부응해 2022년 11월, 루이뷔통은 전 세계 최초로 중국 상하이에 가구 및 가정용품 전문 매장을 열었다. 상하이의 명품 거리 중 한 곳인 난징로드에 문을 연 이 매장은 기존 VIP를 대상으로 예약제로 운영한다. 루이뷔통 하면 느껴지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넘어서 MZ세대가 열광할 수 있는 컨템포러리한 디자인으로도 승부수를 던졌다. 그 첫걸음으로 중국의 디자이너 프랭크 초우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다. 가격은 미화 4만 달러(약 5200만 원)에서 7만 달러(약 9000만 원)를 호가하지만 일부 컬러는 발매와 동시에 솔드아웃되는 등 인기가 상당하다.

루이뷔통 제품을 시즌별로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VIP라면 루이뷔통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도 특별한 애정을 가질 것이라는 노림수가 엿보이는 행보다. 루이뷔통은 상하이 매장을 테스트 매장으로 보고 앞으로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사업 계획을 정비해 나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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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한동안 규모가 축소됐다 2022년 6월을 기점으로 다시 문을 연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도 전통적인 유명 가구 브랜드뿐 아니라 에르메스, 루이뷔통, 구찌, 디오르, 프라다, 돌체앤드가바나, 벨루티 같은 패션 브랜드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 특징이었다. 패션계가 가구를 차세대 주요 수입원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에도 조르조아르마니의 ‘아르마니 카사’, 모피로 유명한 펜디의 ‘카사 펜디’, 화사한 니트 패턴이 특징인 미소니의 ‘미소니 홈’ 등 럭셔리 패션에서 스핀오프한 가구 브랜드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 디자이너나 전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넘어 각각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구에까지 녹여내는 것이 트렌드다. 가구를 선보이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가구를 가구 전문 매장이 아닌 패션 매장에서 시즌 컬렉션과 함께 전시하고 판매하게 됐기 때문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가구 브랜드들을 모아서 위탁 판매하는 셀렉트숍(편집숍) 방식의 유통을 지양한 이유는 분명하다. 가구를 브랜드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플래그십 매장이나 미리 콘셉트를 계획해서 만들어진 팝업스토어에서만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넥스트 넥스트 빅 싱’을 바라며

가구라고 하기에는 작지만 패션이라고 하기도 낯선 생활용품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 안에서 접하는 가구뿐만 아니라 홈웨어들이 패션 브랜드가 제안하는 명확한 세계관을 흡수하게 되면서 새로운 콘셉트의 미(美)로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구에 진심인 루이뷔통은 홈웨어도 진심이다. 먼저 남성복 컬렉션에서 등장한 모노그램으로 만든 피자 박스를 선보였다. 물론 이 박스에 실제로 피자를 넣는 사람은 없겠지만 재미있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 소품이 되기엔 충분했기에 판매 즉시 매진됐다. 포르나세티(Fornasetti)와 협업해 탄생한 접시 또한 6개 세트에 한화로 700만 원이 넘지만 실제로 음식을 담는 용도로 쓰이지는 않을 것 같다. 코팅 처리가 돼 있지 않은 장식용 소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브랜드 마니아를 중심으로 품절 신드롬을 빚었다. 이외에도 최근 겐조의 새로운 디자이너로 영입된 니고(NIGO)와 협업해 제작한 300만 원 상당의 모노그램 아크릴 정리 수납함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어느 하나, 실용적인 아이템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무한 신뢰하는 열혈 팬들에게는 꼭 소장하고 싶은 아이템이 된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유명 패션 하우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슈프림, 스투시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는 물론 오프화이트나 마르니와 같은 브랜드도 다양한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 관련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트렌드는 집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이 집만큼이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무실 용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A.P.C.가 파리의 광고 에이전시 M/M과 협업해 화제가 된 5개년 다이어리 ‘Agenda Quinquennal(5개년의 어젠다)’는 당시 많은 패션 피플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바 있다.

2011년에 발매된 2015년까지의 다이어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매되고 있지 않지만 A.P.C.야말로 시대를 내다본 브랜드라는 찬사가 최근 끊이지 않는다. 당시만 해도 ‘패션 브랜드가 웬 사무 용품까지?’라는 시선이 존재했지만 2023년에는 선구자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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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메종마르지엘라는 사무실 책상 위에 놓는 가죽 패드부터 연필꽂이에도 브랜드 특유의 스티치 장식을 넣어 발매했다. 톰브라운 또한 페이퍼 클립, 포스트잇 등 다양한 사무 문구 제품을 출시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패션 브랜드에서 공공연하게 꼽던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이 뷰티 제품이었다면 그다음, 즉, ‘넥스트 넥스트 빅 싱(Next Next Big Thing)’은 사무용 가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유명 패션 브랜드의 세계관이 투영된 사무용 책상이나 마우스 패드 등이 큰 인기를 누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캠핑 관련 굿즈를 발매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판매하는 홈 액세서리 가운데 실제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트렌드 세터들이 가장 열광하는 제품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0여 년 전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We live in an age when unnecessary things are our only necessities(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치 있게 팔 수 있는 시대에 주목해보자.
  • 조엘 킴벡 | 핸섬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필자는 뉴욕, 서울, 도쿄, 파리, 밀라노 등을 오가며 글로벌 패션·뷰티 트렌드의 프로듀서가 된 한국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뉴욕에 설립한 패션·뷰티 브랜드 전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스튜디오 핸섬의 공동대표이자 질 샌더, 메종키츠네, 메종 마르지엘라, 베라 왕, 모스키노, 라프 시몬스, 로베르토 카발리, 리모와, 캘빈클라인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로레알그룹의 슈에무라, 시세이도그룹의 클레드포 등 뷰티 브랜드의 전략 수립부터 비주얼 작업 및 광고 캠페인까지 브랜딩 전반을 책임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joel@studiohandso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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