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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강한 나'를 '강한 기업'으로

김현진 | 363호 (2023년 02월 Issue 2)
‘복권, 립스틱, 담배, 콘돔, 콜라, 라면…’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잘 팔린다는 제품 리스트들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고물가, 고금리까지 겹쳐 얼어붙었던 지난해 소비 시장에서 복권과 립스틱, 소주, 탄산음료 등은 실제로 판매량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해외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 립스틱만 놓고 봐도 지난해 1∼10월, 미국 시장의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7%나 늘었습니다. 경기 침체기에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매력을 발산시킬 수 있는 가성비 소비가 뜬다는 의미의 ‘립스틱 효과’가 다시 한번 입증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황에 뜨는 상품을 속단하기엔 예외적 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위에 열거한 제품들 중에서도 콘돔은 속설과 달리 코로나19 여파가 심했던 지난 몇 해간은 매출이 오히려 크게 하락했습니다. ‘경기가 나쁠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출산은 기피하기에 잘 팔린다’는 해석이 무색해진 겁니다. 여기엔 경기 침체의 원인이 사람들이 서로 간 접촉을 피했던 ‘언택트’ 시대와 연관이 있다는 변수가 반영돼야 할 것입니다. 사실 립스틱 효과 역시 2021년과 2022년, 미국에서 마스크 착용 규제 정도가 달라지면서 빚어진 통계는 아닌지 원인을 자세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 침체에 우선적으로 기획해야 할, 불황에도 강한 히트 상품을 떠올릴 때 특정 제품만 들여다보면 많은 변수와 경우의 수로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해집니다. 경기에 따른 판매 수치 데이터 등 ‘역사’를 활용하려 할 때 개별 상품의 판매 추이보다 시대와 상황이 소비자의 열망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이면의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에 ‘자원 부족의 심리학’은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예측하는 데 좋은 프리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론 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립스틱만 봐도 역사적으로 불황 때뿐 아니라 호황에도 잘 팔렸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뷰티 제품 전체로 보면 경기 침체기에 강하다는 비교적 일관된 통계를 찾을 수 있는데 이를 자원 부족의 심리학에 적용해 설명하면 이렇게 풀이됩니다. ‘경제적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연애나 결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관심이 자신의 매력도를 높이는 제품에 대한 소비로 연결된다.’

같은 논리로 몸의 매력도를 높일 수 있는 명품 패션, 피트니스 관련 제품들도 역시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가 본능적, 자발적으로 지갑을 여는 영역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면 생존 본능의 발로로 경쟁 심리가 강해지는데 이에 따라 나 스스로를 강하게 보이게 하는 크고 각진 디자인, ‘벌크업’에 도움이 되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키워드 등이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몸 좋은 100명의 남녀 참가자가 신체적 능력으로만 승부를 내는 ‘피지컬:100’이 한국 예능 처음으로 넷플릭스 TV프로그램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편 인스타그램이 2022년을 주도한 트렌드 키워드로 꼽은 ‘갓생(God+生, 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삶)’은 ‘불확실한 시대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과 나의 일상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트렌드 역시 내적, 외적으로 모두 경쟁력 있고 ‘강한 나’를 만들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경제적 제약이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도 절박하게 만드는 시기가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필요한지 몰랐지만 쓰고 보니 너무나 요긴한 그 무엇’이라고 무릎을 칠 만한 혁신의 산물이 탄생했던 증거와 기록도 수없이 많습니다. ‘강한 나’를 추구하는 트렌드를 현명하게 활용해 ‘강한 기업’으로 이끄는 아이디어를 적극 모색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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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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