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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II : 불황에 끄떡 없는 중고패션 시장

‘다른 나’ 추구하려 중고패션을 ‘디깅’
중고 가격 방어력 갖춘 브랜드가 롱런

최재화 | 363호 (2023년 02월 Issue 2)
글로벌 중고패션 플랫폼인 스레드업(ThredUP)은 전 세계 중고패션 시장의 거래액이 2026년 2180억 달러(약 267조 원)로 증가하며 전체 패션 시장의 1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간단히 계산하면 평균적으로 옷을 열 번 사면 두어 번 정도는 새 옷이 아닌 중고 의류를 구매하게 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고패션 거래가 일어나고 있는 번개장터에서도 2022년 한 해 패션 카테고리에서 약 1조 원의 거래가 성사됐다. 번개장터는 2026년까지 중고패션 거래가 약 2.5배 성장해 번개장터의 중고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이 약 2조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불황에 대비해 타개책이 필요하다면 이처럼 성장세가 뚜렷한 중고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고의 달라진 의미, 그리고 중고 소비에 진심인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주목해보면 경기 침체를 돌파하는 현명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패션은 가장 비중 높은 중고 거래 카테고리

만약 ‘나는 중고 거래를 해본 적이 있지만 중고 옷을 사거나 내가 입던 옷을 중고로 파는 것은 꺼려진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MZ세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국내 MZ세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서는 연간 3조 원에 가까운 중고 거래가 이뤄지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시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카테고리가 바로 중고패션이다.

MZ세대가 주도하는 중고패션 거래의 성장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닌 전 세계적 트렌드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Global Data)에 따르면 전체 패션시장 대비 중고패션 시장은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2∼4배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북미 지역은 8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개인 간(C2C) 중고 거래가 가장 발달한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중고 거래에서 패션 카테고리의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최근 여러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는 세대 간 가치관 차이다. 부모 세대의 유년 시절에 비해 너무나도 풍요로운 생활을 해온 젊은 세대는 직업이나 소비를 대하는 태도가 부모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요소가 중고 거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젊은 세대가 ‘돈이 없어서’ ‘아끼려고’ 해서 중고 거래가 활발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현재 중고 거래의 성장을 견인하는 몇 가지 주요 트렌드를 짚어본다.

① ‘멋져 보이니까’ 중고패션 ‘디깅’

가심비 소비란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것을 구매하는 소비 행태를 일컫는다.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만족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것이 가심비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호주 태즈매니아대의 202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타일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중고 의류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내가 갖고 싶은 특정한 패션 스타일을 백화점이나 SPA 브랜드 진열대에서 찾아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거대한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많이 알려져 있진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탐독하고 10년 전 유행했던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중고 거래 사이트나 빈티지 숍을 뒤져 기어이 찾아내 사고야 만다.

이 때문에 이러한 소비 행태는 채굴, 발굴을 의미하는 디깅(digging) 소비라고도 불린다. MZ세대의 큰 지지를 받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언더마이카’ 최승혁 대표는 디깅하는 패션 피플과 관련해 “세련된 스타일은 역설적이게도 유행이 지난 아이템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이템을 착용하면 길거리에서 같은 차림새를 한 사람을 꼭 만나게 되지만 10년 정도 유행 지난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은 구하기 힘드니 같은 차림새를 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입은 사람 고유의 취향을 더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개성과 더불어 제품의 품질을 중시하는 MZ세대는 H&M, 자라,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멋과 가치가 더해지는 랄프로렌, 라코스테, 타미힐피거와 같은 역사 깊은 헤리티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번개장터에서도 패스트패션 대비 헤리티지 패션 브랜드의 거래 건수가 144% 더 많다. 거래액 또한 286%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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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잔존 가치 높은 브랜드를 ‘콕 집어’ 검색

아직까지 중고 거래는 ‘목적 구매’가 훨씬 많다. 특정한 물품을 중고로 사고 싶어 중고 거래 플랫폼에 접속해 해당 물품을 검색한다. 이때 가장 빈도가 높은 검색 패턴이 내가 찾고 있는 특정 물품의 카테고리 명이 아닌 브랜드 이름을 콕 짚어 찾아보는 것이다. 우유, 주방세제 등 카테고리 명을 검색한 뒤 뭘 살지를 고르는 ‘쿠팡 쇼핑’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 유형이다.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품목이 아닌 브랜드를 검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전거가 아닌 ‘콘스탄틴’ ‘브롬톤’을, 가방이 아닌 ‘프라이탁’을 검색하는 것이다. 번개장터는 이러한 유저의 검색 패턴을 반영해 관심 있는 브랜드 상품만 모아볼 수 있는 브랜드 팔로우 기능을 선보였는데 출시 6개월 만에 브랜드 팔로우 건수가 100만 건을 돌파했다.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가심비 소비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가심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잔존 가치 보전의 경제다. 지금 사는 옷을 언젠가 다시 중고로 되팔 수 있다면, 구매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재판매 시 가격 방어가 잘되는, 즉 감가상각이 덜 돼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사는 게 더 유리하다. 20만 원짜리 셔츠를 사서 입다가 15만 원에 중고 판매할 수 있다면 5만 원짜리를 사서 1만 원에 되파는 것보다 현명한 소비다. 700만 원에 구입한 가방을 1년 뒤 600만 원에 재판매할 수 있다면 한 달에 8만 원, 하루 커피 한 잔 비용으로 1년간 명품을 사용하는 셈이 된다.

신상품 가격이 비슷한 브랜드라고 해도 다 같은 ‘브랜드력’을 갖진 않는다. 중고 가격 방어력에는 당시의 유행, 브랜드의 명성, 제품의 내구성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어떤 브랜드가 높은 중고 가격 방어력을 갖는지가 궁금하다면 번개장터에서 해당 브랜드를 검색해보면 된다. 번개장터에서는 감가 보전이 잘되는 브랜드 중심으로 중고 거래가 활발하고, 따라서 평균 거래 단가도 높게 형성돼 있다. 2022년 번개장터 내 패션 카테고리의 평균 거래 단가는 약 11만 원으로 2019년 대비 37%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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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프라이탁과 베자는 중고 거래에서도 핫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MZ세대는 ‘중고’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중고를 절약이나 가성비 소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나의 주도적 선택, 가심비 소비로 생각한다. 이렇게 중고 거래에 익숙해진 결과 중고 시장 전반을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시장으로 인식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67%는 중고 거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79%는 합리적 가격에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중고 거래를 한다고 답했다. 1 필자는 이러한 인식이 과거 대비 풍족한 사회 환경에서 기인한 높은 자존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이 유행했다. 현재도 존재하는 아나바다 운동의 한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는 1990년대 아나바다 운동을 경제 부처가 주도했다면 지금의 아나바다 운동은 환경부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절약으로서의 중고 거래라기보다는 환경보호의 인식하에 중고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더 멋진 소비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러한 소비를 가치 소비라고도 하는데 MZ세대는 중고 거래 외에도 친환경 브랜드를 지지하고 소비함으로써 이러한 가치관을 표현한다. 번개장터 내에서도 친환경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파타고니아, 프라이탁, 베자의 제품을 찾아 구매하는 가치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이 3개 브랜드의 번개장터 내 거래액은 2019년 대비 2022년 205% 증가했다. 이 세 브랜드의 검색량은 38%, 거래 건수는 101% 증가했다.

스레드업은 의류를 신상품 아닌 중고로 구입할 경우 탄소 배출을 60∼70%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2022년 한 해 번개장터 내 중고패션 거래량을 기준으로 탄소 절감량을 측정해보면 최소 6439만6482㎏에서 최대 3억726만3212㎏의 탄소를 절감했다는 결과가 산출된다. 이는 30년생 소나무 970만 그루가 한 해 동안 흡수한 탄소의 양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 같은 친환경 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중고패션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품·유통 업계의 ‘중고 투자’ 갈수록 활발

경기 불황이나 인플레이션은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세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에서 설명한 ‘중고 거래를 할 이유’에 더해,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환경에서는 중고 제품이 가격 면에서 더욱 유리해지기 때문에 더 많은 고객이 중고 제품에 관심을 가져볼 동기를 갖게 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엔데믹에 접어들어 호황을 보였던 2020년 하반기와 불황이 시작된 2022년 하반기를 비교해보면 번개장터 내 거래액은 약 100% 증가했다. 생활필수품이면서 그 어떤 품목보다 재판매 거래에 용이한 패션 부문은 경기 불황기에 다른 부문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중고 거래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이러한 중고패션 시장의 잠재력은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 패션 업계와 유통 업계는 중고패션 시장의 선순환 효과에 주목하며 이것이 한때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구찌, 버버리, 스텔라매카트니 등 명품 브랜드가 중고 시장에 진출했으며 미국의 삭스피프스애비뉴, 영국의 셀프리지스와 같은 고급 백화점도 중고 명품 매장 만들기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북미 최대 중고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했고, 2022년 1월 신세계그룹은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해 전체 이용자의 70%가 MZ세대에 해당하는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그 외 스니커즈 리세일 플랫폼을 운영하는 고트그룹의 스트리트 패션 리세일 플랫폼 그레일드 인수, 일본 최대 중고 거래 플랫폼 메루카리의 도쿄 증시 상장,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베스티에르컬렉티브에 대한 구찌그룹의 투자 등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침체기 소비 패턴과 소비자 행동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중고 시장 선호와 연관이 깊다. 당분간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예상되는 중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 pr@bunjang.co.kr
필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하버드비즈니스스쿨 MBA 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 국내 대표 패션 중고 플랫폼 번개장터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 중고 거래 축제 ‘파름제’ 등 고객 경험 중심의 캠페인을 선보이며 쉽고 빠르고 안전한 패션 중고 거래 문화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국내 유튜브 유저 마케팅을 총괄했고,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Inbev)의 아시아 크래프트 맥주 마케팅 디렉터로 한국과 중국 시장에 구스 아일랜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이외에도 베인앤드컴퍼니 컨설턴트로 재직한 바 있고 패션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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