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기술이 아닌, 사람의 미래를 그리다

297호 (2020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과 기기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 몇십 명, 몇백 명의 미래가 아니라 몇천만 명, 몇십억 명의 미래를 말이다. 기술이 안겨줄 성과와 함께 부작용과 희생까지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없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SF 디스토피아의 세계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SF(Science Fiction)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한 ‘신인류’와 유전적 결함을 간직한 자연 인류의 갈등, 지적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웜홀을 이용한 우주 탐사와 우주 식민지 개척, 인공 인체를 통해 ‘향상’된 개조 인간…. 주로 영화에서 봤던 이야기나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칠 것이다. 그런데 최근 1993년생 젊은 작가가 쓴 첫 SF 소설집이 교보문고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어 눈길을 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이다. 2019년 6월 출간된 이 책은 거의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 쭉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머물러 있다. ‘장르문학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문학계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현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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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근대적 기원

흔히 ‘공상과학소설’이라 번역하는 SF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둘러싼 상상력을 핵으로 삼는다. ‘과학이 발전하면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바로 이 질문을 기원으로 삼아 탄생한 SF라는 장르는 오랜 역사에 걸쳐 대형 장르로 성장했다.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스페이스 오페라, 하드 SF, 평행우주 같은 다양한 하위 장르를 통해 풍성해진 SF 특유의 상상력은 오늘날 한국의 대중 서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2016년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시그널’ 같은 사례가 있다. 무전기를 통해 30년이란 시간을 넘나들며 범인을 추적하는 이 이야기는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상상력이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SF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과학의 담론적, 기술적 발달과 보조를 맞춰 등장한 이래로 대략 12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SF의 시초로 여겨지는 작품 중 하나가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최초로 전면에 내세운, 영국 소설가 H. G. 웰스가 1895년 발표한 『타임머신』이다. 바야흐로 과학이 종교를 대신해 세계를 해명하고 변혁하는 패러다임이 도래하면서 상상력에도 일대 근대적 전환이 일어났던 셈이다. 이와 같은 탄생의 역사적 조건상 SF는 근대 과학 발전의 기수를 잡았던 서양을 중심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 형성된 타 장르와 비교해볼 때 SF는 한국에 신속하게 소개된 편이다. SF의 시초로 여겨지는 작품 중 하나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1870년에 발표한 『해저 2만 리』인데 이 소설이 1907년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번안 소개되며 ‘한국 최초의 과학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이로부터 단순 계산해보면 한국에 SF가 들어온 지도 벌써 100여 년이 넘는 셈이다. 근대 초기, 당시 대중에게 너무나 생소했던 SF가 국내에 소개된 계기는 굉장히 거창했다. SF가 ‘과학입국(科學立國)’이라는 개화기 특유의 이데올로기를 구현한 장르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서양처럼 과학의 힘으로 부국강병을 이룩해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국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SF 도입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고전적 SF 작품들은 그저 허황된 몽상으로 보이기 쉬웠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 시간여행, 심해를 거니는 잠수함과 첨단 병기로 수행되는 전쟁…. 과학이 발전가도를 달리고 있던 서양과 달리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 SF의 상상력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신선이 구름 위를 노니는 고전소설이나 SF나 모두 공상(空想)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과학이 곧 문명이고 힘이라는 고전적 SF의 이데올로기에는 제국주의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 식민지 이후 한국 사회가 겪은 격변을 생각해봐도 SF는 여전히 낯선 상상력이기 쉬웠다. 잇따른 전쟁과 민주화 혁명, 경제 발전과 사회적•정치적 구조 변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문학의 초점은 ‘미래’가 아닌 ‘현실’에 맞춰지곤 했다. 이러한 조건 때문인지 SF는 계속해서 진지한 허구(Fiction)로서보다는 허황된 공상으로 여겨져 온 것 같다.

그렇게 이 땅에 SF가 소개되고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SF의 풍부하고 다양한 상상력은 대중문화계에 흠뻑 스며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창작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 SF 창작이 활성화됐다고는 하나 SF를 전면에 내세워 일반 대중에게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나 작품을 선뜻 꼽기도 어려웠다. 그러면서 SF의 ‘중심’은 서양이고 여기는 ‘변방’이라는 인식이 한국 SF를 둘러싸고 조금씩 쌓여왔다. SF에 친숙해진 오늘날 대중 독자들도 이미 검증된 서양의 ‘고전’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 같은 국내 SF 문학 시장의 오랜 침체를 깬 작품이 바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바위를 깨뜨린 계란처럼 창작의 힘이 시장의 장벽을 깨뜨린 이 의미심장한 순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의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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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의 ‘개인’을 성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그간 SF가 쌓아 올린 상상력의 세계를 눈부시게 확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작가가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SF는 과학이 바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이 과학적 상상력은 동시대 과학의 발전과 궤를 나란히 한다. 그보다 약간 앞서나갈 수는 있지만 동시대 과학과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과학을 상상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이 책의 주요 모티프들은 이 책 이전에도 수없이 변주되며 풍부하게 탐구된 바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책이 그려 보이는 미래가 오늘날 한국의 독자에게 주는 느낌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그리는 미래를 이전의 대중이 봤다면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에게 같은 상상은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 일어날 법한 현실’처럼 보이게 됐다. 예컨대, 생명공학의 발전이 야기하는 우생학적 차별과 억압의 미래 같은 이야기가 그렇다. 이처럼 ‘허황된 공상’이 ‘가까운 현실’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일상을 바꿔놓고 있는 이 시기야말로 SF가 매력을 발휘할 절호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만이 성공의 열쇠는 아니다. 더 중요한 열쇠는 상상력의 방향에 있다. 이 책은 과거의 SF처럼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한 집단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과학의 발전이 변화시킬 개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이 속속 등장해 우리 삶 구석구석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형태로 변형시켜 나가는 시대다. 우리가 그 정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과학은 이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 삶의 근저에 침투해 있다. 그렇게 바뀐 삶을 직접 사는 우리들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이 책, 더 나아가 SF라는 장르가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그래서 결국 인간에 관한 것으로 돌아간다. 신기하고 설레는 과학기술의 발전상이 아니라 그것들이 바꾼 인간의 삶을 따라 읽으면서 독자들은 뜻밖에도 철학적 질문들과 마주치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할까? 예컨대,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한 흠 없는 ‘신인류’와 그렇지 않은 자연 인류가 공존하는 세계를 그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보자. 주인공 올리브는 의문을 가진다. 올리브는 릴리가 신기술로 탄생시킨 ‘신인류’ 인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결함을 갖고 있다. 유전적으로 완벽한 신인류라면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얼굴의 커다란 얼룩이 그것이다. 올리브는 신인류가 자연 인류를 멸시하는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 점을 숙고한 끝에 다음과 같은 답을 얻는다.

릴리가 나를 폐기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였다. 어떤 존재에게 살아갈 권리가 부여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어딘가 흠이 있다면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닌가? 아름답고 뛰어난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인간들을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내게 장애가 있거나 뛰어나지 못하다면 나에겐 살아갈 권리가 없는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가능성을 말살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 이야기의 결말에 올리브는 지구의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함으로써 차별과 억압에 항거하는 길을 선택한다.

또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다룬 우주 개척 세계에서 주인공 안나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 이야기에서 우주여행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와 새로운 운행수단이 개발되자 과거의 통로와 수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은 배제되는 운명에 처한다. 거기로 이미 이주해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과 함께 말이다.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이처럼 어떤 이들을 배제하고 뒤에 남기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은 정말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그렇게 뒤에 남겨진 이들을 그냥 그렇게 잊어버리면 되는 걸까? 당장 우리 목전에 자동화에 따른 실업 같은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무관심하기 일쑤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정말 물어야 하는 질문을 하지 못한 채 눈먼 말처럼 무작정 달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질문들을 일깨워준다. SF의 매력은 지금과 너무나 다르게 변화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경이와 신비와 놀라움으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동시에, 이처럼 종국에는 가장 변하지 않는 것 에 대한 숙고로 인도한다는 데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SF는 과학 시대의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작은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아는 세상이 변화해도 우리는 지금 그대로의 ‘우리’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변화를 견디며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 철학적 질문을 사회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2020년의 대중이 이 책을 더욱 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에 밀착해 있다. 예컨대,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린 페미니즘의 분위기가 그렇다. 출산, 육아로 인해 사회에서 단절돼 고립된 삶을 살다 끝내 죽어서도 ‘분실’된 여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관내분실’ 같은 작품을 차치하고라도 여기 실려 있는 일곱 편의 이야기에서 우주비행사나 과학자 같은 주인공은 전부 여성이다.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대법원에 이상적인 여성 대법관 수는 몇 명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9명 전원이다.” 같은 종류의 질문에 대해 이 책도 똑같이 답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과 달리 세계의 ‘중요한 자리’ 대부분을 여성이 차지하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SF의 상상력은 결국 그것이 뿌리내린 사회의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그려 보인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미래야말로 지금 대중들이 예상 혹은 기대하는 미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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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미래가 아닌, 사람의 미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그리는 미래는 사람의 미래다. 인공지능이 의사와 작가를 대체하는 미래가 박두하는 오늘날,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도 사람의 미래다. 오늘날 최전선에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소수의 기업이지만 그들이 바꿔놓을 미래는 어마어마한 다수의 미래다. 기업은 이 점에 대해 얼마나 숙고하고 있는가? 오늘날 기술과 기기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 몇십 명, 몇백 명의 미래가 아니라 몇천만 명, 몇십억 명의 미래를 말이다.

기술의 눈부신 성과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고통스러운 희생도 종국에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프랜차이즈 매장에 등장한 키오스크 군단이 ‘뒤처진’ 세대를 매장에서 쓸어내게 될 줄 누가 미리 알았을까? 기술이 안겨줄 성과와 함께 부작용과 희생까지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없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SF 디스토피아의 세계뿐이다. 다수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지닌 기업에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 숙고가 요청되는 시대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미래에 대한 이 책의 고민을 나눠보는 것도 좋은 숙고가 아닐까.


필자소개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