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tial Cases in Books

사람과 신뢰, 때론 규정보다 중요하다

168호 (2015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비상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규정을 어겨야 할 때도 발생한다.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규정에만 너무 매달리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규정을 고려할 때 먼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할 때 규정은 잠시 뒤에 내려 놓아도 된다. 융통성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을 중시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리더는 구성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리더는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는 현장 구성원이 권한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리더와 구성원의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리더와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구성원이 권한을 가져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또 리더는 구성원이 사람을 중시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부단하게 교육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규정과 사람 중 어느 쪽이 먼저인가? 규칙과 사람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해야 하는가? 대답을 컨설턴트 사이먼 사이넥의 저서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에 실린 비행기 사고에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에서 살펴보자.

 

“탑승자 수는?” 항공 관제사가 물었다. 일단 조종사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 관제사는 탑승자 수부터 묻는다. 표준 절차다.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급박한 상황이다. “126명입니다.” 조종사가 대답했다. 이 항공기는 플로리다행으로 메릴랜드 상공에서 고도 36000피트, 시속 560마일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종석이 연기에 휩싸였다. 비행기에서 연기가 난다는 것은 조종사에게 가장 무서운 상황이다. 연기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도 있으며 불이 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비상상황이 현 단계에서 멈출지, 더 확대될지 알 수 없다. 연기만으로 시야가 가려지고, 호흡이 곤란할 수 있으며, 승객들을 공황 상태로 만들 게 분명하다. 절대 괜찮은 상황일 수가 없다.

 

“센터, KH209.” 문제의 상황을 알았을 때 조종사는 무전을 쳤다.

KH209, 말하라.” 공중을 감시 중이던 관제사가 답했다.

KH209, 즉시 강하가 필요하다. 고도를 유지할 수 없다.” 조종사의 돌발 요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플로리다로 날아오는 비행기가 한 대 더 있었다. 문제가 생긴 비행기의 바로 2000피트 아래였다. 연방항공국의 규칙은 명확하다. 어떤 비행기도 다른 비행기와 1000피트 이하로 가깝게 지날 수 없다. 5마일 주변을 지나서도 안 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음속의 4분의 3에 달하는 속도로 비행하다 보면 비행기가 가깝게 위치하면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두 비행기는 목적지를 향해 좁은 항로로 비행하고 있었다. 일대에서 군사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행 가능 영역은 고속도로처럼 좁았다. 물론 다른 항로도 있었지만 당시 다른 항로에는 다른 비행기들이 날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항공 관제사는 즉시 강하하겠다는 조종사의 요청에 답했다. “KH209, 우측으로 15도 회전 후 강하하라.”

 

이게 무슨 뜻인가? 관제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항공기에게 통제 구역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게다가 강하하라고도 지시했다. 아래로 날고 있는 비행기의 5마일 완충 구역을 침범하라는 뜻이다. 현대 항공기는 충돌 경보기가 장착돼 있어서 다른 항공기가 1000피트, 5마일 완충 구역 이내에 들어오면 조종사에게 위험을 알린다. 알람이 울리면 피할 시간이 부족하다. 조종사들은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대처하도록 평소 훈련을 받는다. 두 비행기는 34000피트 상공에서 근접해 지나칠 것이므로 당연히 충돌 알람이 울릴 것이다. 정확히 2마일 거리밖에 안 되는 거리를 스쳐서 지날 것이다.

 

당시 관제사는 매우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항공기의 궤도 및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여러 규칙과 제약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항공기의 조종사에게 무전을 쳐서 또박또박 쉬운 영어로 말했다. “AG1446, 당신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가 있다. 저쪽에서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저쪽은 당신네 우측 앞으로 대략 2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그쪽 고도를 통과해 하강할 것이다. 저쪽은 즉시 강하가 필요하다.” 고장이 난 비행기가 하강하면서 다른 3대의 비행기를 지나칠 때도 같은 메시지가 다시 한번 반복됐다. 메릴랜드 상공에서 126명의 승객이 목숨을 건진 것은 한 노련한 항공 관제사가 규칙을 깨기로 결심한 덕분이다.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무엇을 느꼈는가?

 

 

 

규정 준수보다 사람이 우선

2012년 한 해에만 미국 항공사들의 국내 여객기 정기 노선은 980만 편 이상이다. 하루 26800건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매년 81500만 명의 승객이 조종사와 정비공, 연방항공국에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다. 여기에 항공 관제사도 추가된다. 우리는 이들이 규칙을 준수하며 모든 항공기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KH209편은 관제사가 안전을 위해 만든 규칙을 어겼다. 무엇이 옳은가? 규정을 지켜야 하는가? 규정을 어겨야 하는가?

 

규정을 어겨야 하는 상황이 있다. 이것이 바로 신뢰다. 우리는 사람들이 규칙을 준수할 것이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언제 규칙을 깨야 할지도 안다고 믿는다. 규칙이란 정상적인 상황에서 존재한다. 규칙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문지식을 가진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언제 규칙을 깨야 할지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규칙이나 기술은신뢰할 수 없다. 분명 이것들에게 의존할 수는 있다. 하지만신뢰는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신뢰는 오직 인간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상대가 적극적이며 의식적으로 우리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만 상대를 신뢰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여러 변수에 반응할 뿐이다. 또 규정집이 아무리 정교해도 모든 경우를 고려할 수는 없다.

 

아직도 규정만이 지고지순의 가치라고 생각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라. 당신 가족이 비행기를 타는데 조종사와 관제사가 규칙만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편할 것인가? 혹은 조종사와 관제사가 보너스를 받을 행동만 골라 하는 사람이라면 가족들을 비행기에 태울 것인가? 경험이 많고 자신감이 있는 조종사와 관제사들이 비상 상황에서 보너스를 못 받아도 규칙을 깨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이기를 바라는가? 답은 너무나도 뻔하다. 우리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을 신뢰한다.

 

 

 

부실한 조직은 감독하는 사람이 없을 때 너무 많은 구성원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규칙을 깬다. 그래서 조직이 약화된다. 튼튼한 조직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고 규칙을 깬다.

 

사람을 존중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3가지 방법

그렇다면 관심은 규칙보다 사람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는가로 넘어간다. 특히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권한 위임이다.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규칙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비상 상황에서 옳은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고위층은 권한은 몽땅 가지지만 정보는 없다. 말단 직원은 정보는 모두 가지고 있지만 권한이 없다. 그래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현장의 정보가 없는 리더들이 자신의 권한을 넘기지 않는 한 조직을 더 훌륭하고 순조롭고 빠르게 운영해서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실현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상황에 맞춰서 적절하게 규정을 넘어서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는 게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힘은 에너지의 이동으로 정의된다. 전구의 힘은 와트로 계산한다. 와트가 높을수록 더 많은 전기가 빛과 열로 바뀌고, 더 강력한 전구가 된다. 조직과 리더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꼭대기로부터 실제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가 이동할수록 더 강력한 조직과 리더가 만들어진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한발 뒤로 물러서는 지혜다. 구성원이 자신의 일을 인지하고,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신뢰해야 한다. 부실한 조직은 감독하는 사람이 없을 때 너무 많은 구성원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규칙을 깬다. 그래서 조직이 약화된다. 튼튼한 조직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고 규칙을 깬다. 물론 권한 위임이 불가능한 상황은 다음의 3가지다. “내가 지닌 법적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 인간관계를 위임할 수 없고, 내 지식도 위임할 수 없다. 이 밖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맡길 수 있다.”

 

둘째는 리더와 조직원의 상호 신뢰다. 리더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해주기를 기대한다. 당연한 얘기다. 리더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의 혜택은 반드시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방향의 신뢰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진은 노동자를 신뢰하지만 노동자는 경영진을 신뢰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내는 남편을 신뢰하지만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 결혼을 견고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원이 어떤 리더를 가장 신뢰하느냐다. 조직원이 신뢰하는 리더는보호막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용기는 위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리더가 자신을 얼마나 신뢰한다고 느끼냐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데 왜 신뢰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신뢰를 먼저 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셋째는 교육이다. 구성원의 양성을 위해서 규칙을 가르치고, 능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리더의 책임이다. 구성원에게 실권을 맡긴 조직은 구성원을 부단히 훈련시킨다. ‘파워포인트 잘 만들기프리젠테이션 잘하기등의 과정을 가끔 개설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훈련이다. 이런 조직은 자기계발을 할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책임지고 부하 직원들이 모두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부하들을 잘 훈련시켜서 자신의 일을 수행할 때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게 리더의 일이다. 부하들에게 책임을 맡기고, 알아서 미션을 진행하도록 만드는 일 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아직도 규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하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싸울 때마다 매번 그 사람은 단순하게 몇몇 변수에 반응하거나, 규정집을 따른다고 생각해보자. 이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그냥 규칙에 회부한다. 관료주의자와 함께 일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초 규칙이 돕거나 보호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관심이 없다. 사람과 회사의 관계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위한 알고리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규정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싶다. 그런 조직과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권한이양과 상호신뢰,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사람이 중요하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