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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와 경영

쥐잡기 경쟁시키니 쥐를 사육하기도... 이제 ‘경쟁’ 대신 ‘협력’을 말하자

유정식 | 133호 (2013년 7월 Issue 2)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던 시절, 프랑스인들은 이곳저곳에 출몰하는 쥐의 개체 수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묘안을 생각해냈다. 베트남 사람들이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오면 그 수대로 돈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돈으로 쥐잡기 경쟁을 조장하면 쥐가 박멸되리라 희망했던 프랑스인들은 곧이어 베트남인들이 쥐를 사육하면서까지 돈을 받아 가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쥐는 박멸되기는커녕 전보다 오히려 더 들끓었다.

 

우리는 흔히 직원들의 경쟁을 강화하면 개인과 조직의 성과가 향상될 거라 믿는다. 내부 경쟁이 직원들로 하여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유도하고 크고 작은 혁신을 가속화시키며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성과가 지지부진하거나 조직의 활력이 저하된 원인을 구성원들의 경쟁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기존 제도의 느슨함에서 찾곤 한다. 그래서 평가를 강화하고 차등 보상을 도입하며 성과급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직원 간의 경쟁과 부서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려 든다. 이런 기대는 언뜻 논리적인 듯 보이지만 베트남인들의 사례처럼 경쟁이 야기하는 현실은 종종 추구하는 바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쟁은 부정행위를 키운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시어즈(Sears) 18건이나 되는 집단소송에 연달아 휘말렸다. 시어즈는 시어즈오토센터(Sears Auto Centers)라고 불리는 자동차 정비 체인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정비사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부분을 수리하고서 고객에게 과도하게 많은 수수료를 청구했다는 것이 집단소송의 이유였다.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가면 브레이크가 이상하니 그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거나 스티어링 휠이 뻑뻑해 정비소를 찾으면이것도 함께 고쳐야 한다고 말하며 고객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는 것이다.

 

고객의 99%는 자동차 내부 구조에 대해 젬병이기 때문에 고객을 속이고 과도한 수리비를 챙기는 일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추산하면 미국만 해도 고객들이 필요 이상으로 지출하는 자동차 수리비가 연간 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1732만 대로 미국의 7% 수준이다. 미국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돈이 이러한 부당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을지 모른다.

 

시어즈는 결국 소송에서 패해 수천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자동차 정비 사업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업에서도 비슷한 류의 속임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계속해서 소송에 휘말려 역시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야 했다. 시어즈는 결국 15년 동안 무려 2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그렇다면 필요도 없는 수리를 종용하고 멀쩡한 부품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한다고 압박하며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물론 모든 사업체는 매출과 이익이 목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고객으로부터 얻어내려는 동기가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기 행각에 눈멀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직원들과 경영진이 더욱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탐욕스럽게 만들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경쟁을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성과주의 철학이다. 환경이 급변하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본급을 줄이고 업무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을 확대하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다. 일했으면 성과를 내라고 말하며 다른 직원보다 월등하게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일종의도덕이나직업윤리인 양 직원들을 세뇌시킨다. 외부 경쟁의 격화를 직원끼리의 내부 경쟁 강화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결국 직원들은 불필요한 수리비를 청구하는 일과 같이 작은 부정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당한 방편이라고 합리화하기에 이르고 만다.

 

눈앞에 놓인 단기적인 성과를 부채질하면서 직원들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낼까 궁리하면서 겉으로는 윤리경영이라는 탈을 쓴 기업을 한두 곳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성과를 장려하고 그나쁜 성과를 초과 달성하는 직원들에게나쁜 보상을 한다면 기업의 부정행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나쁜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불행한 생태계가 돼좋은 성과를 달성하려는좋은 의도는 빠르게 도태되고 말 것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 2007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대기업들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 수가 40%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쟁을 통해 세상이 예전보다 더욱 활기 있고 풍요로워졌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경쟁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기업의 정의와 진정한 직업윤리를 뺑소니치고 달아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최우선 목표였다면 이제는좋은 성과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일구는 것이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 오일 갈러 갔다가 쓸데없이 엔진을 수리하는 일, 그런 부정으로 얻은나쁜 성과는 불량식품처럼 달콤하지만 끝내 기업을 거짓말과 부정행위가 창궐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 말이다.

 

하이델베르크대의 크리스티아네 시비에렌(Christiane Schiwieren)과 린즈대의 도리스 바이히셀바우머(Doris Weichselbaumer)는 미로 찾기 게임을 통해 경쟁의 강화가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닌지 검증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30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상에 차례로 나타나는 여러 개의 미로 게임을 가능한 빨리 해결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화면에는자동 경로 찾기경로 확인이라는 버튼이 있었는데 일부러 참가자들의 부정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얼마나 많은 미로를 풀었는지 스스로 기록하도록 했다. 컴퓨터에는 참가자들의 행동을 모니터하기 위한 스파이 웨어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부정행위가 감시됐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미로를 풀었는지 기록됐다. 참가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게임에 임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각각 두 가지 보상 조건하에서 미로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다. 첫 번째는낮은 경쟁 조건이라서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성적과는 상관없이 미로 게임 하나를 풀 때마다 30센트를 받았다. 반면높은 경쟁 조건은 토너먼트를 벌여서 오직 1등만이 미로 게임 하나에 대해 1.8유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한승자 독식의 구조였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높은 경쟁 조건하에서 더 많은 미로 게임을 풀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 중 남성들은 낮은 경쟁 조건일 때보다 높은 경쟁 조건일 때 2.7개 정도 적게 풀었다(여성들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경쟁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과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증거로 채택할 만한 결과였다.

 

부정행위의 빈도는 어땠을까? 참가자들은 낮은 경쟁 조건에서는 자신이 실제로 푼 개수보다 1.31개를 더 풀었다고 실험 진행자에게 거짓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경쟁을 강화시킨 높은 경쟁 조건에서는 개수 차이가 2.91개로 늘어났다. 연구자들은 높은 경쟁 조건일 때 특정 참가자가 문제를 1개 이상 더 풀었다고 거짓말할 확률이 31%에서 39%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는 내부 경쟁의 강화가 부정행위와 속임수의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비에렌과 바이히셀바우머는 경쟁이 강화되면 성공하기 힘든 자가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부정행위나 속임수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결론 내린다.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실력이 거의 비슷할 경우에도 조그만 부정행위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때문에 역시 부정행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지적한다. 직원들 간의 학력, 지능, 역량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요즘의 기업 현실에서발각되지 않는 속임수는 개인의 경쟁력으로 둔갑하기도 한다.경쟁은 승자가 되기 위해 양심을 버리는 행위를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만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시어즈와 같은 기업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내부 경쟁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성공을 강조하기에 조직에 기여하려는 동기를 약화시키고 공정한 룰을 준수하려는 의지도 희석시킨다. 조직 충성도와 헌신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일단 남을 이기고 보자는 자기합리화에 의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버린다. 내부 경쟁이 성과를 높이는 장치로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점, 오히려 원치 않는 부정행위를 장려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내부 경쟁이 바람직하다는 단선적인 생각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됐다. 게다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커진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경쟁은 비용을 늘리고 성과를 떨어뜨린다

피터 블로우(Peter M. Blau) 1940년대 말에 수행한 연구의 주제는 경쟁적인 조직과 협력적인 조직 중 어느 곳의 생산성이 더 높은가에 관한 것이었다. 블로우는 어느 공공 취업 센터에 근무하는 12명의 인터뷰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센터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섹션 A에는 7명이, 섹션 B에는 5명의 인터뷰어들이 근무 중이었다.

 

인터뷰어들이 담당한 업무는 단순했다. 그들은 구직자들의 신청을 접수받아 인터뷰한 다음 구인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업무를 수행했다. 인터뷰어들의 성과는 구직자들과 얼마나 많이 인터뷰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취업 성공 건수를 달성했는지로 평가됐고 그 결과는 모든 인터뷰어에게 공개됐다. 그래서인지 기업으로부터 구인 요청이 적게 들어올 때는 인터뷰어들끼리 경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인터뷰어와 구인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독점하려는 양상이 벌어졌다.

 

블로우가정보의 공유 정도이라는 지표를 가지고 섹션 A와 섹션 B내부 경쟁도를 역으로 측정했더니 섹션 A가 섹션 B보다 더 경쟁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섹션 B를 살펴보니 흥미로운 구인 요청이 들어오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고 누군가가 정보를 독점하려 들면 그를 정보 공유의 대상으로부터 배제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섹션 B에서 취업 성공률이 독보적으로 높은 인터뷰어는 동료로부터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반면 섹션 A의 인터뷰어들은 취업을 성사시키려는 욕망이 다들 커서 동료들과의 정보를 공유하려 들지 않았다.

 

개인별로 생산성을 측정한 결과, 경쟁도가 높은 섹션 A의 취업 성사 건수가 훨씬 많았다. 섹션 A 1인당 84, 섹션 B 1인당 58건 정도의 취업 성사 건수를 나타냈다. 이 데이터만 보면 내부 경쟁을 권장하는 것이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취업 성사 건수를 구인 요청 건수로 나누어 생산성을 계산해 보면 섹션 A가 섹션 B보다 못했다. 섹션 A는 구인 요청 건의 59%를 성사시킨 반면 섹션 B는 구인 요청 건의 67%를 성사시켰다.

 

블로우의 연구는 경쟁을 바탕으로 산출된 성과는 꽤 큰 비용을 치르고 얻은 것임을 시사한다. 경쟁으로 인해 직원들 간의 정보 공유가 단절되면 특정 개인의 성과는 높아질지 몰라도 조직 전체로 보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내부 경쟁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비용의 증가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최대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직접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스테펜 가르시아(Stephen M. Garcia)와 아비샬롬 토르(Avishalom Tor)의 연구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가르시아와 토르는 2005년에 미국 전역에서 실시된 SAT(미국의 수학능력시험)의 점수 분포, 수험생 수, 고사장 개수 데이터를 확보한 후에 개인 소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교육 예산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하나의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수가 많을수록 SAT 점수가 낮다는 경향이 발견됐다. 가르시아와 토르는 이렇게 같은 과제나 게임을 수행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고 인식하거나 실제로 많을수록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일컬어 ‘N 효과라고 명명했다.

 

통제된 조건에서 실시한 실험에서도 N효과가 증명됐다. 가르시아와 토르는 74명의 대학생들에게 시간제한이 있는 8개의 간단한 퀴즈를 풀도록 했는데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10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경쟁해서 문제를 모두 푸는 데 걸린 시간이 상위 20%에 해당하면 5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경쟁자가 100명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경쟁자가 10명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100명 조건의 학생들에 비해 퀴즈를 빨리 풀었다(28.94초 대 33.15).

 

후속 실험에서 가르시아와 토르는 47명의 학생들 중 절반에게당신과 달리기 실력이 비슷한 50명의 경쟁자와 5㎞ 경주를 치른다고 상상한다면 당신은 평소보다 얼마나 빠르게 달릴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반면 나머지 절반에게는 500명의 경쟁자와 경주를 벌이는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 학생들은 ‘500명 조건일 때보다 ‘50명 조건일 때 더 열심히 달릴 것이라고 답했다.

 

경쟁자 수가 많아지거나 경쟁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실력이 저하되고 열심히 하려는 동기도 떨어지는 이유, N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르시아와 토르는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에서 답을 찾는다. 그들은 추가 분석에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N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규명했다. 이는 N효과를 일으키는 메커니즘과 사회적 비교가 연관성이 높다는 점을 일러준다. 직원들의 성과를 높일 목적으로 경쟁을 강조하는 방법은 사회적 비교를 자극해 오히려 직원들의 동기와 성과를 저하시킬 뿐이다.

 

협력적인 조직은 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의 성과 달성에 몰두하려는 이기심을 완화시키고 협력을 권장하기 때문에 개인 간에 더 많은 정보가 흐르고 공유된 정보가 조직의 성과로 이어진다. 이는 블로우의 연구 외에도 상당히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지하는 바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경제학자인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M. Axelrod)의 연구다. 그는 반복적으로 벌어지는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최대의 이익을 얻으며 윈-(Win-Win)하는 방법은 서로 협력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액설로드는성공은 상대방을 눌러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미국 내에 4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맨즈웨어하우스(The Men’s Warehouse)는 경쟁의 폐해와 협력의 이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를 성과관리에 적용하는 흔치 않은 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는 팀 판매(Team Selling)를 강조하며 매장 내 의상 컨설턴트들의 거래건수가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만일 어떤 의상 컨설턴트가 특별히 많은 손님을 상대했다면 다른 직원들과 협력하지 않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경고한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남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면 그 의상 컨설턴트를 해고하기까지 한다. 직원이 매장의 물건을 몇 번 훔쳐도 좀처럼 해고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당신의 회사는 내부 경쟁을 권장하며 성과 창출을 지상목표로 설정했는가? 그렇다면 성과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생각해 봤는가? 내부 경쟁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경쟁은 고()비용의 경영 방식임을 깨닫고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야기하는 제도와 문화를 걷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경쟁은 이타적인 직원을 미움받게 만든다

남에게 많이 베풀고 자신의 이득을 적게 취하는 이타적인 직원이 팀에 있다면 다른 직원들은 그가 팀에 계속 남아 있기를 원할까, 아니면 팀에서 떠나주길 은근히 바랄까? 워싱턴주립대의 심리학자 크레이그 파크스(Craig D. Parks)는 학생들을 모집해 각자 5명으로 구성된 팀의 일원이라고 가정하게 했다. 10포인트씩 지급받은 학생들은 컴퓨터상에서 일종의 기부 게임을 진행했다. 이 게임은 학생들이 자기 포인트의 일부 혹은 전부를 기부하면 두 배의 포인트가 팀 공동계좌에 적립되는 방식이었다. 기부를 끝내고 학생들은 팀 공동계좌에서 최대 4분의 1까지 포인트를 꺼내올 수 있었다. 이렇게 10번의 라운드를 실행한 다음 학생들은 자기 계좌에 쌓인 포인트를 교내에서 통용되는 쿠폰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파크스는 게임을 끝낸 후 학생들에게 다른 팀원들이 얼마나 기부하고 얼마나 인출했는지 알려줬다. 3명의 팀원은 팀의 평균만큼 기부하고 인출했지만4의 팀원은 팀의 평균보다 많거나 적게 기부하고 팀의 평균보다 많거나 적게 인출했다고 전했던 것이다. 파크스는 제4의 팀원이 기부 게임에 함께 할 팀원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는지 9점 척도로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파크스는 제4의 팀원이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이타적인 팀원일 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4의 팀원이 적게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공정한 팀원일 때 가장 높은 점수(6.31)를 얻었지만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이타적인 팀원일 경우에는 고작 3.45점밖에 얻지 못했다. 이 값은 적게 기부하고 많이 인출하는이기적인 팀원(2.35)’에 비해 별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이타적인 팀원도 이기적인 팀원과 마찬가지의 정도로 조직에서 축출 대상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였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제4의 팀원이 직원들에게 무능하거나 행동의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지만 비슷한 방식의 후속 실험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증명됐다.

 

파크스는 학생들에게 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글로 설명하라고 요청했다. 95%의 학생들은 이타적인 팀원이 다른 팀원들에 비해 특이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고 팀의 암묵적인 규범을 깨뜨린다는 이유로 그를 팀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예를 들어, “아무도 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 팀원이 다른 팀원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이타적인 직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가 다른 직원보다 높기에 그들이 조직에 남아 있도록 보상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크스의 실험은 의지와 현실이 매우 상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개인 간의 경쟁에 불을 붙여 조직 성과를 제고하겠다는 정책은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평가와 연봉에 불리하다는 점을 직원들의 뇌리에 심어 놓는다. 상황이 이러한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인 직원은 비록 고맙긴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기가 왠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아주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잖아” “다들 하는 대로 할 것이지, 뭐가 잘났다고…”라며 불편해 한다. 은연중 이타적인 직원이 나 자신의 입지를 흔드는 위험한 인물로 여겨져 그들이 조직에서 사라져 줬으면 한다.

 

파크스의 실험은 내부 경쟁을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타적인 직원들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결국 다른 직원들에 의해 서서히 조직 바깥으로 퇴출되고 말 거라는 우울한 결론을 전달한다. 이타적인 직원을 보호하는 다른 장치가 없다면 경쟁은 이기적인 자만 살리고 이타적인 자를 죽이는 가장 은근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 모른다.

 

동물로부터 배우는 지혜, 협력

경쟁이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할까? 동물과 인간은 본성의 원류를 공유하고 있기에 진화 심리학 관점에서 본성이 우리에게 말하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동물의 왕국을 보며 약육강식의 치열한 쟁탈전을 연상하곤 한다. 다른 종()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아야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으며 같은 종 내에서도 우월한 유전자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누르고 승리하는 것이 종의 안녕을 보장하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은 좋은 것이고 더욱 강화해야 할 가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겉으로는 경쟁과 투쟁이 난무하는 듯 보이는 동물의 세계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경쟁보다는 협력의 양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자연도태니, 적자생존이니, 이기적 유전자니 하는 개념에 경도된 나머지 생명의 본성을 외면하는 듯하다.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이라고 불리는 아메바는 매우 특이한 행동을 보인다. 박테리아를 먹이로 하는 아메바는 박테리아가 풍부할 때는 각 개체가 단독적으로 살아가다가 먹이가 부족해지면 근처에 있는 다른 아메바에게 신호를 보내 결집하기 시작한다. 아메바가 하나둘 모여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면 끈적끈적한 모양의 집합체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집합체를 형성한 아메바 중 약 20% 정도가 자발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왜 집합체를 형성하는 걸까? 왜 그중 20%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는 걸까? 죽어버리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가 사라지는데 왜 다른 개체의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까? 죽은 아메바들은 딱딱하게 굳어서 2㎜의 줄기를 형성하는데 살아 있는 아메바들이 이 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옆을 지나가는 여러 곤충들의 몸에 붙을 수 있다. 곤충들의 몸을 타고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서다. 죽은 아메바들은 동료 아메바들이 곤충이라는기차를 타고 멀리 떠날 수 있도록 스스로플랫폼이 돼주는 셈이다. 자기희생을 기반으로 한 놀라운 협력임이 분명하다.

 

 

 

아메바는 단세포 동물이고 하등동물이라서 다른 개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거니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메바는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의 본능을 형성하는원형이다. 무시받을 대상이 아니다. 몇몇 골수 다윈주의자들은 경쟁과 투쟁으로 아메바의 자기희생을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생명이 애초부터 협력을 기반으로 진보해 왔음을 애써 무시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임은 아메바에 비해 고등한 동물이라 여겨지는 조류에서도 발견된다. 인드리키스 크램스(Indrikis Krams)와 동료들은 얼룩무늬 딱새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실험을 통해 포식자의 위협이 동료와의 협력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크램스는 딱새 둥지 15개를 실험군으로, 나머지 13개를 대조군으로 설정했다. 그러고는 실험군 딱새들에게는 둥지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올빼미 박제 인형을 반복적으로 갖다 놓음으로써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함을 인식시켰다. 반면 대조군 딱새들에게는 동일한 위치에 개똥지빠귀 인형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 올빼미는 딱새를 잡아먹는 포식자이지만 개똥지빠귀는 딱새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이 아니다.

 

크램스는 딱새 새끼가 태어난 지 열흘 되는 날에 두 개의 딱새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가져다 놓은 다음 두 개의 둥지 중 하나를 향하도록 했다. 올빼미의 위협을 받는 딱새 부부와 옆에 이웃한 딱새 부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새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포식자를 떼 지어 공격하는 습성을 보이는데 크램스는 그 공격의 정도를 0(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3(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듯 공격하는 상태)까지의 척도로 측정했다.

 

관찰 결과, 실험군이나 대조군이나 포식자(올빼미 인형)에게 떼 지어 공격하는 경향이 비슷했다. 포식자에게 접근하는 거리도 차이 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 이웃 딱새들의 행동에서 나왔다. 실험군에 속한 이웃 딱새(올빼미 인형을 접할 때)들이 대조군에 속한 이웃 딱새들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올빼미를 공동으로 공격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향을 보였다. 실험군일 때는 모든 딱새가 이웃 딱새가 처한 위협에 같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조군일 때(개똥쥐빠귀 인형을 접할 때) 38.5%의 딱새가 이웃의 곤경을 모른 체하고 넘어갔다.

 

크램스는 이 실험이 끝나고 1시간 후에 다시 두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놓되 그 방향을 이전과 반대로 함으로써 올빼미의 위협을 받았던 딱새 둥지와 그 이웃 둥지의 입장을 바꿔 놓았다. 도움을 받았던 것에 보답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실험군 딱새들은 80%가 보답했지만 대조군 딱새들은 25%만 침입자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관찰 실험은 동물들은 포식자의 위협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때 이웃과 기꺼이 협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협력이 개체가 갖게 될 리스크를 줄여서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의 변화든, 경쟁사의 직간접적 위협이든 외부 경쟁이 심화되고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화할 때 직원 간의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조치는 협력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명의 본성에 반할뿐더러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악성요소가 된다는 점이 아메바와 딱새의 생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이다.

 

굳이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지 않아도 조직에 위협이 가해져 오면 구성원들이 합심하고 공동 대응하려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경쟁의 강화가 외부 경쟁력을 높인다는 발상이 왜 여전히 경영자들에게 먹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이유는 진정한 경쟁력(이 용어는 경쟁을 당연시하는 말이기에 부적절하다. ‘생존력혹은적응력이란 말로 바뀌어야 한다)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로버트 크로(Robert Crow)의 말처럼 경영자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는 동안 경쟁을 통해 수많은 후보들을 물리쳤다는 경험에 매몰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년사에서 흔히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금년에는 모든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잘 대처하자고 강조하면서도 기존 협력적 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협력이 자라날 수 없도록 강력한 성과주의 제도를 실시하는 모습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일까, 아니면 이타적일까? 이 질문은 성선설과 성악설을 사이에 두고 오래 전부터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벌여온 논쟁과 비슷한 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적인 존재로 보느냐, 이타적인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면 그 이기심이 조직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지 않게 유도하고 나아가 시너지를 구축하도록 통제와 명령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당위성을 갖는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타인을 돕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받고 보호받으려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내적 동기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관한 논쟁은 상당히 버거운 주제다. 하지만 유아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펠릭스 바르네켄(Felix Warneken)과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본다면 그 오래된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17.5∼18.5개월 사이의 유아 24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간단한 과업을 수행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어떤 성인 남자가 일부러 펜이나 빨래집게를 떨어뜨리고 손에 안 닿는 척하거나,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캐비닛 문을 열지 못하는 척하거나, 또는 책을 쌓다가 실수로 책을 미끄러뜨렸을 때 유아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모두 10가지의 과업을 각각 수차례 실험한 결과, 유아들은 10회 시도할 때마다 5.3회 정도로 남자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다. 유아 각각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24명 중 22명의 유아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 남자를 도왔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떤 유아가 항상 남을 돕는지, 또 어떤 유아가 절대로 남을 돕지 않는지는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비슷한 실험을 세 마리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유인원이기에 이타성의 본류를 확인하는 데 좋은 실험 대상이다. 침팬지에게도 모두 10가지 종류의 과업을 실시했는데 예를 들어 실험자가 테이블을 스펀지로 닦다가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집어 올릴 수 없는 척하거나,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치우지 못해 바닥에 앉지 못하는 척하거나 했다. 그 결과,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비록 유아들보다는 도와주는 횟수가 적었지만 침팬지들은 도움이 필요한 실험자를 제법 자주 도왔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인간이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을 타고났을 거라 짐작케 한다. 이타심이 발현되는 이유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또는이기적 유전자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고 숙주인 인간을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인간은 선천적으로 대가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 실험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어떤 가정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X이론 ‘Y이론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 X이론은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통제해야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기에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 당근과 채찍을 통한 경쟁을 강조한다. 반면, Y이론은 직원들이 스스로 성취감과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솔선하며 자율적인 책임하에 목표에 헌신한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Y이론하에서는 자유와 창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가치로 삼는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 결과는 Y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다.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이므로 자율을 부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경우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길임을 시사한다. 조직이 구성원들을 이기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면 경쟁이, 이타적으로 인식하면 협력이 조직을 돌리는 엔진이 된다.

 

경쟁은 업무 착수마저 두렵게 만든다

당신 앞에 커다란 물건이 하나 놓여져 있다. 누군가가 그걸 들어달라고 부탁할 때 당신은 자동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일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무게가 가벼운데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면 몸짓이 우스꽝스러울 테고 반대로 무거운 물체를 가벼우리라 예상하고 들어올린다면 미처 대비하지 못한 팔 근육에 무리가 갈지 모른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것의 무게, 촉감, , 냄새 등을 미리 짐작하고 행동을 결정하곤 한다. 오랜 옛날, 거친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런 단기적 예측 능력은 매우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상 자체를 보며 그것의 무게, 촉감, , 냄새 등을 짐작할까, 아니면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고려해 맛보고 냄새를 맡는 등의 행동을 결정할까? 깨끗한 접시 위에 담겨진 빵이 최신식 인테리어로 빛나는 찻집에 있을 때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여져 있을 때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빵을 선택한다. 빵의 신선도와 맛을 빵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도 평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밝은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경우와 컴컴한 밤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다르다. 이렇듯 우리는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때 항상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한다.

 

물건을 들어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혼자서 물건을 들어보라고 할 때와 동료가 물건을 함께 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랍게도 같이 들어 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물건의 무게를 실제보다 적게 추측하도록 만든다. 애덤 도어펠드(Adam Doerrfeld)와 동료 연구자들은 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다.

 

도어펠드는 177개의 골프공이 담긴, 총중량 20파운드의 바구니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 바구니를 들기 전에 무게를 추측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바구니를 혼자서 들어야 하는 그룹과 둘이 함께 드는 그룹으로 나뉘었다. 둘이서 바구니를 함께 들 거라고 들은 참가자가 방의 한쪽 구석에 앉으면 그를 도와줄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가 다른 쪽 구석에 앉았다. 도어펠트는 바구니의 무게가 15파운드에서 25파운드 사이라고 일러줌으로써 과도한 추측을 방지했다.

 

실험 결과,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21파운드 정도라고 추측함으로써 실제 무게인 20파운드에 근접한 정확도를 보였다. 반면, 동료와 함께한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17.5파운드라고 짐작했다. 혼자 들어야 하는 학생들보다 약 3.5파운드를 적게 추측했던 것이다. 실험 방식을 약간 변형한 후속 실험(골프공 개수도 추측해 보라는 요청이 추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함께 바구니를 들어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에게 부과된 부담을 적게 느낀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조직에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인간이 어떤 대상의 무게, 촉감, , 냄새 등을 판단할 때 주변 환경을 유리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은 자신과 한 조직에 소속된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나 일상업무의 부담을 인식한다. 이런 측면에 보면 직원들의 업무영역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구분하고 개인 성과목표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성과주의 문화는 직원들이 협력하려는 동기 자체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더욱 힘들게 느끼도록 만들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 협력이 권장되고 협력이 문화로 정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활성화 에너지의 문턱 값이 낮기 때문에 목표 완료의 속도가 빠르고 성과의 질도 뛰어날 것이 분명하다.

 

헌데 동료의 존재만으로도 정말 부담이 덜 느껴질까? 도움이 안 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 도어펠드는 후속 실험을 통해 동료가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동료의 존재로 인한 경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규명했다. 목 보호대를 차고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동료(역시 연구자 중 한 명)와 함께 짝을 이루게 한 경우와 건강한 동료와 짝지은 경우를 비교해 보니 부상당한 동료를 짝으로 둔 학생들이 바구니의 무게를 더 무겁게 추측했다. 이 학생들은 혼자 바구니를 들어보라고 요청받은 참가자들보다도 그 무게가 더 나간다고 짐작했다. 이는 협력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역량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돼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다.

 

경쟁이 성과 창출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잘하려고 애쓰는 것과 남을 앞서려고 애쓰는 것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둘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직원들에게 성과 목표를 강하게 부과하기보다는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려는 자발적인 조직문화를 일구는 일이 진정한 성과주의 문화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KPI 도출에 열을 올리고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을 채찍질하는 문화는 봉건적인 기업문화의 전형이다. 경영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인간을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원형이 경쟁과 협력 중 어디에서 나왔는지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용의 미덕을 아는 경영자의 책무다.

 

경쟁은 양날의 칼이다. 협력이 없는 경쟁은 그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의 조직은 협력적인가? 당신의 회사는 직원들 간의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가?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jsyu@infuture.co.kr

필자는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기아자동차와 LG CNS를 거쳐 아서앤더슨과 왓슨와이어트에서 전략과 인사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2002년 인퓨처컨설팅을 설립해 기업과 공공기업을 상대로 시나리오 플래닝, 인사,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착각하는 CEO> 등이 있다.

 

 

  • 유정식 | - (현) 인퓨처컨설팅 대표
    - 왓슨와이어트, 아더앤더슨 시니어 컨설턴트 역임
    - 기아자동차, LG CNS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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