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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총합

비효율적이고 느슨한 공간, 코코넛 위기 버퍼가 된다

신동엽 | 116호 (2012년 11월 Issue 1)

 

 

전혀 예측 못했는데 갑자기 발생해서 걷잡을 수 없이 전개, 확산되는코코넛위기에 대한 관심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표되는 코코넛위기는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극도의 환경 불확실성과 일단 발생하면 그 환경에 속한 대다수의 조직과 행위자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교란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환경 불안정성이 그 특징이다. 그렇다면 코코넛위기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왜 지금 코코넛위기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것일까? 실제로 코코넛위기의 가능성이 그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진 것일까? 무엇보다 코코넛위기는 예측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코코넛위기 원인의 조직이론적 해석들

코코넛위기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코넛위기의 핵심 특성인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거시 조직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불확실성은 조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미래 환경의 변화에 대한 예측가능성 정도를 말한다. 불안정성이란 조직의 일상적 운영과정을 교란하고 생존과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환경 변화의 빈도와 강도를 뜻한다. 조직이론은 이런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문제에 가장 먼저 주목한 학문 분야다. 조직이론가들은 1950년대에 이미 조직과 환경 간 적합성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상황적합성이론(Contingency Theory)을 통해 환경불확실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조직이론을 풍미했던 수천 개의 상황적합성이론 연구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가 바로 환경 불확실성, 불안정성, 역동성 등이었으며 조직이 이런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환경과 조직 간 적합성 여부에 따라 성과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에머리(F. Emery) 교수와 트리스트(E. Trist) 교수는 미래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없고 조직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하는 환경을소용돌이 치는(turbulent)’ 환경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환경이 바로 코코넛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환경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까?

상황적합성이론은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제시해왔다. 퍼로 교수는 예외(exception)의 빈도와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원인을 진단한다. 즉 항상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나 문제 이외에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그런 예외적인 문제의 원인과 메커니즘의 분석가능성이 낮을수록 환경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또 에머리 교수와 트리스트 교수는 환경의 복잡성과 상호연결성이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해 소용돌이치는 환경을 형성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복잡성이란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수와 이질성을 말하는데 어떤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소들이 다양하고 서로 성격이 다를수록 환경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머리 교수와 트리스트 교수는 이 환경 요소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정도가 높아질수록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환경 구성요소들 간 연결성이 높을수록 어떤 한 가지 요소에서 발생한 변화가 다른 환경 구성요소들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마치(J. G. March) 교수의쓰레기통이론(garbage can theory)’도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설명에 유용하다. 그의 이론은 서로 관계없는 별도의 요소들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하며 서로 상호작용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결과를 낳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쓰레기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양한 쓰레기들을 버리기 때문에 어떤 쓰레기 믹스가 나오느냐는 결과는 언제 쓰레기통을 비우느냐는 타이밍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제시된 이런 마치 교수의 독특한 이론은 1990년대에 물리학 등에서 제시된 복잡계이론의 핵심 통찰력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그는 이런 우연과 무작위적 상호작용이조직화된 혼돈상태(Organized Anarch)’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완충버퍼의 부재가당연한 참사를 부른다

그러나 조직이론은 물론 모든 분야의 이론들을 통틀어 코코넛위기의 원인을 가장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설명한 것은 조직이론의 거장 퍼로(C. Perrow) 교수가 1980년대 초에 제시한당연한 참사(normal accident)’ 이론이다. 코코넛위기의 대표적 예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위기라고 불리던 미국의 부동산가격 폭락에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필자가 예전 DBR에 기고했던 글에서 자세히 분석했던 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수많은 경제행위자들과 금융상품들이 극도로 복잡하지만 동시에 조금의 중복이나 완충버퍼도 없이 효율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 서민들이 은행 대출을 위해 담보로 잡았던 집값이 폭락하자 서로 연결돼 있던 금융상품들이 걷잡을 수 없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면서 발생한 전형적인당연한 참사였다. 챌린저호 참사나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참사,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 등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 퍼로 교수의당연한 참사이론은 수많은 요소들이 완충버퍼 없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효율적이면서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작은 우연한 사건도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엔지니어적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해 합리적으로 설계하기만 하면 완충버퍼는 없어도 되는, 일종의 비효율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스템 디자인 과정에서 완충버퍼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시스템 구성 요소들 간에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소한 충돌만 발생해도 효율적 복잡성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붕괴라는 대참사로 연결된다는 것이 퍼로 교수의당연한 참사이론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직이론은 코코넛위기를 발생시키는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원천을 다양한 요인들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직이론가들의 이론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잡성, 연결성, 그리고 완충버퍼 부재이다. 일단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수가 많고 또 이들이 서로 이질적 성격을 가지는 복잡성이 코코넛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론들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별개로 분리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연결성이다. 환경 구성요소들이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경우 어떤 한 요소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도 전체 환경으로 급격하게 확산되므로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완충버퍼가 없는 효율적 시스템 디자인은 이런 문제가 중간에서 차단되지 않고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과연 코코넛위기는 절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언제, 어떤 종류의 위기가, 어느 부분에서 발생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나 시스템에서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퍼로 교수가 제시한당연한(normal) 참사라는 표현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고나 참사, 위기는 비정상적이며 당연하지 않은 상태를 지칭한다. 그런데 퍼로 교수는 복잡하고, 서로 연결돼 있으며, 완충버퍼 없이 효율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에서는 대참사 수준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즉 이런 시스템에서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극도로 높으므로 역설적으로 언젠가 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퍼로 교수는 복잡성, 연결성, 완충버퍼 부재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시스템을고위험(high risk)’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코코넛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구조적 원리를 이해하면 그 발생 확률과 조건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초경쟁사회와 위기의 확산

그렇다면 왜 코코넛위기에 대한 관심이 최근 갑자기 높아진 것일까? 실제로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더 높아진 것일까? 필자는 실제로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최근 급격히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은 필자가 이미 여러 차례 DBR을 통해 제시했던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의 특수성 때문이다. 2000년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도래한 100여 년 만의 엄청난 환경변화인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은 우리가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익숙하게 알아왔던 산업사회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경계성, 급변성, 그리고 극도의 불확실성이라는 특성들을 가지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코코넛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질서의 확산으로 국가 간, 지역 간, 시장 간, 산업 간 모든 경계가 사라짐에 따라 어떤 한 분야에서 발생한 위기가 순식간에 전 세계적 위기로 확산됐다. 우리나라가 직격탄을 입었던 IMF 위기도 실은 금융의 글로벌화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의 리스크가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서로 연결되면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위기에 빠졌던 사건이었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글로벌 금융위기나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유럽 국가들이 EU 체제로 경계 없이 통합되지 않았다면 그리스의 국내 위기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 무경계 환경 때문에 유럽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또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다양한 기술혁신의 가속화로 환경변화의 속도가 거의 빛의 속도로 빨라짐에 따라 예측 못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극도로 짧아져서 대응 타이밍을 놓치고 글로벌 위기로 확산될 위험이 높아졌다. 그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경제행위자들이 경계 없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미래 환경의 예측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렇게 볼 때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은 코코넛위기의 발생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극도로 위험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코넛위기를 이기는 세 가지 대응책

그렇다면 최근 급격히 높아진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조직이론은 이에 대해 다양한 대응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가장 대표적인 대안은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효율성을 감수하고 완충버퍼를 설치하는 것이다. 즉 조직이론은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다른 하위 분야 등 다른 학문 분야들과 달리 비효율성을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비효율성과 느슨함은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부터 조직의 생존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본다. 대표적 상황적합성 이론가 중 한 명인 탐슨(J. Thompson) 교수는 조직들은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의 핵심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환경의 교란으로 차단시켜 보호하는 완충버퍼를 설치한다고 주장한다. 또 퍼로 교수도 당연한 참사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효율성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서 설사 약간 비효율적이더라도 시스템 구성요소들의 연결을 다소 느슨하게 하고 이들 사이에 완충버퍼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즉 퍼로 교수는 당연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 설계를긴밀한 연결(tight coupling)’로부터느슨한 연결(loose copling)’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교수도 조직은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예상 못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여유 자원과 느슨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런 여유와 느슨함을 총칭해서 슬랙(slack)이라고 불렀다.

 

둘째, 예상 못한 환경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기적 조직구조도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책으로 조직이론에서 자주 강조됐다. 1960년대 초의 상황적합성 이론가였던 번즈(T. Burns) 교수와 스토커(G. M. Stalker) 교수는 안정적 환경에서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던 관료제적 공식화와 계층적 관리통제, 부서 간 명확한 분업구조에 기반한 기계적인 조직구조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환경에는 부적합하다고 보고 유연한 유기적 조직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로렌스(P. Lawrence)와 로시(J. Lorsch) 교수는 환경불확실성이 조직구조의 분화와 통합의 필요성을 낳는다며 분화와 통합이 모두 잘 되는 유기적인 조직구조를 불확실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즉 조직의 기능이나 부서들이 직면하는 불확실성의 정도와 종류가 서로 다르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구조가 하위 단위들로 분화되고 그 결과 분화된 하위 단위들을 다시 전사적으로 통합할 필요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조직이 처한 환경 불확실성의 정도에 적합한 분화와, 또 분화 정도에 적합한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는 유기적 조직이 높은 성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그러나 다양한 조직이론들 중 코코넛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장 혁신적인 것은 조직이론의 거장 와익(K. E. Weick) 교수가 제시한 고신뢰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이다. 와익은 기본적으로 코코넛위기를 완벽하게 미리 예측하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예상 못한 위기가 갑자기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예상 못한 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이 뛰어난 조직모형을 찾기 위해 와익 교수는 비상상황이나 위기가 예상하지 못하게 갑자기 발생했을 때 이를 조기에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핵심 직무인 특별한 유형의 조직들을 연구하는데 이런 조직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고신뢰조직이라고 부른다. 비행기 조종실, 119 재단구조대, 병원의 응급실 등이 대표적 예다.

 

코코넛위기는 대응 가능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조직이론들에서 제시하듯이 코코넛위기의 구체적인 발생 시기와 위치, 그리고 그 내용을 정확하게 미리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발생 확률과 조건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21세기 글로벌 초경쟁환경에서는 코코넛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시스템이 코코넛위기의 예방에 효과적이며, 또 코코넛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조기에 적절하게 대응해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는 대참사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20세기적 효율성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아무런 완충버퍼 없이 복잡하게 연결된 고위험 시스템(high risk system)의 설계를 남발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오만이다. 즉 퍼로 교수가 통찰력 있게 지적했듯이 코코넛위기는 결국당연한참사인 것이다.

 

 

 

신동엽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신동엽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 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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