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제대로 쓰려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인사 고과’다. 인재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어 보상하고, 일을 맡기는 가장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사 고과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불만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고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개인적 친분에 의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등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그렇다면 인사 고과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대부분 자신을 평가한 ‘상사’에 쏠린다.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우열을 가리는 상사의 평가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상사의 평가 결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으면, 구성원들은 자신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상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상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기 십상이다.
상사도 할 말은 있다. 상사도 사람이기에 여러 상황과 여건들을 고려하다 보면 인사 고과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예컨대, 순수하게 성과나 역량 수준만을 보고 평가하자니, 승진 대상자나 후배들이 눈에 밟힌다. 성과를 떠나서 평소 자신을 잘 따르는 직원이 있는 반면, 성과도 좋고 똑똑하지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 보이는 직원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하다 보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인사 고과의 오류에 빠져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사 고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상사 스스로가 인사 고과의 오류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첫인상의 함정을 조심하라
유독 첫날밤, 첫 만남, 첫 시험, 첫사랑 등 첫 기억이나 경험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이라는 상징적인 정보가 사람의 뇌를 자극해서 좀 더 기억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인상만을 가지고 상사가 인사 고과를 하게 되면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첫인상이 상대방에 대해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해의 성과나 그 사람이 보유한 역량 수준을 과거에 형성된 첫인상에 의존해서 평가를 한다면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
첫인상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각 부하 직원에 대한 주변 동료들이나 직속 상사의 평가 의견을 폭넓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방법은 채용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일종의 ‘평판조회(Reference Check)’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지원자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담당 교수나 이전 직장의 동료, 상사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다. 겪어본 사람이 그 사람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 최근의 성과를 더 잘 기억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오래된 일이나 사건은 쉽게 기억에서 지워진다. 상사들은 적게는 4, 5명, 많게는 20, 30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게 된다. 이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다. 그러니 평가 시점에 생각나는 사람, 생각나는 사건 중심으로 평가를 하게 된다. 인사 고과 시즌이 되면 기억에 떠오르는 최근 일들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오류(최근 효과)에 빠질 수 있다. 상사가 최근 성과나 업적을 중심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면, 직원들은 연초보다는 연말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시즌 초반에는 성적이 초라했던 프로야구 선수들이 연봉 협상 시한이 다가오는 시즌 막바지에 더 분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중에 더 잘할수록 연봉 협상에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사가 이런 오류를 극복하려면 직원별로 평가 메모를 기록해두면 좋다. 직원들이 수행한 업무를 기록하고, 기여 포인트나 개선할 점을 메모해두는 것이다. 평가 요소별로 구분해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더 좋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관대화에 빠질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情)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일부 상사는 ‘다 똑같은 자식들인데, 누구는 좋게 주고, 누구는 나쁘게 줄 수 있나. 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분명한 잘못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한다. 이처럼 상사가 직원들의 인사 고과를 실제 성과나 능력보다 좋게 평가하는 현상을 ‘관대화 오류’라고 부른다. 특히 한국 기업의 조직에서는 ‘정’ 때문에, 그리고 원만한 팀 분위기 형성을 위해 상사가 관대화 오류에 쉽게 빠진다. 다른 부서와 비교해 직원들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상위 등급에 분포한다면 관대화 오류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관대화 오류에 대한 처방으로는 직원들의 목표 관리를 꼽을 수 있다. 연초에 개인별로 성과나 역량 수준의 목표를 합의하고, 연말에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인사 고과를 하는 방식이다. 목표 달성에 따른 인사 고과는 여러 가지 효과를 갖고 있다. 우선 목표 설정은 구성원들의 행동 방향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여,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의 방향으로 총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인사 고과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콩깍지 때문에 모든 게 좋아 보일 수 있다
우리 속담에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좋은 면을 보게 되면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다른 면까지 좋게 보이는 현상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에 대해 평가할 때, 분석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총체적인 인상에 근거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으면, 그것이 다른 모든 것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것을 ‘후광 오류’라고 부른다. 특정 직원의 평가 항목별 점수가 대체로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면 상사가 후광 오류에 빠졌을 확률이 높다. 이 같은 후광 오류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직원을 평가할 때 항목별로 구분해서 평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한 직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 항목을 연속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한 가지 항목으로 전체 구성원을 평가한 뒤, 다음 항목을 평가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실행력’이라는 평가 항목에 대해 김 대리, 박 대리, 홍 과장의 역량 수준을 평가하고, ‘창의성’ 항목을 똑같은 방식으로 직원마다 평가하는 식이다.
유유상종, 팔이 안으로 굽는다?
인사 고과에서 업무 스타일이 자신과 유사한 직원에게 더 좋은 고과를 주거나, 고향이나 학교 후배에게 상대적으로 더 나은 점수를 주는 사례가 나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유사성 오류’라고 한다. 상사가 ‘유사성 오류’에 빠지면 직원들은 자신의 강점을 살리기보다는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상사에게 두는 ‘해바라기형 직원’으로 변하고 만다. 이 결과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 조직이 양분될 수도 있다. 상사와 잘 맞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끼리 헤쳐 모이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팀 내의 신뢰 구축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상사가 유유상종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공과 사를 구별하고, 선호도와 성과를 분리해서 평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평가에 앞서, 의식적으로 ‘저 사람이 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