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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으로 사원 뽑지 말라

정재승 | 40호 (2009년 9월 Issue 1)
사랑학 전문가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과 관련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은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 커플 중에서 첫눈에 반한 사례는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그렇지 않은 커플들보다 결혼 뒤에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라고 한다. 아마도 많은 미혼 남녀들은 ‘내가 과연 잃어버린 내 반쪽을 만났을 때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첫눈에 반한 사랑’ 옹호론자인 얼 나우만 박사는 1970년대 미국인 1495명(남자 547명, 여자 948명)을 대상으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대해 다양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보면 첫눈에 반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응답자의 64.1%나 됐다. 남녀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남자 65.2%, 여자 63.6%). 다시 말해 성별에 관계없이 전체 응답자 중 3분의 2가 첫눈에 반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강력히 믿고 있었다. 게다가 아시아나 태평양계 민족에서는 다른 민족들보다 그 수치가 월등히 높아 무려 80%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우리 주변에도 운명적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믿음
실제로 첫눈에 반할 수 있다고 믿는 958명 가운데 558명, 즉 60%의 사람들은 첫눈에 반한 사랑에 ‘실제로 빠진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즉 전체 응답자 1495명 중 37% 정도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들 중 결혼에까지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첫눈에 반한 커플은 뭔가 다를까? 통계에 따르면 ‘그렇다’! 첫눈에 반한 커플들 중에서 55%가 결혼에 성공했다. 미국에서 결혼 전 연애 경험이 5회를 넘는 것에 비추어보면, 첫눈에 반했을 때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첫눈에 빠진 사랑에 대한 연구’가 최근 인사 채용을 담당하는 관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들은 늘 최고의 인재들을 자기 회사에 모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한눈에 최고의 인재를 알아보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첫눈에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성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필자는 “절대 한눈에 최고의 인재를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흔히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해 사물과 주변을 인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매 순간 내 눈과 귀와 입과 코와 피부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내 노트북 하드디스크 2개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그걸 분석해 주변을 파악하려면 나는 하루 종일 멍하니 아무 일 안 해도 ‘격무’에 시달리는 꼴이 된다.
 
그래서 우리 뇌가 취하는 전략은 ‘선택적 집중(selective attention)’이다. 오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상당 부분 무시하면서 경험적으로나 본능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미리 가정해 그것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느끼고 싶은 것만 느낀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때론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지만, ‘생존에는 유용하다’는 게 과학자들이 얻은 결론!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생존에 유용할 것 같은 요소들만 골라 먼저 집중해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선입견에 의한 판단의 위험
일례로 2005년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알렉산더 토도로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와 동료들은 2004년 각 주별로 미국 하원의원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사진을 심리학과 대학생들에게 보여줬다. 그것도 단 1초만. 그러고는 누가 가장 유능해 보이는지, 누가 투표에서 당선됐을 것 같은지 맞춰보라고 질문했다.
 
프린스턴대는 미국 뉴저지 주에 있기 때문에, 뉴저지 주에 출마한 후보들의 사진은 뺀 채 다른 주 후보자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후보들이 어느 당 소속인지, 어떤 정치 경력과 정책 공약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1초간 본 얼굴’.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예상치는 실제 결과와 68.8% 일치율을 보였다. 다시 말해 석 달간 후보들의 유세를 듣고 정치 경력을 파악하고 공약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1초 정도 얼굴만 본 사람이나 판단이 똑같다는 얘기다. 어쩌면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 그들의 정치 경력이나 철학, 비전 등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첫인상에 좌우되는 건 아닐까? 그 후에 들어온 정보들은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든지, 과장되거나 폄하되거나 진실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면서 자신이 첫인상으로 가졌던 판단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 비슷하게도, 남성들에게 여성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답하라는 질문을 던진 실험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여성의 얼굴 사진을 1분 보여주나, 10초 보여주나, 1초 보여주나, 심지어는 0.1초 보여주나 결과는 똑같았다. 우리는 이성의 얼굴이 매력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데 1분이나 10초도 필요하지 않다. 1초, 아니 0.1초면 순식간에 판단한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0.2∼0.4초. 내 앞에 놓인 사물이 사과라는 것을 인식하거나, 빨간불 신호등에 서 있다가 녹색불로 바뀌어 가야겠다고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 정도라는 뜻이다. 그런데 0.1초 만에 이성의 매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는 우리가 이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뇌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낯선 사람’을 처음 볼 때 우리 뇌는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이 사람이 내 친구인지 아니면 적인지, 혹은 내 성적 배우자(mating partner)가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3만 년 전에 급속도로 발전한 인간의 뇌는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동료와 이성을 빠르게 판단하는 뇌 회로’를 따로 발전시켜온 것으로 추정된다.
 
인지적 태그 효과
문제는 우리 뇌의 진화 속도가 무척 느린 데 비해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 그리고 대기업에서 여성 사원을 뽑을 때 원시적인 뇌 회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사람이 내 동료인지 적인지’ ‘이 사람이 내게 성적으로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본의 아니게 빠르게 판단하며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인지적 태그’를 붙인다는 점이다. ‘나는 왠지 저 사람이 성실해 보여’ ‘나는 저 사람이 책임감 있어 보여’ 같은 그럴듯한 말을 붙여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최근 미국의 대기업 인사채용팀에 따르면 실무 면접, 임원 면접 등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 참여하지만, 같은 법칙이 매 순간 작용해 결국 ‘매력적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첫눈에 반한 사람들이 결혼하면 다른 커플들보다 더 행복할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아얄라 파인스가 1990년대 미국인 커플 10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들 중 약 11%가 첫눈에 반한 사람과 결혼했으며, 첫눈에 반한 커플들의 이혼율도 그렇지 않은 커플들만큼 높았다. 요즘 커플들은 ‘우리의 만남은 운명적이야!’를 쉽게 얘기하는 만큼 ‘우리의 운명은 여기까지!’라고도 쉽게 선언하며, 다른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난다. 첫눈에 반해 뽑힌 사원이 기업 내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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