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네트워크의 시대로 불린다. 개인 간 네트워크인 대인 관계는 물론, 기업 간 네트워크인 제휴 관계, 그리고 국가 간 네트워크인 동맹 관계 등 그 수준을 막론하고 네트워크는 가장 중요한 경쟁 우위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전 세계 기업들의 제휴 건수는 그 이전보다 무려 900%나 늘어났다. 이처럼 타인과의 네트워크 관계에서 오는 경쟁 우위의 원천을 조직 이론가들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이는 각자가 소유한 경제적 부를 뜻하는 ‘경제적 자본(economic capital)’ 및 각자의 역량, 지식, 기술 등을 뜻하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비교되는 개념이다.
네트워크 관점은 사회과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엔지니어링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면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 네트워킹 사이트들은 바로 네트워크를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킨 사례다. 경영학의 조직 이론 연구자들은 네트워크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에 이미 선구적으로 이 분야 발전을 주도했다. 복잡계 이론의 대가인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교수는 ‘링크(Linked)’라는 책에서, 네트워크의 원리를 이해하면 사회 현상이나 경제 현상뿐 아니라 물리 현상과 자연 현상의 본질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조직 이론에서는 어떤 네트워킹 전략이 효과적인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약한 네트워크의 강점
많은 사람들은 서로 긴밀하게 자주 접촉하는 끈끈하고 강력한 관계가 그렇지 못한 관계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트워크 이론의 거장인 조직 이론가 마크 그라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73년에 발표한 획기적 논문 ‘약한 네트워크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s)’에서, 일반적 상식과는 정반대로 가끔씩 간헐적으로 접촉하는 약한 네트워크(weak tie)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조직 이론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라노베터 교수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미국인들이 새 직장을 누구의 소개로 구하는가를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상식적으로 직장을 구해준다는 것은 구직자에게 굉장히 큰 호의를 베푸는 일이다. 따라서 구직자와 자주 접촉하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등 강한 네트워크(strong tie)로 연결된 사람들이 직장을 구해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이런 예측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가끔 접촉하는 사람들, 즉 약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새 직장을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한 네트워크가 실제로는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라노베터 교수는 약한 네트워크가 강점을 가지는 이유를 정보의 중복 여부에 초점을 맞춰 명쾌하게 설명했다. 즉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새 직장에 대해 이제까지 모르고 있던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구직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강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직장에 대한 정보는 그 구직자도 이미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강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 중복되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반면에 약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은 참신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를 일반화한 ‘약한 네트워크의 강점’ 이론에서 그라노베터 교수는 서로 다른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이 경계를 넘어 결합할 때 창조적 혁신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서로 결합하지 않았던 다양한 이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고 창조적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강한 네트워크가 아닌 약한 네트워크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후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조직 이론가 로널드 버트 교수는 그라노베터의 ‘약한 네트워크 이론’을 더욱 정교화해 서로 다른 네트워크 클러스터들 간 틈새를 뜻하는 ‘구조적 틈새(structural hole)’ 개념을 만들었다. 실제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과학자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도시나 국가들은 모두 예외 없이 폭넓은 약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창조적 혁신 클러스터의 대명사 격인 실리콘밸리나, 문화 예술 분야의 혁신을 주도한 20세기 초 파리, 20세기 후반 뉴욕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지역들은 ‘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전문 분야, 국적, 문화적 배경, 가치관, 지식,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서로 뒤섞이면서 새롭고 혁신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경계 없는 21세기형 조직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에 기업들은 내부 역량과 자원으로 끝없이 조직을 성장시켰다. 하지만 21세기 창조 경영 시대 기업들은 자유롭게 기업의 경계를 넘어, 다른 조직들이 갖춘 다양한 새로운 역량과 자원들을 제휴 네트워크로 연결해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 P&G는 자신들의 연구개발이 ‘R&D(Research and Development)’가 아니라 외부의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지식, 기술을 약한 네트워크로 연결한 ‘C&D(Connect and Development)’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약한 네트워크의 강점을 기업 수준에 적용한 것이 바로 ‘벽 없는 조직(bound-aryless organization)’ 아이디어다. 즉 기업 간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사업부나 부서 간 관계에서도 서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 역량을 지닌 사람들이 경계 없이 자유롭게 뒤섞이는 벽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 창조 경영 시대에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인사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20세기에 기업들은 삼성맨, LG맨, 현대맨 등 자사의 정형화된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지닌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만 선발해 일사불란한 응집력을 추구했다. 그러나 21세기 기업들은 서로 다른 다양하고 이질적인 가치관과 행동 스타일을 지닌 인재들을 동시에 포용해 이들 간의 경계를 넘어선 만남으로 창조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끊임없는 창조와 혁신이 기업은 물론 개인과 국가의 경쟁 우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글로벌 초경쟁 시대인 21세기다. 하지만 여전히 20세기 산업사회에서 활용했던 사업 단위별 단기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부서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서로의 벽을 계속 높이는 조직이 아직도 많다. 또 같은 생각만 하는 동질적 사람들끼리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영자도 적지 않다. 이제 20세기 산업사회형 조직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말고 이질적인 기술, 지식, 역량, 가치관의 융·복합화(convergence)로 창조와 혁신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편집자주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학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경영 사상가들의 지혜와 통찰을 전하는 ‘경영 거장 탐구’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달성한 거장들은 인류의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로지 학술 연구에만 매달린 탓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거장들의 통찰은 첨단 지식정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한 차원 높은 지식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 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 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를 비롯해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