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나는 내 직능에 대한 이사회의 평가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 사외 이사진의 연말 종무식이 끝나면 보상위원회 의장이 10분 동안 내 사무실을 방문한다. 그는 회사가 달성한 수치들에 대해 임원진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고 나의 리더십에 감사를 표한다. 이후 그들이 승인한 내 상여금에 대해 알려준 다음 더 머무르고 싶지만 항공편이 예약되어 있어 유감이라고 말하며 상여금 세부 내용이 담긴 봉투를 건네주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는 심지어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
이러한 평가는 내가 나의 팀원들을 평가하던 방식과 매우 달랐다. 나는 많은 정보원으로부터 자료를 모으고 다원적 측면에서 팀원들의 성과를 평가했다. 나는 직속 부하들과 함께 팀원들의 경영 방식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찾았으며,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들의 경력에 위기가 닥치기 전에 그 단점을 시정하도록 도왔다. 나 또한 임원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선임으로부터 그와 비슷한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CEO가 되자 이 모든 것이 한 순간 사라졌다. 나의 모든 업무 능력은 단지 서너 가지 경제 지표로 평가 받았다. 사외 이사진의 나에 대한 평가는 거의 대부분 그들이 나에게 지급하기로 한 상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CEO에게 조언하는 것과 지시하는 것 사이에는 경계가 불분명하고, CEO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CEO의 능력 평가 기준을 단지 경제적 실적으로 한정하는 이유가 CEO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포상도 CEO를 좀 더 나은 의사결정권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또한 CEO가 실패하거나 추락하면 그와 더불어 회사도 함께 몰락한다.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회사의 경영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신시켜 줄 의무가 있다. 경영진의 직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회사가 CEO의 해임을 결정할 때는 이미 회사가 그로 인한 타격을 받은 다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한 기업의 CEO가 교체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이사회가 문제가 생겼다는 데 합의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 데까지는 보통 6∼9개월이 필요하다. 후임자를 물색하고 새로운 CEO를 선출하는 데 다시 3∼6개월이 걸린다. 신임 CEO가 업무를 파악하고 목표를 정한 다음 일에 착수하기까지 또다시 1년이 필요하다. 적어도 2년 동안의 소모적인 정체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나는 14년 동안 CEO로 재직한 애로 일렉트로닉스에서 나에 대한 평가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다. 사외 이사진은 직접 관찰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경영진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근거하여 나를 평가했다.
이 결과 그들은 내가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문제점들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이는 나의 성과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줬으며, 나 또한 리더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이러한 CEO 평가 방법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CEO가 그들의 직속 부하직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무엇이 성과 평가의 신뢰를 구축하는가
고위 관리자에 대한 평가는 그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 부문의 경제 및 운영상 지표와 전략 대비 목표 달성 수준을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경제지표는 경영의 속성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전략 대비 목표 달성 수준은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제시하기 위해 준비된 일련의 자료인 때가 많다.
따라서 두 가지 모두 그 관리자가 하고 있는 일이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에 도움을 줄 것인지, 피해를 끼칠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고위 관리자의 직능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CEO는 현장으로 나가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직원 회의에 참석하고 회사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CEO는 그 관리자가 동료 및 하급 직원들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CEO는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조직 내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내용과 비교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EO는 그 관리자가 자료를 공유하지 않거나 재무 부서의 새로운 공급망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부서장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 관리자의 성과에 대해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CEO였을 때 내가 들은 바를 확인하기 위해 HR 팀장에게 그 관리자의 사업 부문에서 인재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가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고 그들을 개발하고 있는가, 그가 다른 사업 부문과 인재를 공유하고 있는가. 나는 또한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해당 사업 부문이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는 이유가 업무 성과 때문인지, 공격적인 회계 관리 때문인지를 물었다.
나아가 나의 보좌역에게 소문으로 들은 것이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다른 이들이 볼 때 그 관리자가 자신의 부하 직원들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는 않는지, 그가 너무 초조하거나 성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지. 이러한 과정을 통해 CEO는 연례 평가 및 직무에 대한 조언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눈에 보이는 수치를 넘어 다각적 측면에서 그 관리자를 평가할 수 있다.
분명 사외 이사진에게는 CEO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정보를 모을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이사회 회의나 만찬 등 정례적인 자리에서만 CEO를 만난다. 이러한 자리에서 CEO는 좋은 모습만 보이게 마련이다. 또 이사진이 CEO 이하 경영진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이사회 회의 전날 저녁 식사 때뿐이며, 그것도 CEO와 함께 동석한 경우이다.
여러 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종종 이러한 저녁 모임에서 경영진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CEO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질문, 이를테면 주요한 성장 정책에 대해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 등을 던질 때면 나는 그들의 눈동자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 CEO 쪽을 향해 흔들리는 것을 본다. 그가 혹시 듣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는 눈초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