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개념화

“설득하기 전에 먼저 공감하라” 이순신은 알고 최만리는 몰랐다

230호 (2017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개념화된 문장은 논리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 할지라도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 병사들의 공포심을 용기로 바꾸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세종의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최만리는 그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며 직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선 이순신의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최만리의 문장보다 못했을지 모르지만 병사들의 삶에 대한 ‘공감(共感)’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반면 중국을 섬겨야 하는 조선에서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일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최만리의 문장에는 기득권을 대변하는 지식인들의 논리만 있었다. 삶과 연결되지 않는 문장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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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개념화하고 그 개념을 상품화한 것이 세상을 바꾼다

잠시 걸어보라. 그리고 뒤돌아보라. 나의 발자국들이 보이는가? 그것이 나의 인문(人文)이다.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기 때문이다.1

매일매일 일에 치여서, 앞만 보고 걸으면서 나의 인문을 돌아볼 여유가 부족하지 않는가? 가끔은 뒤돌아서서 나의 인문을 가만히 느껴봐야 한다. 그리고 느낀 것을 말 또는 글로 정리해 봐야 한다. 그리고 정리된 말 또는 글을 동료들에게 설득할 목적으로 설명해 보라. 정리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나의 인문에 기반한 ‘생각의 개념화’ 과정이다.

개념은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관념)을 일반화한 결과물이다. 동그라미를 예를 들면 ‘지정된 한 점과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모임’, 이것이 동그라미의 개념이다. 생각의 개념화는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개념화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인 이유는 이 과정을 거치며 머릿속 나만의 생각이 비로소 누구나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기 때문이다. 개념화하지 않은 ‘생각’만으로는 소통과 설득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는 대부분 이러한 생각의 개념화 과정이 생략돼 있다. 새로운 것을 보면 그것을 따라만 하려 하고, 따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그 결과 내 안의 인문과 충분히 교감하는 개념화 과정 없이 무리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겪지 않아도 되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또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어 몸에 무리를 주기도 한다. 만약에 가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면 먼저 나의 인문과 얼마나 방향이 다른지 고민하고 그 방향과 속도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인문에 기반한 삶이고, 이 과정이 반복 훈련돼 습관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붙게 된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생각의 개념화가 갖는 힘을 잘 보여준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만약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오늘 하려던 일을 하고 싶은가”라고 반복해서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생각을 개념화했기 때문에 그 개념과 기술을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아이패드와 같이 세상을 바꾼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자기 인식을 통해 생각을 개념화하는 오래된 인문적인 훈련 방법이다. 거울 앞에 서는 것은 뒤를 돌아 나의 발자국을 보는 것과 같다. 잡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과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개념화하고 의사결정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인문을 성찰했고 그 결과를 개념화함으로써 그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사실 이 과정에서 잡스가 활용한 도구와 기술은 보조 수단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자기 성찰에 근거한 개념화, 인문적 삶의 태도가 당대의 도구와 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됐다. 실제로 아이패드를 공개하던 날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애플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인문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표지판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애플이 아이패드와 같은 상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라는 잡스의 말에서 우리가 기술이 아닌 인문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패드의 탄생 과정에서도 인문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성균관대 철학과 이종관 교수에 따르면 아이패드(2010년)는 제록스파크연구소에 근무하던 마크 와이저가 창안한 ‘유비쿼터스 컴퓨터’(1988년) 개념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비쿼터스 컴퓨터 개념’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년)>에서 언급한 사람과 도구의 근원에 관한 실존주의적 존재론이 담겨 있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놓고 펜으로 글씨를 써보자. 우리는 책상, 종이, 펜이라는 도구는 인식하지 않고 그 도구가 만든 글씨에 집중한다. 우리 눈에서 도구는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이 도구 중 어느 하나가 고장이 나야 우리는 그때 도구를 보게 된다. 쓸모가 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도구가 우리 눈에 띄는 것이다. 또 펜은 글을 쓸 종이와, 종이는 올려놓을 책상과, 책상은 자리할 바닥과 서로 연결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도구는 서로 연결돼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제시한 “도구는 서로 연결돼 있고, 사람에게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라는 도구의 실존주의적 존재론의 핵심이다.

마크 와이저는 위와 같은 하이데거의 인문학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컴퓨터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기술이 스며들어 있고, 뒤로 물러서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패드, 탭, 보드와 같은 디바이스로 구현된다”라는 인문적 이해 없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라는 라틴어에 착안해 이 개념을 ‘유비쿼터스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마크 와이저는 이 개념을 적용한 파크패드(1991년)라는 상품을 만들었으나 상용화하지는 못했다. 외관은 아이패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나 당시 기술의 한계로 펜으로 메뉴를 조작해야 했고 유선 인터넷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이 개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컴퓨터 화면의 가장자리에 있는 수많은 메뉴부터 없애야 한다고 해석했다. 곧 화면에서 메뉴가 사라졌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기능이 작동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메뉴는 칩에 저장돼 있을 뿐 눈에 보이지 않고 터치스크린과 손가락이 연결되면서 기능이 작동하는 상품을 만든 것이다. 마우스와 키보드도 사라지고 화면만 남았다. 하이데거가 제시한 인문학이 마크 와이저에 의해 개념화됐고 애플은 이를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컴퓨팅 디바이스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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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은 모든 사물에 반도체 칩을 심고, 성능을 향상하되 작고 가볍게 만들고, 언제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네트워킹 컴퓨팅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했다. 특히 일본은 정부 주도로 네트워킹 중심의 유비쿼터스 전략을 수립해 미국을 앞지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3 그랬기에 아이패드가 출시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넷북보다 성능이 떨어졌고 키보드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을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기술과 트렌드를 중시하는 세상에 사람과 ‘도구의 근원’을 반영한 상품이 출시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깨고 출시 2개월 만에 200만 대 판매라는 대성공을 거뒀고 결국 휴대용 컴퓨팅 디바이스의 개념을 바꾸었다.

아이패드는 명료한 자기 인식, 생각의 개념화라는 인문적 성찰과 도구와 기술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고민을 거치며 탄생한 상품이다. 이 점에서 아이패드는 인문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등장했으며 인문의 힘을 기술이 구현한 사례라 하겠다. 기술력에서 애플을 앞섰던 당대 유수의 기업들이 아이패드를 만들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인문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념화는 어떤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며 힘을 가지는가

1. 개념은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잡스의 아이패드 사례에서 보듯 자기 인식에 성공한 상태에서의 개념화와 의사결정은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자기인식이 실패한 상태에서의 그것은 도리어 자신과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다. 동화 ‘백설공주’의 새엄마(왕비)는 매일같이 마술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고 물었고, 마술거울은 언제나 “왕비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설공주가 7살이 되던 해에 마술거울은 “왕비님도 아름답지만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새엄마는 자기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고 백설공주를 죽이려 하던 끝에 결국 왕비 자신이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왕비와 같이 자신이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남을 앞서려는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거울 앞에 서는 사람은 자기 인식에도, 개념화에도 실패한다. 개념은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그래도 오늘 하려던 일을 하고 싶은가”라며 자신이 바라는 것을 내려놓겠다는 태도로 자신과 대화했기에 사람들과 공감하는 개념을 만들 수 있었다. 평안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보라.

2. 개념은 설득할 목적을 가져야 힘을 지닌다.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얼마만큼 ‘자기의 문제’로 바꾼 후에 그 일이나 공부를 하는가?” 생각을 개념화한 결과물은 그 일이나 공부와 관련해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사람들과 반복해서 이야기한 후 정리한, 문제 해결 방안이 담긴 문장이다. 개념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게 된다. 이렇게 문장이 만들어졌을 때 신기하게도 전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청중과 눈을 맞추고, 그들이 이해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그들과 공감하는 표정을 짓게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이 청중들을 움직이는 힘으로 바뀐다.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문장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병사들의 ‘공포심’을 ‘용기’로 바꾸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성공한 이순신과 세종의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최만리, 두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욧카이치대 명예교수 기타지마 기신 교수의 ‘일본인이 본 영화 ‘명량’의 매력’에 의하면(<개벽신문> 2017년 8월 호 게재 예정) 당시 일본군이 노린 것은 조선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일으켜 전투의지를 꺾는 것이었다. 적진에서 가까스로 도망쳐온 영화 ‘명량’ 속 병사 오상구의 대사는 적의 의도가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칠천량에서 6년 동안을 같이 한 동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요. 오늘 제 손으로 그들의 수급들을 묻고 왔습니다요. 정말 두렵습니다요. 이제 틀림없이 제 차례 같습니다. 이제 속절없이 이렇게 다 죽어야 합니까?”

-영화 ‘명량’ 中 병사 오상구의 대사



이에 대해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만연해 있는 ‘공포심’을 ‘용기’로 전환시킨다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 양적으로 충분한 전함을 보유하고도 일본에 완패한 것은 원균, 이억기와 같은 지휘관부터 ‘공포심’에 사로잡힌 채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부하들의 공포심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목숨에 기대지 말라”고 개념화하고 이를 앞장서 설명한 후 전선기지(前線基地)를 불태워 병사들의 퇴로를 차단한다. 그리고는 전투의 선두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병사들의 공포를 용기로 바꿔 불과 12척의 배로 전투에서 승리했다. 명량해협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전술적 도구였다. 승리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전장에서 장수의 생각을 개념화한 말과 공감된 행동이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녕 싸움을 피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육지라고 무사할 듯싶으냐? 똑똑히 보아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영화 ‘명량’ 中 이순신의 대사



이와 대조되는 최만리의 사례를 살펴보자. 최만리는 비밀리에 진행되던 세종의 한글 창제 사실을 알고 난 후 이의 부당함을 알리는 상소문을 올린다. 상소문에는 1) 조선은 중국을 섬겨야 하고 2) 문자를 만든 사례가 있다면 오직 오랑캐들의 사례일 뿐이며 3) 조선에는 이두라는 오래된 보조문자가 있고 4)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도 백성의 억울함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며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사유를 치밀하게 적었다.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중략)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세종실록> 재위 26년(1444년) 2월20일 기사 中,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2020_001)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의사결정권자인 세종 앞에서 발표했다. 그는 의사결정권자와 눈높이를 맞추지도, 세종을 이해하지도, 공존하는 일반 백성들과 공감하지도 않았다. 최만리의 상소문은 당시 중국에 기대었던 지식인들의 기득권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치밀함이 세종을 궁지로 몰기는 했으나 세종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이상의 두 사례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 위에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쌓은 사람과, 오랜 시간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사용하며 살아온 사람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순신의 문장이 결코 최만리의 문장보다 논리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념화된 문장은 논리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개념화된 문장은 최만리와 같이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과 같이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 이것이 ‘개념화의 힘’이다.

만약 당시 최만리가 자신이 포함된 기득권층을 대변하지 않고 공존하는 일반 백성을 위한 개념을 담은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면 세종의 마음이 흔들리고 한글 창제를 멈췄을까? 필자는 중국에 기댄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최만리가 백성을 위한 개념을 포함하면서 온전히 자신을 담은 상소문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분명 삶과 일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인문학을 단지 교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개념화 과정을 간과한 것이다. 회사 내에서 역량이 우수한 사람이 퇴직 후 창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념화 역량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직 안에서는 개념화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조직의 도움으로 부족한 개념화 역량을 보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창업 후에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면 조급하게 그것을 상품화(표현)하려 하지 말고 먼저 가만히 뒤돌아 서보길 권한다. 그리고 찬찬히 보고 느낀 것을 말 또는 글로 기록하라.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이것이 나의 문제로 바꾸는 개념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개념화되면 주변 사람이나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고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느리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지만 개념이 발전하는 과정이다. 이 지루한 반복 과정에서 개념이 완성될 것이고, 이때 아이디어와 영감을 덤으로 얻게 된다. 나의 생각을 온전히 말 또는 글로 풀어내는 훈련을 함으로써 인문학에 기반한 소프트한 창의 역량을 기를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회사나 학교에서 품평이나 제안 시에 상사나 선생님이 다른 안을 선택해도 자신의 주장을 차근히 설명해 자신이 제안한 안으로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3. 가치 창출의 방법이 뒤집힌 세상에는 반드시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오늘날의 급진적인 변화를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순으로 언어의 구조를 풀어봐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 중인 경계가 정점에 이를 때 급진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새로운 경계가 등장한다. 이 경계가 바뀌는 과정이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명이었다. 증기와 전기라는 새로운 에너지가 등장하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전했던 과거의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은 커뮤니케이션의 급진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가치창출 방법이 뒤집혔고 우버, 페이스북, 에어비앤비와 같이 뒤집힌 가치 창출 방법을 개념화하고 상품화한 기업이 등장해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회사인 우버는 택시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 회사인 페이스북은 자체 콘텐츠를 가진 것이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인 알리바바는 재고가 없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업소인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부동산이 없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4

-미국의 기술전문지 中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사람을 배제하고 기계끼리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세무, 법률, 의료와 같이 영역의 구분이 명확하고 빅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사람 사이에 유지되는 공공성과 다양성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등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급진적인 변화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공공성과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성’을 갖출 것이 요구되고 있다. 여기서 디자인과 창의성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디자인은 창의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검증된 수단이다. 창의성을 달성하는 구체적인 수단이 디자인인 셈이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 역량은 생각을 개념화하는 반복과정 속에서 길러진다. ‘디(De=designare, decode)’와 ‘사인(Sign)’의 합성어인 디자인에는 ‘사인의 방향을 가리켜 주고(designare), 풀어준다(decode)’는 인문학적 개념이 담겨 있다.

더불어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내재된 창의성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마음공부(必有心上功夫)’가 돼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공부’란 “사람을 향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종의 말처럼 반드시 마음 위에 공부를 쌓은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상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경연에서 동지경연 이지강이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하고, 또 아뢰기를, “임금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옵나니, 마음이 바른 연후에야 백관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른 연후에야 만민이 바르게 되옵는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지는 오로지 이 책에 있사옵니다” 하매, 임금(세종)이 말하기를, “경서를 글귀로만 풀이하는 것은 학문에 도움이 없으니, 반드시 마음의 공부가 있어야만 이에 유익할 것이다” 하였다.

-<세종실록> 즉위년(1418년) 10월12일 中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 속에는 분명 길이 있다.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中



(정조가) 하교하기를, “독서는 체험(體驗)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참으로 정밀히 살피고 밝게 분변하여 심신(心身)으로 체득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분량의 책을 암송한다 한들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문청공(文淸公) 설선(薛瑄)이 말하기를 ‘독서를 함에 있어서 착실히 마음속으로 깊이 인정하면 도리(道理)가 약동하는 듯이 마음과 눈 사이에 들어와 문자와 언어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독서를 오래도록 하여 깨달은 글 속의 이치가 자신의 몸속의 이치와 하나하나 부합돼야만 비로소 참으로 터득하는 것이 있게 된다’ 하였다. 나는 일찍부터 이 말을 사랑하였으니, 진실로 참다운 마음과 참다운 학문이 없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였다.

-정조, <홍재전서> 162권 일득록



지금 당장 생각의 개념화를 시작하자

“성공하고 싶은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개념화하길 권한다. 필자는 1992년 겨울, 대학을 졸업할 무렵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고 ‘디자이너로서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는 막연한 삶의 목적을 정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퍼시스, 삼성전자 등 기업에서 디자이너로서 생활하며 틈틈이 <조선왕조실록>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삼성, 애플, 무인양품과 같은 선진기업과 이순신, 세종과 같은 위인들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공통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말 또는 글로 개념화하고, 그 개념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설명하는 반복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 공감된 개념을 상품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과정을 ‘인문디자인’이라 개념화하고, 이것을 평생의 업(業)으로 정하고 그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기술과 트렌드 중심의 점진적인 변화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과 도구의 근원을 먼저 생각하고, 개념화하고, 설득할 목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변화의 시대를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김경묵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원장 formook@naver.com

김경묵은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부회장 겸 원장, 인문학공장 대표이다. 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동 회사 디자인철학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아이패드의 사례에서 보듯 인간과 도구에 대한 ‘개념’을 담는 데 성공한 제품이 세상을 바꾼다.
당신 회사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제품은 어떤 개념을,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가.

2 아무리 논리적인 문장이라도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힘을 지닐 수 없다. 최근에 당신이 제시한 아이디어 중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 있는가.
그 아이디어에 ‘공감(共感)’을 더해 업그레이드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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