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 물음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인간
가장 중요한 이 질문에 AI는 답을 못한다
Article at a Glance
AI가 주도하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오랜 질문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혼종화가 진행되면서 니체의 ‘초인’을 원류로 삼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유혹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내는 환각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노직의 ‘경험 기계’가 경고했듯 거짓 위에 세워진 만족은 행복이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통찰을 빌리면 지능은 애초에 삶의 의지에 봉사하는 도구일 뿐이고, 생존의 절박함이 없는 AI는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하이데거가 밝혔듯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인간뿐이며 AI는 어디까지나 쓰임으로 의미가 규정되는 도구다. 윤리적 책임의 주체 역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결국 AI 시대에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라는 질문의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요즘 대학입시에서 가장 높은 입학 성적을 기록하는 분야는 자연계에서는 의학계열, 인문계에서는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법대의 위상이 약해진 자리를 경영·경제 분야가 대신해온 것이다. 그러나 의사,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 이들 학과가 배출해온 전문직 상당수가 AI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학 전공의 선호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첨단 산업 기업으로 인재가 몰리고 있으며 대학들도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학과를 신설하거나 기존 전공을 융합하는 등 발 빠르게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직장인과 기업 경영자 역시 AI가 바꿀 산업과 일자리의 지형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다. 한때 AI는 모두의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여줄 기술로 기대를 모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자동화의 충격은 프로그래머와 같은 지식노동부터 먼저 나타나고 있으며 오히려 배관공이나 전기기사처럼 현장에서 손기술과 상황 판단이 필요한 직업은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일자리로 평가받는다. AI 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직업의 가치를 다시 쓰고 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주목받는 분야가 철학이다. 왜 철학적 사유가 중요해졌으며 철학과 출신의 취업률은 왜 높아지는가.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CEO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AI 기업들이 철학자를 채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이유다. 철학 전공자로서 사그라들던 철학과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는 상황이 반가운 한편 당황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