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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뿌리 없이 솟아난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뿌리와 사회과학이라는 밑동 위에서 맺힌 열매다. 뿌리를 충분히 다지기 전에 열매부터 받아들이면 뿌리가 말라 버릴 수 있다. AI 시대에 더욱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물어야 하는 이유다. 자연과학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지만 인문학은 답이 다양하다는 것 자체가 생명력을 준다. AI가 강한 영역은 정답을 찾는 영역인데 인간의 문제까지 하나의 답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AI는 책상 위 백과사전처럼 과거의 지식을 정리해주는 데 유용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결단과 미래의 창조는 인간의 몫이다. AI에 과거를 묻되 미래는 인간이 만들어야 한다. 결국 철학의 쓸모란 인간이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남게 하는 데 있으며 AI 시대에 던져야 할 질문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다.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자랐고,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1947년 탈북해 7년간 서울중앙중고등학교의 교사와 교감으로 일했다.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봉직했다. 1985년 퇴직한 뒤 지금까지도 줄곧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김형석, 백 년의 유산』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이 있다.AI가 인간의 사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제 이 질문은 철학 강의실 안에 머무는 추상적 논쟁이 아니다. AI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인간의 역할은 재정의되고 우리는 다시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 질문을 올해 107세를 맞은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던졌다.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한 그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시간이 인간에게 어떤 지혜를 남기는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디지털 전환을 거쳐 AI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거의 모든 변곡점을 직접 경험했다. 숭실학교 재학 시절에는 시인 윤동주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며 한국 인문학사의 한 장면을 함께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공산 치하의 북한에서 생활했고, 1947년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왔다. 중앙고 교사를 거쳐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철학계의 토대를 다지고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의 현재성은 나이보다 활동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네스 세계기록은 그를 ‘인류 최고령 저자’로 등재했으며 올해는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를 펴내 기술 문명의 한복판에서 다시 인간의 의미를 묻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만난 그에게서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다소 느린 걸음과 손에 든 지팡이 정도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팡이 없이 다녔다”며 웃어 보인 그는 기자가 건넨 신간에 한 자 한 자 친필 사인을 남기며 기자가 속한 회사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또렷하게 답을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나이가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AI에 “내가 몇 세까지 살 것 같으냐”고 물어본 경험도 있을 정도로 AI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다만 그는 “AI가 지식과 기술의 영역에서는 인간에게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인간이 끝까지 스스로 지켜야 할 영역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해야 하고, 양심에 따라 선과 악을 가려야 하고, 인간을 언제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