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술·담배 등 중독 치료 효과 잇따라
(식욕억제 호르몬)
행동 변화 데이터 쌓이면 산업계 대지진
Article at a Glance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수용체 작용제는 당뇨병 치료제로 출발해 비만 치료제로 영역을 넓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중독질환이라는 세 번째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핵심은 GLP-1이 혈당과 식욕을 조절하는 장 호르몬에 그치지 않고 뇌의 식욕·보상·갈망 회로에까지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독은 의지 부족이 아니다. 반복적인 물질 노출로 뇌의 보상 회로가 변형되면서 ‘좋아함(liking)’보다 ‘원함(wanting)’이 비대해진 만성 뇌 질환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 재향군인 데이터베이스 연구는 GLP-1 제제 사용군에서 알코올·대마·코카인·니코틴·오피오이드 등 여러 물질 사용 장애의 새로운 발생 위험이 일관되게 낮아졌고 기존 환자에서도 관련 사망·과다 복용·응급실 방문이 줄어드는 신호를 확인했다. 이어 발표된 무작위 위약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비만을 동반한 중등도-중증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에게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하자 과음 일수, 총음주량, 음주 1회당 섭취량, 알코올 관련 생체표지자가 모두 유의하게 개선됐다. 앞으로 GLP-1 제제는 혈당과 체중을 넘어 갈망, 충동, 음주·흡연 행동까지 함께 평가하는 데이터 기반 행동의학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당뇨병·비만 치료제로 개발된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약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이 FDA 승인 범위를 넘어 외상성 뇌손상,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불안, 브레인 포그, 심지어 장수 목적의 미세 용량 투여에까지 GLP-1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미국인의 GLP-1 대실험(The Great American GLP-1 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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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실험의 중심에 단순 체중감량이 아니라 ‘갈망과 충동 조절’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GLP-1이 인간의 보상 회로와 욕망을 조절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면 이는 제약산업을 넘어 식품·주류·디지털 헬스·행동 데이터 산업 전체의 경쟁 구도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실제 진료실에 있다 보면 환자들로부터 “GLP-1 주사를 시작한 후 이상하게 술이 덜 당긴다” “단 음식뿐 아니라 담배 생각도 덜 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처음에는 체중이 줄고 생활 습관이 좋아지면서 생긴 부수적 변화로 여겨졌다. 과식을 덜 하게 되니 술도 덜 마시게 되고, 몸이 가벼워지니 자기 관리가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가 여러 국가의 임상 현장에서도 반복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GLP-1이 무엇이길래 주사 한 방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식욕을 줄일 수 있을까. 게다가 식욕 감퇴 효과를 넘어 어떻게 중독성 있는 술과 담배에 대한 생각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GLP-1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식사 후 분비되는 ‘신비의 가루’ GLP-1은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호르몬의 일종이다. 장의 L-세포에서 만들어진 GLP-1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 흡수되는 과정에서 혈액 속으로 분비된다. 마치 신비의 가루처럼 혈액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몸 곳곳에 있는 GLP-1 수용체에 결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