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미국에서 K푸드가 완벽한 음식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식품 업체 ‘올곧’에서 생산하고 트레이더 조가 PB 상품으로 유통하는 냉동 김밥의 열풍은 K푸드가 명실상부 미국 음식 시장의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5년 ‘애니천’부터 2019년 ‘슈완스’까지 숱한 식품 기업들을 인수하며 미국 진출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 온 CJ는 ‘비비고 만두’ 등 현지화에 성공한 제품으로 현재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삼양도 불닭볶음면 챌린지에 힘입어 미국 주요 유통 채널들에 모두 입점하는 등 브랜드 파워와 인지도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 치킨, 한국식 BBQ 등의 터줏대감도 2차 유행 특수를 누리고 있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K푸드 2.0 열풍이 식지 않고 지속가능하려면 K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도모, K푸드 플랫폼의 구축, 육류의 미국 수출을 위한 정부 지원 등 여러 조건이 추가로 갖춰져야 한다.
미국에서 K푸드가 반짝 관심을 넘어 새로운 음식 트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한국 음식이라 하면 비빔밥과 불고기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김밥, 핫도그, 라면, 만두 등 길거리 음식(Street Foods)이 합세해 비빔밥과 불고기를 넘어 한식 붐, 즉 ‘K푸드 2.0’ 열풍을 이끌고 있다. 뉴욕에서 한식을 활용해 미슐랭 스타를 받는 한국 셰프를 찾아보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아졌고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식당가 인근 지역은 평일에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2023년 농식품 분야 수출액은 90억 달러(약 11조 원)로 건국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브랜드 파워지수에서 K콘텐츠는 58.5점이었던 반면 K푸드는 66점을 기록했다. K푸드가 K콘텐츠보다 인기 있는 독보적인 아이템이 된 셈이다. 이후 K푸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냉동 김밥 열풍이다. 북창동 순두부에서 시작해 오늘날 트레이더 조 냉동 김밥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K푸드가 진화해 온 여정과 현주소를 살펴본 뒤 앞으로 2.0 열풍을 넘어 K푸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자.
K푸드 2.0의 현주소1) K푸드를 미국 식품 카테고리에 올려놓은 ‘냉동 김밥’
미국 전역에 560여 개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 ‘트레이더 조(Trader Joe’s)’ 마트는 미국인에게 친숙한 마트 체인 중 하나다. 다른 마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소포장이 잘돼 있으며 모든 상품이 자사 PB 제품화돼 자체 포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2023년 여름 한국에서 생산된 냉동 김밥은 ‘Kimbap’이라는 레이블로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김밥에 대한 초기 반응은 사실 미미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계 미국인 틱톡 인플루언서 세라 안 씨가 트레이더 조의 우엉 김밥을 리뷰하는 영상을 올리면서부터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안 씨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3.99달러짜리 우엉 김밥을 전자레인지에서 데워 먹으며 리뷰한 이 영상은 틱톡에서 1000만 회의 조회수와 4000여 개의 댓글을 기록하면서 트레이더 조의 김밥 열풍을 이끌었다.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졌고 그 화력 또한 엄청났다. 트레이더 조가 초기 물량 250만 t, 즉 김밥 100만 줄을 준비했는데 2주도 되지 않아 완판됐다. 급기야 트레이더스 조의 각 체인에서 1인당 2줄로만 구입을 제한하는 포스터를 써 놓았는데도 냉동 김밥은 들어오는 족족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고 NBC 등 미국 메이저 언론에도 대서특필됐다.
물론 틱톡 리뷰 영상이 촉매제가 되긴 했지만 한국의 식품 업체 ‘올곧’에서 생산된 이 냉동 김밥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육류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식 제품’이라는 점이 인기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올곧은 타국의 육류 수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미국 정부의 규제를 피해 김밥에 흔히 넣는 햄이나 불고기 같은 동물성 재료 대신 우엉과 유부 등 채식 재료로 맛을 구현했다. 그런데 이 엄격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채식 제품의 개발이 대박을 이끈 결정적 요인이 됐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모여 사는 미국에서 트레이더 조 마트를 방문하는 모든 고객이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렇게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종교나 민족의 제한 없이, 즉 호불호 없이 모든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강점은 미국 시장에서 대박을 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웠다.여기에 3.99달러라는 저렴한 가격도 매력을 더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던 시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의 가격이 5달러 이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큰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저렴한 가격과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채식 재료는 틱톡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김밥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트레이더 조에서의 냉동 김밥 열풍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는 K팝이 미국 음악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처럼 K푸드가 미국 음식 시장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보드 음악 차트에 미국, 유럽, 남미 등 다양한 음악과 함께 K팝이 이질감 없이 뒤섞여 있듯 미국, 유럽, 남미 식재료로 가득했던 트레이더 조에서도 이제 한국 음식이 자연스러운 한 주체로 섞이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일본이나 중국 식품과 같이 분류되던 오리지널 한국 음식들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편견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이제 다양한 인종의 미국 소비자들이 소고기를 사러 와서 한국 냉동 김밥과 초고추장 소스를 함께 구입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2) ‘Mandu’ 정체성 지키되 현지화한 ‘비비고 만두’
미국에서 한식 열풍을 이끈 주역 중 하나로 CJ의 과감한 초기 투자를 빼놓을 수 없다. CJ는 1995년 드림웍스 설립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시작은 콘텐츠 사업이었지만 2005년에는 미국 내 식품 유통사업을 인수해 ‘비비고’ 브랜드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비비고를 해외에서 제대로 만든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지만 크고 작은 실패를 겪기도 했다. CJ는 미국 식품 기업인 애니천(2005년), 옴니(2009년), TMI(2013년), 카히키(2019년), 슈완스(2019년) 등의 기업을 인수했고 꾸준한 투자와 외형 확장의 결과로 이제 미국 시장에서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 사업 매출 규모가 6조9000억 원이었는데 이 중 식품 사업이 5조1811억 원으로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현재 미국 직원 수는 1만2000명에 달하는데 이는 삼성전자, 현대차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CJ사의 현지화 성공 사례로는 ‘비비고 만두’를 꼽을 수 있다.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기술 개발과 설비 확보에 투자했다. 하지만 단순히 자본만 투입한 게 아니라 한국과 똑같은 제품을 고수하는 대신 현지 수요에 맞는 변용을 모색했다. 기존 미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Dumpling’ 혹은 ‘Kyoza’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버리고 ‘Mandu’로 표기하며 한국 음식의 정체성을 유지했지만 제품 자체에는 변화를 줬다. 가령 한국에선 비비고 만두에 돼지고기가 들어가지만 다양한 종교와 인종적 배경을 가진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닭으로 재료를 바꾼 신제품들도 내놓았다. 이어 회사는 미국인들의 선호에 집중해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만두인 ‘완탕’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탄생한 치킨 앤드 실란트로(치킨고수) 완탕은 출시하자마자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신제품으로 안착했다. 이렇게 시장에 맞는 현지화 전략으로 2021년 CJ 비비고 만두는 미국 만두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으며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성공 사례로 다뤄지기도 했다. 또한 CJ는 2012년부터 ‘KCON USA’라는 K팝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데 이 행사도 단순 공연을 넘어 종합 비즈니스 컨벤션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현지 고객들이 ‘비비고 만두’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 식품박람회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매운맛 수요층 겨냥한 ‘불닭볶음면과 신라면’
실제 BTS 멤버들이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진 불닭볶음면은 ‘식품업계의 BTS’라고 불려도 될 만큼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삼양식품의 미국 법인 매출은 2022년 4800만 달러에서 2023년 8760만 달러로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2021년 8월 미국 법인 설립 이후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제품을 받아 수출하는 구조임에도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마트 체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불닭볶음면을 찾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유사 제품이 시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양’ 브랜드가 적힌 제품만을 찾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지 시장이 제품의 품질과 브랜딩 파워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기는 K콘텐츠의 인기와 연결돼 있지만 그 틈새를 놓치지 않는 삼양 마케팅의 결실이기도 하다. 2016년 삼양은 유튜브를 통해 ‘불닭볶음면 챌린지’를 시작하며 자사 제품을 홍보했다. 초기 단계에는 여러 유튜버가 맛을 보며 웃음을 주는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런 챌린지가 일회성 홍보로 끝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불닭볶음면은 매운맛에 중독된 미국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기 시작했다. 일종의 ‘매운맛 챌린지’로 받아들여지면서 미국 내에서 매운맛을 선호하는 집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전략이 돼버린 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히스패닉과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계 소비자들이 먼저 ‘맵부심(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자부심)’을 무기로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는 이 타깃 고객층에 맞춰 오리지널, 까르보 등의 기존의 맛 외에도 ‘하바네로 라임 불닭볶음면’ ‘똠얌 불닭볶음탕면’ 등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아예 불닭 소스만 따로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매운맛에 강하고 도전적인 미국 틈새 인구를 겨냥한 결과 불닭볶음면은 이제 미국 내 월마트와 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 채널에도 입점하게 됐으며 얼마 전에는 미국 앨버슨마트, 크루거와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앨버슨마트는 미국 내 30여 개 주에 2300개 매장을 갖춘 마켓 브랜드이며 신시내티 본사의 크로거 또한 미국 중서부 지역에 포진해 있는 매출 규모 5위 수준의 유통업체다.
삼양의 불닭볶음면 외에 전통 강자인 농심의 신라면 역시 미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농심의 신라면은 2017년 미국 월마트 모든 점포와 공급 계약을 맺은 이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미국에서의 인지도를 한층 더 키워갔다. 특히 2020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만든 라면)가 등장하면서 더 주목을 받게 됐고 K콘텐츠 위상에 힘입어 기존의 매운맛뿐 아니라 로 치킨, 비건, 프리미엄 라면까지 다양한 맛을 선보이면서 고객 기반을 늘려 갔다. 나아가 농심은 2005년 LA에 제1공장을 설립한 이후 십수 년 뒤인 2022년 제2공장 가동까지 시작하며 미국 내 유통과 물류를 좀 더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더 장기적인 토대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4) 미국 본토 시장에 상륙한 KFC(Korean Fried Chicken)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인의 소울푸드이자 미국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미국 시장에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은 이제 여러 소비자에게 검증된 대표 시그니처 음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미국이 낳고 한국이 키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미국의 유명 치킨 전문점인 KFC의 약자가 이제 ‘Korean Fried Chicken’으로 불려야 한다는 농담이 널리 통용되기까지 하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바나 대형 레스토랑 체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한국식 치킨 윙’ 메뉴를 보는 것도 이제 어색하지 않아졌다. 오히려 이런 레스토랑들은 한국식 소스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트렌디한 인상을 주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기존에 잘 팔리던 중국의 ‘오렌지 치킨(Orange Chicken)’이나 일본의 ‘데리야키(Teriyaki)’ 치킨보다 한국식 치킨이 한층 더 맛있고 세련됐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치킨 브랜드 3대장(BB.Q, BHC, 교촌)이 꽉 잡고 있지만 정작 미국에서 K치킨을 이끈 브랜드는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본촌(Bonchon)’이라는 회사는 ‘교촌’과 상호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기업이다. 2002년 부산에서 설립된 본촌 치킨은 2006년 미국에 첫 매장을 오픈했으며 미국 50개 주 중 25개에 140여 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본촌은 1세대 한국식 치킨 브랜드로 한국식 매운 소스와 간장 소스 두 가지 맛으로 미국 본토 시장을 공략했다. 본촌 치킨은 테이크아웃 매장과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미국 시골 지역에서 치킨과 맥주, 한국 음식들을 함께 판매하고 알려 왔다.
2010년대까지 본촌 치킨이 1대장으로 규모를 키우고 정체기에 접어들 무렵 2차 한국 치킨 트렌드가 생겼다. K드라마나 K컬처가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확대되면서 미국에서 고전하던 ‘BB.Q치킨’이 폭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식 치킨 맛을 고스란히 미국으로 가져온 ‘BB.Q치킨’은 현재 200여 개의 매장을 확보해 운영 중이며 이어 페리카나, 교촌, BHC 등 많은 치킨 기업이 미국 시장 공략에 가세했다. 이런 매장들도 본촌 치킨처럼 한국식 치킨에 떡볶이, 김치볶음밥 등 한국 음식들까지 판매하면서 한국 치킨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다.
5) 정통 한국 음식을 브랜드화한 ‘순두부’와 ‘K-BBQ’한국 음식은 다 좋은데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이 있다. 메인 음식 외에도 다양한 반찬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한국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더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핵심 자산에 집중하고 이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한 체인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창동 순두부(미국 상호 BCD Tofu House)’다. 1996년 이민 1세대인 고(故) 이희숙 씨는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운영하던 음식점이 ‘북창동’에 위치했던 것을 떠올려 ‘북창동 순두부’ 가게를 창업했다. 그는 한국적인 맛을 내는 것에 집중하되 수많은 반찬이 아니라 두부라는 한 가지 포인트에 집중해 미국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순두부 메뉴들을 개발했다. 김치 순두부에서부터 해물, 곱창, 부대찌개, 베지테리언 등 다양한 맛을 만들고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북창동 순두부는 미국 내 12개 직영점을 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다.
순두부와 더불어 정통 한국 음식의 브랜드화를 이끈 건 다름 아닌 한국식 바비큐다. 1980~1990년대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대도시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한국식 바비큐는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미국인들에게 선보이며 매력적인 식문화를 각인시켰다. 이런 문화가 미국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자 2010년대 이후부터는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를 더한 한국식 바비큐 식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7년 뉴욕 맨해튼에 오픈한 ‘꽃(Cote)’은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하며 미국 내 많은 셀럽이 찾는 대표 공간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무한 리필을 의미하는 ‘AYCE(All You Can Eat)’ 코리안 바비큐 식당들도 생겨났다.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투스틴(Tustin)에 한국식 무한 리필 고깃집을 콘셉트로 한 ‘Gen Korean BBQ’가 오픈했는데 이 식당은 첫 가게의 성공을 이어받아 네바다주, 하와이, 텍사스, 애리조나, 뉴욕 미국 내 타주로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결국 2023년 6월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첫날 12달러 공모가로 4320만 달러(한화 약 6000억 원)를 조달했다. 이 같은 K-BBQ 브랜드의 성공은 한국 식품 시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으며 많은 한국의 식품 사업가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하는 계기와 이유를 만들었다.
K푸드가 나아가야 할 길1) K가치와 정체성 확립그동안 김치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식장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식품으로 꼽혀왔다. 가장 한국적이지만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김치 수출액은 29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무려 41.2%나 증가했으며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미국에서 김치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6.3%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김치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상품이 어느 카테고리에 위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면 가장 미국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제품도 얼마든지 현지 수요를 잡을 수 있다. 따라서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는 한국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상품을 ‘에스닉 푸드’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미식을 경험하려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현재 김치는 월마트나 코스트코, 유기농 마트인 홀푸드에도 입점해 한국 교포뿐 아니라 현지 소비자들을 상대로도 판매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김치 브랜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굳이 한국 고유의 맛이나 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고스란히 지키면서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지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대상 종가의 경우 제품의 레이블링에 ‘Made in Korea’와 ‘Kimchi Probiotics’라는 단어를 표기하면서 처음부터 한국 제품이 갖는 가치와 건강 매력을 부각했다. 상품의 본질을 흔들기보다는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비건 김치, 덜 매운맛 등 미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호도를 반영한 결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K콘텐츠와의 결합K푸드가 미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는 BTS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때와 비슷하다. 이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과 K푸드의 성장이 맥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미국 내에서 남미 계통이나 영국, 이탈리안 이민자들이 오랜 세월을 축적하면서 시장에 서서히 침투했다면 한국은 12시간이 넘는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콘텐츠를 통해 그 시간의 간극을 따라잡은 셈이다. 또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기간 동안 미국인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했고 K콘텐츠로까지 시야를 넓히게 됐다. 한국과 아시아의 문화에 관심이 없던 대중들까지 한국 드라마나 한국 음악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가 끝난 뒤 그들의 식문화로 자연스레 연결됐고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한국 음식과 식재료에 노출돼 온 외국인들의 관심이 이제는 식품 구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호기심으로 먹던 한국 음식이 이제는 ‘즐겨 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K푸드 열풍은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한국 음식의 인기로 확산된 대단히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결국 한국 문화 콘텐츠와 합쳐져야 계속해서 더 많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비고 브랜드가 CJ의 ‘KCON’ 등 K팝과 융합한 종합 비즈니스 컨벤션을 통해 저변을 확장했고 불닭볶음면이나 신라면도 유튜브상에서의 챌린지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서 수혜를 입었듯 K콘텐츠와 K푸드를 결합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대중문화계에 빗대면 ‘대형 기획사’라 할 수 있는 대형 식품 기업들이 K푸드 열기의 큰 뼈대를 구축했다면 이제는 ‘작은 기획사’라 할 수 있는 중소 식품업체들도 그 붐을 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의 지원이 필요하다.
3) K푸드 플랫폼 구축식품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물류’다. 한두 번 식품을 배송하고 인기를 유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장기간 운영하고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이 더 어렵다. 문제는 이런 인프라와 물류를 확보하기 위한 자본도 대부분 대기업만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K푸드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의 실력 있는 중소 식품 회사들이 미국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교두보로 활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방의 로컬 재료를 현재 미국으로 수출하기에는 수량과 법적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사업자가 의지를 가지고 한국의 식재료를 해외에 판매하려고 해도 결국 미국에서 판매처를 찾고 시장을 뚫는 과정에서 여러 법, 제도적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아마존 같은 대형 온라인 마트나 미국 내 최대 한인 마트인 ‘H마트’의 벽도 넘어서기가 어려울 정도다.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좋은 아이템이 빛을 잃고 사장되기 쉬운 환경인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아마존에 입성한다 해도 수수료를 떼고 나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기가 어렵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이 ‘K푸드 플랫폼’을 구축해 중소 상인들을 미국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온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야만 한국의 상품들이 계속해서 미국에 유통되고 중소 상공인들의 안정적인 물류 확보도 가능해질 것이다.
4) K식자재의 수출 활로 모색한국 식품 중 미국으로의 육류 수출은 철저히 금지돼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엄격한 수입 규정을 들며 한국산 육류의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외국산 육류 제품이 초래할 사항에 대한 걱정 때문인데 한국은 과거 구제역(FMD, Foot-and-Mouth Disease) 발병 사례 탓에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이 수입하고 있는 한국산 육류 제품은 가공된 닭인 하림사의 삼계탕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조리 후 냉동 처리한 뒤 유통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단계를 거쳐야 한다. 미국 정부의 규제로 한국산 식품에 육류를 넣지 않은 채식 식품만 수출이 가능하고 이런 제약은 소스나 라면수프 등 모든 식품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고 더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국 식품들이 미국의 수입 규제로 제한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생소고기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일본 또한 2010년 미야자키현에서 소와 돼지를 중심으로 큰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꾸준히 노력해 세계 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인정받고 미국 시장에 일본산 고급 소고기인 ‘와규’를 수출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정부 차원에서 강화된 방역 조치와 백신 프로그램, 질병 무발생 기간 유지 등을 일관되게 시행하고 유지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까지는 채식 식품들만이 미국의 까다로운 시장 문턱을 넘고 해외에 제조 공장과 설비를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 위주로만 해외 진출을 도모할 수 있지만 미국으로의 소고기 수출길이 확보된다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 2021년 24억 달러(한화 약 3조3600억 원) 상당의 일본산 소고기를 미국으로 수출한 바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의 ‘Korean BBQ’ 식당에 한우를 선보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K푸드가 더 폭발력 있는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면 더 질 좋은 한국산 식재료들이 건너갈 수 있는 활로가 마련돼야 한다.미국 내에서 K푸드 열풍이 불자 한국 음식의 이미지만을 흉내 낸 한국 스타일의 식당과 제품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거대 중국 자본가들이 한국식 바비큐 가게를 벤치마킹해 무한 리필 콘셉트의 중국식 훠거를 믹스한 브랜드들도 론칭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 음식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이미지를 표방한 브랜드들이 더 많이 생겨나겠지만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부터 소스 등에서도 한국산 본연의 맛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어야 시간이 지나도 한국 음식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식지 않는 인기를 이어갈 것이다. 현재 미국 내 일본 스시 레스토랑의 경우 홋카이도산 성게를 직수입하고 참치, 도미 등 생선부터 생와사비까지 일본에서 공수하고 있다. 간장도 일본 브랜드인 기코만사의 간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일본 제품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일본 브랜드의 힘을 공고히 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또한 한국 식재료와 한국산 제품을 최대한 활용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K푸드 2.0을 넘어 3.0, 4.0이 나올 수 있도록 한국 식품산업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