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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 지정학적 위험 피하려면

경제 외적 변수 극복할 ‘기업 외교’ 필요
진출국 이해관계자들과 유대 강화해야

문정빈 | 378호 (2023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지정학적 위험이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재, 경영자들은 적극적인 기업 외교를 통해 자사의 이익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국가의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에 대응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고자 수행하는 비시장 전략을 뜻하는 기업 외교의 주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현지 진출국의 외교가 인맥을 보강하는 등 전문 인력과 네트워크를 확보한다.

2. 격전주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 입지를 선정해 현지 진출국 중앙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3. 자국과 진출국 간의 입장 상충 시에는 일방적인 도덕적 우월주의 관점을 피하고 현지 진출국의 상황을 고려한 절충적 태도로 조율한다.

4. 원산지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를 활용하고 활발한 ESG 경영활동으로 현지 이해관계자와의 유대를 강화한다.

5. 자국 정부의 주요 의제에 적극 참여해 자국 내 정통성과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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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초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인 애플의 주가가 6% 이상 하락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40%에 달하는 240조 원의 주식 가치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5G급 스마트폰을 선보인 것과 중국 정부가 공무원들의 업무용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 것이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개시했을 때는 맥도날드의 주가가 2주간 9.1%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S&P500 지수의 하락폭인 4.1%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냉전 종식 이후 30년 이상 러시아에서 미국 중심 국제 질서의 상징과 같았던 맥도날드는 본국인 미국과 우방국 고객들의 압력 때문에 러시아 매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으며 결국 같은 해 5월 러시아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이네켄, 칼스버그와 같은 많은 글로벌 소비재 기업도 맥도날드와 비슷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지정학적 위험(Geopolitical Risk, GPR)의 시대가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지정학적 위험은 정치적 위험과는 엄연히 다르다. 국제경영에서 논의되던 정치적 위험은 현지 투자국의 정치적 상황이 해외 직접투자의 수익성과 지속성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을 의미한다.1 이와 비교했을 때 지정학적 위험이란 단일 국가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의 지정학적 상황이 기업의 해외 투자와 공급망 전체에 대해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을 뜻한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보호무역 및 투자 제한 조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따른 식량 및 에너지 산업에서의 불확실성 증가는 글로벌 기업 활동에 새로운 제약이자 큰 위험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그렇듯이 지정학적 위험이 가져오는 위기도 준비된 기업에는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기가 부상하게 된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중 패권 경쟁과 현실주의 외교 정책의 부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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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의 역사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업자로 억만장자 투자자가 된 레이 달리오는 저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서 경제, 재정, 군사, 교육, 기술, 문화 등을 종합해 각국의 전 세계적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수를 만들고 지난 500년 역사에 적용했다. (그림 2) 달리오에 따르면 20세기 1차 세계대전 이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오른 미국의 패권을 위협했던 국가로는 독일, 일본, 소련, 중국을 꼽을 수 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높은 수준의 군사력과 과학기술력으로 미국을 위협했고,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도 히틀러가 핵무기를 먼저 개발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2차 대전 중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 영토가 공격받을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일본은 2차 대전 패망 이후 경제적으로 부흥해 1980년대에 다시 미국의 경제적 경쟁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플라자합의 이후 급등하는 엔화 가치에 따른 자산 시장의 버블을 관리하지 못해 1990년 이후 경제 성장이 정체되는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패권 경쟁에서 낙오한다.

한편 소련은 방대한 영토와 자원을 바탕으로 공산 진영의 맹주가 돼 냉전 기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는 명실상부한 패권 경쟁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1957년 소련이 사상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미국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의 과학교육 혁신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창설로 이어졌고 뒤이은 우주 개발과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이 소련을 압도하며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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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79년 미·중 수교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했음에도 압도적인 인구 규모 때문에 경제, 군사, 기술 측면에서 미국에 필적하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이에 미국 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국의 국익 보호와 영향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대중국 정책을 펼 것을 천명했다.3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백년국치’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은 본인들의 유구한 역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는 세계의 중심을 뜻하는 중국이라는 명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는 1949년까지 100여 년 동안 중국은 서구 및 일본 등 열강의 침탈에 신음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는 현대 중국인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본인의 3연임을 선언하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의 현대화가 전쟁, 식민화, 약탈 등을 통해 근대화를 실현한 나라들을 따르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이제는 중국 문명을 세계로 전파할 시점임을 강조한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앞서 달성한 서구 국가들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중국만의 방식으로 선진 강국을 건설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다수의 국가를 대표해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하겠다는 기회주의적 야심이 묻어 나는 연설이었다.4

현재 중국과 러시아 등은 미국에 대적할 상대방을 명확히 나타내는 패권 경쟁이라는 용어보다는 다극화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는 세계가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변화할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 미국의 패권에 순응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는 용어다. 대표적으로 올해 8월 개최된 브릭스(BRICS)5 15차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이란, 이집트를 2024년 1월부터 브릭스 정식 회원국으로 초청한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 패권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 등 다극 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패권 경쟁의 현재, 현실주의와 디리스킹

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 질서에서 일관되게 주류의 위치에 있었던 사상은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인권, 시장경제, 민주적 정치 체제 등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교역과 투자를 옹호한다. 다소 규범적인 성격을 띠고 서구의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유주의는 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중동 지역에 서양식 민주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치러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소득 없이 철수하고,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회의가 팽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 사상이 부상한다.

현실주의에서 국가란 인권,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를 위해 무력 행사나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행위 또한 불사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파를 대표하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 정책이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한 특수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동에 대한 무력 개입의 실패와 중국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 정책은 파산 선고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외교 정책 노선이 현실주의로 전환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를 보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방주의적 자유주의 노선을 찾아보기 어렵다.6 일례로 주요 기술 산업에 대한 보조금, 수출 규제, 투자 심사 등의 내용을 포함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과거 자유무역 체제의 시장 중심 산업 정책과는 거리가 먼 현실주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7

한편 중국을 대하는 접근법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대중국 전략으로 냉전 시대와 같이 미국과 동맹국의 경제활동을 중국과 분리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냉전 시대와 판이하게 달라진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 상황에서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시일도 장기간 소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표 기업들조차 디커플링의 현실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정부에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디리스킹(Derisking)이다. 위험을 낮추고 줄인다는 뜻으로 디커플링과 같은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대립이 불가피한 안보 관계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협력 또는 경쟁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대한 실리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8 디리스킹은 점진적인 공급망 위험 저감을 추구하며 적극적인 무역 및 투자 제재는 첨단 반도체 산업 등에 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입장 선회는 앞서 말한 디커플링의 실현 가능성 문제와 더불어 그동안의 첨단 반도체 제재가 어느 정도 실효성을 보였으며 중국의 식량 및 에너지 분야의 대외 의존성, 금융 및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 등으로 미국이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행보로 보인다.9

기업 외교 전략

지정학적 위험과 그에 따른 외교 정책 및 국제관계 변화에 따라 기업의 매출, 손익, 시가총액이 큰 영향을 받는 현재, 경영자들은 적극적인 기업 외교를 통해 자사의 이익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기업 외교란 국가의 외교 정책과 국제관계에 대응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고자 수행하는 비시장 전략을 뜻한다.10 (그림 3) 기업에 외교란 다소 낯선 영역이며 과거에는 기업의 정치적 중립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에 속하고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경제에서 종속변수에 불과한 OEM 생산자일 당시에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위험 대비 보상이 적은 악수(惡手)가 될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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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i, et al. (2022)11

그러나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우리 기업들에 국제정치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읽고 그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 외교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기업은 역사적 안목을 갖고 큰 틀에서 전략적 방향성을 설정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각지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며 회복탄력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기업 외교의 주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전문 인력과 네트워크 확보

기업 외교를 위해서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관련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는 과거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이 벌어졌을 때 미국 변호사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해외법무 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다. 최근에는 보잉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북미법인 부사장으로 영입해 미국 외교가 인맥을 보강했다. 삼성전자 외 다른 대기업들도 이 같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LG그룹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이었던 조 헤이긴을 워싱턴 사무소 공동대표로 영입했으며 한화그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대니 오브라이언 폭스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을 미국 대관 총괄 임원으로 영입했다.12 SK그룹의 경우 최종현학술원,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의 강연 초청을 통해 미국 외교계와 학계의 저명인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인 최민정 씨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에서 가장 큰 자산은 전문 인력과 이들이 관련 지역, 분야에서 장기간에 걸쳐 축적한 신뢰 관계다. 기업 외교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외교 정책과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외교를 위해서는 관련 전문 인력 확보와 네트워킹부터 시작해야 한다.

2. 투자 입지 선정을 통한 영향력 행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일반적으로 투자 대상 지역에 일자리와 소득을 늘린다. 따라서 많은 지방 정부는 해외 직접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해외 직접투자가 중앙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드물다. 어떻게 하면 같은 금액을 투자하면서 해당 지역은 물론 중앙정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까? 전략적인 투자 입지 선정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대규모 공장 건설에 투자할 때 캘리포니아, 뉴욕, 켄터키 등 민주당 혹은 공화당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주보다는 미시간, 조지아, 오하이오, 위스콘신 등 두 당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 주에 투자한다면 연방 정부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이 투자한 조지아주의 배터리 공장은 착공 초기부터 미국 정치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지아주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초박빙 승부 끝에 바이든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한 격전주(swing state)이고, 상원의석 모두를 박빙의 선거 끝에 민주당에 몰아줘 민주당의 상원 다수당 유지에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내에서 특허 소송 중이었는데 미국 연방무역위원회(ITC)가 LG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한을 하루 앞둔 2021년 4월 두 기업이 전격 합의한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격전주 조지아에 투자를 확대할 것을 공언한 SK 측을 바이든 행정부가 물밑에서 배려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현지 정치 지형을 고려한 전략적인 투자 입지 선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SK 외에도 삼성SDI는 미시간주에, LG화학은 오하이오주에 2차전지 공장을 짓는 등 기업들은 격전주에 해외 직접투자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3. 양국 간 상충 시 절충적 태도로 조율

자국과 현지 진출국 양국 간의 입장이 상충될 때는 절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인권 탄압 문제가 불거진 당시 서구 기업의 대응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며 그중에서도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중국 전체 면화 생산의 87% 이상을 차지한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100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의 강제 노동 수용소가 있으며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는 명백한 오해이며 목화 산업 노동자들은 지역 평균 임금의 약 3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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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입장이 충돌하는 와중에 H&M,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패션 대기업들은 2021년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인권 문제와 열악한 노동 조건을 이유로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면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자국과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가치를 대변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이들의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 역풍을 불러일으켰고 H&M의 경우 500여 개였던 중국 매장이 18개월 후인 2022년 8월 375개로 줄어들었다. 반면 안타스포츠, 리닝과 같은 중국 기업들은 주가가 급등하는 반사 이익을 누렸다. 서양 기업들은 중국의 민족주의 감정이 얼마나 강력하고 맹목적인지에 대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셈이었다.

이처럼 가치 상충이 계속돼 현지 진출국에서 영업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강화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순간이 올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같이 현지 진출국 철수를 결정해야 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며 영업을 계속 이어가는 방향이 현명하다. 자국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열악한 인권 및 노동환경과 같이 현지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투자하는 한편 일방적인 도덕적 우월주의 관점을 피하고 현지 진출국의 상황을 고려한 절충주의적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4. 현지 정통성 확보

국가 간 갈등이 증폭되는 국제 정세와 앞서 언급한 양국 간 갈등 등으로 인해 현지 진출국에서 원산지 디스카운트(liability of origin)에 직면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원산지 디스카운트란 진출국의 정부 규제 또는 현지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진출국에서 불이익을 받는 현상을 뜻한다. 중국 내 구글 서비스 사용 제한 등 중국 정부의 규제로 구글이 직면했던 어려움과 미국 몬태나주가 틱톡 다운로드를 금지하는 등 현재 틱톡이 미국에서 겪는 어려움은 모두 원산지 디스카운트 사례다.

원산지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기 위해 기업은 진출국 시장에서 특정 국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내세우기보다는 가능한 자국의 색채를 줄이고 활발한 ESG 경영 활동으로 현지 이해관계자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등 현지에서의 정통성(legitimacy)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현지 파트너 활용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례로 틱톡은 미국 정부의 틱톡 사용 금지 위협과 매각 요청에 대해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오라클을 파트너 삼아 대응했고 203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친환경 비전 또한 제시했다. 이런 행보는 틱톡이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 유튜브에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매체로 성장하는 데 한몫했다.

5. 자국 정부 주요 의제에 적극 참여

마지막으로, 자국에서는 정부의 안보 및 경제 목표와 조응해 정부의 산업 정책이나 글로벌 의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자국 내 정통성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당시 대만의 폭스콘과 TSMC가 보인 노력이 좋은 예다. 팬데믹 당시 화이자 백신의 원천 기술 보유사인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는 중국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대만에 직접 백신을 제공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결국 폭스콘과 TSMC가 불교 재단인 주치 재단과 협력해 중국 전역의 화이자 백신 배송을 관할하는 포순사로부터 백신을 구매했고 대만 정부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방역 위기를 타개했다.13 이 같은 행보를 통해 두 회사는 대만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정통성을 강화할 수 있었고, 이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자국 정부의 주요 의제에 적극 참여해 자국에서의 위상은 물론 글로벌 영향력을 높인 좋은 사례다.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대응 전략으로서 정치, 사회 분야를 망라해 종합적인 비시장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기업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은 안보 및 경제 측면에서 자국과 현지 진출국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는 동시에 정책 수립에도 영향을 미치며 자사의 이익을 지켜나가야 한다. 또한 자국과 현지 진출국 사이의 갈등 요소를 줄이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이같이 어렵고 복잡한 임무를 위해 해외에서는 최고정치책임자(CPO, Chief Political Officer),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 Chief Sustainability Officer)와 같은 직책이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으로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우리 기업들은 이를 확장해 최고글로벌책임자(CGO, Chief Global Officer)를 두고 지정학적 위험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기업 외교를 총괄하는 CGO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는 정부 정책에 발맞춘 수동적인 대외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정학, 국제 정세에 능통한 전문 인력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자국과 현지 진출국의 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기업 외교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주도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일수록 경쟁자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 문정빈 문정빈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ESG와 지속가능 경영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경영학 연구』 『전략경영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전략경영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jonjmoon@kore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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