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눈을 뜨자 초록색 벼가 흔들리는 논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땡볕이 내리쬐었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 이곳은 한여름, 체감상 8월이지 싶었다.
92일째 눈보라 치는 하루를 살다가 갑자기 정반대 계절로 나와버리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임무도 잊고 한동안 멍하니 서서 풍경을 감상했다. 새파란 하늘과 너른 논이 맞닿은 지평선에서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한여름 풍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머리카락이 찰싹 들러붙은 뺨을 간질였다. 그제야 내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했다. 털모자, 털목도리, 털장갑, 두꺼운 점퍼, 패딩 바지에 패딩 부츠까지 구할 수 있는 방한용품이란 방한용품은 전부 다 두른 상태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설마하니 ‘타임머신’이 이런 한여름 풍경 속에 놓여 있을 줄이야. 돌아가서 이 사실을 우리 ‘시간과 차원’ 연구소장님과 동료들에게 전하면 다들 기절초풍하겠지?
일단 땀을 뻘뻘 흘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패딩 부츠까지 다 벗어 던지고 아래위 얇은 내복 한 장과 면양말 한 켤레만 남은 차림이 되자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탈수로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쓰러졌다면 산재 처리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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