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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암의 정원 읽기

총수의 정원, 모두의 공원으로 환원하다

신현암,정리=백상경 | 441호 (2026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에도 시대를 상징하는 정원 ‘리쿠기엔’은 도쿠가와 막부의 최후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버려진 정원을 다시 살려낸 것은 메이지 시대 신흥 기업인 미쓰비시였다.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 그 동생이자 2대 총수인 야노스케는 일본 굴지의 기업을 만드는 동시에 리쿠기엔을 복구하고 기요스미라는 최고의 정원을 가꿨다. 3대 총수 히사야는 관동대지진에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됐던 기요스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리쿠기엔 역시 도쿄시에 기부했다. 여기서 비롯한 정신은 4대 총수 고야타의 ‘소기봉공(사회공헌)’으로 이어졌다. 일본 패망과 함께 이와사키 가문의 미쓰비시 경영은 막을 내렸지만 그들이 남긴 도쿄의 정원은 기업의 성취가 영속하는 문화로 이어지는 하나의 길을 보여준다.



1. 문학이 땅 위에 내려온 정원

도쿄 분쿄구에 있는 리쿠기엔(六義園)은 에도 시대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 만든 사람은 5대 쇼군 쓰나요시의 최측근 야나기사와 요시야스다. 1695년부터 7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 정원의 특이한 점은 이름에 있다. ‘리쿠기(六義)’란 중국과 일본의 시를 여섯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에서 따온 말이다. 야나기사와는 당대 최고의 시가(詩歌) 학자에게 직접 사사할 정도로 문학에 빠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옛 시집에 등장하는 명소 88곳을 정원 안에 재현했다. 돌을 놓고, 소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들여 실제 풍경처럼 만들었다. 이것을 ‘팔십팔경’이라 불렀다. 권력자가 만든 공간이었지만 그 이름과 설계만큼은 무력보다 문학과 교양을 앞세우고 있었다.

6대 쇼군이 들어서자 야나기사와는 리쿠기엔에 은거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권력을 잃으면 돈도 떠나기 마련이다. 정원은 후손에게 전달됐지만 정원을 가꿀 수 있는 돈은 부족했다. 1809년 4대 당주가 대대적인 복구에 나섰지만 이미 많은 것이 사라진 뒤였다. 상징적이었던 88곳 가운데 상당수는 자취를 감췄고 복구할 수 있었던 곳도 절반 남짓이었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면서 리쿠기엔은 야나기사와 가문 손을 떠나 메이지 정부 소유가 됐다. 173년 동안 이어졌던 다이묘 가문의 별장이 하루아침에 국유지가 됐다. 관리되지 않은 정원은 천천히 황폐해졌다. 권력이 남긴 문화 공간도 손길이 끊기면 순식간에 폐허의 길로 들어선다는 사실을 이 정원 역시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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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쓰비시 창업자의 두 가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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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현암

    신현암gowmi123@gmail.com

    팩토리8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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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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