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호 미국판 보그(Vogue)에 실린 패션 브랜드 ‘게스(Guess)’의 광고가 최근 미국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광고에 등장한 금발의 백인 여성 모델이 사실은 AI 생성 이미지였지만 ‘AI 제작’이라는 문구가 광고 하단에 작게 표기돼 실존 인물로 오해한 소비자들의 항의가 잇따른 겁니다. 비판은 단순히 AI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넘어 다양성을 지향해온 패션 산업이 전형적인 미의 기준으로 회귀했다는 점과, 인간 모델·사진작가·스타일리스트 등 광고 생태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로 확대됐습니다. 효율성과 혁신을 위해 투입된 기술이 브랜드의 진정성과 윤리, 사회적 책임 등 전혀 다른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모바일 버전 ‘와일드 리프트’가 선보인 3주년 기념 AI 제작 트레일러 영상도 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조악한 이미지 품질, 부자연스러운 캐릭터 동작, 세계관과 어긋나는 설정 등으로 “정말 이게 공식 콘텐츠가 맞느냐”는 비난이 이어졌고 일부 팬은 “기괴하다(Diabolical)”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제작사는 영상을 삭제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 사례는 AI 기반 콘텐츠가 브랜드의 정체성이나 세계관, 팬덤의 감수성과 충돌할 경우 브랜드 자산은 물론 재무적 측면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AI 시대의 브랜딩은 새로운 기회를 여는 동시에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생성형 AI와 알고리즘 기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기술적, 전략적 위험 요소는 기업의 신뢰 자산을 위협합니다. 설익은 기술을 공개했다가 헛점이 드러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기술의 활용이 브랜드 정체성과 어긋날 경우 기대했던 혁신은 오히려 위기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자동화된 콘텐츠 생성이 의도치 않게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법적 충돌을 초래할 수 있으며 브랜드의 철학과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은 기술을 단순히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AI 리스크가 브랜딩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오늘날, 따라서 브랜드는 ‘신뢰를 설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신뢰 자산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 설계한 기준과 철학에 따라 축적됩니다. AI 시대의 브랜딩은 철저히 기술 기반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좋은 취지로 도입했지만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술의 배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인간과 철학의 개입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우리는 AI 시대 브랜딩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브랜딩이 시각 정체성과 일관된 메시지를 중심으로 소비자 인식에 자리 잡았다면 지금은 브랜드가 소비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전략적 설계가 중심입니다. 단순한 이미지나 캠페인을 넘어 경험의 흐름과 감정의 여정, 데이터 기반의 맞춤화가 브랜딩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AI 기반 브랜딩 전략은 내부 커뮤니케이션, 조직문화, 가치 체계 정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AI 시대 브랜딩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그 안에 내재된 기회와 리스크를 함께 조망했습니다. 브랜드가 기술을 활용해 더욱 창의적이고 정교한 소통을 시도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 중심에는 반드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놓여야 합니다. 기술이 ‘배신’하지 않고 동행해야 할 본격 AI 시대, 기업 브랜딩 전략 원칙과 방법을 전하는 이번 호의 인사이트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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