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양자 기술의 상업적 이점을 가장 빠르게 찾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는 양자 센싱 및 시뮬레이션이다.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한 원자 시계(atomic clock)의 성능을 월등히 향상시키면 1㎜보다도 훨씬 작은 수준의 위치 추적 해상도를 가진 초정밀 GPS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중력의 영향에 따른 차이도 정밀 측정할 수 있어 석유나 금광 등 땅을 전혀 파보지 않고도 자원 매장 여부를 측정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밖에 화학 반응이나 태양광 패널 등 내부 메커니즘이 양자역학적 원리를 따르는 신소재 개발 등에 양자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실제로 실험하지 않고도 효과를 판단할 수 있어 신소재 개발 방식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향후 양자 기술의 비즈니스 모델은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형식의 사업 모델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이버 등 자체적인 데이터센터가 있고 서버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양자컴퓨팅 클라우드 서비스, 나아가 양자컴퓨팅과 AI를 융합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사업 모델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서는 지구로부터 4광년 떨어진 곳에 사는 외계인 ‘삼체인’과 인간이 통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빛의 속도로 날아도 4년이 걸리는 먼 거리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바로 ‘양자 얽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양자계에 존재하는 둘 이상의 입자는 서로 얽혀 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가 변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즉각 영향을 받는다. ‘삼체’에서는 이런 현상을 이용해 외계 행성과도 순식간에 통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SF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양자 기술은 마치 마법처럼 묘사된다. 드라마 ‘삼체’의 장면처럼 외계 행성과의 통신은 사실상 불가능하나 양자 얽힘을 활용하면 월등한 통신 기술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증명됐다. 양자 기술이 과학적 신비의 영역을 벗어나 현실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유럽우주청(ESA)과 협력해 양자키분배(QKD, Quantum Key Dis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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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활용한 양자통신 네트워크를 지상은 물론 우주로 확장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양자암호통신 인프라 구축사업’을 통해 공공·민간 분야 33개 수요 기관의 다양한 서비스 사례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통신사가 지난 2022년 7월 세계 3번째로 양자암호통신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해 도청을 방지하는 획기적인 기술로 정보 보안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양자 분야에 투입된 벤처캐피털 자금은 2015~2020년 500% 증가했다. 양자 기술에 대한 투자와 산학연 협력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기술 개발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연구 성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구글은 기존의 슈퍼컴퓨터로 10의 25제곱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풀 수 있는 신형 양자 칩 ‘윌로(Willow)’를 저명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한편 국내 대학에서도 양자 기술 관련 교육이 본격화되고 있다. 연세대는 지난해 127큐비트의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IBM Quantum System One)’을 송도 국제캠퍼스에 도입해 양자컴퓨팅 연구 및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성균관대는 올해 국내 최초로 양자정보공학과를 신설해 학부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학계에서는 대중이 양자 기술의 발전 속도를 체감하는 ‘양자컴퓨터판 알파고 모멘트’가 향후 5~10년 내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적인 양자 물리학자로 꼽히는 최순원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교수는 “지금으로서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센서나 초정밀 시계를 개발하는 양자 센싱, 혹은 화학 반응이나 분자 구조를 시뮬레이션하는 양자 시뮬레이션 분야가 양자 기술의 상업적 이점을 가장 빠르게 찾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라며 “장기적으로는 양자컴퓨팅 기업이 향후 20~30년 뒤 미래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아직은 기업이나 일상에서 유용한 문제를 빠르게 풀 정도로 양자 기술 수준이 올라오진 않았으므로 기업이 양자 기술 연구 성과를 과장된 표현으로 홍보함으로써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DBR이 지난 1월 대전 KAIST에서 열린 ‘KAIST-MIT 양자 정보 겨울학교’ 강연 취재 및 화상을 통한 후속 인터뷰를 통해 최 교수를 만났다. 그를 통해 양자 기술의 잠재력과 전망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분석하고 기업의 대응 전략을 들었다.
양자 기술을 아직 선행 기술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언제쯤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하나?상용화 시점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자 기술 상용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상용화를 ‘양자 기술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받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미 시장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여러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양자컴퓨팅을 사용할 수 있게끔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가 이 서비스를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상용화가 이미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상용화라고 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챗GPT를 쓰는 것처럼 누구나 양자컴퓨터를 설치해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상용화 시점’이 궁금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5~10년 내 양자컴퓨터의 성능 개선을 대중이 체감하는 순간은 올 것이라고 본다. 지난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에서 승리하며 전 세계가 놀랐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AI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한 데 많은 이가 충격을 받았다. 그런 ‘알파고의 순간’이 양자컴퓨터에서도 5~10년 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순간이 오면 대다수의 사람이 양자컴퓨터가 정말 다가올 미래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일상에서 사람들이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알파고가 우리 일상을 곧바로 바꾸지는 못한 것처럼 말이다. 구글이라는 특정 기업이 엄청난 투자를 해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일 뿐 바둑을 두는 AI가 우리 일상을 바꿀 리 만무했다. 당시엔 AI의 성능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사실에 전 세계인이 놀랐던 것뿐이다. 알파고 이후 일상에 AI가 깊숙이 들어온 챗GPT 같은 서비스가 출시되기까지 6년 이상이 걸렸다.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도 ‘알파고의 순간’이 온다고 한들 일상에서의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학계에서 향후 5~10년 내 ‘양자컴퓨터판 알파고의 순간’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근거는 무엇인가?구체적으로 시기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5년보다 빠른 시기에 가능하긴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그 이유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작동 가능하도록 만들기까지 실질적으로 적어도 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구현한 1세대 플랫폼은 이온트랩이다. 이온트랩 방식으로 양자컴퓨터가 발전했고 이를 구현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아이온큐가 있다. 이후 구글, IBM 등 대기업과 학계가 초전도체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초전도체를 활용하면 칩의 형태로 상용화하기 더 쉽고 대규모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2세대 플랫폼으로서 초전도 방식이 큰 성과를 거둔 후 최근 각광받고 있는 3세대 플랫폼은 바로 중성원자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레이저로 각각의 원자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까지 5~10년 정도 걸린다. 3세대의 연구 성과가 무르익을 때쯤 일상에서 사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중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는 나올 법하다고 가늠하고 있다.
양자 기술의 상업적 이점을 가장 빠르게 찾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는 어디인가?상업적으로 이점을 빠르게 찾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는 거의 명확하다. 바로 센싱 분야다. 양자역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센서 혹은 굉장히 정밀한 시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GPS는 여러 개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쏘면 사용자의 핸드폰이나 자동차에서 신호가 오는 타이밍을 계산한다. GPS 안에 탑재된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한 원자 시계(atomic clock)가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하면 지구상에서 사용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상용화된 GPS의 위치 추적 해상도는 1m 수준이다. 자동차 안에서 앞좌석 혹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지를 구분하긴 어렵다. 이 해상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시계의 정밀도다. 인공위성에서 쏜 신호가 어느 순간에 왔는지 그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정도로 굉장히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데 양자 기술이 더 발전하면 1㎜보다도 훨씬 작은 수준의 위치 추적 해상도를 가진 GPS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한 초정밀도 시계가 개발되면 중력의 영향에 따른 차이도 정밀 측정할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중력이 센 행성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시간은 중력에 영향을 받는다. 손가락을 들었을 때 윗면과 아랫면은 1㎝ 정도 차이가 난다. 손가락 아랫면이 지구 중심에서 1㎝ 더 가깝기 때문에 이론상으로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 아주 정밀하게 시간 측정을 하면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현상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해 중력의 영향에 따른 차이를 초정밀 측정할 수 있게 되면 자원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면 아래 석유나 금광이 매장돼 있으면 일반적인 토지와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중력장이 조금 달라진다. 땅을 파보지 않고도 자원 매장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셈이다.그다음으로 가까운 시일 내 상업적 이점을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양자 시뮬레이션일 것이다. 현재 신소재를 개발할 때 화학 반응을 실험해야 한다. 어느 물질이 효과가 좋은지 봐야 하는데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실제로 실험하지 않고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다. 비유를 들어 높은 빌딩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만족할 만한 빌딩을 지을 때까지 건물을 지었다 부수고를 반복하는 것이 현재의 신소재 개발 방식이다. 양자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실제로 실험하지 않고도 효과를 판단할 수 있어 신소재 개발 방식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디지털 트윈 등 기존의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방식도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화학 반응이나 태양광 패널 등은 그 내부 메커니즘이 양자역학적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기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기엔 한계가 있다. 양자역학적 원리를 따르는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때 더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를 대체하진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는데.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기존 컴퓨터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보완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기존 컴퓨터에도 일반적인 CPU가 있고 특정 종류의 연산을 더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그래픽카드가 탑재돼 있다. 이와 비슷하게 양자컴퓨터 역시 특정 연산을 대체해서 수행하는 식으로 작동하지 기존 컴퓨터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양자컴퓨터가 더 잘 풀 수 있다고 알려진 특정 문제들이 있다. 가령 데이터양이 방대하고 정보처리 과정이 매우 복잡하지만 결괏값은 단순한 경우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AI 분야가 대표적이다. 쉽게 예를 들어 고양이나 강아지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AI는 입력된 데이터가 고양인지 강아지인지 분류한 결괏값을 출력한다. 출력된 결괏값은 단순하지만 AI 모델 내부는 굉장히 복잡한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이처럼 내부적으로 복잡한지만 결론은 단순하게 나오는 연산을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하면 더 빨리 계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양자역학적 원리를 활용했을 때 더 빠른 계산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뭔가.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질문 자체가 연구 분야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빛에 비유해 보겠다.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다양한 경로 중 가장 빠른 길을 탐색해야 한다. 이때 빛은 항상 최단 경로로만 움직인다. 빛이 최단 경로를 어떻게 알고 찾아갈까? 빛은 모든 방향을 동시에 가기 때문이다. 모든 경로를 중첩의 원리로 탐색했다가 그중 최단 경로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없어지게끔 양자역학적으로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실제 빛이 양자역학적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빛이 렌즈를 통과할 때 퍼졌다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이는 것도 사실 모든 방향을 동시에 탐색하는데 그중 정답만 남기고 나머지는 간섭 현상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다. 똑같은 원리를 컴퓨터에 사용하는 것이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 중첩의 원리를 활용해 최적화 등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에 기대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현재 암호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보안 체계는 굉장히 큰 수의 소인수분해 등 매우 풀기 어려운 문제를 가정으로 한다. 예를 들어 15는 ‘3×5’로 소인수분해할 수 있다. 그러나 15처럼 두 자리 숫자가 아닌 200~300자리로 숫자가 굉장히 커지면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렵다. 이런 난제를 활용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암호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양자컴퓨팅 알고리즘은 이론상 기존 컴퓨터로는 수십억 년이 걸리는 아주 큰 수의 소인수분해를 단 며칠 만에 풀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양자컴퓨터가 발전함에 따라 이론이 현실이 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암호 체계는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은 양자컴퓨터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로 암호화 체계가 무력화되면 국가 안보 측면에서 영향력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관련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크다. 이는 일반 기업들이 대비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암호 체계도 전문 보안 업체가 개발한 암호화 시스템이다. 그러나 전문 보안 업체도 원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순 없다. 그 정도 역량을 가지기 어려워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새로운 표준이 될 보안 체계를 만들고 있다.
미국이 표준으로 관리하는 약 600자리 숫자의 암호를 양자컴퓨터가 풀 수 있게 되면 현재의 암호 체계는 무너지는데 50자리 수를 양자컴퓨터가 소인수분해하는 건 5~10년 내 가능할 수도 있다. 결국 시간문제이기에 양자컴퓨터가 풀 수 없는 양자 내성 암호 체계(PQC, Post-Quantum Cryptography)를 개발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미국은 국립표준기술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 주도로 양자컴퓨터에도 무력화되지 않는 새로운 보안 체계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PQC 역시 현재 상용화될 수준은 아니며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 말은 즉 당장 내일 약 600자리 숫자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전 세계 보안은 뚫릴 수 있는 셈이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그만큼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기 전에 양자 내성 암호 체계를 구축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양자컴퓨터를 비롯해 양자 기술이 시기상조라는 회의론도 있는데.시기상조라는 데 일정 부분 동의한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양자 기술을 이용해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 수익을 얻는 건 아직 먼 얘기다.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가 아닌 상용화를 통한 순이익(Net profit)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당장 AI 회사들도 순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AI 기술 개발이나 학습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고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경우 일부 유료 전환을 하긴 했지만 무료로 쓸 수 있는 것도 많다. 이런 AI 회사들이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미래 가치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양자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무르익고 적합한 활용 사례를 찾으면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이런 미래 가치를 생각했을 때 양자 기술이 시기상조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막대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인물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보기술(IT)의 수혜를 받은 세대다. 현재 이들의 업적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대학생 시절 혹은 막 창업했을 시기에 IT가 유망한 사업이며 미래에 막대한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는 동료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이들은 미래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꿈꾸고 있다. 당장 양자컴퓨터 회사를 차릴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시기상조라고 비판해도 향후 20~30년이 지나 본인이 50~60대가 됐을 땐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 믿는다. 양자컴퓨터 회사가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같은 기업으로 성장할 미래를 그리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에 투자하겠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반드시 투자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양자컴퓨터도 마찬가지다. 20~30년 후 산업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며 누군가는 치열한 경쟁 끝에 선두 주자로 올라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이다. 기업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엔비디아 같은 사례도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 이런 잠재력과 미래 가치를 고려했을 때 시기상조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이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본다.
많은 기업이 양자 기술의 활용 사례(Use Case)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의미한 활용 사례를 꼽아 달라.골드만삭스 등 다수의 미국 금융회사가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주가 동향을 예측하는 모델을 연구하거나 신약 개발이나 신소재 개발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등 활용 사례를 찾기 위한 시도가 활발하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를 활용해봤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을 순 있지만 기존 컴퓨터보다 더 성능이 좋거나 계산을 빠르게 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최근 “기존의 컴퓨터로 100만 년 걸리는 계산을 양자컴퓨터가 해냈다”는 류의 기사가 나오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현재까진 실제 비즈니스나 일상에 유용한 계산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양자컴퓨터보다 기존 컴퓨터를 활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진 유의미한 양자컴퓨터 활용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가치 있는 활용 사례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는 매우 바람직하다.
나름 실질적으로 가치 있는 양자컴퓨터 활용 사례를 꼽아보자면 바로 교육 영역이다. 예를 들어 MIT에서 학부생들이 양자역학을 배울 때 실제로 양자컴퓨터를 활용해보는 과제를 낸다. 양자역학적 원리를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닌 온라인에서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 접속해 IBM 장비 등을 써서 실험해보도록 한다. 실제로 코딩을 해서 양자컴퓨터를 활용해보는 경험은 양자역학을 직접 체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효과가 높다. 이런 교육적인 목적에서는 양자컴퓨터 활용 사례가 굉장히 유용하다. 교육뿐만 아니라 물리학계에서도 양자역학을 활용한 AI 연구 등에서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사용해 테스트하기도 한다. 연구자가 양자역학 이론을 개발했을 때 그 이론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 혹은 학문용으로 양자컴퓨터가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이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위해 막대한 사용료를 지불할 정도로 가치 있는 활용 사례는 아직 없다고 봐야 한다.
미래에 유용한 활용 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지금부터 대비하겠다는 목적으로 연구팀을 갖춰 협력 연구를 진행하거나 컨설팅하는 사례는 많다. 이런 노력은 매우 바람직하다. 금융 분야가 대표적이다. 금융 분야는 대부분 확률과 미분방정식을 다룬다. 예를 들어 주가는 환율이나 정치 상황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요인들을 모델화해 어떤 사건이 터지거나 다른 주가가 변하는 등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을 탐색해 미분방정식을 풀고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한다. 이러한 미분방정식을 빨리 푸는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연구팀이 학계에 있다. 이처럼 금융사와 학계 연구진이 협력 연구팀을 구축하는 등 함께 활용 사례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양자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슈퍼컴퓨터로 10의 25제곱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풀 수 있음을 보여준 구글의 양자컴퓨터 칩 ‘윌로’가 화제가 됐다. 유의미한 성과라고 볼 수 있나?구글이 발표한 성과가 거짓말은 아니지만 숫자 자체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구글은 윌로로 난수를 무작위 생성하듯 큐비트에 무작위로 생성된 양자 회로를 적용하는 계산을 빠르게 해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계산이라고 하면 특정 방정식을 풀거나 날씨를 예측하는 등 ‘유의미한 계산’을 떠올린다. 그런데 구글이 윌로로 수행한 결과는 ‘무의미한 계산’에 가깝다. 쉽게 비유하자면 와인잔을 바닥에 던져 깨뜨린다고 가정해보자. 와인잔을 어느 방향으로, 어떤 세기로 던지면 몇 개의 파편이 어떤 모양으로, 어느 방향으로 흩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계산이다. 그런데 그리 의미 있는 계산은 아니다. 이런 계산이 기업이나 일상에 유용할 리 없다. 양자컴퓨터의 우월성을 찾기 위해 기존 컴퓨터로 풀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양자컴퓨터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찾아 푼 셈이다. 이런 성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성능이 좋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유의미한 성과다. 순수 학문으로서 양자컴퓨터가 정말 구현 가능할까라는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줬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또 양자컴퓨팅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지만 아직 기업이나 일상에서 유용한 문제를 빠르게 풀 정도로 기술 수준이 올라오진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즉 기존 컴퓨터로는 10의 25제곱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풀 수 있는 장비라 해도, 심지어 구글이 기업에 무료로 제공한다 해도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아직 활용 가치를 찾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기업이 이런 성과를 적용해 활용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는 연구개발(R&D) 그 자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학계에서 나오고 있는 여러 연구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양자 기술을 자사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데 주력하길 권한다.
양자 기술의 활용 사례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에 조언한다면?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기업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간극이 큰 것 같다.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구글이나 IBM 같은 기업은 양자역학이나 하드웨어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 즉 활용 사례를 찾으려면 관련 도메인 지식과 필요한 특수한 계산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기업보다는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이 잘 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자컴퓨터 개발 회사가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협력 연구를 통해 양자컴퓨터 사용 기업과 함께 활용 사례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파트너사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양자컴퓨터 개발 기업은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식으로 활용 사례에 대한 협력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양쪽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에 유용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커뮤니티를 형성해 공통의 문제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끼리 혹은 산학연이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MIT에서도 CQE(Center for Quantum Engineering)라는 기관이 MIT 양자 기술 연구팀과 외부 기업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폰서 기업들에 MIT 연구 활동에 대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의 연구 방향과 맞아떨어지는 MIT 연구팀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현재 CQE 스폰서 기업에는 구글 퀀텀 AI, 델 테크놀로지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이 양자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것 같다. 시장의 작은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앞서 설명했듯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여러 플랫폼이 있다. 초전도 방식은 IBM,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다양한 엔지니어링이 복합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규모가 큰 빅테크 기업이 유리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이온트랩이나 중성원자 방식은 스타트업들이 압도적으로 기술력이 좋다. 이온트랩 기반의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는 아이온큐, 중성 원자 기반에는 하버드대와 MIT 교수진이 창업한 큐에라와 아톰 컴퓨팅을 꼽을 수 있다. 중성 원자 방식은 최근 5~6년 사이 각광받는 플랫폼인데 빠르게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이 전 세계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역량이 굉장히 좋고 아직까지 빅테크 기업 중 중성 원자 방식을 직접 개발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플랫폼의 경우 기술적인 아이디어가 회사 역량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자본만 가지고 더 뛰어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좋은 인재와 좋은 아이디어로 작은 플레이어들도 뛰어들 수 있다. 관련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치고 나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대학에서 연구하다 졸업 후 창업하거나 교수진이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 산학연이 매우 밀접한 편이다. 서울대, KAIST, 포항공대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유명한 대학의 연구자들이 양자컴퓨팅 스타트업을 충분히 창업할 수 있다. 전혀 늦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팀이 있고 향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한국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결코 낮지 않다. 특히 한국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양자 기술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나?거의 확실하게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형식의 사업 모델이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도 우리가 AI를 사용할 때 굉장히 어려운 작업들은 서버에서 GPU를 이용하는 등 전부 클라우드를 활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팅도 사용자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양자 칩이 직접 들어가기보다 양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사용해 특정 계산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가장 큰 고객이 바로 데이터센터다. 네이버 등 자체적인 데이터센터가 있고 서버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도 운영한다. 그래서 이런 회사들이 양자컴퓨팅 클라우드 서비스를 데이터센터에서 같이 제공하고 또 AI와 융합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사업 모델이 될 것이라고 본다.모든 기업이 양자컴퓨터 하드웨어를 갖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내에선 연세대가 라이선스 방식으로 IBM의 양자컴퓨터를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양자컴퓨팅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접근할 수 있다면 굳이 물리적인 하드웨어가 필요 없다. 직접 양자컴퓨터를 구매하는 게 유의미한 경우는 하드웨어를 뜯어보며 원천 기술 R&D에 활용하고자 할 때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양자컴퓨팅 서비스를 활용하기 위해 양자컴퓨터 하드웨어를 도입한다면 유지 보수 등 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 양자컴퓨팅 서비스 제공자(provider)와 사용자(user)가 분리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양자 기술이 한때의 유행처럼 각광받았다가 거품이 꺼지진 않을까? 양자 기술을 개발하려면 R&D 지출이 커져 기업 리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전략적 판단을 고민하는 기업 리더들에 조언해달라.학계에서도 거품이 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잘 대비해야 한다. 학계에선 완급 조절을 못하면 큰코다칠 수 있으니 거품을 키우지 않고 천천히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에서는 홍보를 해야 하니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말했듯 “10의 25제곱 년이 걸리는 연산을 5분 만에 풀 수 있다”라는 구글의 발표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미를 들여다보면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면서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이든 부침이 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사용할 때 조그만 강아지가 나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걸 보며 “가상의 비서다”라면서 AI가 막 도래할 것처럼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AI 붐이 사그라들고 다시 알파고가 나오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등 AI도 부침을 겪으며 발전해왔다. 양자역학도 몇 번 부침을 겪은 뒤 특이점을 넘어서면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기업이 양자 기술 개발에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일부 기업에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은 이미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R&D에서 양자 칩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양자 기술 진출에 관심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양자컴퓨터의 경우 이온트랩, 중성원자, 초전도 등 현재 다양한 플랫폼으로 동시에 개발되고 있기에 어느 플랫폼이 더 유망할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기술 개발 동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학 협력을 통해 학계에 투자하는 것이다. 관련 연구팀에 적절히 투자를 분산해 어느 플랫폼이 더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지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비즈니스에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길 권한다.
미국에 비해 한국의 양자 기술 개발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미국의 양자 커뮤니티와 비교해 한국의 커뮤니티는 매우 작긴하지만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이 양자 기술 분야의 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더 큰 커뮤니티와 융합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유럽은 다양한 EU 국가가 협력해 하나의 커뮤니티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 미국 역시 학계에 관련 연구팀이 굉장히 많아 큰 커뮤니티를 조성할 수 있었고 미국과 유럽 사이의 협력 연구도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양자 기술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에 한국이 자체 커뮤니티만으로 자생하기엔 한계가 있다. 일본과 파트너십을 맺거나 미국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한국이 글로벌 양자 커뮤니티에 융합돼야 하는 이유다.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광학, 레이저, 합성, 칩 제조 등 굉장히 복합적인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이 중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일례로 광학 연구의 경우 KAIST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압도적으로 훌륭한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강점을 활용해 다른 국가들의 연구팀과 협력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인재를 교류하는 것이 한국의 양자 기술 분야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DBR mini box I: 윌리엄 올리버 MIT-CQE 디렉터 ‘양자 정보 겨울학교’ 강연
“양자컴퓨터 여명기… 비행의 역사처럼 상업적 도약의 순간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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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인재 교류를 통해 글로벌 양자 커뮤니티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다. MIT와 KAIST는 국내 이공계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양자 교육 기회를 제공해 양자 분야 인재를 양성하고 궁극적으로 협력 연구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KAIST-MIT 양자 정보 겨울학교’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1월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두 번째 양자 정보 겨울학교에서는 MIT와 KAIST 소속 양자 과학 분야 석학들이 양자 통신·센싱·컴퓨팅·시뮬레이터 등의 대표 분야 실험을 소개하고 현재 양자 기술의 기술적 한계와 대응 방안, 미래 비전 등을 강의했다. KAIST를 찾은 윌리엄 올리버 MIT-CQE(Center for Quantum Engineering, 양자공학센터) 디렉터의 기조 강연을 요약 소개한다.
“양자컴퓨팅은 현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은 양자역학의 여명기였다. 우리는 양자역학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이것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양자역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기술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줬다. 가령 양자역학은 반도체의 작동 방식과 밴드 구조, 전자가 반도체를 통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후엔 트랜지스터 같은 발명품도 나왔다. 트랜지스터란 전류를 공급하는 일종의 수도꼭지로, 전압의 존재만으로 전류를 켜거나 끌 수 있다. 고전적인 장치이지만 이것을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이 필요했다. 이후 1980년대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 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하려면 기존 컴퓨터로는 한계가 있어 다른 양자 시스템, 즉 양자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문제는 양자컴퓨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은 점차 발전했고 향후 몇 년 안에 1000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에 사람들이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미래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이제 양자컴퓨팅은 현실이다. 실험실이나 과학적 호기심 수준을 넘어 기술적 현실로 전환되고 있다. 지금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유용한 기계로 발전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공학이 필요하다. 고전적인 전자공학이 발전해온 것처럼 양자 분야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오늘날 매우 복잡한 GPU를 만드는 회사, 가령 TSMC, 인텔,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사들은 처음부터 방법을 배워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이 분야에 종사하며 매우 복잡한 하드웨어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개발했다. 우리가 양자 기술을 이런 모습으로 발전시키려면 관련 생태계에 참여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임무다.
견고한 큐비트 기술·오류 정정은 과제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양자컴퓨터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추측할 수 있을 뿐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상업적인 양자 기술 발전을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는 알 수 있다. 우선 기존 컴퓨터의 고전 알고리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찾아야 한다. 만약 기존 컴퓨터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면 고전 알고리즘을 사용해야 한다. 고전 알고리즘도 충분히 훌륭하다. 하지만 고전 컴퓨터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많다. 이런 문제들은 빠르고 효율적인 양자 알고리즘으로 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상업적으로 유용하게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확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견고하고 재현 가능한 큐비트 기술이 필요하다.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돼 어디에서나 쓰이는 이유는 1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칩으로 만들 수 있고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큐비트를 견고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큐비트의 일관성과 충실도도 중요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큐비트가 양자역학적 상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양자 오류 보정도 중요하다. 오류가 발생했음을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정정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구글은 오류 보정과 관해 놀라운 결과를 공개했다. 큐비트의 성능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 1만분의 1 수준으로 오류율을 낮췄다. 물론 상용 양자 알고리즘 구현을 위해서는 오류율을 10억분의 1에서 1조분의 1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 이 거대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큐비트를 개선하는 것 이상의 작업, 즉 오류 정정이 필요하다.
오류 정정의 기본 개념은 하나의 물리적 큐비트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큐비트를 한 팀으로 통합해 논리 큐비트를 만드는 것이다. 큐비트 수를 늘려 한 팀으로 통합하면 논리 큐비트의 성능이 물리적 큐비트의 한계를 넘어서는 임곗값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큐비트를 더 추가할수록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 향상된다. 큐비트를 더 추가하는 데 비용이 들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임곗값을 넘는 논리 큐비트를 만들어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은 최근 구글의 ‘윌로’ 칩 연구가 처음이다. 구글의 연구 결과가 양자 기술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인 이유다. 이런 실험의 난이도를 과소평가하고 싶진 않다. 구글 연구와 달리 지금까지 발표된 다른 실험에서는 한 팀을 이룬 큐비트, 즉 논리 큐비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증명하진 못했다. 마치 케이크 레서피가 있고 이를 굽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수행했지만 오븐에서 햄버거가 나온 것처럼 말이다.
양자컴퓨터 여명기, 상업적 도약을 향해
인류가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비행한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전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비행을 시도하거나 풍선을 타고 날다가, 사람이 탑승한 상태에서 조종하고 비행기가 엔진에 의해 자체 추진되고 땅에서 이륙한 순간, 지상에서 겨우 100피트 떨어져 날았다고 해도 돌이켜보면 이는 분명 항공의 여명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면 당연히 상용화된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제트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양자컴퓨터를 더 많은 큐비트로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들고 재현 및 확장 가능하도록 엔지니어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양자컴퓨터를 통해 상업적 이점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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