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from Creative People: ’즐기자 실용’ 캠페인 만든 신동규 삼성카드 브랜드팀 팀장
카드회사는 더 이상 ‘성공한 남성이나 여성이 멋있게 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드가 ‘과시’의 수단이자 ‘성공의 징표’로 여겨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 격차’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카드의 등급 시스템은 ‘취향의 차이’에 기반한 구성으로 변했다. 광고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삼성카드는 ‘과시’가 빠진 틈새에 ‘실용’을 밀어 넣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을 가진 배우 유해진을 메인 모델로 내세웠고, 광고 콘셉트에서도 어깨에 힘을 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온갖 어려운 얘기와 단어를 나열하지 않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도 쉽게 설명했다. 1분, 아무리 길어도 2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모바일 시대 동영상의 법칙도 깨버렸다. 쉽게 설명했지만 본질을 놓치지 않았고, 진지했지만 유머감각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창민(단국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씨와 양원철(건국대 기술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신용카드는 광고하기 까다로운 아이템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직후에는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광고처럼 인식하는 시선으로 인해 잔뜩 위축됐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부터 계층 간 위화감 조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프리미엄급’ 카드는 아예 광고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인들이 ‘1인 1카드 이상’을 소지하게 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기상에서 취침까지 카드 한 장으로 특급 대우를 받는 ‘유한마담’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 옛 LG카드의 배우 이영애 씨 출연 광고를 제외하고는 딱히 ‘광고 그 자체’로 기억 남는 카드광고가 없다. 이는 ‘카드 광고하기의 어려움’과 일맥상통한다.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광고는 광고 그 자체가 아닌 몇몇 ‘히트 친 카피’들일 뿐이다. BC카드의 “부자 되세요∼”, 현대카드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니 엠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카드계의 혁신 아이콘이 된 현대카드가 참신한 문화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으로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을 뿐 대부분의 카드사는 ‘잘나가는 남성/여성이 정장을 쫙 빼 입고 나와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는 콘셉트’의 이미지 광고만을 양산해냈다. 앞서 언급한 몇몇 카피 외에 딱히 기억나는 카드 광고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전형적인 패턴을 탈피해 유머러스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내용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된 카드 광고가 하나 있다. 모델부터 파격적이다.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세련됨’이나 ‘경제적 성공’과는 이미지가 딱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 배우. 그보다는 ‘친근함’과 ‘연기력’이 가장 큰 무기인 배우 유해진 씨가 가장 세련된 이미지를 표방하는 아이템인 카드, 그것도 ‘삼성’ 브랜드를 가진 카드의 메인 모델이 됐다는 점부터 그렇다. 광고 콘셉트와 스토리도 결코 전형적이지 않다.
광고를 보면, 결제 직전 상황에서 점원이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슨 포인트 카드 있느냐, 어떤 할인 쿠폰 있느냐”라고 수차례 질문을 하는 동안 ‘멍해지는 표정’이 클로즈업 되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문구인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가 나직하게 흘러나온다. ‘실용적’인 삼성카드를 쓰면 이런 귀찮은 과정 없이 편하게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코믹하면서도 공감을 주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유해진과는 다른 이미지를 가진 배우 이나영 씨 역시 유머코드가 강하게 가미된 광고를 통해 삼성카드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단 TV광고 한 편만 주목을 끈 게 아니다. 수년 전부터 삼성카드가 새롭게 브랜딩한 ‘숫자카드’(DBR minbox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시스템’ 참조.) ‘즐기자 실용’과 ‘홀가분’ 캠페인 전반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해진 씨가 단순히 광고모델이라기보다 마치 드라마의 주연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유튜브 동영상 ‘SARA’는 영화 ‘Her’를 패러디하며 ‘라이프 파트너이자 애인이 된’ 삼성카드와 카드 사용자 유해진과의 유쾌한 소통을 그렸다. 오직 유튜브에만 올라 있던 이 동영상은 4분 정도 되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조회 수가 700만 뷰에 육박하는 성공을 거뒀다. 아무리 길어도 2분을 넘기면 안 된다는 모바일시대 동영상 성공의 법칙마저 깼다는 얘기다.
이 같은 광고와 캠페인의 성공은 실질적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생산성본부 NBCI 조사 카드사 브랜드경쟁력에서 2014년에 3위에 랭크됐던 삼성카드는 2015년에 1위에 올라섰고, 사후광고효과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SARA’는 한국 광고PR실학회 올해의 캠페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혀 새로운 방식과 콘셉트로 카드 광고와 마케팅의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삼성카드의 신동규 브랜드팀 팀장을 DBR이 만났다.
‘즐기자 실용’과 ‘홀가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카드회사치고는 상당히 경쾌한 느낌이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나?
답변을 하기 전에 ‘실용’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부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2002년 카드대란 이후 내부적으로도 반성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또 한번 금융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했다. 대부분의 카드회사가 그렇듯 삼성카드도 ‘차갑다’ ‘보수적이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의 브랜드가 주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 자체는 분명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었지만 생활 속에서 자주 손에 쥐게 되는 도구를 ‘차갑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느끼는 건 분명 문제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시 출범한 정부도 그랬고, ‘실용’이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화두가 됐다. 소비자들도 카드를 더 이상 ‘과시’나 ‘성공의 징표’로 인식하지 않고 내 생활에 도움을 주는 편리한 도구로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특정 카드회사와 카드 등급이 주는 ‘소속감’이나 ‘자부심’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예전과 같은 ‘특별함’보다는 전반적인 ‘실용성’이 중시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다만 ‘실용’이 그저 싼 가격에 많은 것을 준다는 이미지로 인식될 여지도 있었기에 캐치프레이즈를 정하고 고객에게 어필할 때에는 조심해야 했다. 많은 고민 끝에 2013년 ‘실용’이라는 단어를 띄웠다. 우리가 생각했던 실용은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해서 제공하는 것’이었다. ‘7초의 실용’이라고, 뭔가를 결제하기 전에 7초만 더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캠페인이었다. 즉, 지금 내가 살 서비스나 제품이 내가 정말 자주 쓰고 나한테 필요한 건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합리적 소비’를 제안하고 카드사가 돈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주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평가는 반반으로 나뉘었다. 한쪽에서는 ‘신선하다’ ‘카드사가 이런 말을 해주니 괜히 더 고맙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건전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 부담 주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도 나왔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셈이다.
그럼 ‘즐기자’라는 말이나 ‘홀가분’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사실 여러 회사의 많은 캠페인이 중단됐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뭔가 어둡고 힘들어진 분위기 속에서 다시 사람들을 위로하고 북돋워 줄 방법은 없을까, 카드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논의했다. 전체 기업전략 차원에서 허심탄회한 얘기가 오갔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게 ‘라이프 파트너’라는 개념이었다. 즉 카드회사, 금융회사라는 게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도움을 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정서적이나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나 식당을 떠올려보자. 기본적으로 분위기도 좋고 안주나 음식이 맛있을 거다. 그건 기본이다. 그런데 진짜 단골이 된 이유는 그 기본에서 한발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이나 일하시는 분, 주점 사장님과 이런저런 교감도 하고 푸근하게 대접을 받은 기억, 그렇게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경험이 분명 큰 역할을 했을 거다. 뭔가 침체된 분위기, 사람들이 ‘다운’된 상태에서 ‘차가운 금융회사’가 아닌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라이프 파트너’로서의 카드사가 돼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했고, 이것을 2013년부터 가져온 ‘실용’ 개념과 연결시키고자 했다. ‘즐기자 실용’에 힘든 현실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홀가분’이라는 단어도 함께 제시했다. 다양한 단어들을 조사했는데 ‘홀가분’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한국어 단어 430여 개 중 가장 긍정성이 강한 단어라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 국어학자들까지 만나보고 얻어낸 결론이다.
‘즐기자 실용’과 ‘홀가분’이라는 단어가 왜 ‘라이프 파트너’로 연결되는지 설명해 달라.
앞서도 얘기했듯 우리는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해서 제공하는 것’이 ‘실용’이라고 정의했다. 기술적으로는 빅데이터가 쌓이고 기법이 발달해 실제 개별 고객이 어떤 소비패턴을 갖고 있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어 실제 정말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걸 아까 말한 ‘단골 술집’ 사례와 연결시켜보자. 따뜻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주인이나 점원이 있는 곳을 보통 우리는 단골집으로 만들게 된다. 그렇게 자주 찾다보면 내가 주로 언제, 어떤 일로 누구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어떤 기분일 때 어떻게 다른 행동을 하는지 등을 서비스 제공자가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혼자 찾아도 조용히 괜찮은 술을 건네주기도 하고, 밥집이라면 좀 색다른 메뉴를 추천해주면서 기분을 풀어주곤 할거다. 즉, 식당이나 술집 사장 혹은 점원분들에게 나에 대한 일종의 데이터가 누적돼 있고 그게 활용되는 것이다. 그런 정서적 교감을 카드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실용적으로,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그때그때 맞춰 쓸 수 있도록, 그래서 홀가분하고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옆에서 챙겨주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카드회사, 이게 바로 ‘라이프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정서적 교감 과정을 마치 하나의 드라마처럼 동영상으로 찍어 올린 게 ‘SARA’ 영상이었다.
‘즐기자 실용’은 공연관람 시 필요한 혜택과 같은 ‘문화마케팅’으로,
‘홀가분’이라는 개념은 ‘장터’로 확장됐다.
다른 회사의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삼성카드를 사용하는 경험자체를 ‘쉽고 편한 실용성’으로 구성했다. 숫자카드를 아까 말한 대로 ‘취향의 차이’에 따라 세분화했다.
라이프 파트너 개념, 정서적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출발했다. 다른 카드사들의 경우 이런 행사나 서비스를 기획할 때, ‘young’ ‘힙스터’ ‘세련됨’의 콘셉트를 중심으로 했다면 우리는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막연할 수 있는데 일단 공연의 콘텐츠를 좀 바꿨다. 유명한 외국 가수 등은 ‘마니아 층’의 확실하고 열광적인 호응은 얻어낼 수 있지만 실제 국내에서 그러한 가수나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중 자체가 그렇게 큰 건 아니어서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즐기자 실용’의 관점에서는 잘 맞지 않는 콘셉트가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단 국내 가수,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용필 씨, 김연우 씨, 김범수 씨 같은 분을 모시기도 했고, 뮤지컬이나 오케스트라 등을 기획할 때에는 ‘5분 해설’ 코너를 만들어 음악감독이나 연출자가 나와서 설명을 하도록 했다. 포토존을 만들어 즉석 사진기로 찍어서 그 자리에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카드회원들에게 한 장의 티켓 값으로 다른 소중한 분을 모시고 올 수 있도록 ‘1+1’, 즉 추가 티켓 한 장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공해왔다. 이는 ‘삼성카드가 내가 꼭 함께 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인식, 즉 고객들이 삼성카드를 나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나를 도와주는 ‘라이프 파트너’라는 생각을 암암리에 할 수 있도록 도왔다. ‘young’ ‘modern’ ‘세련됨’에만 집중할 경우 금융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따뜻함’과 ‘신뢰’는 조금 퇴색될 수 있기에 아예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고 보면 된다. ‘홀가분’ 개념은 ‘홀가분 마켓’이라는 행사로 구체화시켰다.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실용체험 오픈마켓’이라는 건데 우수 중소기업, 소상공인, 청년창업자, 아트공방 등의 질 좋고 유니크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자리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실용 장터 개념이었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착한 소비’를 통해 돈을 쓰면서도 즐겁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중고 장터 개념이었다가 이후에 ‘착한 소비를 위한 장터’ 개념으로 키웠다. 어느 누구든 와서 구경하고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삼성카드 회원들은 카드 결제 시 10%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지난여름, 야시장 개념으로 연 두 번째 행사는 광고량도 매우 적었는데 4만5000여 명이 방문했다. 말 그대로 대성공이었다.
다시 광고 얘기로 돌아가보자. 카드는 등급이 나눠져 있고, ‘과시욕’을 중심으로 마케팅이 이뤄져왔다. 근데 이번 삼성카드 광고에서는 그 부분을 지운 것처럼 보였다.
삼성카드에도 당연히 등급은 존재한다. 근데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최근 소비자 트렌드, ‘가치소비’와 연결해 설명해야 할 거 같다. 이 가치소비의 핵심은 ‘내가 구입한 서비스나 제품이 나에게 정말 만족감 또는 기쁨은 주는가’다. 나를 위한 소비, 나에게 하는 투자를 중시하는 ‘For-Me’족의 등장과도 연결돼 있다. 고가의 회비를 내야 하는 카드 고객층을 살펴보면 예전 기준으로는 그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고객들이 많다. 즉 연 50∼70만 원 회비를 내는 고객은 평범한 직장인인 경우가 많고, 오히려 월 소득 1억 원이 넘는 사업가가 10만 원대의 카드를 쓰기도 한다는 거다. 예전에는 카드의 등급이 ‘소득’ ‘과시’와 바로 연결이 됐다면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다. 이제는 ‘내가 좋으면 그냥 한다’라는 분위기가 커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 제대로 취미생활하는 분들은 월 소득이 200만 원이어도 돈을 모아서 1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과감하게 ‘지른다’는 것이다. 이런 건 과시라고 할 수가 없다. 정말 좋아서, 나에게 가치를 주기에 선택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시스템도 바로 이런 세분화 과정에서 나온 거다. 즉 옛날처럼 소득군별로 잘라서 세그먼트를 하는 게 아니라 취향에 따라 혜택을 세분화하는 거다. 예전에는 ‘격차’ 기반으로 카드의 ‘등급’이 나뉘었다면 지금은 취향의 ‘차이’를 바탕으로 카드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유해진이라는 모델의 활용이 획기적이다. 또 광고 카피도 상당히 재밌다.
광고 카피 얘기부터 해보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로 시작하는 그 카피를 쓰게 된 배경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정서’ ‘실용’ 등과 관련이 깊다. 아시다시피 현재 대한민국을 휩쓰는 키워드가 ‘피로사회’ ‘헬조선’ 이런 거 아닌가. 뭔가 쉬고 싶고 일하거나 자기 계발하는 시간 외에는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있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커지고 있다. 그런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카피를 고민해보던 차에 함께 일하던 팀원 하나가 그런 문구가 유행한다고 공유해줬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 전체가 크게 공감했다. 일단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그 문구를 그대로 가져왔고 거기에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를 좀 첨가했다. 문구 자체와 메시지는 ‘피로사회’에 던지고 있지만 모델인 유해진 씨의 표정 자체는 약간의 항의나 저항을 보여준다.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섬세한 표정연기가 되는 배우이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당연히 반응이 좋았다. 이는 왜 우리가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썼는가와도 연결된다. ‘실용’의 개념에서 보면 배우의 첫째 조건은 일단 ‘연기’다. 아무리 잘생겨도 연기가 안 되면 궁극적으로 ‘실용성’, 즉 ‘쓰임새’가 떨어진다. 또 우리가 정서적으로 즐거움을 주고자 했는데, 이를 성공시키려면 약간의 유머코드를 충분히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모델이 돼야 했다. 마지막으로 너무 예쁘고 반듯한 사람이 아니라 친근하고 옆집에 사는 사람 같은 이미지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 모든 조건을 유해진 씨가 충족시킨 셈이다. 부가적으로는 ‘의외성’ 측면에서도 화제를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기사에 부정적인 댓글이 안 달리는 몇 안 되는 배우라는 것도 어필했다.
아무리 좋은 광고라도 현실에서 그 메시지가 구체화되고 경험이 돼야 할 텐데.
맞는 말이다. 삼성카드를 사용하는 경험 자체를 ‘쉽고 편한 실용성’으로 구성했다. 숫자카드를 아까 말한 대로 ‘취향의 차이’에 따라 세분화했다. 사실은 빅데이터 분석기술도 그 바탕에 깔려 있고, 우리가 사는 현 시대의 다양한 변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 현대인의 심리와 가치 변화에 대한 고려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걸 ‘우리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러분에게 혜택을 제공합니다’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피로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그것보다는 실제적 상황을 보여주고, 즉 빵을 하나 살 때에도 멤버십 카드, 서비스 카드, 할인 쿠폰 등을 피곤할 정도로 물어보는 상황을 보여준 뒤에 그런 귀찮고 피곤한 경험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게 광고의 핵심이어야 했다. 실제 고객들이 그 카드를 들고 광고와 같은 경험을 하면 곧바로 고객은 그 뒤에 있는 복잡한 것들을 굳이 다 알 필요 없이 ‘나를 잘 분석해서 나를 이해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삼성카드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본인의 카드에 프라이드도 갖게 된다. 그저 잘생기고 성공한 남성이 과시적으로 마지막에 카드를 꺼내 계산하는 모습과 같이 예전의 카드광고 방식으로는 ‘자부심’을 형성시킬 수 없는 시대다. 그리고 정말 실용적으로 카드에 ‘주요 혜택’을 작게 적어 넣어서 쓰는 순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일일이 찾아보고, 검색하고, 기억해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TV CF가 아닌 유튜브 동영상으로만 만든 ‘SARA’의 경우 ‘여성으로 설정된 카드’가 미혼 남성에게 말을 걸고 소통하는 방식이 다소 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재미가 있었고 반응은 좋았다. 어쩌면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설정을 유해진이라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잘 표현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SARA’ 동영상을 만든 이유가 있다. 앞서 우리가 카드를 ‘라이프 파트너’로 설정했다고 했는데, 카드 광고라는 게 주로 PPL 수준으로 잠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진정한 파트너라면 하나의 상황에 소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으로 설정을 해버린 거다. 나를 걱정해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힘든지 이해해주는 와이프나 여자 친구에 가깝게 표현한 거다. 그런데 이걸 코믹하게 만들었으면 오히려 진짜 어색했을 수 있는데 우리는 진짜 정색하고 진지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버렸다. 어색한 상황을 말도 안 되는 진지함으로 표현하면 드라마로서는 실패할 수 있지만 광고로서는 성공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그 안에는 빅데이터 얘기라든가, 삼성페이 같은 첨단 결제 시스템에 대한 얘기가 다 들어가 있다. 메시지는 빅데이터와 디지털이지만 표현은 아날로그적으로 했다. 철저하게 러브스토리, 사랑과 이별 이야기였다. 그러한 표현 방식을 밀어붙인 것이 놀라운 조회 수를 기록하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다.
빅데이터 얘기가 자꾸 나올 수밖에 없는 이런 시대에 광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까도 얼핏 말했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우리는 무엇을 한다’라고 직접 말하는 방식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SNS가 발전하기 시작한 지 약 5년 정도 됐는데 초기에는 아마 ‘우리는 트위터를 통해 이런 걸 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여러분에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라고 말하면 대중들이 ‘트렌드에 발빠르게 적응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줬을 거다. 지금 그런 얘기한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저 얘기를 왜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거다. 마치 ‘저는 밥을 먹고 삽니다’와 같은 얘기 아닌가. 대중들도 빅데이터가 얼마나 발달하고 그게 어떻게 생활을 바꾸는지 정확한 용어까지는 몰라도 다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 기업이 나서서 혼자 똑똑한 척 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합니다’라며 온갖 어려운 기술용어 쏟아내면 소비자들이 피곤해한다. 다 아는 얘기 어렵게 하는 ‘똑똑한 바보’처럼 여긴다는 거다. 광고를 포함한 캠페인과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친근하고 편안하게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어깨 힘을 빼고 자기자랑도 그만해야 한다. 카드사 예로 다시 돌아오면 예전에는 카드회사들이 ‘우리 카드를 쓰면 이런 혜택이 있다’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주입시켰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신을 돕겠다’로 어법이 바뀌어야 한다. 이게 비단 카드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Mini Box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시스템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시스템은 2011년 처음 도입된 이후 2014년에 두 번째 버전(V2)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 소비 트렌드 변화를 반영해 설계했는데 먼저 고객의 소비생활 변화를 314개의 변수로 재구성한 뒤 분석툴을 활용해 ‘라이프 스테이지’와 ‘소비 성향’ 등에 따라 7개의 종류로 나눴다. 각 카드별 ‘대표적인 혜택’은 카드 윗부분에 글자로 표기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바꿨다. 이곳에 기재되는 ‘대표 혜택’은 할인 혜택 2개, 적립 혜택 1개로 소비자들이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혜택의 수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총 3개만을 표기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숫자카드 ‘삼성카드 4 V2’의 경우 ‘단순한 할인 혜택’을 중시하는 고객을 위한 카드, 가맹점 기본 0.6% 할인, 모든 영화관 3000원 할인, 할인점·음식점·병원·약국·주유소 1.2% 할인이 일괄적으로 제공된다. 독특한 취미나 소비생활을 하기보다 평범한 문화생활을 즐기되 일일이 매장별로 할인 쿠폰이나 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도록 만든 것이어서 실용성 측면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카드다. 이 밖에도 싱글남녀, 고령층, 자녀를 둔 젊은 부부 등 특정한 소비패턴을 지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카드(총 7개)를 발급하고 있다. |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신동규 팀장은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1년 외국계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1995년부터 제일기획에서 일했다. 동서식품 프리마 ‘아내사랑’, SK제약 ‘노란약 트라스트’ 등의 브랜드 전략 및 광고 캠페인을 담당했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제일기획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삼성전자 핸드폰 ‘북경 올림픽’, 오리온의 초코파이 ‘仁’ 광고 캠페인(한국은 ‘情’ 캠페인) 등을 현지에 맞게 기획해 한국 브랜드의 중국 내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 현재는 삼성카드로 자리를
옮겨 ‘숫자카드’ 브랜드 체계 정립, ‘실용’ 광고 캠페인, ‘홀가분’ 페스티벌 등의 브랜드 및 광고기획 업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