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앤 ‘라바’의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투바앤의 애니메이션 라바는 최근 콘텐츠 분야의 성공사례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두 마리 애벌레가 미국, 중남미 등 세계에서 큰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새로운 플랫폼에 최적화한 콘텐츠, 반전을 활용한 캐릭터 창작, 문화적 장벽의 최소화, 소통을 강조하는 기업문화 등이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손혜령(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 씨와 유준수(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뉴욕 52번가 횡단보도 앞 하수구 밑. 성격이 급하고 까다로운 레드(Red)와 식탐이 많고 바보스러운 옐로우(Yellow)가 살고 있다. 씹다 버린 껌, 먹다 버린 아이스크림, 동전, 반지 등이 매일 하수구 아래로 떨어진다. 두 벌레는 이런 것들로 인해 곤란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두 마리 벌레의 평범하면서도 유쾌한 일상을 담은 애니메이션 ‘라바’의 줄거리다. 라바는 매회 2분 안팎의 슬랩스틱 코미디1 가 기본 콘셉트로, 애벌레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낸다. 한국에서 만든 이 두 마리 애벌레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최초로 미국 최대 주문형비디오(VOD) 업체인 넷플릭스와 방영 계약을 체결했다. 스페인어권 최대 미디어방송사인 멕시코 텔레비사와 계약을 맺었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에서는 상품화 에이전트로 선정되면서 사실상 세계 주요 국가에 모두 라바를 수출했다. 유튜브 조회 수는 억 단위를 훌쩍 넘어섰으며 조회 수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2009년 WAF(Web Animation Festival) 대상,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어워드 문화부 장관상, 2013년 중국 제19회 상하이TV 페스티벌 최우수상, 콘텐츠 어워드 부문 대통령상을 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애니메이션 최초로 국제 에미상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기와 함께 매출도 동반상승했다. 2013년 전년 대비 270%, 지난해는 2013년 대비 140% 각각 성장했다.
라바 시즌1, 시즌2, 시즌3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현재는 시즌4를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많다. 라바는 콘텐츠 방영권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이용한 문구류, 인형 등 다양한 부가산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해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다. 매년 국내에서만 수십 개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가 태어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라바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열한 레드오션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사고뭉치 애벌레 두 마리가 세계에서 반향을 일으킨 비결이 무엇인지 DBR이 분석했다.
투바앤의 좌절
라바를 만든 회사는 투바앤이다. 투바앤은 컴퓨터그래픽(CG) 전문기업 ‘넓은벌동쪽’의 총괄 본부장으로 있던 김광용 대표(51)가 이끌고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CG 분야에서 유명한 비손텍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8년 외환위기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2001년 넓은벌동쪽을 창업했다. 매출도 괜찮았고 업계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회사를 세우고 3년 만에 사옥을 지을 정도로 탄탄대로였다. 그러자 김 대표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CG가 창의적인 일이긴 하지만 결국은 주어진 스토리나 콘셉트에 맞춰서 후반 작업을 하는 일일 뿐이었다. 좀 더 사업적으로 한계가 없는 일, 기획부터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현재 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성까지 고려해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장고 끝에 나온 답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인터넷 게임에서도 CG가 접목되긴 하지만 게임 엔진 개발 등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애니메이션은 넓은벌동쪽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기획 분야만 추가하면 대략적인 프로세스가 비슷할 거란 생각이었다.
잘되던 기업을 두고 갑자기 애니메이션 사업을 얘기하니 주변에서 반대가 컸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애니메이션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게 지인과 주주들의 주장이었다. 주변의 반응과는 반대로 김 대표는 성공 가능성에 좀 더 비중을 두고 결정을 밀어붙였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콘텐츠 기획 부문에 방점을 둔 와이드이스트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었다. 와이드이스트를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 여러 경로에서 사업기회를 엿보던 김 대표의 눈에 투바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투바엔터테인먼트는 넓은벌동쪽의 파트너 기업으로 기획력이 수준급이었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2006년 말 즈음에는 재무상태가 최악에 이른 곳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본인이 대주주로 있던 와이드이스트와 투바엔터테인먼트를 2007년 합병하기로 했다.
합병 후 본격적으로 작품 작업을 시작했다. 합병 당시 <비키와 조니>라는 작품을 제작 중이었고 <오스카의 오아시스>와 관련해서는 제작비를 유치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김 대표는 열정을 갖고 작품을 완성했고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해외에 방영권을 수출하고 애니메이션 분야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작품은 결과적으로 회사 매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 마케팅 활동 과정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 두 작품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2011년 10월쯤이 되자 회사 상황은 매우 악화됐다. 한때 90여 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20명으로 줄었고 부채는 40억 원으로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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