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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수 에버랜드 음환경 디자이너

音 디자인, 불필요한 소리 제거부터 시작하라

최한나 | 177호 (2015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에버랜드 음()환경 디자이너가 말하는기업이 소리를 잘 활용하는 방법?

- 갖가지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큼 최악도 없다. 불필요한 음부터 제거하라.

- 이 공간 또는 제품에 어울릴 만한 소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라.

- ‘어울릴 법한소리에 머물러서는 임팩트가 없다. 비일상적인 느낌을 가미하라.

-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먼저 확립하라.

- 개발한 소리가 다른 활동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궁용주(이화여대 국제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백화점에는 있는데 할인점에는 없는 것은?” 매장마다 다를 수는 있겠으나 백화점에는 있고 할인점에는 없는 것 중 대표적인 하나가 음악이다. 층별로 전시 상품들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고 시간대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백화점과 달리 할인점은 음악을 거의 틀지 않는다. 대량 묶음 상품과 최저가를 목표로 하는 코스트코가 대표적이다. 쾌적한 쇼핑 환경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 또는 이미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과 달리 이곳에서 내세우는 강점은 품목별로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악은 때와 장소에 따라 목적과 이용자에 맞게 사용될 때 최상의 가치를 발휘한다. 특히 소리나 음악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와 밀접하게 연결돼 고유의 정체성을 확보할 때 시너지가 증폭되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잘 인식되고 각인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내 대표 테마파크인 에버랜드 곳곳의 소리와 효과음, 배경음악 등을 총괄하는 음환경 디자이너 변용수 책임을 만나 소리가 갖는 힘과 효과, 적합한 소리를 찾아내는 과정 등을 들었다.

 

 

사람의 감각 중 청각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원시시대에는 사람들의 청각이 현대인의 그것보다 더 발달해 있었다. 시각이나 촉각에만 의지해서는 외부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고 멀리서 맹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든지, 곧 비가 올 것 같다든지 등을 가장 먼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소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자가 발명되고 각종 이미지가 다양해지자 시각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오늘날 사람들은 소리를 듣거나 직접 만져보기 전에 일단 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청각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시 청각 정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활수준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더 섬세하게 오감을 충족시키길 원한다. 단순히 눈으로 봐서 아름답다는 정도가 아니라 보기에 아름다우면서 향기도 좋고, 즐거운 소리가 들리면서 부드럽고 맛도 좋기를 원한다. 언젠가 빌 게이츠 저택에 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 정도의 온도에,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이미지가 가동되는지 등이 미리 정해져 그대로 구동되도록 설계됐다는 내용이었다. 오감을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환경을 구성한 셈이다. 반대로 지구촌 오지의 빈민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들리는 소리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이다.

 

다른 감각과 비교할 때 청각은 몇 가지 차별적 특징을 지니는데 그 중 하나는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보기 싫은 장면이 있으면 눈을 감으면 된다. 뱀처럼 뭔가 물컹할 것 같은 물체와 맞닥뜨렸다면 손대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시각 또는 촉각 등의 정보는 의지에 따라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귀는 열고 닫을 수 없으므로 집중하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는 정도가 가능할 뿐 아예 듣지 않을 수는 없다.

 

귀는 24시간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이 때문에 감정이나 의지 등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사람 많고 소음이 심한 거리에 몇 시간 서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굉장히 피곤하다. ‘모차르트 효과로 잘 알려진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뇌의 활동이 촉진돼 더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업이 소리를 활용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것저것 첨가하기보다는 나쁜 소리를 제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소리가 갖는 다양한 효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 청각에는 한계효용이 거의 없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계속 먹는다면 질릴 것이다. 한동안 그 음식이 싫어질 수도 있다. 좋은 향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리는 다르다. 좋은 음악은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된다. 질리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동시에 오래 간다. 오래 전에 들었던 소리도 다시 들으면 익숙하게 다가온다. 20년도 더 지난 인텔 인사이드 테마음을 다시 들으면 아직도 인텔이 떠오른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노래를 들으면 그 과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점은 기업이 회사 또는 제품과 어울리는 소리를 한번 잘 개발해두면 정체성과 개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셋째, 소리에는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백화점은 하루 종일 우아한 음악을 틀다가도 폐점 시간이 되면 템포가 빠른 음악으로 교체한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계속 틀어둔다. 템포가 빠른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음악이 사람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공포영화가 있다. 소리를 끄고 공포영화를 보면 무섭기는커녕 마치 코미디처럼 보일 것이다. 음악이나 소리가 사람의 감정과 느낌 변화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소리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다른 감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인간의 감성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리는 원시시대에는 주술적으로, 산업화시대에는 노동의 촉매제로, 현대에는 비즈니스와 연계된 감성 마케팅의 기법으로 여러 곳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준과 정도는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좋은 소리란 어떤 것인가.

학생이 조용하게 사색하거나 공부할 때 좋은 소리와 직장인이 동료들과 술 마시기 위해 펍을 찾았을 때 각각 좋은 소리가 다른 것처럼 시간이나 장소, 듣는 주체, 개인별 사회적 문화적 상황이나 배경 등에 따라좋은소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시간이나 장소, 상황, 듣는 주체 등에 적합한 소리가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소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는 역시 불필요한 음을 제거하는 데 있다. 사람의 귀는 무방비로 열려 있고 어떤 음 환경에 노출되면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급적 핵심 소리만 남기고 다른 소리는 작게 할수록 좋다.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 사례를 들어보자. 네모난 어떤 공간에 음환경을 조성한다고 해보자. 이 테마파크에는 각 모서리마다 놀이기구가 총 4개 설치돼 있다. 각각의 놀이기구마다 테마음악이 있을 것이고 공간 전체에 흐르는 배경음악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았을 때 공간의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전부 다르다. 놀이기구 가까이 가면 놀이기구에서 흘러나오는 테마음악이나 효과음이 주로 들릴 것이고, 놀이기구와 놀이기구 사이를 지나가면 테마음악과 테마음악이 섞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네모난 공간의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놀이기구 소리는 잘 안 들리고 배경음악과 사람들 함성소리 등이 주로 들릴 수도 있다. 이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동선과 위치, 각 놀이기구의 운행시간과 속도, 운행들이 맞물리는 시간과 간격, 순서 등이다. 즉 어느 위치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시끄럽게 섞여드는 소리 때문에 불쾌하지 않도록 정리해줘야 한다. 아무리 테마음악이나 효과음을 멋지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쉽게 피곤하고 이 공간에서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갖가지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큼 최악인 상황도 없다.

 

‘좋은’ 소리를 만드는 핵심 요소는 결국 절제와 조화다. 인텔 인사이드를 소비자 머릿속에 세뇌시킨 것도 결국도미도파’ 4개의 음표 아니었던가.

 

어떤 공간 또는 테마에 어울리는 소리는

어떻게 찾아내는가.

사운드 디자이너들이 자주 하는 연습이 있는데 눈을 감고 다니는 것이다. 매일 왔다 갔다 하면서 익숙한 길도 눈을 감고 걸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이를 사운드 워킹(sound walking) 또는 리스닝 워킹(listening walking)이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시각 정보를 차단해서 귀가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눈이 워낙 빠르게 앞서서 정보를 처리해버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집중하지 않는 한 귀가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뇌에서 아예 처리하지 않는 청각 정보들도 있다. 존재하는 소리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다. 눈을 감으면 귀가 열리면서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들이 제각각 존재를 주장하며 새롭게 등장한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장소에는 어떤 소리가 나야 한다는 일종의 심상이 떠오르곤 한다. 특정 대상에 적합한 소리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이다. 또 평소에 듣지 못하던 새로운 소리들이 들어오면서 사운드 디자인을 할 때 자극제나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연습을 많이 하다가 그 다음에는 떠오르는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단순히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어울리는 스토리, 분위기, 뉘앙스를 잡아내는 데 주력한다. 음환경은 단순히 들려오는 어떤 한 가지 소리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구현하려고 의도된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에 더 가깝다.

 

이를 에버랜드에 적용해보면, 예를 들어 새로운 놀이기구를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처음에는 그 놀이기구가 설치될 부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나 설계 디자이너들이 점 하나 없는 백지에 구조를 잡고 스케치해가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 것도 없는 땅 위를 걸으며 눈을 감고 상상을 시작한다. ‘이 공간에는 어떤 소리가 나야 할까?’ ‘어떤 소리가 이 놀이기구에 어울릴까?’ 음악은 어떤 식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안내 멘트가 얼마쯤에 삽입돼야 할 것 같고, 기구가 떨어질 때는 이런 소리가, 다 돌고 원위치로 돌아왔을 때는 이런 소리가 나면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나간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팀원들과 함께 음악은 어떤 장르로 하고, 어떻게 편곡하고, 이런 악기를 쓰자는 식으로 구체화한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음악을 울려 퍼뜨릴 하드웨어(음향장비)를 설계하고 음원 제작에 들어간다. 이게 기본적인 구조다. 다시 말해 이 공간에 어울릴 만한 소리는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고 기획해서 구체화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어울릴 법한소리만 나서는 임팩트가 없다. 테마파크는 비일상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비일상 체험이란 평상시 맛볼 수 없었던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파크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라야 그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래야 그곳에서 보낸 하루도 더불어 특별해진다. 특별한 소리는 본인도 모르게 감정을 자극해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에버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행복한 감정도 여기서 발생한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든지, 다음에 또 가고 싶다든지와 같은 평가도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우선 공간에 어울릴 만한 소리를 찾고 최대한 그것을 구현해내려고 애쓰지만 그것에만 머무르면 그 공간은 특별해질 수 없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소리가 있어야 그 공간 또는 그 제품만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이런 원칙은 테마파크 주차장에서부터 셔틀버스 내부, 화장실, 놀이기구, 식음시설, 상품시설, 각 공간과 동선 모두에 적용된다.

 

소리는 기업에 어떤 경쟁력 또는 차별성을 줄 수 있는가.

다시 인텔 인사이드 사례를 들어보자. 1990년대 인텔이 인사이드 마케팅을 펼치면서 테마음을 개발했는데 이 소리는 제조업체들에 인사이드 로고를 광고에 써주면 칩 가격을 할인해 준다든지, 인사이드 마크를 외부에 부착해 인텔 부품이 내장돼 있다는 것을 알린다든지 등의 다른 활동과 맞물려 좋은 성과를 냈다.

 

소리 자체만 놓고 본다면 엄청나게 훌륭하다거나 우수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굉장히 단순하다. 하지만 회사가 가진 철학과 마케팅 전략, 해당 제품과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됐을 때 분명하게 인지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좋은소리가 됐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업 내부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기업이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소리, 차별화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 가치가 제대로 확립돼 있어야 그것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고, 나아가 그것과는 약간 다른 신선한 소리를 만들어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선행된 목표 정립이 없는데 무조건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기업이 활용하고자 하는 소리는 다른 활동들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 튀는 소리를 갖다 붙인다고 그 기업의 개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 및 서비스는 물론 광고나 캐치프레이즈, 기업이 하는 다른 활동들과 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기업을 대변하고 나타내는, 그래서 들으면 누구나 해당 기업을 떠올릴 수 있는 그 기업 또는 제품만의 소리가 될 수 있다.

 

 

변용수 책임은 건국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아트기획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BSS, Digico와 미국 Mayer Sound 등에서 음향 워크숍을 수료했다. KBS, 동우필름, 크리엔트 등에서 음향 담당 디렉터 등으로 활동하다가 현재 에버랜드에서 음환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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