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오야마
Article at a Glance – 운영관리, 혁신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재일교포 3세인 오야마 켄타로 사장이 이끄는 일본의 생활용품 제조·판매 기업인 ‘아이리스오야마’는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개척하며 성공을 일궈온 대표적 사례다. 이 업체는 ‘블루오션’이라는 경영 화두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이러한 전략을 구사해왔다. 아이리스오야마의 경영철학은 다음과 같다.
1) 소비자의 불편·불만·부족에 눈을 돌리는 ‘유저 인’ 개념으로 새로운 물건, 새 시장을 창출하라. 2) 틈새분야 시장을 찾아내라. 3) 시대의 변화를 선점해 상품개발로 연계하라. 4) ‘백화점 공장’ ‘메이커 벤더’처럼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안하라. 5) 신제품 개발회의를 활성화해 신제품 매출 비율을 50%로 유지하라. 6) 사원들이 마음 놓고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도록 책임은 전부 사장이 진다. 7) 급변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비즈니스에 반영하기 위해 초스피드 경영을 실현한다. |
신시장 창출이 디플레이션 경제를 이기는 비결
물가하락이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을 경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향후 소비·투자 등 국내 수요가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기업들도 수요 감소 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매출과 이익 감소를 경험했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수요 감소 시대에도 매출과 이익을 늘렸다. 과연 어떤 기업들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승승장구했을까.
디플레이션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시대에는 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기존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 감소를 ‘가격파괴’로 연명해온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경영 상태가 악화되거나 파산을 경험하기도 했다. 해답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수요 감소시대에도 새로운 수요는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본의 생활용품 제조·판매 기업인 ‘아이리스오야마’는 이렇다 할 독특한 기술 없이도 소비자의 불편·불만을 해소하는 제품을 끊임없이 출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신제품 비중은 50%나 된다. 게다가 영업이익률도 10%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편·불만·부족을 해소해 신시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아이리스오야마의 성공 비결을 알아본다.
‘마치고바(동네 소공장)’에서 출발한
아이리스오야마
먼저 아이리스오야마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아이리스오야마의 전신은 1958년 현 사장인 오야마 켄타로(大山健太郞)의 부친인 재일교포 오야마 모리스케(大山森佑)가 히가시오사카(東大阪)에서 창업한 조그만 하청공장 ‘오야마브로공업소’다. 이곳은 유리처럼 플라스틱에 공기를 주입해 팽창시키는 ‘브로 성형’으로 공업용 약품 병, 샴푸 용기 등 각종 플라스틱 용품을 하청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당시 일본에 플라스틱 생활용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해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창업 6년 후 오야마 켄타로 사장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64년, 부친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야마 켄타로 사장은 8남매의 장남으로서 일가를 부양하기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가업을 승계했다. 오야마 사장은 19세에 매출 500만 엔, 종업원 5명의 이 영세한 공장을 맡아 대표가 됐다. 고교 재학 시절 영화연구회를 결성하는 등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던 오야마 사장은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헝그리 정신’을 키웠다고 술회했다.
공장이 바쁠 때 아버지를 도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장이나 기계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노력 하나로 버텼다. 종업원들이 퇴근한 후에 밤을 새며 기계를 만지기도 했다. 다른 회사가 맡기 싫어하는 주문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난이도가 높은 일거리도 무조건 주문을 받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생산에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브로 성형’의 노하우와 기술도 축적됐다. 이익은 모두 생산설비 등에 재투자했다. 매출이 조금씩 올랐지만 “이대로 하청공장 사장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지 않다. 무엇인가 자사 브랜드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가졌다.
처음 손을 댄 제품은 양식어업용 부표(浮漂)였다. 자신의 브랜드를 내건 최초의 자사 제품이었다. 부표를 첫 제품으로 생각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플라스틱 제품은 응용 분야도 넓지만 경쟁도 치열하다. 따라서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는 1차 산업, 그중에서도 농업이 아니라 수산업, 게다가 양식이라는 틈새시장을 겨냥했다. 당시 양식용 부표는 유리제품이라 깨지기 쉬웠다. 이를 대체하는 플라스틱 부표에 착안한 것이다. 틈새시장 개척에 성공한 것이다. 잘 깨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이 제품은 시장을 석권했고 이 사업은 오늘날 아이리스오야마의 초석이 됐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