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현 슈콤마보니 Creative Director

보고 또 보고… 모든 아이디어는 관찰에서 나온다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소연(서강대 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슈콤마보니는 과감한 디자인과 색깔로 초창기부터 구두 사랑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이를 진두지휘해 온 이보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이사는끊임없는 관찰만이 사랑받는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의식적으로 보고 또 보지 않으면 소비자의 욕구를 읽는 일도, 다른 사람을 끌리게 하는 디자인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더 이상 디자인을 못하겠다는 직원들에게 길게는 두 달이나 회복 기간을 줄 만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지만 크리에이티브가 성실함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창조적인 디자인은 관찰을 생활화하는 성실함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인수된 후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는 슈콤마보니 대표 디자이너 이보현 이사를 만났다.

 

슈콤마보니는 높은 굽에도 편안한 구두로 유명하다. 디자인할 때 꼭 염두에 두는 원칙이 있는지.

 

 내가 신고 싶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어떤 옷을 입었는데 어울리는 신이 없으면 직접 하나 만들고 싶어지지 않나. 그 마음, 그게 핵심이다. 내가 별로 끌리지 않는다면 어느 소비자에게 구입하라고 자신 있게 내밀 수 있을까.

 굽이 높아도 편안한 하이힐, 그것도 내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이힐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신는다. 종일 신으면 발이 아프다. 특히 나는 출장 가면 하루에 20, 30㎞씩 걸어 다니는데 그러면 발이 거의 마비될 지경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높은 굽은 여자들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아무리 발이 아파도 포기하기 싫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굽은 높지만 종일 신고 다녀도 아프지 않은 구두는 슈콤마보니 초창기부터 계속 지향해왔던 모토다. 예쁘고 화려한 신이 많지만 신은 일단 편해야 한다. 편하면서도 멋스러워야지 멋만 있고 편하지 않으면 좋은 신이 아니다.

 패션업계에서 중요한 것은 트렌드다. 슈콤마보니가 초창기부터 마니아들을 이끌면서 사세를 키워갈 수 있었던 근원에 트렌드를 앞서가는 디자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할 때는 한 시즌 이후를 생각한다. 이번 시즌에 신어도 좋지만 다음 시즌에 확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디자인을 목표로 한다. 그런 디자인을 얻기 위해 요즘 유행이 어떤지, 젊은 세대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끊임없이 살핀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의류직물학을 전공했다. 남성복 브랜드 디자이너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딱히 대안도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때 마침 스페인 친구로부터 스페인에서 만든 구두를 한국에 팔아보고 싶은데 참여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재미있겠다 싶어 오케이 했다. 몇 백 켤레 샘플을 받고 편집숍과 관련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구두를 팔았다. 이 일을 계기로 구두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직접 구두 브랜드를 출시하기로 결심하고 2003 2월 청담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많이 돌아다닌다. 일상생활이 가장 좋은 관찰 대상이다. 많이 봐야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다른 나라 가면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돌아다닌다. 벼룩시장도 가고, 새로 생긴 매장도 가고, 잘나간다는 클럽도 가본다. 구두뿐 아니라 옷, 머플러, 액세서리 등을 닥치는 대로 본다. 저기 저 옷에는, 저 악세서리에는 어떤 신이 어울릴까를 끊임없이 매치해 본다. 거리를 걸을 때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커피숍에 들어가면서도 항상 사람들, 그중에서도 발을 본다. 상하이 출장에 갔을 때는 아침 10시에 호텔에서 나와서 점심도 굶고 저녁 9시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계속 걸어 다녔다. 호텔 방에 들어서니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라. 하지만 간단히 저녁 먹고 또 나왔다. 그 동네 라운지바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안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언제나 하나라도 더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아이디어가 툭 튀어나온다.

 공효진 워커로 유명한 신은 딸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다. 딸애가 닥터마틴을 사달라고 해서 한 켤레 사줬다. 스키니진에 신고 나타난 모습을 보는데 잘 어울리고 예쁘더라. 워커의 속성상 편해 보이기도 했다. 문득 나도 신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저런 워커를 내가, 혹은 20대는 아니지만 워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신을 수 있게 만들자 해서 기본적인 워커에 굽을 넣어 만든 신이 공효진 워커다. 아마 워커를 신고 싶었는데 나이 때문에, 체면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이 반가워했을 것이다. 그건 곧 내 마음이기도 했다. 직접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욕구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 디자인 아닌가.

 

 

관찰이 최대의 무기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어차피 사람이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모든 것은 관찰, 그리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응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일상에서 흘러가는 작은 일들이 모두 좋은 소재다.

 디자인하다가 막힐 때가 정말 많다. 이제 디자이너로 끝인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여기가 내 한계구나, 나도 늙었구나,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럴 때일수록 더 디자인에 매달린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낙서만 계속한다. 약속도 안 잡는다. 다른 생각을 다 지우고 디자인에만 몰두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오히려 차분해지고 정리도 되면서 새로운 힘이 난다.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매우 많을 텐데 이들에게서는 어떻게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는가.

 

 디자인은 아무래도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소모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직원들이 쉽게 지치고 피로해 한다. 어떤 사람에게나 사이클이 있겠지만 디자이너들은 특히 굴곡이 심하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디자인 못하겠다며 사표 들고 오는 친구들이 분기에 몇 명씩은 꼭 있다. 잘 안 그려진다는 직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냥 둔다. 아니면 디자인과 상관없는 다른 업무를 준다. 아웃렛 가서 어떤 제품이 잘나가는지 보고 오라는 식이다. 이렇게 몇 주, 길면 한 달 반이나 두 달 정도 지켜보면 스스로 다시 치고 올라온다. 그만둔다는 말도 쏙 들어간다.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그저 지켜볼 뿐이다.

 디자이너들은 일단 머릿속이 편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잡무를 줄여준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다. 오히려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은 온갖 잡무를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사부터 시작해서 공장 쫓아다니고 샘플 정리하는 등의 일을 다 겪어봐야 한다. 예전에 매장에 인턴이 새로 들어오면 구두 수선하는 것부터 시켰다. 밑에서부터 철저하게 익혀야 각 과정을 이해하고 디자인할 때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 생각하면서 그릴 수 있다.

 자유롭게 풀어두지만 방임과는 다르다.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겠으나 크리에이티브가 성실함을 이길 수는 없다. 성실함이 기본이다. 성실해야 아이디어도 나온다. 디자인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매장을 처음 열었을 때 내가 그랬다. 내가 만드는 물건을 갖고 매장을 연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물밑 작업을 필요로 한다. 구두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제일 먼저 북가좌동 어느 공장을 찾았다. 수년간 공장을 오가며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몸으로 배웠다. 그려진 그림이 어떻게 가죽으로 옮겨지는지, 가죽은 어떻게 자르고 잘린 가죽을 어떻게 잇는지 작업 과정마다 끼어들고 물어가며 세세하게 배웠다. 물론 엄청난 구박과 눈치를 견뎌야 했다. 작업하시는 분들은 마감에 맞게 구두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젊은 여자가 하나 와서 여기저기 참견하고 물어보고 하니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하지만 간식도 사가고 커피도 타 나르고 하면서 안면을 트고 계속 쫓아다니고 억지로라도 웃어가면서 하나만 더 가르쳐달라고 조르며 배웠다. 이렇게 배운 기본기가 지금 구두를 디자인하는 데 굉장한 자산이 되고 있다. 제작 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디자인도 있고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반드시 시도하는 디자인도 있다. 나온 샘플이 디자인과 맞지 않을 때 어느 부분에서 어긋났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도 있다. 관찰과 기본, 이것이 좋은 디자이너의 요소다.

 

         공효진 워커

매장이 15개로 늘어났을 정도로 성공한 개인 사업가였다. 대기업 아래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크게 벌리려는 의도는 없었다. 나는 구두를 무척 좋아하는 여성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단지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만들면 누군가 또 신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일이다. 청담동에 즐겨 찾던 카페가 있었다. 거기 빙수가 맛있어서 자주 갔는데 어느 날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있는 꽃집이 이전한다는 메모를 달고 있는 모습을 봤다. 목 좋은 골목에 있어 눈여겨보던 곳이었다. 구두 가게를 연다면 저곳이 좋겠다 하던 차였다. 부랴부랴 계약을 하고 구두를 갖춰 문을 열었다. 오픈 하루 전날에는 살짝 긴장했지만 사실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걱정보다 설렘이 컸다. 걱정할 새가 없기도 했다. 구두를 만들어 줄 공장을 찾아다니고 기술자들 알아보고 그동안 끄적거렸던 디자인을 골라 제작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신발을 누군가 예쁘다고 하고, 신고 싶어 한다면 굉장히 기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커졌다. 하다 보니 매장이 늘고, 직원이 많아지고,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해외 패션위크에 초대받기도 하면서 정말 눈덩이 불어나듯 커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분명 출발은 디자이너였는데 어느 순간 관리자가 돼 있었다. 나는 꼼꼼하지도 않고 관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데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루에 10시간 일한다면 9시간을 다른 일에 쓰고 나머지 1시간만 디자인에 쓸 수 있었다. 그나마 디자인하려고 자리 잡고 앉으면 이런저런 행정적인 일이 떠오르면서 걱정과 짜증이 밀려와 디자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하려다 보니 성과도 잘 나지 않았다. 행정적인 잡무들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누가 와서 나 대신 관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때 마침 코오롱에서 제안이 왔다. 슈콤마보니가 인수되기 전에 쿠론이나 쟈뎅 드 슈에뜨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한 기업이라는 점이 확신을 줬다. 내가 못 하는 부분을 지원받고 내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혼자 일한 지 벌써 20년인데 다시 월급쟁이가 돼서 조직 안에서 일할 수 있을까, 들어갔는데 나랑 안 맞으면 어떡하나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매력이 날 당겼다. 결심한 후에는 후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마인드컨트롤을 많이 했다. 회사라는 곳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을 테니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등등.

 인수되고 이제 9개월 정도 됐다. 내 목소리만 강하게 내지 말자고 많이 되새겼지만 아직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지는 않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추진하는 일에 익숙해서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오늘 뭔가를 만들면 직원들에게 의견 물어보고 반영해서 그날 바로 행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는 일주일, 길면 한 달이나 일 년 전에 보고를 해야 한다. 내가 오늘 뭔가 하고 싶다면 회사가 미리 인지하고 준비할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기간은 일주일보다는 한 달이 좋고, 한 달보다는 두 달이 좋다. 조직이라는 본질이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는 맞춘다고 맞추고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여전히 내가 좀 세게 비쳐질 수도 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안 된다는 게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지? 싶었다. 그냥 짧고 단순하게 가면 되는데 복잡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좋은 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동분서주하면서 혼자 도맡아야 했던 일들을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얼마 전 상하이 출장 갔을 때도 상하이 지사에서 샘플을 관리해주고 전략기획팀에서 영어와 중국말에 능통한 직원을 붙여주고 인터뷰할 때 통역도 해줬다. 예전에는 좌충우돌하면서 혼자 다 해내야 했던 일이다. 의사결정에도 좀 더 자신이 생겼다. 많은 사람과 머리를 맞대면 좀 더 현명한 길로 갈 수 있지 않나. 예전에는 혼자 하니까 빨리빨리 할 수는 있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잘하는 건지 확신도 없고, 뭔가 굉장히 아득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명쾌하고 확실하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다.

 처음 한두 달은 뭐가 달라진 거지? 했다. 여기저기 보고해야 하니까 일이 더 많아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영업이나 생산과 같은 분야에 신경 쓰지 않고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코오롱 입장에서도 득이 클 것 같다.

 

 코오롱은 사실 패션 브랜드라기보다는 아웃도어로 유명한 회사다. 패션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육성하는 대신 이미 디자인으로 상당히 이름을 얻은 개인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앞서 소개한 쿠론과 쟈뎅 드 슈에뜨 등이 좋은 예다. 슈콤마보니도 그중 하나다. 브랜드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디자인들이 코오롱에 합류하면서 패션회사로서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어머 이게 코오롱 제품이야? 하면서 놀라는 소비자가 많다고 들었다.

 외부 디자인이 들어가면서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코오롱 안에만 브랜드가 20개가 넘는다. 외부 시장으로 나가기도 전에 안에서 이미 경쟁이 대단하다. 실력 있는 디자인은 내부 브랜드들에 좋은 자극이 된다. 외부에서 영입된 디자이너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신선하게 비쳐지기도 할 것이다. 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은 디자인만, 혹은 디자인과 관련된 업무만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개인 브랜드들은 A부터 Z까지 혼자 다 한다. 개인적으로 닦아 둔 플랫폼이나 직접 부딪쳐서 쌓아 온 노하우들이 많다. 가죽은 어디서 수입하는 것이 좋다거나, 다른 나라 디자이너들과 친분이 있다거나, 앉아만 있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코오롱 입장에서는 단순히 브랜드 하나, 디자이너 한 명을 데려간 것이 아니라 이들이 오랜 시간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각종 지식과 경험들을 전부 빨아들인 것이다. 예컨대 해외 시장에 진출하자는 결정을 내렸을 때 개인 브랜드들은 일단 해외 쇼나 해외 페어부터 시작해서 시장 반응을 본다든지, 현지 마케터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협업을 시도해본다든지 한 걸음씩 작게 작게 움직이는데 대기업은 일단 해외법인이나 지사부터 만들자고 나서는 식이다. 패션은 트렌드가 있고 유행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진도가 더디다. 이런 면에서 개인 브랜드의 추진력과 적극성이 좋은 표본이 될 수 있다.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양측이 갖는 시너지가 상당하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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