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라포테이블의 ‘팔도감’은 팔도 각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잇는 산지 직송 신선식품 이커머스다. 유독 발전이 더뎠던 산지 직송 거래를 디지털 플랫폼 위에 올려놓으며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신선식품 이커머스 범람의 시대, 라포테이블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범위를 좁혔다. 모회사의 기조에 발맞춰 4050세대를 타깃 고객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식품 중에서도 산지에서 생산자가 바로 배송하는 제철 음식·특산물에 집중했다. 사업 방향 설정 이후엔 다양한 가설을 빠르게 실험하며 고객들의 디테일한 특성을 찾아냈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철저히 회고하며 데이터를 축적했고 ‘감’에 의존하지 않는 데이터 중심 의사결정을 지속했다. 투입 비용이 작은 위수탁 방식 사업 구조, 생산자와 윈윈할 수 있는 PB 상품을 확대하며 수익성도 챙겼다.
잡다한 중간 유통 과정을 건너뛰고 신선한 제철 음식을 생산지에서 직접 배송받는 ‘산지 직송’은 사실 역사가 오래됐다. 농부가 직접 자신이 수확한 수박을 트럭에 싣고 돌아다니면서 판매하는 게 대표적인 산지 직송 판매다. ‘명함 보고 주문하기’ 같은 형태도 있다. 생산자의 연락처와 계좌가 적힌 명함을 받아 전화로 주문하고 물건을 배송받는 식이다. 소고기나 귤, 사과부터 지역 특색을 담은 김치까지 다양한 신선식품이 이런 식으로 거래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된 요즘은 오픈채팅방이나 SNS 채널 등을 통해서 산지 직송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시대에 1차 산업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의 직접적인 만남은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집 근처 시장이나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 먹는 식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생산자의 문을 직접 두드리고 산지 직송 서비스를 활용한다. 대개 제철 음식이나 지역 특산물을 현지 수준의 맛과 가격으로 즐기는 게 목적이다.
문제는 개인 대 개인 간 주먹구구식 거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지 직송 거래는 유독 발전이 더뎠다. 품목별, 지역별로 생산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다 산지 직송 거래를 하는 생산자의 규모도 작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간 유통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규모의 경제나 품질 안정성 등의 장점도 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생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면 대형마트나 중간 유통상인과 연결되면서 산지 직송 시장에서 벗어난다. 구조적으로 영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라포테이블이 선보인 ‘팔도감’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 조준한 산지 직송 신선식품 이커머스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수많은 제철 식품, 지역 특산물 생산자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 소비자들과 만나게 해준다. 팔도감에선 ‘충남 태안 최 모씨’가 당일 잡아서 배송하는 서해산 가을 꽃게, ‘전남 광주 박 모씨’가 50년 넘게 담아온 전라도식 배추김치, ‘경북 청송 현 모씨’가 수확한 청송 사과 같은 상품이 즐비하다. 판매량과 후기를 통해 품질을 가늠하고 마트에서 쇼핑하듯 손쉽게 장바구니에 담아 하루 이틀 새 배송을 받을 수 있다. 산지 직송을 위한 오픈마켓을 연다는 매력적인 아이템을 앞세워 2022년 7월 프리-시리즈A, 2023년 5월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연달아 성공하며 누적 투자 유치 금액 70억 원을 달성했다.
기존 대형 유통업체와 이커머스들이 버틴 신선식품 분야에서 팔도감은 빠르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2022년 7월 설립 이후 2년여 만에 팔도감 애플리케이션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300만 회를 넘어섰다. 올해 초 기준으로 누적 거래액은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스타트업 업계가 투자 고갈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와중에도 가능성을 인정받아 설립 10개월 동안 7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수익성 확보다. 마진을 높게 잡기 어려운 식품 유통 분야인데도 수익이 났다.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월간 영업실적이 흑자로 돌아섰다. 7~8월은 물론 추석 명절이 포함된 9월 대목까지 잇달아 수익을 내며 연간 기준 흑자 달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설립 2년 만에 달성한 성과다.
라포테이블은 팔도감을 ‘전국 팔도 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서비스’로 규정한다. 4050 X세대를 위한 신선식품 이커머스라는 정체성도 강조한다. 라포테이블이 출범 2년 만에 팔도감을 눈에 띄는 비즈니스 모델로 등극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DBR이 라포테이블의 강원호 대표, 이재윤 부대표를 직접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 X세대 패션 이커머스, 산지 직송 신선식품 도전(1) ‘엄마들의 무신사’에서 ‘엄마들의 마켓컬리’로“이번엔 식품을 한번 팔아보죠” “우리 패션 이커머스인데?”
식품 이커머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마켓컬리의 눈부신 성공을 전후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을 표방하며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 중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곳은 많지 않다. 여기에 수익성, 즉 흑자를 내고 있는 곳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매출을 중심으로 한 외형 성장에 주력한 나머지 굵직한 업체들조차도 영업 손실을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년적자 신선식품 이커머스’라는 꼬리표가 붙은 배경이다. 각 플랫폼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체급을 불리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도 이 맥락이다. 플랫폼이 늘수록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겉보기엔 늘어난다. 하지만 실상은 줄어든다. 똑같은 상품이 플랫폼만 바꿔가며 팔리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라포테이블은 시작부터 조금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범위를 좁히는 작업이 진행됐다. 먼저 타깃 고객을 40~50대 X세대로 특정했다. 이유가 있다. 라포테이블의 모회사 라포랩스의 존재다. 라포테이블은 라포랩스의 신사업 TF에서 출발했다. 라포랩스는 X세대 고객을 타깃으로 한 패션 이커머스 ‘퀸잇’의 운영사다. 자연스레 ‘퀸잇의 고객들에게 어떤 상품을 제안하면 매출과 수익을 더 늘릴 수 있을까’가 중요한 질문이 됐다. X세대 고객 타기팅은 당시만 해도 라포랩스가 가진 유일한 특장점이기도 했다. 장점에서 출발해야 했다. 고객층에 대한 노하우는 나름대로 축적됐다는 판단하에 X세대가 패션 외에 가장 원하는 상품군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답은 식품이었다. X세대 고객들이 가장 돈을 많이 쓰던 홈쇼핑 영역이 힌트가 됐다. 패션, 미용, 잡화 외에 가장 인기 있는 건 결국 식품이었다. 이야기는 식품 중에서도 X세대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로 귀결됐다. 라포랩스 소속이었던 강 대표와 이 부대표는 푸드팀을 결성해 ‘잠재 고객 인터뷰’에 나섰다. 오프라인은 물론 네이버나 다음 카페를 뒤지며 X세대를 매일 10명가량 만났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결과가 나왔다. 강 대표와 이 부대표는 몇 가지 가설, 그리고 시장의 페인 포인트를 도출했다.
먼저 고객 특성에 대한 가설이다.- 4050세대는 2030세대에 비해 제철 먹거리나 지역 특산물을 중시한다.
- 4050세대는 자기만 아는 단골 직거래 창구를 갖고 있다.
- 4050세대는 ‘속도보다 맛’이다. 배송이 느린 건 참아도 맛이 없는 건 못 참는다.다음으로 시장의 페인 포인트다.- 거래가 주먹구구식이다. 카카오톡이나 블로그, 이용자 연령층이 높은 네이버밴드 등을 통해서 이뤄진다. 전화나 메시지로 주문하고 계좌로 대금을 송금하면 판매자가 직접 배송한다.
- 직거래라 환불이 힘들다.
- 품질에 불만이 있어도 단골이 된 터라 쉽게 거래처를 바꾸기 어렵다. 바꾸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또 다른 직거래 판매자를 찾아야 한다.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찾더라도 품질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2) 가짜 앱으로 빠른 실험 착수강 대표와 이 부대표는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퀸잇은 좋은 이커머스 플랫폼이었지만 옷만 팔던 곳에서 뜬금없이 식품을 팔 순 없었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판매자를 모을 수 없다는 거였다. 현지 생산자들을 설득할 명분은 물론 플랫폼 개발에 투자를 할 근거도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일종의 페이크 앱(Fake App)이었다. 강 대표는 “당연하지만 처음엔 확신이 없었다. 라포테이블과 라포랩스의 모토 중 하나가 가장 작은 형태로라도 일단 실험을 해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백엔드는 텅 비어 있는 모양만 있는 가짜 앱을 하나 만들었다. 상품은 네이버 밴드 같은 곳에서 실제로 판매되고 있던 직거래 상품들을 올려놨다. 앱에서 구매를 하면 우리가 직거래 상품들을 다시 구매해서 배송하는 구조였다. 당연하지만 마진은 남기지 않았고 오히려 비용을 투입했다. 우리가 설정한 가설에 맞춰서 광고와 마케팅을 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의 유입과 거래가 일어나는지를 봤다. 특히 재구매율을 중점적으로 봤다. 직거래 플랫폼에서 한 번 구매를 한 사람이 또다시 사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데이터였다. 결과는 분명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라는 거였다. 나름의 제품 시장 적합성(PMF)을 찾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증을 거쳐 2022년 3월 마침내 팔도감 웹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한 달 뒤 팔도감 앱이 출시됐다. 넉 달이 지난 7월, 라포랩스는 자회사 라포테이블을 설립하고 팔도감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는다.
(3) 고정비용 낮추고 디지털화 지원하며 판매자 확보중요한 것은 판매자 확보였다. 일정 숫자의 소비자를 모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광고와 마케팅을 하면 됐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들어와서 살 물건이 없어선 안 됐다. 초기에 관심을 보인 소비자들이 실망할 만한 물건을 팔아서도 안 됐다. 특히나 소비자들이 물건의 품질을 깐깐하게 보는 제철 신선식품을 핵심 상품으로 내세운 플랫폼이다. 처음부터 양질의 판매자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고 힘든 부분이었다. 영세하고 생산 규모가 적은 생산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입점을 허락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산지 직송 거래를 하는 판매자들의 특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안정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중간 규모 이상 생산자들은 이미 기존의 유통채널이 꽉 잡고 있는 영역이다. 지역 공판장이나 농협 등을 이용해 도매로 상품을 판매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유통 대기업의 경우 직접 수매를 하는데 전국적으로 균일한 상품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많은 생산량을 요구한다. 그래서 작은 규모의 생산자들은 계를 만들거나 영농조합을 만들어 함께 물건을 판다. 여럿이 모여 중간 규모 이상으로 덩치를 키워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하는 것이다.
산지 직송 거래를 하는 판매자들은 대부분 이런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소규모 생산자들이다. 이들은 농법이나 사료에 변화를 주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A급 작물, 축산물을 생산한다. 하지만 기존의 공판장이나 대형 유통채널 판매로는 가치를 인정받고 팔기가 쉽지 않다. 생산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기존 시스템은 모양이나 균일함, 색깔 등 표준에 맞춰 상품 품질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상품에 자신이 있는 판매자들은 SNS 등을 통해 중간 유통 과정을 건너뛰고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다. 물론 영세한 개인 판매자들이 광고나 마케팅, 브랜딩을 본격적으로 하긴 어렵다. 그럴 돈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알아서 사 먹고 입소문이 나면 좀 더 팔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케일업이 안 된다는 얘기다.
라포테이블은 산지 직송 판매자들의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두드렸다. 먼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고정비용이 없는 입점 구조를 짰다. 광고비 없이 일단 입점을 하고 물건이 팔리면 판매량에 대해 수수료를 일부 내는 식으로 설계했다. 일반적인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상품 노출을 늘리기 위해 별도의 광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라포테이블은 판매 수수료만 받으며 고객 선호도에 따라 상품을 노출한다. 마케팅, 고객 응대 등의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입점만 하면 상세 상품 페이지 등은 라포테이블에서 직접 만들어 줬다. 판매 과정에서 오는 고객 문의나 배송 이후의 피드백 등도 라포테이블이 전담했다. 생산자는 그저 상품의 생산과 배송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럼에도 문전박대가 일상이었다. 그래서 페이크 앱에서 얻어낸 실험 자료를 기초로 팔도감에 입점하면 매출과 수익 증가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이 부대표는 “제철 과일로 참외를 팔아야 했는데 판매자 섭외가 정말 안 됐다”고 말했다. 어지간한 상품은 몇 군데 연락을 하다 보면 하나 정도는 잡히곤 했는데 유달리 참외가 어려웠다. 참외 농가가 보통 경북 성주에 몰려 있고 워낙 유명한 특산품이다 보니 신생 이커머스로 움직이길 싫어했던 것이다. 한 농가 어르신께 대여섯 번 연락을 계속 드렸는데 “복잡한 건 어렵고 귀찮다. 지금 파는 곳에만 팔고 싶다”며 거절을 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아예 안 한다’고 잘라 말하시는데 다시 제안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또 연락을 드렸고, 결국은 “조카 같은 사람이 고생한다”는 말씀과 함께 승낙을 받았다. 결국 젊은 창업가들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이다. 하지만 앱 정식 오픈 전까진 이런 일이 반복됐다.
농가 설득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떠올려 온라인 판매에 친숙하지 않은 생산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파트너센터를 구축했다. 생산자는 오롯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면 됐다. 이 부대표는 “영세 농가들은 생각보다 더 변화를 싫어했다. 플랫폼을 만들면서 사전에 편리하게 판매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내부 망 프로그램을 만들어 뒀다”고 설명했다. 이는 판매가격 등의 조건, 재고량 등을 수시로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 망이다. 그런데 이걸 쓰기 싫어서 입점하기 싫은 농민도 있었다. 이 농민이 원하는 대로 한글 문서 파일을 메신저로 전송받아 내용을 그때그때 반영해주는 조건으로 입점을 허락받았다. 그는 “10㎏짜리 상품은 언제부터 얼마에 팔아달라, 이런 요청을 명조체로 적은 한글 파일을 보내주면 우리가 상품 페이지를 직접 바꾸는 식이었다. 아직도 공유 드라이브에 이런 정산 관련 파일들이 다 쌓여 있다”고 말했다.
정산 구조는 영세 생산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형태로 짰다. 팔도감의 정산은 한 달에 세 번 이뤄진다. 열흘 단위로 구매 확정 건에 대해 빠르게 정산을 해준다. 통상 한 달가량의 주기를 갖는 신선식품 이커머스 기업들에 비해 자금 흐름이 훨씬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다. 이 부분이 초기에 생산자들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신선식품 유통의 후발 주자라는 점을 고려해 처음부터 정산 주기를 최대한 자주, 빠르게 하려 노력했다. 특히 영세 생산자들의 경우 현금 들어오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보통 한 달에 3번이라고 하면 정산 부분에선 충분히 만족을 한다. 생산자들이 주문별 정산 예정일 등의 정보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앱을 설계했다. 이 부대표는 “최근 티메프(티몬, 위메프) 사태로 이커머스의 정산 문제가 논란으로 떠올랐는데 팔도감 입점 생산자들은 아무런 문의가 없었다. 그만큼 투명하고 정확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약 두 달의 시간이 지났다. 라포테이블은 간신히 50여 명의 생산자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팔도감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최소한의 우군을 갖추게 된 것이다.
2. ‘데이터 중심 의사결정’으로 X세대 고객 사로잡아(1)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결정세대에 따라 입맛이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실제 구매 패턴이 달라질 정도로 과연 차이가 있을까. 라포테이블이 출범 초기에 집중적으로 파고든 영역은 바로 X세대의 디테일한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퀸잇의 경험이 바탕이 됐지만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분석이 이뤄졌다. 입는 옷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즐기는 음식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 대표와 이 부대표는 1990년생이다. X세대가 아니다. 대부분의 직원도 2030세대다. 라포테이블을 통틀어 40대 직원은 단 한 명뿐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 X세대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건 온전히 데이터의 힘이다. 강 대표는 “애초에 우리는 우리 플랫폼의 고객이 아니다. 그래서 한 가지 원칙을 분명하게 세웠다. ‘감’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감으로 내린 결정이 맞았다 하더라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아이디어 제안과 가설 세우기야 감각적인 부분이 필요하지만 최종 결론은 결국 실험과 데이터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팔도감 앱의 메인 화면에 올라온 상품 섬네일은 소위 ‘빡샷’이라고 부르는 클로즈업 사진들이다. 테이블 위에 제품을 멋지게 세팅한 사진이나 깔끔한 패키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이커머스와 달리 거의 대부분의 상품을 초근접 사진으로 노출한다. 메시지 역시 매우 직관적이다. 이유는 클릭률이다. 생산자가 직접 상품을 들고 있는 사진부터 시작해 초근접 컷, 식품을 정갈하게 접시에 담아낸 사진, 테이블 위에 예쁘게 배치한 사진 등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유형으로 같은 상품의 다른 사진을 찍고 클릭률을 확인했다. 그 결과 아예 사진에 다른 여백이 없을 정도로 클로즈업을 한 빡샷의 클릭률이 가장 높았다. 경우에 따라선 사진을 바꾼 것만으로도 클릭률이 1.5배 늘어나기도 했다.
이 부대표는 “처음엔 우리 태생이 패션 이커머스 회사였기 때문에 상품을 잘 전시하는 데 집중해 예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 똑같은 상품을 섬네일부터 테스트해 보니 예쁜 사진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뒤에 여백이나 배경을 두고 예뻐 보이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고객들은 사진만 봐도 무슨 상품인지 알 수 있는 것,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것을 원했다. 아무리 테스트를 해봐도 베스트 상품들은 모두 클로즈업 컷이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적은 직관적인 제품 설명 같은 것도 모두 실험의 결과다. 고객들이 가장 상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식, 실제 구매를 부르는 방식을 택했다.
맛과 품질 중심의 마케팅 포인트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정해졌다. 라포테이블은 초창기에 직거래 시장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포인트가 ‘가격’이라고 봤다. 산지 직거래를 하면 중간 유통비용이 없는 만큼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상품을 구할 수 있는데 두 장점 가운데 가격 쪽의 힘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 X세대, 그중에서도 번거로운 직거래를 선택하는 고객층은 가격보다는 ‘최상의 품질’을 추구하는 소비자였다. 이 부대표는 “마케팅을 하는데 일단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방문율이나 구매율이 기대보다 올라가질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품질을 보장한다. 드셔보시고 맛이 없으면 100% 환불해드리겠다’고 마케팅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구매전환율 등의 지표들이 확 올라가기 시작했다. 실제 제품 반응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보통 4.8~5.0점(5점 만점)을 유지하던 상품 후기가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던 때는 4점 초반대로 뚝 떨어졌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이 중요한 비교 기준점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게 내부적인 판단이었다. 좋은 맛보다 싼 가격이 오히려 보장하기 어려웠다. 이후 팔도감이 보장하는 건 맛과 품질이라고 기조를 세웠다.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도 다양한 피드백을 반영해 X세대를 배려했다. 팔도감의 원칙 중 하나는 ‘70대가 사용해도 질문이 없을 정도로 앱을 직관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실제로 팔도감 앱을 접속하면 큼직큼직한 UI와 UX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4050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만큼 시인성을 높이려는 조치다. 연령을 감안한 편의 요소는 앱 구매 페이지상의 주소 입력칸에서도 드러난다. 주소를 검색해야 하기 위해 눌러야 하는 공간에 초록색 상자를 그려두고 ‘여기를 눌러 배송지를 입력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썼다.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주소 입력칸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강 대표는 “작은 요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고객센터에 문의가 수십여 건 들어왔던 영역이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앱에서 주소를 쓰라고 하는 창이 떠도 어디를 눌러서 기본 주소를 검색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세부 주소도 못 쓰는 경우가 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친절하고 직관적으로 안내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앱에서 곧바로 개선을 했다. 이 UX를 제공하는 앱은 개인적으로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2) 빠른 실험과 데이터 공유로 민첩한 변화 가져가눈길을 끄는 건 기민함이다. 라포테이블은 실험 주기를 매우 짧게 가져간다. 당장 팔도감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페이크 앱을 통해 실험한 것부터가 이런 기조를 잘 보여준다. 극단적으로는 2~3일 내에 가설을 세우고 실험한 이후 폐기하는 과정이 이뤄진다.
‘조금 싼 것보다는 좀 더 맛있는 걸 찾는다’ ‘중급 이하의 신선식품은 원하지 않는다’ 같은 특성이 수차례의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김치만큼은 재료까지 100% 국산을 써야 한다’는 원칙도 눈에 띈다. 배추는 물론이고 고춧가루와 소금, 새우젓, 심지어 물(정제수)까지 모두 국산이어야 까다로운 4050 고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객 반응 데이터로 확인하고 내린 결론이다.
‘50대 고객이라고 해서 대용량 밀키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특성은 당초 가설과 실험 결과가 달라진 경우에 해당한다. 처음엔 3~4인분 이상 대용량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기엔 자녀가 출가해 부부만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용량을 부담스러워하고 오히려 1인분 소포장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게 실제 데이터를 기초로 꾸준히 인사이트를 축적하면서 타깃 고객 세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 라포테이블의 강점이다. 다만 가설과 실험, 회고의 과정을 정례화하진 않는다. 정례화하는 순간 속도가 그에 맞춰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다 그 자체로 하나의 딱딱한 일이 돼 버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상품을 입점시키는 의사결정도 매우 빠르게 이뤄진다. 극단적으로는 MD 개인이 수수료를 아예 0%로 내리고 하루 이틀 만에 특정 업체를 섭외·계약해 물건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강 대표는 “가설은 모든 걸 다 분석하고 내리는 완벽한 결론이 아니다. 일단 한번 해보고 이후에 더 발전을 시켜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포도를 판매해야 하는 시즌에 고급 포도종을 팔아보고 싶다고 해보자. 일반적인 유통회사라면 고객 설문조사부터 돌리고, 적합한 상품을 찾고, 하나를 입점시키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팔도감은 일단 판매자를 섭외하고 상품 페이지부터 돌려 본다. 판매 개시부터 고객 후기가 쌓일 때까진 2~3주 정도가 걸리는데 이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싶은지를 더 빨리 판단하고 싶으니 클릭률을 우선 확인해서 하루 이틀 사이에 반응을 먼저 본다. 클릭률이 너무 떨어지면 곧바로 변화를 주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식이다.
라포테이블은 고객의 앱 진입, 상품 열람 기록, 클릭 기록과 구매 전환 등 다양한 상품 지표를 모두 추적한다. 상품 섬네일 클릭률과 전환율, 이벤트 반응 지표 등도 실시간으로 본다. 이렇게 다양한 지표를 기초로 특정 상품의 판매 지속 여부나 페이지 변화 필요성 등을 판단한다. 클릭률이 안 나오면 섬네일을 빠르게 바꾸거나 전환율이 안 나오면 상품의 제목 또는 경쟁 플랫폼의 유사 상품 가격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제철 신선식품의 경우가 대체로 하루 이틀에서 일주일 이내에 빠른 판단으로 변화를 준다. 상대적으로 고객 움직임이 느린 가공식품의 경우는 2주 정도 반응을 두고 본다.
데이터 공유의 속도도 높였다. 인사 정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데이터를 구성원 누구나 손쉽게 접속해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를 확인하고 여기에 기초해 판단을 내린다. 이 부대표는 “우리는 정보 공유가 과도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정보를 공개 슬랙에 올리고 서로가 가진 정보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3)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 자율적인 도전 문화지난 추석 팔도감은 ‘전 부치기 세트’를 판매했다. 부침가루, 카놀라유, 당면 등의 부자재를 한데 묶어 온라인 최저가로 선보였다. 명절에 전을 부치려면 필요한 물품을 싸게 팔면 잘 팔릴 것이라고 보고 300만 원 정도를 들여 직매입을 한 후 실험을 했다. 그런데 판매량이 매우 저조했다. 본인이 직접 전을 부치려는 사람은 이 정도 부자재는 집에 다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데우기만 하면 되는 완제품은 잘 팔렸다. 실험은 실패였다.
팔도감에선 도전에 뒤따르는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게 내가 안 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같은 발언은 금물이다. 다만 회고의 기록을 남긴다. 실패가 성과나 교훈 없이 진정한 실패로 끝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고객의 니즈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는지, 니즈 자체는 존재하지만 실험의 설계가 틀렸는지 등을 구성원들이 함께 따져보고 통찰을 남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다음 실험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기 위한 것이다.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팔도감 앱의 홈 화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팔도특가 상품 탭이 보인다. 날마다 주력해서 판매할 상품을 대폭 할인한 가격으로 메인 화면 상단에 배치하는 자리다. 사실상 하루 매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팔도특가에 올리는 상품에 대해선 철저한 회고가 이뤄진다. 어떤 지표를 가진 상품을 어떤 취지로, 어느 시기에 얼마나 할인한 가격으로 올렸는지, 문구는 어떻게 썼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왔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게재 일주일 이내에 MD팀 내부에 회람하고 자료로 남겨둔다. 강 대표는 “도전해 본 영역에 대해선 무엇이든 남겨놔야 한다는 부채 의식이 모두에게 존재한다. 추석 같은 대목 시즌에 대한 회고는 물론이고 작은 시도들에 대해서도 과정을 복기해보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대표는 “사람은 두려우면 하던 것만 한다. 심리적 안전감이 중요하다.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 성공과 실패에 따라 내가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이 있어야 한다. 라포테이블의 조직문화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경영진은 ‘계속 말하기’를 강조한다. 매주 열리는 올핸즈 미팅(All-hands meeting)에선 강 대표와 이 부대표가 회사의 5가지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를 골라 계속해서 소개한다. 핵심 가치 6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Company-wide View회사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② Integrity
언제나 진실합니다.
③ Team Player
착한 동료가 아니라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입니다.
④Act and Deliver Results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속도를 보여줍니다.
⑤ Focus on Impact냉정하게 중요한 일에 집중합니다.
⑥ High Standard집요하게 탁월함을 추구합니다.
3. 수익성 확보 전략(1) D2C 구조로 투입 비용 최소화라포테이블은 판매자의 상품을 대신 팔아주는 위수탁 방식을 택했다. 배송과 물류를 직접 맡지 않는 D2C(Direct to Customer) 구조로 투입 비용 부담을 줄였다. 플랫폼 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원동력도 여기서 나온다. 몸이 가볍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은 제품의 퀄러티 관리다. 특히나 팔도감의 타깃 고객은 제철 신선식품을 소비하는 깐깐한 고객층이다. 가격은 둘째 치고 맛이 없으면 완전한 실패다. 그래서 팔도감은 입점부터 판매 과정에서 상품의 질을 직접 검수하는 ‘상품위원회’를 운용한다. 직접 먹어보지 않은 건 팔 수 없다는 기조하에 100% 직접 맛을 본다. 상품위원회를 통과해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된 다음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어진다. 직접 직매입을 하고 창고에 보관하는 대신 단계별로 리스크를 면밀하게 체크하는 시스템을 뒀다. 리뷰에서 지속적으로 품질 이슈가 제기되거나 별점이 4.5점 아래로 떨어지면 알람이 울리기도 한다. 이 경우 곧바로 MD들이 나서서 품질 하락 이유를 파악하고 포장 개선이나 판매 중단, 가격 조정 등의 조치를 생산자와 함께 논의한다. 이를테면 예기치 못한 폭우 등의 이슈로 과일의 당도가 떨어지면 아예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하는 식이다.
거래가 급증하는 명절 성수기도 쉽지 않은 고비였다. 매출 상승을 위해선 B2B 대량 구매와 배송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처음 하는 일인데다 애초에 대량 판매를 염두에 두고 만든 생산지 연결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올해 설 명절만 해도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한 법인에서 주요 고객에게 보내기 위해 대량의 선물세트를 구입했는데 판매자가 택배를 미처 다 보내지 못한 것이다. 명절 기간엔 택배 배송 마감 날짜도 정해져 있고 택배사들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배송 예정일 하루를 앞두고 선물세트 50개를 배송했어야 하는 생산자에게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택배사에서 물량을 제한해 20개의 상품을 배송하지 못했다는 소식이었다. 방법은 직접 뛰는 것뿐이었다. 서울 수도권 지역에선 앱 개발자들까지 나서서 배송을 도왔다. 퀵서비스로 물건을 받아서 직원들이 퇴근길에 직접 배송을 마무리했다. 지방은 마지막까지 퀵서비스를 해주는 유통사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요금을 거의 두 배 이상을 줘 가면서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다.
경험은 노하우로 남는다. 지난 추석은 라포테이블이 네 번째 맞은 명절이었다. 강 대표는 “거래·배송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했다. B2B를 비롯해 거래량이 지난 명절보다 더 늘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명절 성수기 영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대량 주문에 대한 학습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2) 가공상품·PB 더해 수익성 제고“김치는 김장철 직전인 11월까지가 대목입니다. MD들이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넣어 김치를 구하고 있어요.”
팔도감의 매출과 수익성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김치다. 신선식품 이커머스를 표방했던 팔도감이 가공식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계기였다. 엄밀히 따지면 김치는 식품위생법상 가공식품이지만 그 특성은 여러모로 신선식품에 가깝다. 사람들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공식품 포트폴리오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기엔 제격이었던 셈이다.
강 대표에 따르면 김치를 선보인 건 한 기획전이 계기가 됐다. 한우 기획전을 추진하는데 ‘너무 고기만 가득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김치를 팔아보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촉박해 판매자를 섭외해서 입점시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기획전에 올려놓은 김치를 구매하면 오픈마켓에서 찾은 업체에 주문을 다시 넣어서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판매부터 시작했다. 프로모션을 딱 하루 앞두고 오픈마켓에서 품질 좋아보이는 김치 업체 한 곳을 물색해 일단 기획전 목록에 포함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김치가 많이 팔렸다. 그러자 판매자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당시 주문받은 김치를 오픈마켓에서 다시 구입할 때 이 부대표 ID를 사용했는데 특정 ID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김치를 한꺼번에 주문하니까 판매자 입장에선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던 거다. 확 오른 매출을 본 그 판매자는 자연스럽게 팔도감에 입점을 했다. 강 대표는 “이후 본격적으로 지역 특산 김치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치는 지역 특산물이기도 하다. 같은 배추김치라도 서울,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지역마다 색깔이 뚜렷하다. 돌산 갓김치같이 지역의 이름이 고유의 정체성에 가까운 김치도 있다. 특히 팔도감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은 김치의 다양성이다. 속초의 아가미 깍두기같이 먹는 사람만 먹는 이색 김치들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다루기 어렵다. 대량 생산과 판매가 쉽지 않은 니치 상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도감은 가능하다. 판매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재고가 있는 만큼만 판매하면 된다. 품절되면 다음번 상품 판매 시까지 대기 수요가 쌓이고 오히려 오픈런을 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상품 구색에 제약이 없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특성 덕분이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수익을 더한 게 PB 상품이다.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두 개의 PB팀을 두고 자체 브랜드 상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식품에선 반찬과 간편식 전문 PB ‘팔도다옴’, 간식 PB ‘온도감’ 등 3~4개 브랜드를 출시했다. 건기식에선 지난해 3월부터 ‘바로채움’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사실 PB라는 방법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유통업체가 가장 즐겨쓰는 방식 중 하나다.
라포테이블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수익성 확보만 목표로 삼지 않는다. 좋은 상품을 생산하지만 규모가 작은 생산자에게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주면서 스케일업을 돕는다는 게 포인트다. 강 대표는 “산지 직송 생산자 중에선 매출이 오르고 상품을 많이 파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좋은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품질을 유지하면서 물량을 늘리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PB를 통해 충분한 발주량을 확보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투자를 늘리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그는 “싸고 적당한 품질의 PB로 수익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좋은 상품을 발굴해 팔도감과 생산자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도구로 PB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 앞으로 극복할 과제라포테이블의 팔도감은 주먹구구 거래가 이뤄지던 신선식품 산지 직송 시장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공략한 버티컬 이커머스로 요약할 수 있다. 4050세대 고객에게 특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모회사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식품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신선식품 이커머스들이 대동소이한 상품 구성으로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을 앞세운 ‘속도전’에 몰두한 것과 달리 느리지만 확실한 맛과 품질로 승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마켓컬리나 오아시스 등 대형 신선식품 이커머스는 물론 비슷한 D2C 사업 구조의 정육각보다도 규모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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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컬 이커머스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매출 규모를 어디까지 늘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4050세대 일부가 특정 상품을 가끔 맛있게 먹고 싶을 때 찾는 플랫폼으로 남는다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 라포테이블이 최근 PB 상품 확대에 집중하거나 모회사의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퀸잇과의 본격적인 협업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포테이블은 다음 단계로 종합 라이프스타일 이커머스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강 대표는 “X세대 고객 특화, 산지 직송이라는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다양한 상품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이미 신선식품을 넘어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다루기 시작했다. 결국 핵심은 X세대 고객이었다. 우리 고객의 니즈를 꾸준히 탐색해 팔도감만의 차별화한 상품을 꾸준히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고객 충성도 돋보여… ‘PMF 40%’ 유지에 더 집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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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ygs9964@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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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감은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로 불리는 4050, X세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농수산 산지 직송 먹거리를 선보이며 급성장한 신선식품 이커머스다. 과거엔 생산자에게 직접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 결제를 하고 배송을 받던 산지 직송 서비스(P2P)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보다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시장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전형적인 디지털 플랫폼화 사업이지만 특징이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구매력이 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4050 소비자를 정조준한 버티컬 커머스라는 점이다. 실제로 필자가 직접 앱을 깔고 검색하고 구매해본 경험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우 유익했다. 기존의 이커머스에서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상품들이 즐비했고 다양하고 신속한 결제 시스템으로 손쉽게 제철 먹거리, 지역 특산물을 주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생산자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면서 한 상품군 안에서도 내가 원하는 생산자, 더 나은 상품을 찾는 즐거움을 줬다.
고객 충성도 40% 이상 유지가 관건
PMF(제품-시장 적합성)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PMF에 도달한 서비스는 고객들의 비용 지불 의사가 커지면서 매출이 증가하고 성장 모멘텀이 발생한다. 반대로 PMF에 도달하지 못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면서 시장에서 아웃되는 상황에 몰린다.
팔도감은 현재 거래 규모에서 일단의 PMF를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성장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사업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PMF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40% 룰’이다. 탁월한 마케팅으로 드롭박스(Dropbox)의 성장을 이끌었던 션 엘리스는 100개의 스타트업을 조사한 결과 ‘이 제품(서비스)을 사용할 수 없다면 당신의 기분이 어떨까요?’라는 질문에 전체 40% 이상이 ‘매우 실망’으로 답변한다면 이 서비스는 고객들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팔도감 사용자의 40% 이상이 ‘팔도감이 없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다’라는 입장이라면 4050의 필수 쇼핑 앱 반열에 올라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
PMF를 측정할 수 있는 대표 인덱스로 ‘순추천점수(NPS, Net Promoter Score)’도 있다. 제품을 경험한 기존 고객이 타인에게 추천할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를 말하는 것이다. 0과 100 사이의 척도를 고르게 하면 고객의 만족도와 충성 정도를 알 수 있다. 넷플릭스의 NPS는 64점, 구글이 53점, 애플이 49점(2018년 기준)이다. 팔도감이 NPS 40점 이상을 기록한다면 시장에서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이커머스 최대 강자 쿠팡의 경우 창업자 범 킴(Bom Kim, 한국명 김범석)은 ‘쿠팡 없이는 불편해서 살 수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미션이라고 말해왔다. 최근 상황을 보면 미션은 거의 현실이 됐다. 지난 8월 쿠팡이 월 구독료를 60% 인상했는데도 이탈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연간 구독의 갱신율도 90% 수준에 달한다. 팔도감이 이런 필수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거듭나려면 빠른 성장세 속에서도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4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향후 성장 전략의 핵심이다.
두 가지 도전
팔도감이 초기 성공을 넘어 지속 성장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고객과 셀러 양면 시장 참여자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데이터에 의한 결정, 민첩한 대응 등 초기 스타트업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성장을 소화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의 유치와 섬세한 조직 관리도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스마트 PB의 적극적인 개발이다. 그래야 향후 기업공개(IPO)나 고가 매각과 같은 소위 ‘대박’을 기대할 수 있다. 스마트 PB란 제조사 브랜드(NB)와 품질과 가격 격차가 크지 않으면서도 ‘친환경’과 ‘공정성’이라는 ESG 정신을 실현하는 유통업체 브랜드(PB)를 말한다. 영세 농축수산물 생산자를 핵심 이해관계자로 두는 팔도감은 스마트 PB를 만들기 용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생산자들의 실질소득 증가와 성장을 지원하고 도시인에게 친환경 식품을 제공한다는 고객 가치를 조합해 스마트 PB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스마트 PB는 팔도감이 X세대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도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플루엔서 마케팅도 검토할 만
오프라인 상거래의 경우 소비자의 구매 행동은 AIDMA(Attention(주의), Interest(관심), Desire(욕구), Memory(기억), Action(구매))의 순서를 따랐다. 그러나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 순서는 ‘AISAS’로 바뀌었다. AISAS란 주의(Attention), 관심(Interest), 검색(Search), 구매(Action), 공유(Share)를 뜻한다.
핵심은 ‘검색’과 ‘공유’다. 이전 소비자의 만족이 다음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소비 후 즉각적인 평가가 가능해지면서 쇼핑은 소비자 ‘개인의 사생활’에서 타인에게 공유되고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활동’으로 진화됐다. 미디어 행위로 변한 것이다.
팔도감이 한 단계 스텝 업을 하면서 산지 직송 먹거리 시장의 선두 주자 자리를 거머쥐기 위해선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작동해야 한다. 필자는 이 세렌디피티가 미디어적인 영역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팔도감은 적극적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 틈새 먹거리 미디어로 성장할 수 있다. X세대 팔로어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팔도감을 향한 강력한 인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팔도감에 매료된 인플루언서를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이 이뤄진다면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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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KIET) 수석연구원을 거쳐 현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브랜드(기업과 도시 브랜드)와 유통산업이다. 저서로 『보이지 않는 성장엔진:디자인, 브랜드, 명성』 『브랜드 스타를 만드는 상상엔진:이데아』 『브랜드 마케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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