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DBR Case Study: ‘변화의 설계자’ 현대카드의 혁신 전략

‘M’‘더 블랙’카드 등으로 시장 혁신 주도
이젠 데이터 역량으로 업계 변화 설계한다

이규열 | 393호 (2024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후발 주자였던 현대카드는 업계의 룰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룰을 제안하며 국내 카드 업계의 아이콘이 됐다. 2003년 선보여 현재까지 누적 발급 수 3500만 장에 달하는 현대카드M은 카드 업계 마케팅의 중심을 카드 ‘회사’에서 개별 카드 ‘브랜드’로 이동시켰다. 국내 첫 VVIP 카드인 더 블랙, 스포츠 경기 및 콘서트를 선보이는 ‘슈퍼시리즈’ 등은 실패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를 깨고 다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다양한 업계의 1등 플레이어들과 단독 제휴를 맺은 카드를 발행하고, 현대카드의 독자적인 데이터 역량을 통해 파트너들에게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 또한 현대카드가 디지털 시대에도 변화를 주도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카드 업계를 한마디로 딱 정리해 보자. 정답은 ‘다사다난’. 규제와 경기 영향에 취약한 금융업에 속하지만 유통업계 못지않게 트렌드에도 민감하다. 컴플라이언스를 엄밀하게 준수하면서도 저마다의 개성 있는 상품과 마케팅으로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어려운 전쟁터인 셈이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업계에서 후발 주자는 변화 속도에 맞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수라장과 같은 카드 업계에서 변화에 끌려가는 대신 변화를 설계하면서 국내 2위 업체(개인 신용판매 기준)로까지 부상한 후발 주자가 있다. 국내 카드 시장의 아이콘이 된 현대카드다. 현대카드는 누적 발급 수 3500만 장에 달하는 공전의 히트작, ‘현대카드M’을 20년 전 선보이며 알파벳 마케팅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이다. 연회비 100만 원에 달하는 VVIP 전용 카드 ‘더 블랙(the Black)’은 프리미엄 카드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고, 샘 스미스, 브루노 마스 등의 월드 클래스 아티스트의 내한으로 음악 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슈퍼콘서트는 문화 마케팅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다. 선두 주자의 움직임은 시선을 집중시키기 마련이다. 이에 업계의 질시와 우려가 교차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파격과 함께 업의 본질에 집중해 선도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기반으로 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일찍이 데이터 사이언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선제적으로 대비해온 덕분에 현재 데이터 사이언스는 마케팅부터 리스크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적용되며 현대카드의 디지털 체질 전환을 이끌고 있다.

앞선 혜안을 자랑해온 현대카드는 올해 4월, 새로운 슬로건인 ‘아키텍트 오브 체인지(Architect of Change)’를 발표했다. 우리말로는 ‘변화의 설계자’라는 뜻으로 ‘하나의 마을(업계)을 지어 나가는 건축가’에 현대카드를 빗댄 것이다. 현대카드가 10~20년 전 선보인 새로운 변화는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넘어 업계에 ‘헤리티지’로 기록되고 있다. 수많은 혜택 중 하나였던 포인트를 혜택의 중심으로 만들며 ‘국내 최장수 카드 브랜드’ 타이틀을 거머쥔 현대카드M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카드는 새 슬로건과 함께 혜택과 서비스를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정리한 상품 체계를 선보이며 또 한번 새로운 변화의 설계를 예고하고 있다. DBR이 지난 20여 년간 현대카드가 설계한 변화와 앞으로 설계할 변화를 취재했다.

20240507_110449


총알 갖춘 ‘꼴찌’의 진격

그때는 ‘꼴찌’였다. 현대카드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현대카드의 점유율은 약 1.8%로 업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 현대카드의 전신은 대우그룹의 계열사인 다이너스카드이다.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캐피탈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고 현대카드를 선보였다.

다행히 당시 카드 업계는 호황이었다.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과 소비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국민들의 신용카드 발행을 장려했다. 1990년 1000만 장이던 카드 발급 수는 2002년 무려 1억 장을 넘어섰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1998년 63조 원에서 2002년 622조 원까지 약 10배가량 증가했다.

업계 호황과 더불어 현대카드는 채무 재조정이 실시되고 채권단이 출자 전환해 2540억 원의 자본금을 조성하며 2000년 말 -(마이너스)6343억 원에 달했던 자기자본을 2001년 말 2505억 원으로 회복시켰다. 2000년 1503억 원 적자였던 실적 또한 2001년에는 6345억 원 흑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순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 부양이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하게 이뤄진 신용카드 발급은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독으로 되돌아왔다. 대금을 갚기 어려운 사람들은 소위 ‘카드 돌려막기’로 버텼고, 대금 회수가 어려워진 카드사들까지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2000년 말 80만 명이던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는 2003년 372만 명까지 늘었다. 2001년 말 2.6%에 불과했던 신용카드 연체율은 2003년 말에는 14.1%까지 치솟았다. 그 여파로 당시 업계 1위이던 LG카드가 부실을 해소하지 못하고 2006년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되기도 했다.

카드사를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급격히 성장하는 시장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카드사들의 판촉 경쟁이 치열해지자 소득이 없는 대학생부터 심지어는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하는 카드사도 있었다.

기아자동차에서 구매본부장(전무)을 지내고 있던 정태영 부회장(당시 부사장)이 구원투수로 현대카드에 투입된 것도 이 무렵인 2003년 1월이다. 현대카드로 옮긴 정 부회장은 조직 재정비에 큰 공을 들였다. 당시 한 차례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업계가 크게 휘청거리는 경험을 한 직원들의 불안감이 조직 내에 만연했다. 정 부회장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도 “후발 주자여서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을 5가지씩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며 조직 내 팽배한 패배 의식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어서 ‘속도(speed)’ ‘끝없는 변화(never ending change)’ ‘전략에 집중(strategic focused)’ ‘혁신(innovation)’이라는 4대 경영 방침을 발표하며 조직의 구심점을 마련했다.

증자를 둘러싼 그룹사와의 협상에서도 정 부회장의 리더십이 빛났다. 현대카드는 그룹사와의 협상을 통해 2003년 3월 1800억 원, 그해 6월에는 31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이끌어냈는데 정 부회장에 대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신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재무건전성을 확보한 현대카드는 당시 힘든 업계 상황 속에서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40507_110458


1. ‘기업’에서 ‘카드’로

1) 라이프스타일로 수평 확장, ‘현대카드M’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한 카드사 CF 대사가 무색하게 신용카드 때문에 고객과 카드사 모두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판촉과 선전을 등에 업은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차별화된 상품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당시 긴축 경영이 업계 전반의 분위기였으나 현대카드는 오히려 신상품 개발에 나섰다. 신용불량 고객 관리나 연체 회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뾰족한 ‘킬링’ 아이템이 없으면 회사의 영업이익은 늘어날 수 없었다.

2002년 12월 현대카드는 새로운 카드를 준비하기 위한 TF인 ‘엑스칼리버’를 출범했다. ‘날카로운 칼끝으로 위기를 돌파해 카드 업계 아서왕이 되자는 뜻’이었다. 마케팅본부 내 10여 명의 직원은 시장 현황을 철저히 파악하고 후발 주자로서의 포지셔닝 전략을 고민하는 등 밤낮없이 회의를 거듭했다. 제품의 내부 코드명은 ‘황산벌 전투’였다. 당시의 절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던 2003년 1월, 현대카드로 막 자리를 옮긴 정태영 부회장은 손수 커피를 사 들고 엑스칼리버를 찾아왔다. 그는 “현대카드에 와서 브리핑을 들어 보니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 여기인 것 같아 왔다”며 “해결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그날 저녁 바로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 정 부회장에게 보냈고 신상품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마침내 2003년 5월, 상품 개발에 400억 원, 전산 시스템 개발에 200억 원, 총 600억 원을 투자한 ‘현대카드M’을 출시했다. 당시 경쟁사들이 이용 금액의 0.1~0.5%가량을 포인트로 지급했는데 현대카드M은 이에 4~20배가량 많은 2% 포인트 적립을 내세웠다. 당연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렇게 모은 ‘M포인트’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신차 구입 시 할인 혜택을 받거나 항공권 구입, 온라인 쇼핑, 패밀리 레스토랑 할인 등 다양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국내 최초 선할인 제도라 할 수 있는 ‘세이브 포인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룹사의 자동차를 구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50만 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추후 카드를 사용하며 쌓이는 포인트로 상환하게 했다. 고객이 필요한 때에 혜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포인트 적립-사용의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20240507_110509


당시 수많은 혜택 중 하나에 불과했던 포인트에 집중한 것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업계에선 나이, 성별, 소득 수준 등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용 카드를 출시하는 데 그쳤다. 예컨대 여성 전용 카드를 자칭하며 출시한 카드들은 백화점, 대형 마트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국내외 카드 시장의 트렌드를 조사하고 고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다 의문이 들었다. 모든 여성이 쇼핑을 선호할까? 여성만 쇼핑을 선호할까? 이에 현대카드M은 하나의 카드로도 고객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실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대 적립처, 최고 적립률’로 대표되는 포인트 제도를 강화했다. M이라는 알파벳을 내세운 것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의미에서 ‘멀티플(Multiple)’의 앞 글자를 따온 것이다.

현대카드M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2003년 5월 1일, ‘M도 없으면서 쯧쯧…’이라는 카피가 담긴 티저광고를 내보냈다. 그런데 회사와 제품을 철저히 숨기고 알파벳 ‘M’만을 내세웠다. 대중이 이 광고의 정체를 두고 “자동차 광고다” “맥도날드 광고다” 갑론을박하며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후 현대카드M을 본격적으로 공개하는 광고에는 “M으로 바꾸니까 차 살 때 200만 원 굳었잖아요”라고 혜택을 강조하며 “이제 당신도 M으로 바꿔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포인트를 중심으로 혜택을 단순화했다고 해서 고객 분석을 소홀히 진행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카드는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석’을 강조한다. 시장 조사, 세그멘테이션 마케팅, 라이프스타일 분석까지 정교하게 실시했고, 모든 결제 행위 하나하나에 혜택을 부여할 수 있어야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카드의 예측은 적중했다. 출시 1달 차인 2003년 6월 기준 현대카드M 발급 수는 약 8만9000건에 육박했는데 당시 경쟁사들의 경우 2만 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달 현대카드M 신규 회원의 1인당 평균 이용액은 157만 원으로 88만2000원 수준이었던 기존 카드에 비해 약 80%가량 늘었다. 한편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월 127만5000원에서 106만7000원 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이는 현대카드의 신규 고객이 우량 고객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카드M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로는 25~35세 고소득 직장인을 주요 타깃으로 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포인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용처를 확대한 점이 젊은 층의 소비 패턴에 잘 부합하며, 특히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차량을 구입할 계획이 있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그룹사와 연계된 차량 할인 혜택이 크게 작용했다. 업계 최초로 투명한 카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이 역시 개성 강하고 패션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갖고 싶은 패션 아이템’으로 소구됐다.

현대카드M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이었다. 출시 1년 차에 회원 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카드 사용률도 35.8%에서 61.5%로 크게 향상됐다. 우량 회원들이 유입되면서 자산 구조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인 초회 입금률도 99% 수준으로 높아졌다. 2007년에는 국내에서 단일 카드 최초로 회원 수 5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당시 서울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현대카드M의 흥행에 힘입어 2001년 1.8%에 불과했던 개인 신용판매 기준 점유율은 그해 12.8%가량으로 10배 이상 껑충 뛰었다. 현재 출시 21년을 맞이한 현대카드M의 누적 발급 수는 3500만 장에 달한다.

특히 현대카드M은 카드 업계 마케팅의 판도를 ‘카드사’에서 ‘상품’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는 개별 카드의 장점을 부각하기보다 기업 자체의 인지도에 의지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반면 현대카드M의 등장 이후로는 개별 카드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됐고 기업 간 경쟁이 아닌 브랜드 간 경쟁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현대카드는 현대카드M의 성공적인 출시 이후 쇼핑 혜택을 강화한 현대카드S(Shopping),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CM송으로도 유명한 여행 및 레저에 특화된 카드인 현대카드W(Weekend) 등을 선보였다. 이로써 성별, 연령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 맞춤형 혜택과 알파벳을 매칭한 알파벳 마케팅 시대를 열었다. 우리카드는 우리V카드, 기업은행은 알파카드 등 현대카드의 알파벳 마케팅을 벤치마킹한 상품을 내놓았다. 카드 업계뿐만 아니라 게임, 이동통신 등 다양한 산업에서도 알파벳 마케팅이 활용됐다. 현대카드는 “리서치 결과 소비자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메시지보다 알파벳이나 숫자와 같은 간단명료한 기호를 더 잘 인식하고 기억한다”며 알파벳 마케팅의 성공 이유를 설명했다.


2) 프리미엄으로 수직 확장, ‘더 블랙’

‘컬러’를 입힌 라인업도 선보였다. 현대카드M을 통해 우량 고객을 확보한 현대카드는 프리미엄 고객으로도 눈을 돌렸다. 이들은 이용 금액이 클 뿐만 아니라 대중이 이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를 선망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기에 전략적으로 유치해야 하는 고객군이었다.

당시에도 현대카드는 물론 카드 업계에도 프리미엄 카드들이 존재했지만 그 정의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신용도와 사용 금액 등을 기준으로 골드와 같은 등급을 매긴 후 골드 카드의 회원이 늘어나면 그 위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시그니처 등 새로운 등급이 원칙 없이 계속 생겨나는 식이었다. 프리미엄 카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희소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카드는 기존의 접근법대로 아래 등급을 시작으로 위 등급을 설계하는 일종의 ‘보텀업’ 방식을 탈피하고 그 반대인 ‘톱다운’ 방식으로 프리미엄 라인업을 구축했다. 2005년 2월 출시한 국내 최초의 VVIP 카드인 ‘더 블랙(the Black)’을 시작으로 ‘더 퍼플(the Purple)’ ‘더 레드(the Red)’ 등 하위 카드를 선보며 컬러에 고객 페르소나를 담았다.

더 블랙의 출현은 파격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상위 0.05%를 겨냥한 VVIP 전용 카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연회비는 연간 100만 원, 월 신용한도는 1억 원에 달했다. 더 블랙 이전 가장 비싼 카드의 연회비는 20만 원에 불과했다.

돈만 있다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비테이션 온리(Invitation Only)’ 방식으로 현대카드 측에서 직접 초대한 이들만 가입을 신청할 수 있으며 정 부회장이 직업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인 ‘더 블랙 커미티’에서 만장일치로 최종 승인이 이뤄져야 가입할 수 있었다. 재산이나 소득 등 양적 기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같은 질적인 지표도 중요하게 따졌다. 당시 국내에서 연간 1억 원 이상 카드를 쓰는 사람이 3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 가입 정원도 9999명으로 제한했다. 발급 순서대로 번호가 부여되는데 1번은 정몽구 명예회장, 9999번은 정 부회장이 부여받았다.

콧대 높은 더 블랙 출시 소식에 업계에선 우려의 시선이 컸다. 당시 프리미엄 카테고리가 명확하지 않았을뿐더러 나아가 VVIP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초고소득자들은 소비의 노출을 꺼리며 신용카드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었다.

더 블랙은 또다시 업계의 상식을 뒤집었다. 출시 100일 차에 가입자는 300여 명에 달했는데 10대 그룹 내 대기업 오너 일가 형제 등 기업 임원이 70%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 30%는 의사나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 스포츠 선수, 연예인 등이었다. 초청장을 보내 달라는 전화는 하루 30통 이상 걸려 왔으며 명함,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 기초 서류를 넣어둔 사람만 350명에 달했다. 1인당 월평균 사용액은 500만 원 이상이며 1억 원가량 쓰는 회원도 10명 안팎에 달했다. 이들의 연체율 또는 현금서비스 사용률 또한 0에 가까워 목표한 대로 초우량 고객 확보에 성공한 셈이다.

20240507_110520


더 블랙 고객들에겐 그 명성에 걸맞게 명품 의류 교환권,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 업그레이드, 해외 골프장 부킹 상담, 명품 브랜드 할인 등 호화로운 혜택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 CEO와의 조찬 모임, 세계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의 프라이빗 공연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예컨대 2007년에는 이브 카셀 루이비통 전 최고경영자(CEO)와 더 블랙 회원 간의 조찬 모임 및 저녁 파티가 성사됐다.

업계의 예상을 깬 더 블랙의 성공에 경쟁사들은 급하게 프리미엄 카드를 내놓았다. 비자카드는 2005년 10월 비씨카드, 신한카드 등과 연계해 연회비 50만~100만 원에 달하는 ‘인피니트’ 카드를 선보였다. 인피니트 카드는 출시 약 1주일 만에 3000여 장이 발급될 정도로 인기를 끄는 듯 보였으나 예상 밖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혜택으로 국내 골프장 주중 무료 라운딩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예측 이상으로 수요가 몰리며 고객들이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카드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골프 서비스 리콜이 이어졌다. 발급은 중단됐으며 연회비가 환불됐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서비스의 위험을 경고하는 동시에 “프리미엄 업계에서 더 블랙만 순항 중”이라는 평가를 얻게 된 사건이었다.

이에 현대카드는 자체적인 프리미엄 라인을 구축해 나갔다. 2006년 1월에는 더 블랙에 이어 상위 5%를 공략한 연회비 30만 원의 더 퍼플을 출시했다. 연봉 1억 원 수준의 대기업 및 외국계 기업 부장급 이상, 전문직 종사자 등을 타깃했다. 2008년에는 일과 삶의 여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2030 프리미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연회비 15만 원의 더 레드를 선보였다. 단순히 연회비와 실적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 과거의 프리미엄 카드와는 달리 알파벳 라인업처럼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색상을 부여한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현재는 두 차례 개편을 거쳐 ‘더 블랙 에디션 3’가 발급되고 있다. VVIP 시장을 노리는 경쟁사들이 유사한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연회비 250만 원, 가입 인원 1000명 제한으로 더 엄격한 프리미엄 정책을 고수하게 됐다. 더 블랙은 국내 대표 프리미엄 카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정재, BTS(방탄소년단)의 진과 정국, 블랙핑크 리사 등 셀럽들이 사용하는 카드로 입소문이 나며 선망의 대상이 됐다. 더 퍼플은 연회비 80만 원, 더 레드는 30만~50만 원으로 올랐으며 엔트리 라인으로 여행에 초점을 맞춘 ‘더 그린(the Green)’과 쇼핑에 집중한 ‘더 핑크(the Pink)’를 새로 선보였다.

이처럼 탄탄하게 구축한 프리미엄 고객군은 위기에 빛을 발했다. 엔데믹 이후 이어진 불황에도 전 카드사 중 가장 큰 회원 증가세를 보인 비결이 프리미엄 시장 개척에 있었다는 것이다. 2023년 말 현대카드의 전체 회원 수는 1173만 명을 기록했는데 엔데믹 전환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2021년 말 대비 약 16%가 증가했다. 2023년 말 프리미엄 회원 수는 약 28만 명에 달했고 2021년 말 대비 약 72%가 늘어나 전체 회원 수 대비 4배 이상 높은 성장세를 자랑했다. 프리미엄 회원 수는 올해 2월 말 32만 명을 돌파했다.

20240507_110532


2. ‘혜택’에서 ‘경험’으로

2002~2003년 침체됐던 카드 업계 분위기는 2005년 하반기 서서히 활력을 되찾아갔다. 대부분의 회사가 흑자로 전환했고 신제품 개발, 마케팅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혜택을 중심으로 한 개별 카드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자 2006년 이후 금융감독원에서는 과도한 부가서비스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당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카드사들은 무리한 혜택을 담은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은 후 금감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혜택을 줄이는 ‘치고 빠지기’ 식 영업을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금서비스 연장 서비스 또는 교통비 할인, 무이자 할부, 연회비 면제 등을 앞세운 카드는 해당 서비스나 카드 발급 자체를 중단하도록 했다.

카드 업계는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한다고 불만을 표시했으나 실제로도 카드 업계 모집 비용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2005년 1660억 원이었던 카드 모집 비용은 2007년 2950억 원, 2008년 3794억 원, 2009년 3932억 원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5388억 원에 육박하며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4777억 원을 넘어섰다.


1) 문화 마케팅의 정수, ‘슈퍼시리즈’


이처럼 혜택을 중심으로 한 상품, 마케팅 경쟁의 심화는 기존의 부가서비스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는 신호였다. 이 시기 현대카드는 문화 마케팅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부가서비스로 차별화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현대카드의 고객이라면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고객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시작은 ‘슈퍼매치’였다. 슈퍼매치는 각 스포츠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선수들의 빅매치를 직접 기획해 선보이는 것으로 권위 있는 스포츠 행사를 후원하며 광고를 노출하는 기존의 스포츠 마케팅과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2005년 처음 선보인 슈퍼매치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테니스 대결이었다. 업계에서는 또 한번 코웃음을 쳤다. 금융에 주력해야 하는 카드 회사가 스포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심지어 야구나 축구가 아닌 비인기 종목인 테니스 대회를 연다는 것에 비관적인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현대카드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에도 테니스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았고 과거부터 유럽의 귀족 스포츠라는 점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는 데도 적합해 보였다. 업계의 조롱과는 달리 실제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호응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첫 행사부터 전 좌석 매진을 기록한 것이다. 현장에서도 현대카드 광고보다 선수와 행사와 관련한 안내에 집중했다. 이에 관객들은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2007년 슈퍼시리즈는 슈퍼콘서트로 확대됐다. 슈퍼매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성공 가능성에 고개를 가로 저었고 문화계 전문가들조차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 점쳤다. 그러나 세계적인 남성 보컬 그룹 일디보(Il Divo)의 내한 공연으로 시작된 슈퍼콘서트는 스티비 원더,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 퀸 등 지금까지 총 27팀의 세계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국내 무대에 올렸다. 특히 비욘세, 어셔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첫 한국 내한 공연을 개최했다는 점에서 국내 음악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 기획부터 공연장까지 가는 경로 기획, 안전한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소비자 경험을 진두지휘하며 한국 공연 문화의 생태계까지 단숨에 바꿔 놓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20240507_110544

사실 이러한 초대형 문화 사업은 출연자들의 개런티가 천문학적인 액수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현대카드가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몸값을 부풀려 공연 업계를 위기로 몰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현대카드 측은 “슈퍼스타들의 공연에서 현대카드는 공연기획사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양질의 공연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끔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공연 진행 과정에서 현대카드는 공연기획사의 티켓 판매와 수익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얼핏 들으면 현대카드가 자선 행사를 여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슈퍼시리즈를 통해 현대카드가 얻는 이익도 분명하다. 슈퍼매치Ⅲ에는 남성 테니스 세계 1, 2위인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을 맞붙였는데 나이키, 기아자동차부터 롤렉스와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협찬사로 나섰다. 현대카드는 이 경기를 통해 약 300억 원의 광고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슈퍼콘서트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출연 스타에 대한 막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현대카드를 사용하는 지인을 찾거나 직접 현대카드를 발급받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에 달하는 할인을 받기 위해서다. 더 퍼플 등 프리미엄 카드 고객들은 우선적으로 예매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현대카드를 통해 슈퍼콘서트를 예매하는 관객은 90%에 달한다.

20240507_110558


2) ‘공간’ 통한 지속적 접점 구축

2013년에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개관했다. 업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신용카드와 도서관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공간을 구축해 단발적인 행사를 넘어 지속적인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인 금융을 판매하는 기업이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아날로그적으로 고객들과 교감하는 것이다. 특히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헤리티지를 아카이브하는 공간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에도 적합했다.

라이브러리의 첫 번째 테마가 디자인으로 선정된 것은 현대카드의 브랜드 DNA가 디자인에 녹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는 역발상을 앞세운 상품과 마케팅뿐만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인정받고 있었다. 현대카드M을 출시하며 투명 카드를 선보였고 이후에는 기존 카드 크기의 절반인 미니 카드를 선보이며 목걸이, 열쇠고리 등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프리미엄 카드에는 티타늄, 리퀴드 메탈, 코팔 등 새로운 소재를 적용해 고객으로 하여금 특별함을 만끽하게 했다. 2017년에는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모바일 화면을 본딴 세로형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는 IC칩을 활용한 새로운 결제 방식에도 적합했다. 현대카드가 카드 디자인에 진심인 이유는 카드를 단순히 결제 수단을 넘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선함은 물론 감도 높은 디자인을 구현해내며 ‘디자인 때문에 현대카드를 만들었다’는 고객들도 생겨났다.

2003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개발한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를 발표했다. 지금이야 네이버의 나눔체, 우아한형제들의 한나체 등 기업을 대표하는 서체가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업이 자신만의 서체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다. 특히 신용카드를 모티브로 삼아 플레이트의 둥근 모서리 모양을 형상화한 점은 현대카드가 신용카드라는 본업을 브랜딩 차원에서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의 독보적인 디자인 역량을 확장하는 작업이었다. 디자인이야말로 현대카드 정체성의 바탕이자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역인 만큼 이 분야에서 리더십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후 트래블·뮤직·쿠킹 라이브러리를 잇따라 열었고 2022년 ‘아트 라이브러리’까지 오픈했다.1 총 27회 진행된 슈퍼콘서트 누적 관객 수는 총 70만 명인데 2013~2023년 사이 라이브러리 누적 방문자 수는 총 550만 명으로 공간을 통해 상시 고객들과 오프라인에서 소통하겠다는 현대카드의 발상은 적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0507_110609


3) NFT 모범 사례 만든 ‘다빈치모텔’

2019년에는 문화 융복합 이벤트 ‘다빈치모텔’을 선보였다. 이전의 문화 마케팅 이벤트가 음악, 전시, 스포츠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한 형태였다면 다빈치모텔은 학문, 경영, 기술 등 각 분야의 독보적인 아이콘을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특히 2023년 다빈치모텔에는 이효리, 멜로망스, 이적, 장기하 등 뮤지션뿐만 아니라 생태학자 최재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코미디 크루 숏박스 등 다양한 영역의 연사가 참여해 공연을 선보이거나 전문 분야에서의 통찰을 나눴다. 정 부회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도 ‘브랜딩하는 CEO vs 경영하는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토크를 펼쳤다.

출연자의 면면이 화려한 만큼 큰 이목이 집중됐고 이에 오랫동안 공연 문화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023년 6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7 브루노 마스(Bruno Mars)’ 공연 티켓 발매 이후 암표가 기승을 부리자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 구상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페이스북에 “브루노 마스 공연을 계기로 우리가 직접 나무 위에 올라가 사과를 따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암표를 막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확대하는 일은 이제 현대카드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됐다”고 밝혔다.

20240507_110621


현대카드는 앞선 2022년 프로그래머 이두희가 설립한 프로그래밍 교육 단체 ‘멋쟁이사자처럼’과 합작법인(JV) ‘모던라이언’을 설립했다. 모던라이언이 NFT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 ‘콘크릿(KONKRIT)’을 개발하고 다빈치모텔의 티켓 전량을 NFT 티켓으로 발행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암표 구매 및 거래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추첨 응모·티켓 구입·현장 QR 체크인 입장 등 모든 과정을 앱 안에서 원스톱으로 진행해 공연 관람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다빈치모텔은 국내에서 열리는 대규모 공연 중 NFT로 티켓 전량을 발행한 첫 번째 사례였다.

2023년 연말에 가수 장범준은 소극장에서 공연을 치르려 했으나 원래 가격에 3배가 넘는 암표가 기승을 부리자 공연 자체를 취소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에 현대카드는 지난 2월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 위치한 공연장인 언더스테이지에서 ‘현대카드 큐레이티드(Curated) 92 장범준: 소리 없는 비가 내린다’를 열며 공연 티켓 전량을 NFT로 발행했다. 장범준 측은 “NFT 티켓을 활용하면 암표 거래를 없애고 건강한 공연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현대카드·모던라이언과 손을 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의 NFT 실험은 루나 사태 이후 가상화폐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관심이 사그라든 NFT를 실제 세상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모범 사례를 선도적으로 개척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3. ‘독자 생존’에서 ‘독점적 파트너십’으로

물론 좋은 날만 계속되지는 않았다. 카드사들의 실적이 개선되자 마케팅 경쟁이 과열됐으며 동시에 가계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 정부가 더욱 강하게 카드사를 압박했다. 2011년 이후 카드사 매출의 약 70%에 해당하는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했고 카드론 규제는 강화했다. 2012년에는 대선을 기점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압박이 커지며 프리미엄 카드가 부자들에게만 호화스러운 혜택을 제공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카드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익성 확보를 위해 부가서비스 축소에 들어갔는데 이에 수수료 인하로 인한 피해를 개인 고객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화 마케팅을 통해 혜택의 범위를 문화적 경험으로까지 확대하며 차별화를 꾀한 현대카드였지만 업의 본질인 ‘상품’에도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7월 현대카드는 향후 10년을 이끌 새로운 상품 체재인 ‘현대카드 챕터 2’ 시대를 공표했다. 현대카드M이 발표된 지 10년 만이었다.

챕터 2를 준비하면서 정태영 부회장은 ‘Day 1’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오늘이 출근 첫날이라 생각하고 10년 동안 해왔던 것을 완전히 제3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TVA(Total View Accounting)’라는 독자적인 회계 기법을 개발하며 회사의 비용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통상적인 회계 기법과는 달리 중복 카운팅을 허용하면서 비용의 실질적인 파급력을 가시화하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고객 관련 비용의 실체를 뜯어보니 기존 회원의 유지보다 신규 고객 유치에 드는 비용이 과도하게 많았다. 일부 고객은 카드를 발급해두고 잘 안 쓰는데 이상하게 분실률은 더 높았다. 이들 고객은 카드사에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2

복잡한 고객 행동과 비용을 정교하게 나눠보며 상품의 가짓수를 줄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상품 숫자가 줄면 고객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경상비, 마케팅 비용 등이 크게 줄기 마련이다. 이에 기존 22개에 달했던 상품 수를 7개로 대폭 줄였다. 이용 금액에 따라 한도 제한 없이 최대 4%의 포인트를 적립해주거나(M계열), 특화가맹점에서 최고 5% 캐시백해주는(X계열) 등 더 넉넉하게 챙겼다. 동시에 M포인트 사용처를 3만 개로 확대 운영했으며 그 수도 꾸준히 늘려 나갔다. 핵심은 우량 고객을 확실히 잡는 것이다. 월 50만 원 이상을 사용한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만 포인트 적립 및 캐시백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1) 제휴의 한계 극복하는 PLCC

제휴 카드의 효용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카드사는 판매 채널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제휴 카드를 선보였다. 그러나 기존 제휴의 경우 파트너사가 이름만 빌려주는 식에 가까웠다. 하나의 대형 가맹점이 여러 개의 카드사와 상품을 내놓은 경우도 많아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파트너사의 관심 부족으로 모집과 이용이 저조한 경우도 많았다. 혜택에 대한 비용 역시 카드사의 부담이었기에 카드사의 수익을 저해하는 상품도 있었다.

현대카드는 ‘파트너십’을 강조한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에 주목했다. PLCC는 이름 그대로 다른 상업자(파트너사)의 상표를 전면에 내세운 카드다. PLCC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파트너사가 참여한다. 양사가 독점적인 계약을 맺고 서로의 사업 목표 실현에 도움을 주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카드사는 파트너사의 고객을 자사의 고객으로 영입할 수 있으며, PLCC를 발급한 고객은 연회비 등이 전환 비용으로 작용해 파트너사에 록인될 수 있다. 고객들 또한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에 대한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다. 여러모로 윈-윈을 거둘 수 있는 상품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카드사의 경우 매출의 30%가량이 PLCC를 통해 발생하고, PLCC 고객의 파트너 매장 방문율은 약 3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은 상품이었지만 미국에선 보편적이었다.

기존 제휴 상품의 단점을 극복하면서도 선진국에서 가능성을 입증받은 PLCC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실험해 볼 만한 상품이었다. 현대카드에서 처음 선보인 PLCC로는 2015년 출시한 ‘이마트e카드’가 있다.3 당시 현대카드와 이마트는 상품 기획 과정에서부터 고객들과 심층 면담을 진행하거나 축적된 고객의 목소리를 분석하며 잠재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했다. 직접 고객들과 면담해 보니 기존 카드들은 대형 마트에만 혜택이 집중돼 있었기에 다른 곳에서의 혜택이 부족한 점이 불편 사항으로 꼽혔다.

현대카드와 이마트는 기존 서비스에 고객의 소리를 연결하며 혜택을 높였다. 사용 실적에 따라 이마트는 물론 신세계백화점, 조선호텔,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 스타벅스, SSG.COM 등 신세계 전 계열사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신세계포인트를 적립해준다. 또한 전국 현대카드 가맹점 어느 곳에서 사용하더라도 조건 없이 0.7%를 신세계포인트로 적립해줬기에 장소에 따라 어떤 카드를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덜었다.

이마트e카드는 출시 2달 만에 8만 장 이상 발급되며 대표적인 대형 마트 카드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포인트를 중심으로 범용성을 높인 적립 혜택이 인기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현대카드의 PLCC 공략은 2018년에 절정을 맞이한다. 그해 7월 PLCC 담당 조직이 팀에서 실로 격상하며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8월, 현대카드가 코스트코 코리아의 새로운 파트너사로 선정됐다. 코스트코는 한 국가에서 하나의 파트너십만 체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 18년 동안 줄곧 삼성카드가 그 자리를 차지해왔기에 업계에 미친 충격파가 컸다. 코스트코는 단독 파트너십을 통해 수수료에 대한 협상력을 갖는 한편 매출액도 워낙 방대하기에 카드사 역시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였다. 2016년 코스트코의 연 매출액은 3조8040억 원 수준이었는데 0.7%의 수수료율만 잡아도 200억~300억 원의 수수료를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당시 현대카드는 2018년 코스트코와의 제휴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하며 “PLCC 전문 조직을 운영하고 데이터 분석과 활용 등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보여준 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PLCC는 2021년 말, 현대카드가 1000만 회원을 넘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8년과 비교해 2021년 회원 수는 83만 명에서 320만 명으로 280% 넘게 성장했고 PLCC 회원 비율 또한 11%에서 32%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2023년 5월에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의 프리미엄 카드 상품 3종(플래티넘, 골드, 그린)을 국내 단독 발급하기로 했다. ‘블랙카드’로 불리는 아멕스의 ‘센츄리온 카드’는 현대카드 더 블랙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블랙카드는 미국 기준 가입비 1만 달러(약 1385만 원), 연회비 5000달러(약 692만 원)에 달한다. 아멕스에 투자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아멕스 투자 배경에 대해 “수천억 달러의 돈이면 어떤 사업이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아멕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아멕스 카드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삼성카드가 단독 발행하던 상품으로 삼성카드는 코스트코에 이어 아멕스까지 현대카드에 넘겨주게 됐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8월 말 기준 국내 신용카드사가 발급한 PLCC 중 약 89%는 현대카드였다. 또한 발급 매수 기준 상위 10개 카드 중 9개 카드가 모두 현대카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 네이버, 스타벅스, 넥슨, 대한항공, 무신사, 배달의민족 등 PLCC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성장한 결과, 2023년 말 기준 현대카드 회원 수는 1173만 명을 돌파했다.

20240507_110634


2) ‘도메인 갤럭시’, 챔피언스 클럽의 데이터 동맹

현대카드는 PLCC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데이터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2) 1등 기업과 3) 독점적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최초로 PLCC에 데이터 사이언스를 접하며 현대카드와 18개의 PLCC 파트너사들의 데이터 동맹인 ‘도메인 갤럭시(Domain Galaxy)’를 선포했다. 도메인 갤럭시에 속한 기업이 현대카드를 포함한 다른 PLCC 파트너사에 크로스 마케팅을 제안하면 현대카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및 AI 기술을 기반으로 고도화된 타기팅이 가능하다. 최근 GS칼텍스는 현대카드의 고객 110만 명을 대상으로 GS칼텍스의 에너지플러스앱 설치 마케팅을 추진했는데 당시 월 가입 회원의 20% 가까이를 현대카드와의 협업을 통해 확보했다. 이후 마케팅의 효과를 체감한 GS칼텍스는 지마켓, 코스트코, 이마트 등 다른 PLCC 파트너들과의 크로스 마케팅을 추진한다.

쏘카와 이마트, 코스트코, 넥슨 등이 함께한 쏘카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패스포트 가입 프로모션 프로젝트를 통해 크로스 마케팅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쏘카가 원하는 25~35세 남성 중 차량 이용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위해 남성/오프라인 활동/차량 이용 등에 타기팅된 파트너사를 추천하고 각 파트너사 가운데에서도 연령, 주차 등록 경험 등 세부 타기팅을 추가해 스페셜 쿠폰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러한 현대카드의 AI•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협업 건수가 2020년 총 10건에서 현재 약 2000건으로 증가할 만큼 파트너사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현대카드는 고도로 개인화된 타기팅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해선 1등 기업과의 독점적 파트너십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파트너들이 복수의 카드사와 PLCC를 만들게 되면 데이터들이 쪼개질 수밖에 없으므로 독점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더불어 파트너사 간 최고의 시너지 창출 또한 목표로 하기에 1등 기업과만 함께한다. 이를 위해 현대카드는 주요 소비 영역을 대표하는 ‘No. 1 플레이어’들을 모두 포괄하는 PLCC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런 PLCC 파트너사들을 ‘챔피언스 클럽(Champions Club)’이라 지칭한다. 현대카드를 포함한 19개 파트너사의 회원은 2억3000만 명에 육박하기에 이들의 고객 및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4. ‘금융’에서 ‘테크’로

1)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설계’

현대카드가 데이터에 주목하게 된 역사는 수수료 인하와 마케팅 경쟁 심화로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던 2010년대 초로 되돌아간다. 당시는 구글 등 포털을 중심으로 디지털 광고가 TV CF, 옥외광고 등 전통적인 광고 시장을 빠르게 흡수했다. 아울러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보편화로 더욱 개인적인 플랫폼에 광고를 선보일 수 있게 되면서 어떻게 고객 데이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맞춤형 광고를 설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 또한 일찍이 데이터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 부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가맹점 수수료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구글, 네이버와 같은 테크 기업들이 금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앞날을 생각하니 답답했다”며 “임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결론은 1년에 2000억 원 정도만 벌고(당시 영업이익 3000억~4000억 원) 나머진 모두 AI에 쏟아붓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현대카드의 강점 중 하나로 꼽히던 TV 광고를 포기하면서까지 AI에 투자했다.

현대카드는 현재까지 AI에 약 1조 원을 투자했는데 그중 2000억 원가량을 알고리즘 개발에 쏟았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알고리즘은 직접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남들이 잘 개발해 둔 알고리즘을 가져다 쓰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데이터 설계를 대신해주는 곳은 없었다. 현대카드에서도 쓸 만한 데이터는 많았는데 이를 자체적인 문법에 맞게 정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카드가 쓰기 어렵다면 다른 기업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현대카드가 데이터 설계에 투자를 집중한 것이었고 현재는 정 부회장 또한 “데이터 설계에서만큼은 세계 금융사 중 최고”라고 단언할 정도로 큰 자신감을 내비쳤다.4

보통 기업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때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델을 생성해 비즈니스에 적용한다. 이에 반해 현대카드는 보유한 데이터의 속성을 분석해 ‘태그(tag)’라는 체계로 구조화해 놓았다. 이때 결제 데이터뿐만 아니라 시공간적 데이터, 글 등 비정형 데이터까지 결합해 결제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니즈가 생겼을 때는 이러한 태그를 최적화해 선택 및 조합할 수 있는 AI 체계를 만들었다. 여러 식재료를 속성에 따라 분류해 놓은 후 원하는 메뉴가 생기면 식재료들을 선택하고 조합해 밀키트를 만든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 설계 역량은 현대카드의 자체적인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PLCC 파트너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과 비즈니스 이슈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고도화된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은 도메인 갤럭시만의 특권으로서 파트너사들의 록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240507_110652


실제로 현대카드는 마케팅과 리스크 관리 및 채권 회수 업무에 데이터 사이언스 기술을 활용해 수익성과 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AI와 결제 데이터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 마케팅은 기존 마케터가 추천할 때보다 6배 높은 효율을 내는데 이로써 국내 카드사 중 가장 높은 이용액(2023년 10월 기준 월평균 119만 원)을 기록했다. 연체율은 3년 연속 0%대를 달성하며 업계 최저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 0.89%, 2022년 0.89%, 2023년 0.63%)

현대카드는 더 나아가 다양한 AI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례로 자체 생성형 AI 모델인 ‘시퀸스 AI(Seqeunce AI)’를 개발하고 있다. 고객의 다음 행동, 선행 가맹점 등 이벤트의 순서를 예측하는 AI로서 현대카드의 데이터 분석 품질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할 핵심 기술로 기대된다.

한편 디지털 인재를 유치하고 육성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7년 정 부회장은 머신러닝, 알고리즘, 블록체인, 사용자경험(UX) 등 디지털화의 핵심 영역을 강조하며 앞으로 이 분야 전문가를 5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현대카드 전 직원의 45%는 디지털 전환(DT)에 관여하고 있다. 데이터 사이언스, SW엔지니어, UX/UI, IT 인프라 등 디지털 전 영역의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교육은 디지털 직무로 전환을 희망하는 직원에 한정하지 않고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내 데이터 전문가와 함께 데이터 분석 실습을 교육받는 ‘데이터 애널리틱스 아카데미’, 챗봇 서비스·페이먼트 서비스·앱 서비스 등 디지털 관련 부서 직원들이 직접 주요 사업 내용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인사이트 세션’ 등이 대표적이다.


2) ‘테크’를 수출하는 금융사

2023년 6월엔 비자와 공동 데이터 사업을 추진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현대카드 입장에서는 비자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인데 현대카드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이 비즈니스의 핵심일 것이라는 전언이다.

실제로 현금 사용률이 높아 정부 차원에서 ‘캐시리스(cashless)’ 결제를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인 일본이 신용카드 비즈니스의 확대를 위해 현대카드를 찾기도 했다. 2022년 현대카드의 IT 시스템인 ‘H-ALIS(Hyundai Advanced Library Card Information System)’를 일본 신용카드 시장에 수출한 것이다. H-ALIS는 매월 2억 건에 달하는 카드 거래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대규모 매입· 매출, 입· 출금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 낼 수 있다.

H-ALIS 일본 수출은 한국의 신용카드사가 디지털 역량을 기반으로 해외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전에도 여러 신용카드사가 해외 진출을 시도했으나 마땅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현대카드는 일본에 H-ALIS를 수출하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을 해외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카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을 찾는 움직임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2023년 11월에는 프랑스의 3대 주요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을 비롯해 프랑스의 16개 주요 금융사 관계자가 현대카드의 데이터 역량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회사를 직접 방문했다. 이들 16개사 모두 도메인 갤럭시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3) 국내 결제망 혁신한 ‘애플페이’

2023년 3월, 현대카드는 또 한번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이폰 사용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애플페이가 현대카드를 통해 한국 시장에 처음 도입된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도입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금융위원회는 현대카드가 독점적으로 애플페이를 가져오면서 대형 가맹점 등에 NFC(근거리무선통신) 단발기를 지급할 경우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현대카드는 독점 계약자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애플페이 도입을 허가받았다. 독점보다는 글로벌 표준인 EMV의 국내 도입을 앞당기기 위한 통 큰 결정이었다.

애플페이의 초기 열풍은 애플의 말을 빌리자면 ‘역대급’이었다. 개시 첫날 발행된 토큰(암호)이 100만 개를 넘었는데 애플은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밝혔다. 애플페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신규 고객이 몰리며 출시 첫 달에 35만5000장의 카드가 발급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56%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신규 회원 중 애플 기기 이용자의 91%가 애플페이에 등록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신규 회원 중 MZ세대의 비중이 79%로 압도적이었다. 20대가 51%로 가장 많았으며, 30대 28%, 40대가 12%였다. 현대카드 고객이 4월 말까지 애플페이로 결제한 건수는 930만 건이었으며 애플페이를 1회 이상 이용한 고객의 비중은 71%였다. 애플페이 효과에 힘입어 현대카드는 2023년 상반기 카드사 중 유일하게 순이익이 증가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애플페이로 카드 발급이 조금 늘긴 했지만 경영 측면에선 수익에 보탬이 된 건 아니다”라며 “20년 넘게 카드업에 종사하며 일종의 정의감으로 한 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5

20240507_110705


이 ‘정의감’이란 EMV 결제망을 두고 한 말이다. EMV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몇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글로벌 표준 결제 방식으로 전 세계 결제 시장 점유율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카드를 단말기에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결제가 이뤄지는 만큼 신속하고 간편하며 보안상으로도 안전하다. 해외시장이 EMV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기반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한국에 페이팔, 구글페이 등 더 다양한 페이 서비스가 들어오거나 반대로 한국의 페이 서비스가 해외로 진출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카드는 2017년 2월부터 EMV 카드를 발급했고 현재 모든 신용카드가 EMV 결제 방식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NFC 단말기 보급 등의 문제로 수년째 지지부진했지만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도입하며 NFC 결제 단말기 보급이 늘어나자 모든 카드사가 EMV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행동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비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해외 발행 비자·마스터카드의 EMV 컨택리스 결제액은 전년 대비 약 17배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즉,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더욱 익숙하고 간편한 방식으로 결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변화의 설계자, 현대카드

2023년은 현대카드M을 선보인 지 20년, 챕터 2를 선포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2013년 챕터 2를 향후 10년을 이끌 시스템으로 설계한 것처럼 다시 한번 현재 시장의 상황과 현대카드의 포지션을 점검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현대카드가 주목한 문제의식은 10년 전과 유사했다. 바로 난잡한 시장과 상품의 구조였다. 포털 사이트에 ‘신용카드’를 검색하면 300여 종이 넘는 카드가 뜨는데 저마다 다른 혜택, 가맹점, 연회비, 혜택을 지급하는 월 이용액 등으로 고객들은 어질어질해진다. 혜택을 받기 위한 구조와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졌으며 유명무실한 서비스도 넘쳐났다.

현대카드는 지난 1년간 치열한 고민을 거쳐 올해 4월 ‘아키텍트 오브 체인지(Architect of Change)’, 즉 변화의 설계자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이는 알파벳 시리즈, 슈퍼시리즈, 도메인갤럭시에 이르기까지 업계의 새로운 룰을 제안하고 경쟁사들이 이를 따라오도록 만든 현대카드의 20여 년의 역사를 함축하는 동시에 또 한번 건축가의 마인드로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설계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20240507_110717


슬로건을 발표한 동시에 상품 체계도 개편했다. 챕터 2에는 포인트와 캐시백에 따른 카드의 종류를 단순화했다면 이번에는 혜택 구조, 적립률 등 카드의 속성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신용카드 혜택 구조를 5단계(기본 혜택, 추가 혜택, 연간 보너스, 고실적 보너스, 우대 서비스)로 표준화했다. 이를 통해 단순화된 구조 속에서 수많은 신용카드 혜택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신용카드 시장의 표준이 된 수많은 변화를 설계해온 동시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2023년 4월 업계 2위(개인, 법인 취급액 합산)로 올라선 데 이어 10월부터는 개인 신용판매만으로도 2위권 경쟁을 다투는 신용카드 회사가 됐다. 모기업인 은행과 연계 영업을 하지 않는 기업계 카드사로는 더욱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특히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신용카드 현대카드M, 20여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면서 국내 VVIP 카드의 아이콘이 된 더 블랙 카드, 슈퍼콘서트와 라이브러리 등 업계 최초의 시도라는 ‘변화’를 주도하고 이를 ‘헤리티지’로 만든 것이 현대카드라는 브랜드를 고객들의 뇌리에 일관되게 각인시킨 핵심이다.


DBR mini box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균형 맞춘 컬래버레이션, 소비자 중심적 사고로 이어져야”



이승환 아주대 경영학과 부교수 slee33@ajou.ac.kr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배고프고 항상 갈망해라)’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이는 성공 후에 자만심이나 안주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시장에 대응할 제품이 없어 노키아가 시장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노키아는 터치스크린 등의 스마트폰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도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 확신과 협업을 배제한 독자 노선의 고집, 기술 혁신의 상용화에 대한 오판 등으로 변화의 시기를 놓쳤다.i

대다수 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성공에 따른 관성으로 인해 변화를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이들 기업이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비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혁신을 위한 역량의 결집이 부족한 탓이다.

현대카드는 지난 20년간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 마케팅 혁신을 주도하며 현재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핵심 혜택을 중심으로 한 포인트 시스템, 문화 마케팅을 통한 감정적 소구점 극대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고객 맞춤형 가치 제공 등 다양한 단계를 거쳐 현대카드가 보여준 마케팅 사례에서 그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지속적인 마케팅 혁신이 필요하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필립 코틀러 교수는 마케팅 개념의 변화를 시대별로 정리하면서 소비자 특징과 마케팅 활동에 대해 제언한 바 있다. 1세대의 제품 중심에서 시작해 고객 중심, 인간 중심, 디지털 마케팅을 거쳐 5세대에서는 인간과 기술의 융합으로 이어지는 이 변화는 전 세계 마케터들에게 시장과 마케팅을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한다.

현대카드는 이러한 마케팅 개념의 변화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제품과 기업 중심적이던 카드 업계에서 현대카드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실질적 가치 제공을 중심으로 카드 상품을 설계했다. 특히 미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이 서비스 개시 초기에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 엘리트 대학생들만 이용 가능하게 한 배타성(exclusivity) 전략을 활용한 것처럼 현대카드는 초대를 통해서만 가입 가능한 프리미엄 카드를 출시해 럭셔리 이미지를 확보하고 이후 주류 시장으로 확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카드 시장에서 확실히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달성한 후에는 감성적 요소를 강화했다. 슈퍼콘서트와 슈퍼매치 등 문화 마케팅, 디자인 라이브러리 등 공간 마케팅을 통해 무형의 금융 서비스를 소비자의 감성과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를 창출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마케팅 성공에도 불구하고 현대카드는 자기혁신에 도전하면서 최근에는 인간과 기술의 융합을 이루는 디지털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마케팅 마인드 역시 고객 혜택에서 고객 체험 및 경험 관리 중심으로 이동했으며 타깃 시장도 개인 고객 중심에서 기업 고객을 포함하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2. 경쟁 우위의 시작점은 고객에 대한 이해와 예측에 있다

고객 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데이터 자산은 이를 가공해 활용하는 만큼 가치를 갖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 디지털 광고계의 양대 산맥인 구글과 페이스북은 사용자 이용 및 행동 데이터라는 자산을 활용해 고객을 세분화하고, 이를 기업들과 연결하는 마이크로 타기팅 기술을 갖추고 있다.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활용할 플랫폼이 이들의 핵심 자산이다.

현대카드도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소비자 행동과 심리에 기반한 카드 구성과 선구적인 감성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이미 소비자의 욕망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AI에 1조 원가량을 투자하며 시행착오 끝에 데이터 설계에 대한 자체 역량 집중과 외부 알고리즘 적용이라는 역할 분담을 이해했다. 또한 이를 활용할 인력을 개발했다.

빅데이터 분석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데이터 셋업 과정이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소비자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정확도 높은 예측이 데이터에서 시작됨을 현대카드가 잘 이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현대카드는 리더십과 비전, 소비자 중심 접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신기술 접목이라는 디지털 전환의 성공 요인을 이미 갖추고 있다.

데이터 자산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대카드가 고객 데이터를 추가로 축적하고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면서 소비자에게 다른 제품(효용)을 제공하는 PLCC 파트너들과 데이터 사이언스의 접목을 모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데이터 사이언스의 적용은 경영진의 리더십과 지원, IT 기업과의 협업, 물적 및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등으로 가능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흐름에서 한 가지 큰 장벽이 존재한다. 바로 ‘어떻게 파트너사들이 고객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여기서 다음 핵심 성공 요인이 등장한다.


3. 공동 마케팅(Co-Marketing), 협력은 균형이다

공동 마케팅은 제조 업체와 유통 업체 간의 수직적 협업과 달리 수평적 관계의 기업들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여러 장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고객 전환율이 높아 비용 대비 효과가 좋으며 새로운 청중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적절한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자산의 증대 등도 가능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애플과 마스터카드, 레드불과 고프로(GoPro) 등 공동 마케팅으로 성장한 회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공동 마케팅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우선 ‘공생적 마케팅(symbiotic marketing)’이라고도 불리는 공동 마케팅에서는 상호 이익 증진과 각 이익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서로에게 비용과 손해 대비 이익이 큰 방안이 마련돼야 하며 조직 간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의 버클린 교수와 메릴랜드대의 센굽타 교수의 지난 연구에 따르면 공동 마케팅의 효과는 회사 간 ‘힘의 불균형(power imbalance)’과 ‘관리적 불균형(managerial imbalance)’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현대카드는 정보 파트너십(information partnership)인 ‘도메인 갤럭시’라는 협업체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고자 했다. 우선, 업계 독점적 파트너십을 추구해 이해 충돌을 방지하고 힘의 불균형을 피했다. 또한 시장 1등 기업들 간 협업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의 시너지를 추구하며 상호 이익의 시작점을 구축했다. 관리적 불균형은 AI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을 통해 해소한다.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마케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그리고 현대카드가 조직적 학습을 통해 기른 첨단 데이터 활용 기술과 수단도 제공해 파트너사들의 제휴 실행 부담을 낮췄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세부 사항을 강조하는 관용구의 통찰을 실현하듯 현대카드는 디테일에서도 돋보인다. 제품 디자인을 위해 독자적인 서체를 개발했고, 새로운 카드 소재를 채택했으며,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카드 옆면에까지 색깔을 넣었다. 사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나 공동 마케팅은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봤고 추진해 봤을 만한 경영 트렌드이지만 현대카드는 디자인 마케팅을 구사할 때처럼 디테일한 접근으로 신경영 트렌드 영역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의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협업 플랫폼의 정착에는 신뢰 유지가 관건이다. 단기적으로 파트너 간의 크로스 마케팅 진행 시 이익의 균형이 중요하며 과도한 불균형의 발생 시 협업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공동 마케팅의 형태가 단순한 프로모션이나 상호 추천을 넘어 소비자 중심의 경험과 혜택 구성을 포함해야 한다.

차량 공유 플랫폼 쏘카와 비대면 중고차 판매 플랫폼 헤이딜러의 협업으로 예를 들어보자. 두 기업은 ‘바이 마이 카, 헬로 쏘카’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헤이딜러에서 본인 소유의 차량을 판매한 고객이 쏘카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들의 협업은 소비자 중심적 사고로 이뤄졌다. 차량 판매 후의 이동 불편을 줄여 헤이딜러는 고객의 차량 판매 활성화, 쏘카는 차량 공유 이용 고객 증대라는 윈윈을 이뤘다.

이러한 소비자 중심적 사고는 협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다.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착취 대상’으로 인식하기도 하며 무수한 마케팅에 지쳐 있다. 이제 의미 있는 가치 제안 외에는 모두 공해로 여겨질 수 있다. 공동 마케팅의 제안이 공해로 인식되는 순간, 참여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하락할 것이며 이는 결국 협업 플랫폼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시라큐스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T와 키움증권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아주대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IT와 소비자 행동 관계이며 서비스 및 가격 공정성, 가격 차별화, 온라인 협상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