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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H&B 스토어에서 O2O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올리브영’

고객 니즈보다 더 빠르게
업계 첫 ‘빠른 배송’ 통했다

배미정 | 389호 (202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올리브영이 끊임없는 라이벌의 등장과 코로나19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성장세를 유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퀵커머스의 확대에 담긴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해 업계 최초의 빠른 배송 서비스인 ‘오늘드림’을 도입하는 등 이커머스 시장에 남들보다 빠르게 투자했다.

2. 온라인 채널 단독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온라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IT 핵심 인력을 내재화하고 초개인화된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했다.

3. 고객에게 온오프라인으로 끊김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업무 방식에서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을 없애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강화했다.

4. MD 개개인이 사업가이자 전략가로서 중소 브랜드와 전략적으로 협업해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5. 외국인 고객 맞춤형으로 매장을 리뉴얼하고 글로벌 몰을 현지화함으로써 O2O 플랫폼 서비스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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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식품도 아닌데 화장품까지 굳이 빠른 배송을 할 필요가 있나?”

2018년 12월 올리브영이 서울 지역에 당일 3시간 내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을 시작했을 때 업계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화장품은 사용하던 제품이 떨어질 무렵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라 빠른 배송이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특히 올리브영은 서울에만 매장이 300개가 넘을 정도로 이미 접근성이 충분한데 굳이 배송까지 빠르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화장품은 한번 써보고 사용한다는 인식이 강해 다른 제품군에 비해 온라인 구매가 활발하지 않던 때였다. 그렇게 모두의 반신반의 속에서 세상에 선보인 오늘드림은 올리브영의 실적에 날개를 달았다.

오늘드림의 진가는 2020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오프라인 시장이 완전히 마비됐을 때 드러났다. 온라인 몰이 유일한 창구가 되면서 오늘드림의 수요도 폭발했다.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온라인 매출 비중이 20%대까지 상승하면서 매장 매출의 감소분을 방어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경쟁사들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매장을 축소하거나 결국 사업 철수를 결심했을 때1 올리브영은 오히려 매장을 늘리면서 홀로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올리브영의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 성장률은 각각 13%, 50%였다.

이렇게 다른 화장품 소매 유통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린 올리브영은 20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3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2조7971억 원으로 이미 2022년도 연간 실적(2조 7775억 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44% 증가한 2743억 원이었다. 2023년 처음으로 연간 3조 원이 넘는 매출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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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같은 위기 속에서 올리브영만 유독 경쟁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며 선두 주자(first mover)의 지위를 굳건히 한 비결은 무엇일까? 1999년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함께 판매하는 ‘드러그스토어(drug store)’ 콘셉트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올리브영은 앞장서서 헬스&뷰티(H&B) 스토어 시장을 개척했다. 많은 후발주자가 이 시장에 진출해 올리브영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올리브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매장 네트워크와 차별화된 상품기획(MD) 역량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업계 1위의 지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만일 올리브영이 오늘을 있게 만든 어제의 성공 공식에 안주했다면 다른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도태됐을지 모른다. 올리브영은 소비 패턴의 변화를 읽고 남들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대응했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전개되던 화장품 시장에서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될 것을 예상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Online to Offline, O2O) 옴니채널 전략에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코로나19 위기를 오히려 투자를 확대하고 전략 실행의 속도를 키우는 기회로 활용했다.

이제 O2O 전략은 화장품 유통업계의 대세가 됐다. 그리고 오프라인 H&B 스토어의 선두 주자였던 올리브영이 O2O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변신해 다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올리브영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DBR이 올리브영의 디지털사업부와 MD사업부를 총괄하는 리더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H&B 스토어에서 O2O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올리브영의 혁신 스토리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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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은?

1999년 CJ제일제당 내 HBC사업부를 신설하고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을 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의 드러그스토어 개념을 한국 최초로 도입해 당시 화장품은 브랜드 매장이나 방문판매원, 건강식품은 약국, 생활용품은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유통 공식을 파괴하고, 이를 통합해 판매하는 신유통 시장을 개척했다. 2002년 CJ제일제당과 네덜란드 회사인 멀그레이브와의 합작 법인으로 CJ올리브영이 출범했으며 2008년 CJ주식회사가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점포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2015년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 사업 부문으로 통합됐다가 2019년 다시 독자 법인으로 분할됐다.

올리브영은 해외의 드러그스토어처럼 사업 초기에 의약품을 취급했으나 약사법 규제에 부딪혀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주로 취급하는 헬스&뷰티(H&B) 스토어로 발전했다. 화장품 업계에서 유행하던 원 브랜드 숍과 차별화해 2030세대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멀티 브랜드 편집숍으로 입지를 다졌다. H&B 스토어 기준 가장 많은 점포 수와 트렌디한 상품과 신생 브랜드를 빠르게 도입하는 상품기획(MD) 역량을 바탕으로 H&B 시장을 선도했다.

현재 전국 1336개(2023년 3분기 기준)의 점포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온라인 채널을 연계하는 O2O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뷰티와 헬스 분야 외에 주류 등 일상 품목으로 카테고리를 확대하고 글로벌 몰을 확대 개편함으로써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1. 업계 최초 빠른 배송,
비결은 ‘빠른 실행력’


올리브영이 빠른 배송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진희 플랫폼사업총괄은 스타트업 못지않은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꼽았다. 실리콘밸리 IT 기업과 라인플러스 출신으로 2021년 올리브영에 합류한 이 총괄은 “대기업인데도 스타트업만큼이나 의사결정이 굉장히 빨라서 놀랐다”며 “경영진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만나서 바로 의사결정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리스크를 따지기보다 일단 과감하게 시도해보자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12월 화장품 유통업계 최초로 실시한 당일 3시간 내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이다. 배달의민족의 ‘B마트’를 필두로 신선 식품과 생필품 중심의 퀵커머스(quick commerce)가 막 태동하던 때였다. 올리브영 내에서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삼으면 화장품도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고객한테서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재고를 배송하면 1시간 내 즉시 배송도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였다. 전국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매장 네트워크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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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따져 봐야 할 리스크 요인도 수도 없이 많았다. 즉, 해야 하는 이유보다 해서는 안 될 이유가 훨씬 많았다. 우선, 언제든 빠른 배송이 준비된 배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물류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매장에서는 퀵커머스를 위한 재고를 별도로 관리하는 부담과 더불어 수요 예측이 제대로 안 되면 악성 재고가 쌓일 위험이 커질 것이다. 앞서 다른 업계에서 빠른 배송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오토바이 기사의 배송 위험뿐 아니라 기상 악화 등으로 배송 차질이 빚어지는 데 대한 소비자 불만족이 커지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과연 고객이 화장품을 그렇게 빨리 배송받기를 원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2017년 온라인 자사 몰을 처음 만들어 운영했지만 첫 해 주문액이 600억 원대로 당시 연간 매출 비중의 한 자릿수 수준에 그쳤다. 과연 다른 상품처럼 화장품 유통에도 이커머스가 확산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퀵커머스는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선택지였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획기적으로 편리한 서비스임이 분명했다. 특히 올리브영의 주 고객층인 203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른 배송에 대한 선호도가 빠르게 늘었다. 이런 추세를 고려했을 때 배송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추구하는 소비 성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고, 이런 고객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고객이 진짜 원할지 아닐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테스트해보고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새로운 제안이 나왔을 때 리스크를 따지기보다는 일단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올리브영이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3시간 내 빠른 배송을 추진해보자는 목표가 세워졌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오늘드림 TF’가 꾸려졌다. 시작부터 가장 큰 걸림돌에 부딪혔다. 물류 거점인 오프라인 매장의 재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매장에 재고가 있는지 여부를 실시간 파악하고 이 재고를 온라인 판매와 연결하려면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재고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또 기존의 일반 물류 배송 체계로는 매장에서 고객의 배송지까지의 라스트마일을 책임질 수 없었다. 이륜차 등 배달 대행업체를 활용하는 새로운 체계를 갖춰야 했다. 다시 말해, 빠른 배송은 회사의 재고 관리 인프라와 물류 인프라를 재구성하는, 굉장히 큰 시스템 변화를 수반하는 도전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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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정해졌고 TF는 하루라도 더 빨리 서비스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처음 20여 명 수준으로 꾸려졌던 TF 규모는 관련 부서가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50명에 육박했다. 그렇게 올리브영이 화장품 유통업계 최초로 3시간 배송을 보장하는 ‘오늘드림’ 서비스를 선보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45일에 불과했다.

서비스가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문 가능 지역과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서비스 이용료도 3만 원 이상 주문 시 2500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도 하루 주문 건수가 최대 10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특히 이용자 대부분이 올리브영의 타깃 고객층인 2030세대로 기념일 시즌이나 필요한 상품의 구매 목적이 확실하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싶은 이들이 오늘드림을 선택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었다. 빠른 배송의 수요가 있음을 확인한 올리브영은 점차 대상 상품군을 늘리고 배송 권역을 지방으로 확대하는 등 서비스 운영의 노하우를 쌓는 동시에 고객 목소리를 반영해 서비스를 빠르게 개선해 나갔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인 2020년, 고객이 상품 수령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쓰리포(3!4!) 배송’과 ‘미드나잇 배송’2 을 도입해 고객의 배송 옵션 선택지를 늘렸다. 이를 통해 3시간 이내 즉시 배송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배송 소요 시간을 평균 45분대로 줄이면서 고객을 감탄시키는 ‘와우(wow)’ 포인트를 만들었다.

또한 옴니채널 전략의 일환으로 2021년에는 고객이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원하는 매장에서 직접 찾아가는 ‘오늘드림 픽업’ 서비스와 온라인 주문 상품을 인근 매장에 반품하는 ‘스마트 반품’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주문 고객은 매장을 활용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과 방법으로 상품을 거래하고, 회사 또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추가 구매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 총괄은 “오늘드림 서비스는 단순히 빠른 배송을 넘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고객에게 끊김 없는(seamless)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2. “오프라인 매장에 버금가는” 디지털 역량 확충

오늘드림으로 이커머스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옴니채널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올리브영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략 실행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2020년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줄고 영업시간의 제약 등으로 이전처럼 매장이 판매 공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온라인 거래의 활성화가 시급했다. 이에 올리브영은 온라인 플랫폼 단독으로도 충분한 사업 성과를 낼 수 있을 정도의 디지털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가 온라인 몰을 오프라인 채널의 보조 수단 정도로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몰을 운영하더라도 여전히 오프라인 채널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옴니채널 전략의 핵심은 고객이 온오프라인 채널을 넘나들며 쇼핑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쇼핑하던 고객이 모바일 앱에서도 제품을 사고, 모바일 앱만 이용하던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게 해야 한다. 이 총괄은 “올리브영에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고 가정하고 이커머스 업체들과 경쟁했을 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디지털 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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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못지않게 온라인에서도 편리하고 재밌는 상품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콘텐츠(Contents), 커뮤니티(Community), 큐레이션(Curation) 등 일명 ‘3C’의 관점에서 고객 경험을 개선했다. 고객이 상품을 체험하기 위해 매장을 들르듯이 모바일 앱에서도 상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습득하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매거진’ 형태의 전문 콘텐츠를 보강했다. 또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끼리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SNS 기능을 추가한 ‘셔터(Shutter)’ 서비스를 앱에 구현해 커뮤니티 기능을 확충했다.

개인 맞춤형으로 상품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정교화하기 위해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로켓뷰’를 인수합병(M&A)하고 디지털사업부 내 AI 조직을 신설해 흡수했다. 로켓뷰는 딥러닝 기반 광학 문자인식(OCR) 수집 솔루션을 활용해 고객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화장품 제품명을 촬영하면 제품의 속성 데이터를 추출하고 그것을 고객 행동 데이터와 연결해 상품을 추천하는 AI 알고리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총괄은 “온오프라인 통합 멤버십 ‘올리브 멤버스’를 통해 확보한 소비자의 쇼핑 패턴 데이터를 제품 데이터와 연계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제품을 제안하는 초개인화 큐레이션 서비스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예컨대, 평소 건성피부용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건성피부에 좋은 성분이 많이 함유된 제품만 추천할 수 있다. 올리브영은 M&A를 통해 AI 기술과 더불어 향후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IT 역량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2021년 기준 100명 이내였던 ‘디지털 부문’ 인력은 2023년 말 기준 약 340명으로 크게 늘었다.


3. 일하는 방식의 변화

1) MD, 온오프라인 채널 통합 관리


기업들이 옴니채널 전략을 추진하면서 정작 일하는 방식이나 사고방식은 기존의 이분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별로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올리브영 또한 그전까지 온라인 채널은 온라인 담당 MD가, 오프라인 채널은 오프라인 담당 MD가 맡아서 관리했다. 하지만 2020년 10월, MD조직(MD팀, 카테고리파트)별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합 관리하도록했다. 이 총괄은 “회사 입장에서야 고객이 온라인에서 구매했는지 오프라인에서 구매했는지가 중요할지 몰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그냥 올리브영에서 구매한 것일 뿐 온라인 몰에서 샀는지 매장에서 샀는지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며 “고객 입장에서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경험을 제공하려면 우리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채널만 담당해온 베테랑 MD들도 기존의 업무 루틴을 벗어난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예컨대, 그동안 매장 개폐점 시간에 맞춰 일했던 오프라인 MD들은 온라인 채널까지 연계해 24시간 매출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새 안절부절못했다. 다른 한편, 온라인 MD들은 기존에는 프로모션을 기획할 때 온라인 반응만 체크하면 됐는데 이제는 매장 고객에게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MD들은 온오프라인으로 주시해야 할 시장 범위가 넓어진데다 각기 다른 고객의 쇼핑 패턴에 따라 경우의 수가 복잡해진 만큼 한층 더 깊이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MD 스스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합해 관리했을 때의 플러스 요인이 훨씬 더 큼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제한된 마케팅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신규 브랜드를 도입할 때 온라인 몰을 통해 반응을 테스트해본 다음, 좀 더 반응이 좋은 카테고리와 상품을 매장에 먼저 출시하는 식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하게 됐다. 이를 통해 새로 기획한 신규 브랜드가 성공할 확률도 높아졌다. 기존 브랜드 또한 온라인 채널에서의 마케팅 성과를 바탕으로 매장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진세훈 MD사업본부장은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가용 자원을 활용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체감하면서 옴니채널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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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장도 고객 데이터 기반으로 변신

팬데믹 시기 오늘드림 서비스가 확대되고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매장 공간의 역할도 바뀌었다. 과거 매장이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거래 중심의 공간이었다면 이제 매장은 오늘드림으로 온라인 고객에게 배송될 상품을 보관하는 공간이자 온라인을 거쳐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추가적인 구매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런 기능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매장은 온라인과 차별화된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경쟁사들이 매장을 줄일 때 올리브영이 오히려 매장 수를 늘리고 기존의 낙후된 매장 수백 곳을 리뉴얼하면서 오프라인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배경이다. 그 덕분에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온오프라인 채널이 시너지를 내면서 양쪽 매출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확보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매장 관리를 효율화하고 운영 방식 또한 바꿨다. 예컨대, 과거에는 매장의 개점, 폐점, 이전 등을 결정할 때 매출과 상권 데이터 위주로 봤다면 이제는 연령대와 온라인 구매 이력 등의 고객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또 상품 배치를 바꾸거나 매장을 리뉴얼할 때도 보다 많은 고객 데이터를 수시로 활용해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10대 고객이 많은 매장과 30대 이상 고객이 많은 매장의 상품 배치 방식을 다르게 하는 식이다. 전자 라벨을 활용함으로써 온라인 프로모션과 동일한 가격을 매장 상품에도 실시간 적용해 고객이 가격을 일일이 비교해야 하는 불편을 최소화했다.

매장의 역할이 바뀌면서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주된 업무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주문, 검수, 진열 등 매장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O2O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고객을 응대하고 상품을 설명하는 카운슬링 역할이 강화됐다. 매장 직원은 개인 휴대용 PDA로 소속 매장뿐 아니라 전국 매장과 온라인 몰의 재고를 실시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주거나 없다면 대체 상품을 추천하는 식으로 구매를 유도한다.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직원과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점을 감안해 셀프 계산대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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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 특유의 협업과 소통 문화

올리브영은 젊은 조직으로 유명하다. 2023년 기준 올리브영의 임직원 평균 연령은 만 30.3세로 CJ그룹 내에서도 가장 젊다. MZ세대를 주축으로 구성원 간 빠른 의사소통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자랑한다.

디지털사업부는 ‘스쿼드(squad)’라는 가상 조직을 통해 빠르게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스쿼드는 개발자와 기획자, UX디자이너, 마케터 등 직무별 담당자가 1명씩 모여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뭉친 조직이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 구현하고 시장에 론칭해 고객 반응을 체크하기까지 하나의 유닛으로 긴밀하게 움직인다.

MD 조직은 MD커뮤니티와 MD아카데미를 통해 서로의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있다. MD커뮤니티는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팀, 조직 단위로 MD들이 모여 서로 피드백을 교환하는, 일종의 상품 품평회다. 신상품 론칭의 권한과 책임은 MD 개인에게 있지만 동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MD아카데미는 MD만을 위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선배 MD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 본인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와 노하우를 전파한다.

4. 끊임없는 트렌드 개척과 중소 브랜드 발굴

올리브영이 국내 최초로 멀티 브랜드 편집숍 시대를 열고 지금까지 성공 신화를 써올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MD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리브영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파악함으로써 젊은 세대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다채로운 상품을 신속하게 제안했다. 과거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선진국의 인기 브랜드 제품을 최초로 직수입해 소개하는 방식이 주였다면 최근에는 제품력은 뛰어난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저렴하기까지 한 국내 중소 인디 브랜드를 발굴해 흥행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MD는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프레이밍하고 중소 브랜드와 상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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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6월 첫선을 보인 ‘클린뷰티’ 캠페인이다. 선진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친환경, 웰니스 등의 메가 트렌드를 ‘클린뷰티’로 새롭게 프레이밍하고 이에 해당하는 중소 브랜드들을 발굴해 마케팅했다. 진 본부장은 “이번 캠페인은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올리브영이 직접 유해의심성분 배제, 친환경, 동물보호 관련 자체 기준을 정립하고 이 기준에 맞는 브랜드를 선정한 것이 특징”이라며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와 협업을 강화하고 이들이 고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더 많은 브랜드가 캠페인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클린뷰티는 MZ세대의 가치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면서 캠페인 3년 만에 클린뷰티 선정 브랜드들이 5000억 원이 넘는 누적 매출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클린뷰티 캠페인 전략을 처음부터 저연차 MD들이 기획해서 실행했다는 점이다. 스킨케어 카테고리 소속 MD들이 미국과 호주 출장에서 발견한 웰니스 트렌드를 한국 시장에 친화적인 ‘클린뷰티’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재해석했다. 진 본부장은 “매년 MD가 직접 담당 카테고리의 연간 사업 전략을 수립해 일명 ‘MD 전략 워크숍’에서 발표하게 한다”며 “MD들이 시장과 경쟁자, 고객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신사업을 기획하기에 본인이 각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리브영은 고객과 비슷한 나이대, 즉 피어(peer) 세대인 MD들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empowering)하고 있다. 경영진도 MD들의 사업계획서에 대해 조언을 할 뿐 ‘된다’ ‘안 된다’는 식의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워크숍 이후 실제 전략을 실행할지 말지도 MD들이 직접 결정한다. 이런 위로부터의 전적인 신뢰가 일선 MD들로 하여금 더욱 자기 분야에 몰입하게 만든다. 진 본부장은 “MD들의 뾰족한 사업 기획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올리브영은 상품 카테고리를 더욱 세분화하고 깊이 탐구한다”며 “그래서 고객의 섬세한 취향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차별화된 브랜드와 상품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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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본부장은 다른 회사에 차별화된 올리브영 MD의 DNA로 특유의 ‘사업가적’ 기질을 꼽았다. 이런 특성은 협력사와 협업하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보통의 MD들이 협력사와 상품 소싱과 관련해 가격, 판매 기간, 배치 위치 등을 논의한다면 올리브영 MD들은 그 앞단인 상품 기획과 개발 단계서부터 디테일하게 협업한다. 예컨대, 상품 용기의 바닥 모양이 둥글면 넘어질 가능성이 크니 네모로 바꾸도록 제안하거나, 500㎖ 용량은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으니 300㎖로 줄이면 어떨지, 현재 로고의 위치는 매장에서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좀 더 위로 배치해 달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그만큼 MD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카테고리와 브랜드에 주인의식(ownership)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 본부장은 “협력사로부터 올리브영 MD는 다른 회사 MD들과 달리 마치 우리 회사의 마케터처럼 적극적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협력사에서 상품을 기획하기 전에 먼저 담당 MD에게 트렌드나 아이디어를 물어볼 정도”라고 전했다.

‘전략 미팅’은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올리브영 MD들이 특별히 공을 들여 시간을 투자하는 자리다. MD가 매년 정기적으로 협력 브랜드 사를 일일이 찾아가 카테고리별 시장 트렌드와 전략 방향을 직접 프레젠테이션(PT)하고 신상품 기획과 관련해 협력사와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다. 날이 갈수록 뷰티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상품의 수명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협력사 입장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리딩하는 올리브영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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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로벌 O2O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도약

올리브영의 O2O 옴니채널 전략은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9년 외부 솔루션을 활용해 외국인 고객을 위한 역직구 플랫폼 ‘올리브영 글로벌몰’을 론칭한 데 이어 2021년 자체 몰을 구축해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도 O2O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국내 매장의 외국인 매출뿐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글로벌 매출도 최근 3년간(2020∼2022년) 연평균 8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글로벌 몰에서 취급하는 상품 수는 1만5000여 개, 회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2023년 11월 글로벌 특화 매장으로 리뉴얼한 ‘올리브영 명동 타운’은 일평균 방문객 수가 3000명에 이르고 이 중 90%가 외국인이다. 올리브영은 명동 타운을 리뉴얼하면서 국문과 영문을 병기한 전자 라벨, 영어·일본어·중국어로 지원되는 사이니지와 모바일 매장 웹사이트, 세금 환급 데스크 등 외국인 고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도입했다. 특히 매장 2층에 위치한 ‘글로벌 서비스 라운지’에서는 글로벌 몰에 신규 가입한 외국인 고객에게 올리브영이 구성한 웰컴 키트를 제공함으로써 멤버십 회원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을 대상으로도 멤버십 서비스를 기반으로 국내 매장뿐 아니라 글로벌 몰에서의 고객 여정을 트래킹하고 개인에 최적화된 타깃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매장에서 편리한 구매 경험을 한 외국인 고객이 귀국한 후에도 온라인 글로벌 몰에서 쇼핑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글로벌 몰은 론칭 초기에는 미국 현지 교포의 비중이 컸는데 최근 K-뷰티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현지 고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글로벌 몰에서 다양한 국가의 고객이 현지화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할 방침이다. 이 총괄은 “국가별로 화장법과 취향, 트렌드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콘텐츠, 커뮤니티, 큐레이션의 3C 관점에서 국가별로 현지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올리브영 플랫폼을 통해 국내 많은 중소기업이 해외 고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중소 브랜드들의 수출 교두보로서 올리브영의 역할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올리브영이 글로벌 몰에서 중소기업 화장품 브랜드를 모아 소개하는 K뷰티 큐레이션 서비스 ‘뷰티박스’는 출시할 때마다 완판될 정도로 글로벌 고객들에게 큰 성원을 얻고 있다. 진 본부장은 “해외 유통사들도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평가할 때 올리브영에 입점 여부와 실적 등을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며 “시장을 리드할 트렌드를 개척하고 더 많은 중소 브랜드를 발굴, 육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 총괄도 “전 세계 소비자뿐 아니라 이들에게 상품을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들도 올리브영의 중요한 고객”이라며 “앞으로 중소 브랜드들을 위한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6. 앞으로 과제

코로나19 위기가 끝나고 뷰티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O2O 플랫폼들 간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 기업뿐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이커머스 기업들까지 올리브영을 뒤따라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고 빠른 배송을 시작하면서 가격과 서비스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올리브영 구성원들은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의식하기보다는 고객에게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진 본부장은 “고객의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예컨대 넷플릭스, 최근에는 팝업스토어도 올리브영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며 “경쟁자를 의식하기보다는 어떻게 더 많은 고객이 올리브영에서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선두 주자로서 올리브영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의 기준도 높아지고 있다. 2023년 12월 공정위는 올리브영이 납품업체를 상대로 부당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초 올리브영이 시장지배자로 규정될 경우 과징금이 연간 매출액의 최대 6%(공정거래법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로 5800억 원까지 부과될 수 있어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하지만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화장품 시장에서 올리브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공정위는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18억9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3 CJ사업보고서에 따르면 H&B 스토어 기준으로는 올리브영의 시장점유율이 71.3%(2023년 1분기 기준)지만 뷰티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2023년 3분기 기준)은 14.5%에 불과하다.

과징금 리스크는 줄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소기업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K-뷰티 유통 플랫폼으로서 올리브영이 협력사의 성장을 위해 보다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2024년 새해 첫 현장 경영의 일환으로 올리브영 사옥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통업의 기본은 상생과 동반 성장”이라며 “협력업체에 손해를 보도록 강요하는 회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두 주자로서 K-뷰티 생태계를 건강하게 이끌어야 하는 올리브영의 어깨가 무겁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MD 역량 기반으로 신생 중소기업들과 상생 돋보여



김민기 KAIST 경영대학 교수 minki.kim@kaist.ac.kr



기업 경영에서 외부 환경의 변화와 자사의 강점과 약점을 고려한 전략적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20년간 국내 화장품 산업은 외부 환경 변화에 직면해 가치사슬(브랜드 기획, 제조 및 생산, 마케팅 및 유통) 측면에서 독특한 진화 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브랜드-생산-유통 단계가 구분된 채 수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K-뷰티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국내 화장품 산업의 중심에 있는 올리브영은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상생을 통해 화장품 산업의 성장과 궤를 함께해 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국내 최초로 H&B 스토어를 들여온 특정 형태의 유통채널 사업자 이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특히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전략으로 상품기획(MD) 역량을 기반으로 신생 업체들과의 동반과 상생을 택해 성장해왔다는 점은 경영학적으로도 시사점이 크다.

외부 환경 변화를 기회로 바꾸다

올리브영의 성장 과정은 크게 2011년과 2017년, 두 번의 환경 변화와 성장 모멘텀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모멘텀은 2011년 국내 약사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규제 완화이다. 과거 의약품의 소매점 판매 금지 규제로 인해 올리브영은 화장품, 건강식품 등을 중심으로 한 헬스&뷰티(H&B) 스토어 형태의 한국형 드러그스토어 사업자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2011년 의약품 판매 규제가 완화되면서 편의점에서 의약외품 구매가 가능해졌고 의약외품 카테고리에 감기약 등 상비약이 추가되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났다. 규제 환경 측면에서 드러그스토어 운영에 유리한 국내 시장 환경이 조성됐고 H&B 스토어 시장에 경쟁 사업자 진입 및 전국적인 점포 확대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이 시기 인터넷 및 스마트폰 보급의 활성화,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저출산과 1인 가구 증가 등 국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또한 한류 트렌드에 힘입은 해외 관광객 증가와 K-뷰티의 인기 속에서 올리브영은 유동성이 많은 대학가 등에 입지하되 기존 백화점 같은 유통 채널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원브랜드숍에서 소화하지 못했던 제품들을 진열하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런 우호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H&B 스토어 산업은 크게 성장했지만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최저임금 상승, 매장 임대료 상승, 온라인 채널 성장 등 두 번째 외부 환경 변화가 나타나면서 H&B 스토어 간 전략적 대응에 있어서도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특히 중저가 화장품 시장에서 브랜드와 유통의 결합 형태인 원브랜드숍 점포 운영이 인건비, 렌트비 등 비용 압박으로 어려워지고 자본 없이 아이디어와 브랜드만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소규모 화장품 창업자가 늘어나면서 화장품 산업 가치사슬의 브랜드-생산-유통이 분리되는 큰 시장 변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소규모 브랜드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유력 브랜드는 타 유통 채널에서 제품을 빼며 자신의 브랜드 제품들을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게 됐고 소규모 브랜드는 경쟁 압박 속에서 트렌디한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대안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당시 신규 소규모 화장품 브랜드의 유통 채널 위기를 극복하려는 니즈와 다른 유통망에서 판매되지 않은 브랜드 확보를 통해 상품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올리브영 같은 유통사업자의 니즈가 상호 윈윈(win-win)하는 전략으로 만났고 그들 간 협력과 상생이 자연스럽게 추진되는 성장 모멘텀이 나타났다.

MD 역량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잡을 수도 없다. 준비가 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고 해당 기회를 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올리브영이 2017년의 환경 변화에 직면해 대안 유통 채널로서 신규 브랜드를 등용하고 육성하는 동반자 역할과 상생을 추구할 때, 이 기회를 성장 모멘텀으로 살리는 데 있어 MD의 역량은 다른 H&B 스토어 사업자와 구분되는 핵심 경쟁력이었다.

올리브영 MD의 역할은 단순 시장 제품 소싱에서 그치지 않고 제품 도입 단계부터 신규 화장품 업체와 모든 과정(신제품 개발, 기획, 홍보, 이벤트 행사 등)을 함께 고민하는 상생과 동반자로 확장, 정의된다. MD 역량을 기반으로 한 동반 성장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2017년 올리브영에 입점한 ‘아비브’를 들 수 있다. 올리브영 MD가 온라인에서 ‘껌딱지팩’ 소문을 듣고 직접 체험해본 뒤 당시 신생 사업자였던 아비브에 입점을 제안했다고 한다. 온라인 자사몰 중심의 D2C(Direct to Customer) 브랜드로 오프라인 유통 경험이 없었던 아비브는 올리브영에 2017년 마스크팩 1종으로 처음 입점한 뒤 집중 육성됐고 2018년 스킨케어, 선케어로 제품 라인을 확장하며 매출 27억 원을 돌파했다. 이후 2019년 클렌징, 립케어, 핸드케어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매출 99억 원 돌파, 이후 2020년 140억 원, 2021년 268억 원, 2022년 354억 원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비브는 현재 올리브영 이외에도 신라면세점, 롯데백화점 등 다양한 오프라인 채널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30여 개 해외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써 동반 성장의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올리브영은 ‘즐거운 동행’이라는 공유가치 창출 프로그램을 통해 150여 개 중소기업 브랜드의 입점을 지원했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00개 이상의 중소기업 브랜드를 발굴한 바 있다. 이 기간 입점한 중소기업 브랜드의 연평균 매출이 2019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전사적 협업 경험을 차별 경쟁력으로 만들다

유통망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국내 중소 화장품 브랜드들에 올리브영 매장의 체험 공간이 요긴했지만 매장 내 브랜딩 공간은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올리브영은 전사적으로 다양한 연중행사를 기획한다. 예를 들어, 수십 개 브랜드에 대한 코마케팅(co-marketing) 행사로 유명한 ‘올영세일’은 매년 3월, 6월, 9월, 12월 총 4번에 걸쳐 진행되는데 중소 화장품 업체와 MD의 개별적인 역량과 소통만으로는 지속 불가능한 행사이다. 올리브영 내 MD 140여 명이 수행하는 개별 역할과 별개로 조직 내 협업 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올영세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획-마케팅-유통 등 올리브영 내 모든 유관 부서가 3개월 주기로 반복적으로 브랜드를 재선정하며 물량의 안정적 공급을 담보하는 긴밀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직 내 소통과 협업 경쟁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올리브영 어워즈&페스타’ 행사이다. 이 행사에는 뷰티 제품군 특유의 고관여 소비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관람료를 내며 입장한다. 이들에 의한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은 중소 화장품 브랜드 매출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도 산업 발전을 위해 연말 제조사와 소비자가 함께 모이는 유사한 컨벤션 행사가 개최되는데 이와 같은 화장품 행사는 올리브영이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제한된 2020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개최됐고 규모 역시 매년 증가해왔다. 경쟁 H&B 스토어가 유사한 행사를 개최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 올리브영이 조직 내 다양한 부서 간 전사적인 협업이 크게 요구되는 연중행사를 연속 개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올리브영 조직 내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전환 시대,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다

2019년 말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소비 패턴이 확산됨에 따라 국내 화장품 구매의 온라인 전환이 급속히 이뤄졌다. 특히 2019∼2021년은 오프라인 중심의 H&B 사업자에 암흑기로 불린다. 이 시기 올리브영은 자체적인 온라인 채널 확대를 통해 구비된 품목의 다양성을 늘리고 ‘오늘드림’과 같은 옴니채널 전략을 병행함으로써 오프라인 점포의 암흑기를 견뎌냈다. 후발 H&B 스토어 사업자들이 온라인 몰 오픈 및 배송 시스템 도입이 늦어지면서 출혈 경쟁을 못 이기고 오프라인 매장 수를 축소한 것과 대비된다. 2018년 8%에 불과했던 올리브영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20년 18%, 2021년 25%, 2022년 27%로 3배 이상 상승했다.오프라인 암흑기 상황에서 온라인 매출이 올리브영의 반등에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온라인 시대에 중소 화장품 브랜드들 역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자체 홈페이지 구축 등 브랜딩 역량을 강화하고 유통 채널도 기존 H&B 스토어뿐 아니라 온라인 자사 몰(D2C), 오픈마켓 등 이커머스로 확장해 온오프라인 매출을 증대하고 있다. 실제로 검색 포털에 특정 중소 화장품 브랜드를 입력하면 올리브영 이외의 채널에서도 충분히 주문, 구매가 가능한 상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유통 경쟁이 기존 오프라인 사업자들을 넘어서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을 포괄한 형태로 확장된 셈이다. 특히 비대면 상황에서 소비자 접점을 키우는 방식의 기술 기반 마케팅으로서 라이브커머스 등이 부상했다. 화장품 특성상 매장 방문 등 실제 사용 경험이 중요하지만 뷰티 인플루언서 등과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실시간 소통하면서 고객 경험을 강화하는 유통 혁신도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기술 기반 유통 혁신은 시장 경쟁 측면에서 올리브영이 새롭게 직면한 도전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퀀트 마케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혁신이다. 카이스트 학술상(2023)과 경영대학 우수교육상(2023), 한국경영학회 신진경영학자상(2023)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카이스트 경영전문대학원장과 서울캠퍼스 창업 및 인큐베이션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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