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용기에 제품 용도만 간결하게 적어 놓은 생활용품. 생활공작소는 ‘미니멀 생활용품’의 원조다. 2016년부터 알록달록 패키지 일색인 생활용품 시장에 기본에 충실한 성분, 합리적 가격, 간결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들을 선보여왔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면서 ‘공간력’을 해치지 않는 생활용품에 갈증을 느끼던 2030 소비자들은 생활공작소의 미니멀한 감성에 열광하며 자발적으로 SNS 홍보에 나서는 등 팬덤을 형성했다.
이처럼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읽고 공동 창업자끼리 “각자 잘하는 것을 잘하자”는 마인드로 영업, 기획, 브랜딩, 마케팅에서 확실한 분업을 실천한 것이 생활공작소가 대기업이 장악한 생활용품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킨 비결이다. 이후 시장에 유사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미투 제품 출시가 이어졌지만 생활공작소는 ‘기본부터 다른 일상을 만들어가자’는 브랜드 가치관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내는 브랜드 리뉴얼 및 다양한 브랜딩 활동을 통해 MZ 세대가 사랑하는 생활용품 브랜드로 독보적 입지를 다져 나가고 있다.
알록달록 시장에 등장한 ‘흰검’ 이단아대형마트의 생활용품 진열장 앞에 서면 열두 가지 색 크레파스를 펼쳐 놓은 듯한 풍경을 만난다. 세탁 세제와 주방 세제, 그리고 샴푸, 린스, 보디워시는 빨강, 주황, 노랑, 파랑, 초록, 보라 등 갖가지 색상의 용기에 담겼다. 용기마다 적혀 있는 색색의 문구도 크고 길다. 라이스 테라피, 주이시 피치, 플라워 페스티벌, 생화 향기 컬렉션, 시크릿 오브 그린 파워….
옷 소매의 찌든 때를 빼주고, 그릇이 뽀드득 닦이며, 피부를 촉촉하게 해줄 것 같은 제품을 골라 사오면 아뿔싸, 너무 튄다. 화이트 싱크대에 놓은 빨간색 주방 세제통과 그레이 톤 욕실 세면대에 둔 보라색 핸드워시병은 ‘공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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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해치는 이질적 소품처럼 느껴지곤 한다. 집 안 인테리어를 ‘망치지’ 않기 위해 심플한 디자인의 용기를 따로 사서 세제나 핸드워시 용액을 덜어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알록달록 제품 일색인 생활용품 시장에 ‘심심한’ 외모의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흰색 혹은 베이지 톤의 용기에 보통 검은색으로 인쇄한 제품명은 직관적이고 간결하다. 패키지에 꽃, 레몬, 핑크소금 등의 이미지도 넣지 않는다. 이러한 ‘흰검’ 패키지 제품은 자신의 취향을 녹인 집 안 공간에 너무 튀는 제품을 들여놓기 꺼리는 MZ세대 소비자의 지지를 얻으며 생활용품 시장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살림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생활용품 브랜드의 원조는 생활공작소다. 생활공작소의 대표 상품 중 하나인 핸드워시를 보자. 용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이고, 아무런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다. 제품명은 ‘핸드워시’, 딱 네 글자로 검은색으로 인쇄됐다. 온라인 쇼핑몰의 제품 상세 페이지에 따르면 이 제품은 코코넛오일을 함유한 순비누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트리클로산, 파라벤 트리에탄올아민을 첨가하지 않았고 피부 자극 및 대장균 테스트를 완료했다. 이처럼 자랑 포인트가 될 내용이 적지 않은데 ‘코코넛오일’ ‘3무(無) 성분’ ‘99.9% 항균 테스트 완료’ 등의 광고 문구를 라벨에 굳이 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