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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세종과 구글 리더십의 핵심은 ‘무위(無爲)’

박영규 | 259호 (2018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직의 위기를 돌파하는 힘과 비전의 공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힘,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의식은 유위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위의 리더십에서 나온다. 리더가 시시콜콜 업무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면 구성원들이 멀미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강력한 유위의 리더십이 작동되면 직원들은 윗선의 눈치 보기에 바빠지고 조직은 보신주의에 빠져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장자가 제시한 우화를 비롯해 해리포터, 구글, 세종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스스로 국가의 일을 내 책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自以國家之事爲己任(자위국가지사위기임).” 세종대왕 당시 재상을 지냈던 허조(許稠)가 임종 당시 남긴 말이다. 허조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종의 리더십이 있었다. 세종은 취임하자마자 “나랑 같이 국사에 대해 의논하자”며 신하들에게 토론을 제안했다. 초짜 임금이라 업무에 서투니 당신들의 지혜를 빌려달라는 취지였겠지만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상호 협의를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것은 신선한 일이었다. 신하들은 토론하는 과정에서 리더로서 세종이 품고 있던 비전을 공유했으며 국가 경영에 대한 자기 책임성을 가지게 됐다. 세종은 무위(無爲)의 리더십으로 신하들을 타율적 객체가 아닌 자율적 주체로 바꿔놓았다. 허조를 비롯해 황희, 김종서, 박연, 장영실과 같은 큰 인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세종의 이러한 무위의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탈규격, 탈규제, 탈이념, 탈권위의 포(four)탈혁명이다. 정해진 틀이나 매뉴얼, 전통적 생각과 리더의 권위에 의존하는 조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 구글의 조직문화는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구글 본사 사옥에 들어서면 10m가 넘는 긴 화이트보드가 눈길을 끈다. 마스터플랜이라 불리는 이 화이트보드에는 사훈이나 전달사항이 적혀 있지 않다. 대신 온갖 낙서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품에 관한 아이디어나 회사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 어젯밤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나눴던 대화 등 사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공간이 화이트보드다. 구글은 정해진 근무시간이나 형태도 없다. 근무시간 중 회사 내에 마련된 당구장에서 당구를 칠 수도 있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할 수도 있고, 카페테리아나 마사지숍, 피트니스센터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신체를 단련할 수도 있다. 출근 시간에 데리고 와서 맡겨놓은 아이들에게 가서 동화를 읽어줄 수도 있다. 구글의 리더들은 이러한 방임형 조직문화를 권장하고 육성한다. 직원들에게는 조직의 목표나 성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비전만 제시한 후 그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은 직원들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다. 방임에 가까운 이러한 리더십 덕분에 직원들은 틀이나 규격, 권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그 결과를 집약해서 위에 건의한다. 구글은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가치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창사 20년 만에 연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2017년 기준)할 수 있었던 것은 CEO들의 무위의 리더십과 자유로운 조직문화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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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는 무위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대표적이다. “진인은 무위를 일삼아 노닐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생각의 틀이나 규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 眞人(진인) 逍遙乎無爲之業(소요호무위지업) 茫然彷徨乎塵垢之外(망연방황호진구지외)”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볼 때 위 구절에 나오는 진인(眞人)은 조직의 리더라 할 수 있고, 무위지업의 업(業)은 일, 사업영역, TF, 프로젝트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 기업의 리더는 열린 마음으로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업무(業)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無爲)한 채 조직을 놀이터 삼아 유유자적(逍遙)한다. 그리고 낡고 때 묻은(塵垢) 기성적 관념이나 방식에서 벗어나(外) 자유롭게 상상하고(茫然) 일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彷徨) 기업을 경영한다. ‘응제왕’편에서 장자는 무위의 리더십이 갖춰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름을 얻으려고 일을 억지로 꾸미지 않으며(無爲名尸 無爲謀府), 일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거나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다.(無爲事任 無爲知主).” 그리고 장자는 ‘응제왕’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통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리더십이 초래할 수 있는 해악을 경고한다. 남해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 방법을 의논했다. “사람은 누구나 눈, 귀, 코, 입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에게만 이 구멍들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선물을 주는 셈 치고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주자.” 숙과 홀은 의논을 마친 후 매일 하나씩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줬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혼돈의 원래 상태는 모든 사물이 확실히 구별되지 않는, 무위의 중립 상태다. 여기에 구멍을 7개나 뚫는 인위적인 조치를 취했더니 혼돈이 죽어버린 것이다.

역대 중국 황제들은 무위의 리더십을 주요한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한나라의 창업주 유방은 무위의 리더십으로 천하를 손에 넣었다.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에 먼저 도착한 유방은 기존 법률 가운데 세 가지 조항(約法三章)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했다. 무위에 바탕을 둔 과감한 개혁 조치로 유방은 진나라 귀족들과 백성들의 민심을 사로잡았으며 항우와의 천하쟁패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 교태전에는 無爲(무위)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청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룩했던 건륭제가 직접 쓴 친필 액자다. 중국의 성공한 황제들은 넓은 대륙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유위가 아니라 무위의 리더십을 선택했다.

간디도 무위의 리더십으로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혁을 이끌었다. 세계평화네트워크 소장을 맡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의 요한 갈퉁 교수의 말처럼 ‘간디는 혁명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간디는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그 어떠한 작위적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쳤다. 노벨상 수상자인 타고르와 로맹 롤랑, 조지 버나드 쇼, 달라이 라마를 감화시켰고, 전 세계 식민지 국가들의 민중 투쟁을 촉발했다.

『장자』는 우화 형식을 빌려 초현실의 세계를 다룬다. 요즘의 장르로 말하자면 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의 대표적 판타지인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에서도 우리는 무위의 리더십이라는 코드를 읽을 수 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 덤블도어와 마법사 간달프는 큰 틀에서의 미션(어둠의 세력과 싸워서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성물(聖物)과 반지를 제거하는 일)만 일러주고 구체적인 미션 수행 방법에 대해서는 해리포터와 프로도에게 일임한다. 해리포터와 프로도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지만 불굴의 의지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팀워크와 협업의 필요성, 동지적 연대와 소통의 중요성, 미션에 대한 견고한 책임감을 깨닫게 된다. 만일 덤블도어와 간달프가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줬더라면 해리포터와 프로도는 미션에 대한 창의적인 해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며 결국 미션은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조직의 위기를 돌파하는 힘과 비전의 공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힘,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의식은 유위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위의 리더십에서 나온다. 리더가 시시콜콜 업무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면 구성원들이 멀미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강력한 유위의 리더십이 작동되면 직원들은 윗선의 눈치 보기에 바빠지고 조직은 보신주의에 빠져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유위한 지도자는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역설에 빠진다. 주인(통치자, CEO)이 노예(백성, 직원)를 더 강하게 억압하고, 지배하고, 통제할수록 노예는 더 약하고, 우유부단하고, 평범해진다. 유위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주인은 직원의 CEO가 아니라 노예의 CEO가 된다. 즉 약하고, 우유부단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될 뿐이다. 큰 가닥만 잡아주고 세세한 것은 위임하는 무위의 리더십이 오히려 조직원들의 책임감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장자』는 ‘천도’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리더가 무위해야 일을 맡은 사람이 책임감을 가진다. 無爲也則任事者責矣(무위야즉임사자책의)”

일부 신하들이 세종에게 인사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니 인사 담당자에게 위임하지 말고 직접 챙겨야 한다고 건의하자 허조는 이렇게 말한다.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任則勿疑 疑則勿任(임즉물의 의즉물임) 전하께서 대신을 선택해 육조의 장으로 삼으신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며,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해 신하의 할 일까지 하시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세종은 허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위가 아니라 무위의 리더십을 선택한 세종은 조선왕조 최고의 군주로 남았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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