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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경영

CSR은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승규 | 15호 (2008년 8월 Issue 2)
새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이 지났다. 길지 않은 이 기간에 새 정부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소통’에 대하여 깊게 생각할 기회를 줬다. 너무나 다양한 의견과 주장, 분석과 제안이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내용을 다시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는 점에서 영리기업의 성공적인 CEO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주장을 조정해야 하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영리기업 CEO의 경영과제와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생각하면 복잡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이런 생각을 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현대 기업 경영의 발전 수준과 CEO의 활동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단견으로 판단된다. 이 글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Responsible Business)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 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 정부가 출범 초기에 직면한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오해와 이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주제가 세계적으로 기업경영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화두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이 분야만큼 화려한 말의 수사(Rhetoric)와 실제(Reality) 간 격차가 큰 경우 많지 않다. 사람마다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영리를 추구하면서 생산·고용·납세 등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고, 기업의 자선활동을 사회공헌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말로 번 돈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업 또는 투자자의 책임인 것처럼 생각하는 흐름도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오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한 용어의 모호성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CSR은 기업활동이 고객·공급자·종업원·주주 등 주요 이해관계자와 기업이 속한 공동체나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impacts)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영리추구목적에 대한 의심이나 이익을 사회에 돌려준다든가 하는 모호한 오해의 여지는 전혀 없다. CSR의 핵심은 기업이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지 사회문제 해결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CSR이 부상한 배경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시장경제의 발전으로 사회의 여러 부문 중 기업의 역할이 급격하게 커졌다. 이에 따라 대부분 사회문제가 기업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다. 즉 더 커진 영향력만큼 더 큰 책임을 기업에 요구한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런 변화는 매우 심각한 도전이다. CSR에 적극적인 기업은 이런 변화한 환경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회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행동하며 대처하고 있다. 즉 CSR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윤리적이 되거나 기업의 근원적 목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CSR은 ‘행동 결과에 대한 책임’과 ‘책임져야 할 결과에 대한 사전적 주의 및 배려’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미있는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책임경영 또는 윤리경영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지탄 받지 않는 경영’이라는 구호를 들 수 있다. 필자가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누구나 같은 인상을 받겠지만) 거대 기업의 경영 구호로는 너무나 원색적이고 방어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이는 행동과 책임이라는 사회책임경영의 본질을 간파한 실용적이고 강력한 문안이라 생각된다. 기업 활동은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적어도 그 누구에게도 ‘지탄’ 받을 행동은 하지 말자는 기준은 기업 내부의 경영자와 관리자·종업원들에게 명확한 행동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를 새 정부가 지난 5개월간 받은 많은 ‘지탄’에 적용해 보자. 오렌지 파동과 영어몰입교육, 고소영-강부자 내각, 0교시 수업과 얼리 버드, 광우병 파동, 촛불 배후설, 외환시장 개입, 측근 인사, 금강산 사건, 독도 문제 등은 ‘지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현 정부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각각 다르므로 한 집단의 칭송을 받을 행동이 다른 집단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지탄이란 말은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행동의 주체가 사과와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책임지지 못할 언행’에 대해 사용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책임경영을 위한 내부 시스템: SSHM
이런 문제는 이 정부의 핵심지도층과 이를 지원하는 정부 부처에 이해관계자 관리 및 위험관리,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은 4800만 명의 인구와 100만 명에 육박하는 외국인이 모여 사는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다. 당연히 다양한 가치관과 입장을 가진 집단이 얽혀 있는 다원적이고 복잡한 사회다. 한편 한국정부의 정책과 행동은 지구촌의 많은 국가와 기업, 투자자, 교포, 세계시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경영 활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사회책임경영의 요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CSR 또는 사회책임경영의 아이디어를 국정과 정부경영에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긴급한 과제다.
 
CSR이라는 용어가 기업과 사회 간 관계를 중심으로 경영 활동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기업은 내부적으로 이런 과제가 시현되도록 보장하는 내부 경영관리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전략적 이해관계자 관리(SSHM·Strategic Stakeholder Management라고 부른다. SSHM은 기업 내부의 조직 구조와 경영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모두 반영돼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클라크슨(Clarkson)연구센터에서 정립한 클라크슨 원칙은 SSHM의 기본과제를 잘 설명한다.
 
1. 경영자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관심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이를 의사결정과 행동에 반영해야 한다.
2. 경영자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공헌·우려·위험에 대해 경청하고 공개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3. 경영자는 이해관계자에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프로세스와 행동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4. 경영자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노력과 보상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각 집단의 위험과 취약성을 고려하여 이익과 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5. 경영자는 기업 활동의 결과로 이해관계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기관과 협력적으로 노력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6. 경영자는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미리 알았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인간의 천부인권을 훼손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회피해야 한다.
7. 경영자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갈등과 이견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개방적 의사소통과 적절한 정보제공, 보고시스템을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
 
클라크슨 원칙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는 경영자라는 말을 대통령이나 장관으로 바꿔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훈임을 알 수 있다. SSHM을 조직 내부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 활동에 크게 영향을 주거나 받는 이해관계자들의 집단별 주장 또는 목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로널드 미첼 등이 주장한 이해관계자 구분 방식이 도움이 된다. 어떤 조직이나 목표 달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관계자는 영향력(Power)·정당성(Legitimacy)·긴박성(Urgency)의 세 차원에서 강약에 대한 측정과 구분이 가능하다. 이런 분석 틀을 현명하게 실무적으로 활용한다면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적은 줄이고 우군을 늘려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관점을 쇠고기 파동에 적용해 보자. 촛불 시위를 시작한 10대 학생들은 정부 관점에서 볼 때 쇠고기의 잠재적 광우병 위험에 대해 항의하는 세력으로 보기에는 영향력도, 정당성도, 긴박성도 대단치 않은 집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직접적으로 학교 생활에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 그룹이며, 민주교육의 결과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과 긴박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소수였다. 이들의 적극적 의사 표현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그 뒤에 벌어진 네트워크의 폭발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첫째, 정부나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집단은 네트워크로 연계돼 있어 대단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정당성과 긴박성에 대해서도 과학적ㆍ객관적 진실과 이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특히 이해관계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집단간 인식격차(perception gaps)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집단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전제로 기업이나 정부는 전략적 위험관리 체제를 재검토하고 수정·보완해야 한다. SSHM의 핵심은 중요한(영향력이 크고, 정당하고 긴박한 주장을 하는) 이해관계자 집단이 경영목표 또는 정책목표 달성에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체제를 구비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이해관계자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평상시 경영 주체가 이들로부터 ‘충분한 신뢰(Trusting Relationship)’를 받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에 ‘책임 있는 행동(Respon -sible Behavior)’으로 신뢰할 만한 대상이라는 ‘평판(Reputation)’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SSHM의 이러한 네 가지 R의 순환관계를 그림으로 보면 도표 <전략적 이해관계자 관리의 4대 구성 요소>와 같다.

 


 

지금까지 정부의 많은 실언과 실책을 보면 수사와 실제에서 모두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이해관계자와의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으며,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정부라는 평판과 명성을 얻지 못했다. 이는 전략적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Risk)을 위기(Crisis)로 발전시키는 전형적인 위험관리의 실패로 귀결된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복잡한 네트워크 시대에는 이해관계자의 움직임이 ‘비선형동학(Nonlinear Dynamics)’에 따라 움직이므로 지도층의 언행(Rhetoric and Reality)이 모두 주의 깊게 관리되어야 한다.
 
이해관계자 관리와 대통령의 리더십
지금까지 기업경영의 근본이 되는 SSHM에 대해 여섯 가지 R(수사·실제·책임·명성·관계·위험)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까? 개별 기업은 그 행동의 사회적 영향에 책임을 지는 데 있어 수동적 입장에 서며, 사회 전체를 이끌거나 변화를 주도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관리자가 아니며, 국가 원수로서 복잡한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그 과정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또한 정부와 국가의 이해관계자 그룹은 한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그룹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리 사회는 이념적 스펙트럼도 매우 넓고, 지역·종교·세대·계급간 불균형과 갈등도 매우 심화되어 있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과 중산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 경제 살리기와 실용주의 노선을 내걸고 정권을 잡았지만 이는 ‘수사’에 국한된 내용이며, 많은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행동에 있어서의 무책임성과 대기업·부유층 편향성 때문이었다. 이런 수사와 실제의 불일치야 말로 대통령이 말하는 신뢰와 소통 부재의 근본 원인이다.
 
지금까지 새 정부는 소극적인 책임경영에도 철저한 실패를 보였지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단순히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지탄받지 않는 수준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수세력이 요구하는 법질서 확립과 진보세력이 요구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및 배려, 시장과 정부의 역할분담 방식 재정립 등 중요한 국가적 과제에서 모든 이해관계 집단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답안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다양한 의견 수렴과 개방적 토론을 거친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을 통해 보여져야 한다. 어떤 정책 결정이든 집행 과정에서 반대자 앞에서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다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책 집행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를 위해 앞에서 다룬 이해관계 집단에 대한 합리적 분석과 대응, 관계관리와 신뢰확보, 사전적 위험예방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 개발 시대의 획일적 통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자연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로 영예로운 자리다. 재임 기간에 소수의 친밀한 이해관계자에 둘러싸여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서는 결코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역사의 냉정한 눈으로만 평가된다. 21세기 초반의 격변하는 세계에서 한국을 선진국 위치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려면 현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정신을 확대 적용하는 등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풀브라이트 방문교수로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연구하고,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가치 창출 프로세스와 네트워크 진화를 중심으로 경영성과의 증진과 기업경영의 사회적 영향 등에 대해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등 해외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정부, 공기업 및 현대자동차, 삼성, LG, SK 등 다수 대기업의 자문 활동을 벌였다.
  • 이승규 | - (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 풀브라이트 방문교수로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연구
    - 아르곤 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 정부, 공기업, 현대자동차, 삼성, LG, SK 등 다수 대기업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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