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편집자주 오랫동안 CEO들을 대상으로 심리클리닉 강좌와 상담을 진행해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 리더들에게 필요한 마음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경영자들이야말로 ‘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인생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조직이나 기업이든 그 속에는 사랑과 미움, 복종과 저항, 경배와 파괴, 두려움과 경멸의 감정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맞닥뜨리는 것이 부모와의 관계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근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교차하는 물결에 떠밀려 움직일 때가 많은 것이다.
조직에서 리더의 자리는 심리적으로 부모의 자리를 연상시킨다. 그것만큼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더욱이 조직의 리더로서 요구되는 명철함과 능력, 권위와 관용은 어린 시절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바 그대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어린 시절 부모는 아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의 보살핌에 따라 생존 여부가 결정되고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상과 벌의 원칙이 정해지며 행동강령이 정해진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양가감정(ambivalence)1 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이 바라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는 데 실망하면서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한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에 갈등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양가감정은 조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감정의 근원은 부모와의 관계
박지환(50세, 가명)씨는 어느 기업의 임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역량과 카리스마를 두루 지닌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그는 일을 잘하는 친구들은 누구보다도 화끈하게 밀어주었다. 물론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는 친구들에 한해서였지만. 어느 조직이나 이너 서클은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 역시 자기만의 사람들을 만드는 데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그들에게 자신이 아버지 같은 존재로 군림 하는 데 자부심마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들 중 하나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명석한 두뇌와 창의력으로 그에게 크게 신임을 받던 친구였다. 그래선지 배신감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생각보다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 친구의 행동을 좀 더 세밀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종의 행동 패턴이 그려졌다. 문제의 팀원이 그의 권위에 대드는 때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직원들을 경쟁하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 뿐 아니라 충성심도 높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대개 교묘한 방법으로 이뤄졌으므로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동료와 경쟁관계에 놓이곤 했다. 그것을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역시 머리 좋은 녀석은 못 따라 가겠군’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 팀원과 개인적인 자리를 마련했다. 그대로 두었다가 다른 팀원들 사이에 전염이라도 되면 더욱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가 허심탄회한 자리임을 강조했음에도 상대방은 좀처럼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드러내놓고 경멸하는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어느 부하직원도 그 앞에서 감히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는 상대방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든지 다 들어준 다음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그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낀 상대방의 태도가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상무님을 미워한 건 사실입니다. 상무님의 어떤 행동들이 꼭 제 아버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특히 팀원들을 교묘하게 경쟁하게 만드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꼭 그런 방식으로 저희 형제들을 덫에 빠뜨리곤 했거든요.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자 형제들끼리 죽어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어떤 건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그게 얼마나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
짧은 침묵 끝에 상대방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에 상무님이 절 발탁해 주셨을 때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상무님도 그 후로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동료와 경쟁관계에 놓였다는 걸 알고 나자 그만큼 좌절감도 크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동료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과의 경험 때문에 제가 더 예리하게 그걸 포착했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런 사실을 깨닫고부터 상무님을 보면 제 아버지가 연상되면서 저도 모르게 분노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상무님이 알아차리신 거고요.”
그날 두 사람은 좀 더 긴 대화를 나누었다. 말 그대로 허심탄회한 대화였다. 그 후로 박지환 씨는 직원들을 교묘하게 경쟁하게 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그동안 팀원들의 충성을 얻기 위해 마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자임해 온 것에 대해서도 궤도 수정을 해나갔다. 권위를 강조하는 대신 좀 더 여러 사람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이뤄 나가고자 노력했다.
‘상사 킬러’로 소문난 여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녀는 부서를 옮겨갈 때마다 무능하게 느껴지는 상사를 가차 없이 공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내에서도 그런 행동은 충분히 골칫거리였다. 결국 회사에서는 상담을 받을 것을 강력히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상담과정에서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무능한 아버지로 인해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아야 했다. 어머니는 ‘남편 잘못 만나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 됐다’는 한탄을 한번 시작하면 거의 발작 직전까지 가야 끝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안 되고 불쌍했다. 그런 만큼 어머니가 미웠다. 하지만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온 식구가 살다 보니 누구도 그녀의 신세 한탄을 멈추기 어려웠다. 또한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것도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 결국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그녀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특히 자신의 윗사람이 약간이라도 무능력한 기미를 보이면 그녀는 아버지가 연상돼 참지 못했던 것이다.
리더는 부하의 애증 감정을 이해해야
임상에서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례가 많다. 아버지가 뛰어난 경우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으로 아예 자포자기하거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강박적으로 노력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넌 절대 아버지처럼 커선 안 된다. 반드시 이 엄마가 원하는 남자가 돼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성장한 남자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성공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고 친구들을 모으고 어느 자리에서나 리더가 되고자 카리스마를 앞세우는 남자가 됐다. 그러다가 중년기를 지나면서 지독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게 됐다. 상담과정에서 그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느라 자신의 진짜 인생을 다 허비해 왔다는 사실에 그는 다시 한번 절망해야 했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어느 임원은 자기 상사만 보면 얼어붙곤 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그는 이번에는 마치 폭군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역시 상담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와의 병적 동일시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리더가 그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성장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기와 부모와의 관계를 알아야만 자신이 조직원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도덕이나 윤리적 개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개 그 기업이나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리더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리더는 더욱 더 자신에 대해 알아 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리더는 조직원들이 리더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분노하고 반항하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고 순종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사실을 좀 더 이해한다면 리더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그만큼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은 부모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을 본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기대치와 실망, 부모처럼 살고자 하거나 반대로 부모처럼 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 과정 등등을 듣다 보면 결국 우리의 무의식에는 프로이트의 이론대로 어린 시절의 모습, 어린 시절의 환상, 어린 시절의 욕구가 남아 있어 어른이 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아직 미처 자라지 못한 채 상처받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조그만 존재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양창순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mind-open@mind-open.co.kr
필자는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로 현재 <양창순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주역과 정신의학, 리더십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ceo, 마음을 읽다> <미운 오리새끼, 날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등 자기계발, 대인관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책들을 10여 권 넘게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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