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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전경련 국제경영원 공동 기획

[국내 최초 기업 리더 의사결정 유형 및 오류 설문조사] 한국의 리더, 의사결정의 덫에 빠지다

안서원 | 41호 (2009년 9월 Issue 2)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합니다. 특히 최근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경영자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기업도 단 하나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전경련 국제경영원, 안서원 연세대 연구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기업 리더의 의사결정 유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일반인들의 통념과 달리, 한국의 리더는 분석적이면서도 의사결정의 오류에 더 쉽게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더들의 생생한 의사결정 노하우도 전해드립니다.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데이터를 중시할까, 아니면 감에 의존할까? 많은 사람들은 동양적 정서상 데이터보다는 감에 더 의존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한국 리더들은 직관보다는 정보와 데이터에 더 의존하는 분석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분석적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한국 리더들은 분석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결정을 내린다고 볼 수 있을까? 이번에도 통념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국 리더들은 분석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의사결정 과정에서 심리적 오류에 더 쉽게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감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유형이 오류에 더 잘 빠진다는 기존 학설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안서원 연세대 심리학과 연구교수는 한국 최초로 기업체 과장급 이상 리더를 대상으로 의사결정 유형 등을 파악하기 위한 ‘인지 스타일 척도(CSI)’ 조사를 실시했다. 8월 17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조사가 실시됐으며, 총 165명의 기업 간부들이 조사에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국내 최초로 기업 리더들의 의사결정 유형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의사결정 편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영국 리즈대 경영대 연구팀이 1996년 개발한 척도로 의사결정 유형을 분석했기 때문에 글로벌 비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e메일과 오프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 과정 회원 등 한국 기업 리더 165명이 참가했다. 평균 연령은 48.4세였다. 대표이사와 임원급 이상 응답자는 109명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남성은 149명(90.3%), 여성은 16명(9.7%)이었다.
 
평균보다 더 분석적인 한국의 경영자
이번 조사에서 한국 기업 리더 165명의 CSI 점수는 평균 45.5점(최저 11점∼최고 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평균(41.8점)보다 3.7점 높다. 세계 각국에서 모두 9427명의 기업 리더(MBA 전공 학생 포함)를 대상으로 86번의 CSI 조사가 진행됐다. 세계 평균은 이 조사 결과의 평균치를 말한다.
 
CSI 조사는 의사결정 유형을 판단하기 위한 기법으로 38개 문항에 대한 점수(최고 점수는 76점)를 합산해 ‘직관(intuition)’과 ‘분석(analysis)’의 두 기준 중 어디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즉 이 점수가 높을수록 분석적이다.
 
 
이번 조사 결과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다른 나라 경영자보다 분석적인 의사결정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멕시코 벤처 사업가(45점), 중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42.8점), 호주 IT 설계자(41.9점), 미국 벤처 사업가(40.7점)보다 한국 기업 리더들이 더 분석적 성향을 보였다. 반면 홍콩 경영자(50.1점), 영국 전자업계 중간 관리자(46.5점), 캐나다 변호사(46.3점) 등은 한국보다 더 분석적인 의사결정 스타일이었다.
 
전문가들은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는 일회성의 복잡한 단서를 고려하는 직관적 의사결정이 많이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사회학자 겔너의 연구에 따르면 농경사회에서 초기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는 분석적인 사고가 우위를 차지하지만,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직관적인 사고가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성별에 따라 의사결정 스타일의 차이도 나타났다. 남성의 평균 점수는 46.5점으로, 여성의 평균 점수(36.5점)보다 10점이 높았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직관적이며 후기 산업사회에 맞는 의사결정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연령별, 직급별, 교육 정도에 따라서는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4가지 의사결정의 편향성
이번 조사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의 편향성을 분석하기 위해 설문조사 대상을 2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유형의 문항을 제시했다. 한국 리더들의 의사결정 유형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류 유형을 파악해 개선점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안이 불명확하거나 정확한 정보가 없을 때는 오류가 발생한다. 이 밖에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따른 심리학적 오류도 나타났다. 오류의 4가지 유형과 한국 리더들의 오류 양상은 다음과 같다.
 
①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어떤 수치를 추정할 때 미리 제시된 기준점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는 경향을 뜻한다. 경영자들은 내년 매출액과 환율 등의 수치를 예측한다. 이때 기존에 알려진 수치(예를 들어 전년 매출액 등)를 기준점으로 삼고 적절히 수치를 조정하는 일이 많다. 이런 ‘기준점 효과’는 기준점이 의미 없는 수치일 때도 영향을 받는다. 이번 조사에서도 기준점 효과가 확인됐다. 다음 문항을 2개의 응답 그룹에 각각 제시했다.
 
귀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한 일본 회사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데 관심을 보이면서 미팅이 잡혔고, 귀하가 회사를 대표해 가격을 결정하러 나가게 됐습니다. 현재 이 부품은 국내에서 2만 원에 팔리고 있고(일본 회사는 이 가격을 알지 못함), 추가로 이 부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1만 원입니다. 귀하는 일본 대표를 만나 가격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통역사(일본인 통역사로 발음을 알아듣기 매우 어려움)를 통해 귀하는 일본 회사가 부품당 _______원을 줄 의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물어보니 통역사는 일본 측이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며, 가격은 내일 다시 협상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_______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귀하는 내일 가격 협상에 동의했고, 얼마를 제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이 상황에 있다면 얼마를 제시하겠습니까?
 
가형. 1만2000원
나형. 3만2000원
 
※ 가형과 나형의 수치가 질문의 빈칸에 각각 제시됐음
 
조사 결과 1만2000원을 기준점으로 제시한 가형 문항 응답자들이 적어낸 평균 가격은 1만6729원이었다. 반면 같은 부품에 대해 3만2000원의 기준점을 제시한 나형 문항 응답자들은 평균 2만6468원을 써냈다. 즉 기준점이 클수록 응답 금액도 높아졌다.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였다. 특히 기준점으로 제시된 가격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응답자들은 이 수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점 효과에서 벗어나려면 여러 개의 기준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의 기준점을 고려하거나, 기준점을 찾기 전에 혼자서 수치를 추정하고 나중에 기준점과 비교하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제시하면 상대방이 그 수치를 기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점 효과는 특히 협상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대방의 초기 제안(initial offer)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기준점을 먼저 생각해둬야 한다. 거꾸로 협상 과정에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을 먼저 제시해 협상을 주도하는 전략도 생각해볼 수 있다.
 
②매몰 비용 편향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미 매몰된 비용(시간이나 돈)에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경영자들은 현재와 미래 가치에 기초해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종종 과거에 내린 결정에 휘둘리곤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매몰 비용 편향을 분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항을 2개의 그룹에 제시하고 결과를 비교했다.
 
가형.귀하는 비행기 부품 제조회사의 신제품 개발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총 개발 비용이 10억 원인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이 중 9억 원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평범한 레이더에는 걸리지 않는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레이더를 방해하는 부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경쟁 회사에서 당신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것과 동일하지만, 더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비행기에 더 쉽게 장착할 수 있는 부품을 이미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하려고 합니다. 귀하는 이 상황에서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나머지 1억 원을 투자해야 할지, 아니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이 상황에 있다면 투자를 계속하겠습니까? ① 예 ② 아니오
 
나형.귀하는 비행기 부품 제조회사의 신제품 개발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부하 직원이 레이더를 방해하는 부품을 개발해 평범한 레이더에는 걸리지 않는 비행기를 만드는 데 마지막 남은 연구개발비 1억 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다른 경쟁 회사에서 이 직원의 제안과 동일하지만, 더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비행기에 더 쉽게 장착할 수 있는 부품을 이미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하려고 합니다. 귀하가 이 상황에 있다면 이 제안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① 예 ② 아니오
 
이미 투자한 9억 원의 매몰 비용이 제시된 가형 문항에는 응답자의 61.5%가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매몰 비용이 없는 나형에는 15.9%가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답했다. 즉 동일한 대안에 대해 매몰 비용이 있을 때 투자 의향이 더 강했다. 이번 조사로 한국 기업 리더들도 매몰 비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매몰 비용 편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매몰 비용에 영향을 받는 이유는 뭘까. 매몰 비용을 무릅쓰고 투자를 번복하면 심리적으로 불편해진다. 자신의 과거 결정이 옳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며, 투자비를 낭비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과거에 투자한 비용에 집착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투자를 반복한다.
 
1998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매몰 비용 편향은 은행의 대출 업무 과정에서 종종 나타난다. 사업에 실패한 채무자가 추가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 대출 담당자는 위험을 알면서도 기존 대출금을 돌려받기 위해 추가 대출을 승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일부 은행은 기존 대출에 대한 추가 대출 건은 새로운 담당자가 처리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새로운 담당자가 매몰 비용 편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매몰 비용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잘못 내린 결정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낯’을 세우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계속 고집하면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매몰 비용에서 자유로운 제3자의 의견이 이때 도움을 줄 수 있다.
 
한편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모든 의사결정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으며, 상황 자체의 불확실성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과로만 의사결정의 질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의 질은 ‘과정’에 기초해야 한다. 적절한 의사결정 틀을 갖고 접근했는지, 관련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됐는지, 정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편향이 없었는지 등이 평가 기초가 돼야 한다. 반복적으로 비슷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이전 경험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좋은 학습 자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 이전 경험을 떠올리면 오히려 편향된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에 학계에 보고된 의사결정 편향성 가운데 틀 효과와 현상 유지 편향에 대한 분석도 진행됐다. 조사 결과 두 편향이 약하게 나타났지만 통계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③약한 틀 효과(framing effect)의 편향 ‘틀 효과’는 대안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틀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응답자를 2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2가지 틀 문항을 각각 제시했다. 긍정적 틀은 팀의 성공률로, 부정적 틀은 팀의 실패율로 과거 실적을 설명했다. 두 틀의 표현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귀하는 현재 연구개발(R&D) 부서의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부서의 여러 프로젝트 팀 중 한 팀이 1억 원의 추가 예산을 요청해왔습니다. 이 프로젝트 팀은 이미 기한을 넘긴 데다 예산을 다 쓴 상태였지만,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귀하는 아직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5억 원의 준비금을 갖고 있는데, 이 돈은 남은 예산 기간 동안 집행돼야 합니다. 1억 원을 이 프로젝트 팀에 지원하게 되면 집행돼야 할 예산은 4억 원으로 줄어들지만, 다른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처할 기회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가형.이 팀은 지난 50개의 프로젝트 중 30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귀하라면 이 팀에 어느 정도 추가 지원을 해주겠습니까? ______________원
(최소 0원, 최대 1억 원)
 
나형.이 팀은 지난 50개의 프로젝트 중 20개의 프로젝트를 실패했습니다. 귀하라면 이 팀에 어느 정도 추가 지원을 해주겠습니까? ______________원
(최소 0원, 최대 1억 원)
 
이번 조사에서 긍정적 틀인 가형 문항의 응답자들은 평균 776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부정적 틀인 나형 문항의 응답자들은 7072만 원이라고 답했다. 성공률로 제시할 때(긍정적 틀인 가형)가 실패율로 제시했을 때(부정적 틀인 나형)보다 평균 지원 금액이 더 컸다. 한국의 리더들도 틀 효과의 편향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다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아 응답자들이 틀 효과를 강하게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틀 효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틀 모두로 문제를 살펴보고 결정을 내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50개의 프로젝트 중 30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정보가 주어진다면 ‘그래? 그럼 20번은 실패했다는 얘기군’ 하고 생각해보는 식이다.
④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default bias)새로운 대안과 기존 대안이 있을 때 기존 대안을 선호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다음 질문을 2개의 그룹에 각각 제시했다.
 
귀하는 지속적으로 재무 관련 전문잡지를 읽으며 투자할 곳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지만, 최근에는 딱히 투자할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가형.그런데 마침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돈을 물려받았습니다. 귀하는 여러 포트폴리오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이런 상황에 있다면 다음 4가지 중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나형.그런데 마침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현금과 유가증권을 상속받았습니다. 이 유가증권의 상당 부분은 중간 정도의 위험을 갖고 있는 A회사에 투자돼 있습니다. 귀하는 현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유가증권에 투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이런 상황에 있다면 다음 4가지 중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①중간 정도의 위험을 보이는 A회사에 투자한다.
향후 1년간 이 회사의 주식 가격이 30% 올라갈 확률은 10분의 5, 변하지 않을 확률은 10분의 2, 20% 내려갈 확률은 10분의 3이다.
②고위험의 B회사에 투자한다. 향후 1년간 이 회사의 주식 가격이 2배가 될 확률은 10분의 4, 변하지 않을 확률은 10분의 3, 40% 내려갈 확률은 10분의 3이다.
③채권에 투자한다. 향후 1년간 거의 확실하게 보장되는 이 채권의 수익은 9%다.
④지방채에 투자한다. 향후 1년간 세금 면제 수익이 6%다.
 
조사 결과 기존 대안(①번)을 선택한 비율은 기존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가형(43.8%)보다 제시된 나형 응답자(47.8%)가 더 높았다. ‘현상 유지 편향’이 약하게 나타난 것이다. 편향성이 약하게 나타난 이유는 세계 경제 위기로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시점에서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응답자들은 안전한 투자 대안인 ③번을 선호했다.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대안 ②의 기대수익률(28%)이 대안 ①과 ③의 9%보다 크게 높았지만 응답률은 낮았다.
 

 
이전 연구에서는 현상 유지 편향이 의사결정 과정의 일반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2003년 미국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유럽 각국의 장기 기증 선택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유럽에서는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 기본 질문(default)이 국가마다 다르다. 덴마크는 ‘장기 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기본 질문을 던진다. 장기 기증을 원하면 별도로 ‘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장기 기증을 하겠다’는 기본 대안을 제시한다. 원하지 않으면 별도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장기 기증률이 덴마크는 4.25%, 오스트리아는 99.98%로 큰 차이가 났다. 이는 기본 대안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사람들은 왜 기존 대안을 선호할까. 전문가들은 기존 대안에서 벗어나려면 별도의 행동이 필요하며, 이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을 벌였다가 그르치면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반면 기존 대안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적어 안전하다. 기존 대안을 선택해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분산하거나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상 유지 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의식적으로 기존 대안도 새로운 대안과 동일하게 다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의사결정을 피하기 위해 기존 대안을 선택하지는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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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적인 임원일수록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번 조사에서는 대표이사와 임원급 109명(66%)을 대상으로 의사결정 스타일과 편향성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직관적인 스타일의 임원들이 틀 효과와 매몰 비용 편향을 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틀 효과에 대한 설문 문항에서 분석적 스타일의 응답 값 차이(긍정적 틀과 부정적 틀에 대한 평균 응답 값 차이)는 약 1698만 원이었지만, 직관적 스타일은 차이가 약 234만 원에 불과했다. 분석적인 스타일이 틀 효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매몰 비용 편향도 분석적 스타일의 임원에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매몰 비용이 있을 때 계속 투자하겠다는 응답은 분석적 스타일이 66.7%, 직관적 스타일은 48.1%로 조사됐다. 분석적 스타일이 매몰 비용에 더 연연하는 셈이다.
이는 분석적인 사람들의 편향이 작을 것이라는 이중처리체계 이론의 기존 연구와는 다른 결론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 사안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분석적 접근이 어려워지고, 직관적인 결정을 좀더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크게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눈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며, 인지적인 노력 없이 자동적이고 연합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시스템 2는 분석적이고,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며, 의식적이고 단계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편향은 대개 직관적인 시스템 1이 작동한 결과로 보는 이중처리체계 이론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 조사 결과는 합리적 의사결정에 정서적 측면과 직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실제로 CSI를 사용한 기존 연구는 성공적인 경영자일수록 좀더 직관적 스타일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관은 ‘느낌으로서의 직관’과 ‘전문성으로의 직관’으로 나뉜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육감’, 즉 ‘직감’에 해당한다. 후자는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패턴 인식 능력(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블링크>에서 언급한 ‘순간적 판단력’)을 말한다.
 
사고나 질병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 정서적인 정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에게 좋고 나쁜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 결과 더 위험한 대안을 선택한다. 심지어 파일을 정리할지, 보고서를 작성할지를 결정하지 못해 몇 시간씩 쩔쩔매기도 한다.
 
‘전문성으로의 직관’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예를 들어 의사는 의대 교육 과정을 통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며,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보고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후 환자를 보고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연마한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배우는 지식은 학교나 교과서처럼 정답이 있지는 않다. 내 행동이 맞는지 틀린지도 알기 어렵다. 매일 환자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 의사조차 자신의 진단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전문성으로의 직관’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이를 기록해둬야 한다. 자신의 직관이 얼마나 정확한지, 언제 정확한지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추후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런 훈련은 ‘전문성으로의 직관’의 질을 높여 유능한 경영자가 되도록 돕는다.
 
안서원 교수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영학과 BK21 계약교수, 성균관대 심리학과 책임연구원, 고려대 의대 연구강사, 고려대 심리학과 BK21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심리학과 BK21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 안서원 | 연세대 심리학과 BK21 연구교수
    서강대 경영학과 BK21 계약교수
    성균관대 심리학과 책임연구원
    고려대 의대 연구강사
    고려대 심리학과 BK21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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