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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바슈롬코리아 사장 인터뷰

고달픈 워킹맘? 그 생각부터 벗어나야 성공

하정민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육아도 경영처럼 효율적 자원 배분이 필요합니다. 저마다 개성이 다른 세 아이에게 모두 집중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일단 큰아이부터 확실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동생들은 맏이의 행동을 자연스레 따라 하기 때문이죠.”
 
 

 
세 아이 엄마이자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 사장으로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성공 신화를 쌓아가고 있는 모진 바슈롬코리아 사장은 자신의 양육 방법을 이같이 설명했다. 모 사장은 P&G, 다국적 제약회사 MSD, 머크 등을 거친 마케팅 전문가다. 그는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서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경영의 기본 원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6년 4월 바슈롬코리아 사장으로 뽑혔다. 그러나 계약서를 쓰고 사장 취임 준비를 하는 기간에 콘택트렌즈 보존액인 ‘리뉴 모이스춰락’의 전 세계 리콜 사태가 터졌다.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지만 모 사장은 굴하지 않았다. 잘 팔리지 않는 저회전(slow-moving) 제품을 과감히 없애고, 제약 등 신사업 진출을 단행했다. 마케팅 전문가답게 젊은 층을 겨냥해 탤런트 김옥빈이 출연한 TV 광고를 만들어 핵심 제품의 인지도를 높였다. 덕분에 취임 1년 만에 매출이 20% 이상 늘었고, 3년째 실적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 모 사장의 성공 노하우를 들어봤다.
 
미국 대학을 졸업했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죠?
“중 3 때 아버지의 근무처 이동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셔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귀국해야 했어요. 한국에 돌아와 P&G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이때 너무나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P&G는 직원의 잠재력을 정말로 잘 이끌어내는 회사거든요. 입사 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이 2가지입니다. 첫째, 당시 상사가 말단 신입인 저의 20∼30년 후 비전을 제시해 줬습니다. 23년 전에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회사는 P&G밖에 없었을 거예요. 둘째, 신입 직원에게 수십억 원의 예산을 주고 하나의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도록 하는 ‘early responsibility’ 제도입니다. 처음 그 일을 맡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경영자가 된 지금, 누가 신입 직원에게 똑같은 기회를 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답하기가 어려워요. 그때 P&G에서 제게 리더의 비전을 제시해주지 않았다면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할 생각도, 성공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갖지 못했을 겁니다. 그 전에는 제 자신이 도전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 경험을 통해 남들보다 일찍 리더십과 책임감을 배우고,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걸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직장 생활 초기에 어떤 회사,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 역시 초창기 저를 인도해줬던 훌륭한 상사 분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취임하자마자 터진 리콜 사태를 잘 극복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머크 미국 본사에서 근무했습니다. 바슈롬코리아 사장을 맡기로 결정하고, 한국으로 출근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 리콜 사태가 일어났어요. 한국에 오니 상황이 심각하더군요. 매출이 3분의 1로 떨어졌으니까요. 리콜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과거에도 위험관리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어 큰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더군요. 리더십, 윤리 의식, 인적 자원, 글로벌화, 전략 등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리콜 사태로 그 문제들이 동시에 수면 위에 떠오른 거죠.
 
대대적인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버스에 누구를 태울 것이냐를 고민하지 말고, 누구를 내리게 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을 서서히 가열하면 환경 변화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죽어가죠.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환경 변화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취임하자마자 대부분의 간부를 교체하고, 새로운 경영 팀을 구성했습니다. 지나치게 많던 제품군도 없앴습니다. 렌즈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맞춤 상품의 성격이 큽니다. 특히 병 렌즈, 스페셜 렌즈 등은 사용자가 극히 소수였어요. 그런데도 어쨌든 고정 고객이 있다는 이유로 영업 쪽의 반대가 심하더군요. 선택과 집중이 왜 필요한지를 거듭 설명하고 수익성이 높은 제품 몇 개만 남겼습니다.
 
둘째, 목표는 현실적으로 잡고 실행은 공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경영자가 뜬구름 잡는 목표를 내놓으면 직원,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가 위기 상황에 있을 때는 더더욱 예측 가능한 실적을 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사실 위기 상황에서는 예측 가능한 실적 달성도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일단 작은 목표를 이룬 다음, 거기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시 전진해야죠.
 
셋째, 구조조정 시 직원들에게 중요한 건 ‘소통’입니다. 단순히 활발한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구조조정 전에 직원들에게 3∼6개월 정도의 기회를 줍니다.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그 기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는 거죠. 그때도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결국 끝을 볼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직원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무작정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접대 문제 등 여성 리더여서 힘들다고 느끼신 적은 없나요?
“모든 리더들이 당연히 겪는 어려움을 저도 겪을 뿐이지 특별히 여자라서 더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하고, 실제로 많이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안 믿으시는데 정말 없어요. 지금은 사장이니까 솔직히 제가 접대를 받으면 받았지, 접대할 일이 별로 없거든요. 회사 직원들에게도 ‘그러니까 더욱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웃음)
 
남성 직원들을 대할 때 힘든 점도 없었습니다. 제가 P&G에서 임원으로 승진했을 때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남자 직원들이 많았지만, 제가 느끼는 불편함보다 그분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훨씬 더 크죠. 어쨌든 직급이 높은 사람은 저니까요.
 
오히려 여성 직원이 더 적대적일 때가 있어요. 가족들이 미국에 있을 때 혼자 한국에 있으면서 회사에서 마련해준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제 밑에 있던 남자 직원이 업무 관련 사항을 묻기에 로비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평일 낮 호텔 로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 장면을 보고 당시 한 여자 직원이 ‘어떻게 남자와 호텔에 있을 수가 있냐’고 하더군요.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가지고도 오해할 수 있구나. 나는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나를 여성으로 바라볼 때가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 일을 통해 얻은 소득은 그 여직원이 절대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이란 걸 알았다는 거죠.”
 
외국계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셨는데 한국 기업과의 차이점은 뭘까요?
“한국 기업이 직책 승계 프로그램(su-ccession program) 수립에 적극적이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파벌이나 권력 다툼 등 승계 프로그램의 부정적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가 느껴져서요. 이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CEO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그 후계자들이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부서의 책임자는 단순히 그 부서의 대표자가 아니라 회사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공동 리더여야 합니다.
 
경영자도 후계자를 키우면 자신의 자리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후계자를 육성해야 경영자 자신이 더욱 가치 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두세 명의 후보군을 정해놓고,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자연스레 훈련시키고 이끌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언제 자신이 떠나도 자기 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요. 후보군을 검증하다 보면 우리 회사의 인재 풀 현황이 어떤지도 점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육아와 경영을 병행하는 일이 어렵지 않으신가요?
“애들이 고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여섯 살이에요. 주말에는 무조건 아이들을 위해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죠. 결국 육아에도 경영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일단 큰아이부터 확실히 교육했어요. 동생들은 맏이의 행동을 자연스레 따라 하기 때문이죠.
 
아이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애들을 봐주시는 분과 자주 다양하게 대화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 자신보다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은 걸 아는 분들이니까요. 사실 부모라고 해도 자식을 다 알 수는 없거든요. 애들의 관심사가 뭔지, 요즘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는지 등 주변 사람들과 충분히 상의해 아이의 성격과 특성에 맞는 육아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의력이 산만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생활 태도나 과제 수행 여부에 따라 별을 나눠주고, 받은 별 수에 따라 상을 주면 무척 좋아해요.
 
제 스스로는 워킹맘이라는 자각을 가급적 안 하려고 합니다. 어차피 전업주부에게도 육아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전업주부라서 100% 완벽한 육아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회사에서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걸 걱정하는 여성 직원들이 많아요. 심지어 미혼 직원까지도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걱정만 하고 정작 실천은 안 할 때가 많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걱정만 하다 보면 실행을 할 수가 없죠.”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십니까?
“난관에 부딪칠 때는 그 상황의 핵심 이슈가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하기 위해 오직 저 자신만을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듭니다. 이렇게 자료를 만들어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답이 나올 때가 많아요. 설사 답이 안 나오더라도 문제가 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으니 다음 대응도 쉬워지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이를 습관화해야 단순한 아이디어가 가치 있는 아이디어로 변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김승환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대학생 인턴연구원(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이 참여했습니다.
 
모진 사장은 1965년생으로, 미국 조지메이슨대 회계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P&G, 일본 P&G 이사, 한국 MSD 상무 등을 거쳐 2006년 4월부터 바슈롬코리아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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