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의사결정 방법론

먼저, 제때 의사결정하기 위한 5가지 방법

36호 (2009년 7월 Issue 1)

전 세계가 경제 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일부는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고, 다른 일부는 “신기루일 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아직도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경제 주체들은 갈 길을 잃고 복지부동하고 있다. 위정자들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이 ‘헛된 약속’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 기업 경영자들 역시 경기 회복에 기대를 하면서도 안개 저편에 있을 것 같은 위험에 잔뜩 목을 움츠리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제대로 된 위기 극복이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제대로, 동시에 민첩하게
지금과 같은 ‘확실한 불확실성’의 시기에 경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민첩하게, 동시에 제대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역량이다. 사람은 환경이 불확실하면 매사에 조심스러워진다. 조심스럽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으면 결정이 늦어진다. 그런데 아무리 제대로 된 결정을 하더라도 시기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 당시 파악했던 정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즉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면 상황이 뒤바뀐 현실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경영 위기의 상황에서 발 빠른 변화야말로 생존을 위한 유일한 탈출구, 또는 지속 성장의 열쇠다
 
물론 속도에만 매몰돼 부실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공사 참사 등은 ‘제대로’를 무시하고 오직 ‘빨리빨리’만 강조한 결과다. 경영자들은 이 2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 글에서는 내용(what) 측면인 ‘제대로’보다는 방법(how) 측면인 ‘민첩하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민첩함’이란 무엇이며, 기업과 경영자가 왜 민첩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민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를 조직의 시스템과 개인의 행동 차원에서 살펴보자.
 
먼저, 빨리, 그리고 제때
우선 짚고 넘어갈 포인트는 ‘민첩하다(agile)’와 ‘빠르다(fast)’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민첩하다’는 것은 빠름은 물론 먼저, 제때에 한다는 뜻까지 포괄한다. 한때 ‘스피드 경영’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는데, 필자는 ‘민첩성 경영’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고 본다. 기업은 그저 빠른 게 아니라 민첩해야 한다.
 
먼저(first) 시장에서의 경쟁이란 남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특히 기업 경영에서는 남보다 먼저 했다고 반칙이 아니다. 먼저 결정하고, 먼저 실행하면 앞서갈 수 있다.
 
지금 평판 TV와 휴대전화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선점 경쟁은 한 편의 기업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어느 기술을 따를 것이냐의 문제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기술과 제품의 로드맵은 이미 그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고객과 만날 수 있는가’다. 이는 필요한 자원의 동원 능력에 의해 판가름 난다.
 
인텔은 미국 산호세와 오리건에 동일한 규모의 ‘모델 개발 센터’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신제품을 개발한다. 산호세에서 차세대 모델을 개발하면, 오리건에서는 차차세대 모델을 개발하는 식이다. 통상 5, 6년 걸리는 ‘개발 기간’은 경쟁사와 큰 차이가 없지만, 두 곳에서 동시에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제품의 ‘출시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인텔은 이 덕분에 경쟁사들보다 먼저 차세대 제품을 시판하고 스스로 세대 교체를 실행할 수 있다.
 
아메바 경영으로 유명한 일본 교세라는 매일 정오에 마감을 하여 저녁이면 전사적으로 집계가 끝나는 ‘일일 결산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음 날 경영자는 아메바 조직 단위별 경영 실적을 파악해 적절한 의사결정을 그때그때 내린다. 월별 결산해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반응하는 경쟁 업체는 속도 면에서 따라갈 수 없다.
 
빨리(fast) 남들은 열흘이나 걸리는 것을 단 하루 만에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면, 남들보다 다소 늦게 시작했더라도 앞서갈 수 있다.
 
모토로라의 우주시스템사업본부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전문 기능별로 부서를 구성하고 있어 의사결정을 할 때 여러 부서장들의 동의를 순차적으로 얻어야 했다. 각각의 부서장은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려 했고, 전체 의사결정에는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소통 자체에만 많은 시간이 들었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은 매우 컸다.

 

 

모토로라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조직 내부의 프로세스를 통합해 관련 부서들이 함께 모여 함께 결정하게 하는 ‘동시 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을 도입했다. 또 고객 가치 창출의 전체 프로세스를 책임지는 ‘프로세스 오너 팀(process ow-ner team)’을 구성, 제반 활동 및 성과에 대한 조정 및 통제 역할을 일괄적으로 수행하게 했다. 기존 8, 9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은 3단계로 줄었다. 당연히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그 결과 운영 비용이 60%로 줄었고, 납기 지체율은 40%에서 8%로 낮아졌다.
 
제때(timely) 아무리 먼저 보고 빨리 해도 타이밍을 못 맞추면 헛고생이다. 이러한 유형은 2가지인데 ‘너무 이르거나(too early)’, 그 반대인 ‘지각(too late)’이다. 당연히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닥쳐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사실 늦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너무 이른 경우다. 이런 일은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간과 또는 무시할 때 일어난다. 시장이 신제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제품을 선보이면 외면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경쟁사에 아이디어가 노출된다. 타이밍을 잘 포착하거나 시장 지배력이 큰 경쟁 업체가 기회를 빼앗아갈 수도 있다.
 
PC 운영 체계의 혁명을 가져온 ‘윈도’는 원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처음 만든 게 아니다. 다른 회사가 비슷한 시스템을 먼저 내놓았는데 고객들의 반응은 ‘별로’였다. 빌 게이츠는 이를 응용해 윈도를 선보여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다. 첫 출시자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이것이 ‘제때’의 중요성이다.
 
민첩성을 높이려면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리더의 민첩성은 회사의 존폐를 결정할 수도 있다. 리더의 민첩성을 높이는 일은 리더십 역량을 개발하는 것과 같다. 민첩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교육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리더는 자신의 의사결정 체계를 혁신하고, 바람직한 의사결정 행위를 학습함으로써 민첩성을 키울 수 있다.
 
먼저 명확히 해둘 것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서로 상극인 ‘신중함’과 ‘민첩함’을 절충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민첩함을 강조하면 신중함을 포기해야 하고, 신중함을 강조하려면 민첩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수준 낮은 경영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신중함과 민첩성은 그 합이 0이 되는 제로섬 관계에 있지 않다. 이 2가지가 1개 축의 양 끝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신중함과 민첩함은 각각 다른 2개의 축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신중함과 민첩함이 모두 100이 되는 고도의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다.
 
초일류 기업의 경영자들은 ‘제대로, 동시에 민첩하게’ 결정한다. 이는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먼저 제대로 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갖춘 다음, 이를 민첩하게 진행시키는 조직의 행동 방식을 끊임없이 갈고닦아 체질화한다.
 
리더와 기업이 제대로, 동시에 민첩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첫째, ‘기업 내부의 시간’보다 ‘시장·고객의 시간’에 맞춰 움직일 줄 아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리더와 기업은 ‘우리가 언제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가 아니라, ‘고객이 언제 원한다’에 초점을 두고 의사결정하는 체계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성과 고객 지향성이 기업 문화의 바탕이 돼야 한다.
 
둘째,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 업무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민첩한 결정을 하기 어렵다. 관리 관행과 업무 절차, 평가 제도의 단순화가 필요하다. 조직 구조의 이면에서 민첩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상호 견제나 부서 이기주의와 같은 정치적 요인들을 타파해야 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정착한 기업이 캐논이다. 캐논은 ‘와이가야(외설 영화관)’라는 이름의 회의로 유명하다. 이 회의는 기술 개발, 제품 설계, 마케팅 등 이해가 다른 여러 부서가 함께 모여 협의하는 자리다. 참석자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부서를 배려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의 석상에서 경고를 받고 퇴장까지 당할 수 있다. 관련 부서가 함께 모여 진정으로 머리를 맞대니, 시장 변화에 맞춰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캐논은 한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했던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복원했고, 경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셋째, 경영자는 밑에서 갖다준 ‘가공된 정보’보다 살아 있는 현장 정보를 선호해야 한다. LG전자 최고경영자(CEO)인 남용 부회장은 고객의 니즈를 눈으로, 귀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고객 가정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물론, 이른 아침에 현지 전문가의 강의를 듣거나, 매장을 찾아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관찰하기도 한다. 직원들과 열린 대화를 나눔으로써 최대한 걸러지지 않은 정보를 모으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부 조직에서 취합돼 가공된 정보는 살아 있는 현장감을 줄 수 없다. 또한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다. 현장감이 없는 정보는 잘못된 의사결정 확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경영자를 불안하게 만들어 결정을 늦춘다.

넷째, 민첩성 경영도 맞춤형이다. 경영자는 자기 업종의 특성과 전략적 위상,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자신에게 맞는 민첩성 경영을 학습하고 활용해야 한다. 기술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중시되는 첨단 산업에 속한 기업이라면 ‘선행 투자, 신제품 조기 출시(먼저)’가 핵심 성공 요인이다. 반면 고객 대응력을 중시하는 서비스업은 ‘원스톱 서비스(빨리)’가 핵심 성공 요인이다. 예측력과 운영 최적화를 중시하는 장치 산업은 ‘높은 자산 회전율(자주)’이 핵심 성공 요인이다.(<숨겨진 경쟁력 –스피드 경영’> SERI CEO Information 참조)
 
다섯째, 권한 위임(empowerment)이 중요하다. 시장과 기술, 경쟁자에 대한 현장 정보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대응책을 먼저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 조직 구성원들이다. 리더가 이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면, 그들은 주인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의사결정을 한다. 단, 권한은 역량 있는 사람에게 위임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실력도 없는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 견습생에게 배의 키를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조건 빨리 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칫하면 효율성을 무시한 경영 자원의 남용과 낮은 수준의 혁신 반복으로 인한 ‘혁신 내성’ 증대, 조직 구성원들의 탈진 현상 등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기다리지 말라
‘장고 끝에 악수’ ‘원님 떠난 뒤에 나팔 분다’는 속담이 있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사공이 많으면 바른 결정을 못한다. 때를 놓쳐 헛고생만 할 수도 있다. 해야 할 것들은 다 하되, ‘민첩하게’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일류 기업과 이류 기업을 나누는 기준이다.
 
지금의 경영 위기는 명백히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잠시 움츠리면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물론 운이 좋아 위기를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높은 수준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기회를 예리하게 감지하며,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들은 재도약의 성공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우왕좌왕하거나 과거의 성공 체험에 젖어 있는 기업들은 시기를 놓쳐 쇠락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DBR TIP] 민첩성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함정
 
경영 위기의 상황에서는 발 빠른 변화가 생존을 좌우한다. 그러나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많은 경영자들이 결정을 못하고 고민하며 머뭇거린다. 경영자들이 민첩성을 높이려면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나온 자신의 ‘심리적 행동 지연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심사숙고’의 착각 ‘심사숙고’는 가장 일반적인 착각이다. 에치오니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영자가 정보·지식·역량의 부족으로 자신감을 잃게 되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방어 체계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람은 우선 의사결정을 할 때 ‘지연’ 행동을 보인다.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주저하거나, 아예 보류하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
 
‘크로스 체크’의 착각 투자 실패로 인한 위험 부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들은 의사결정의 오류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견제 장치를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위기 관리 체계’인데, 이 중 조직 체계 차원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바로 ‘결정 권한의 분산’이다. 그러나 조직 간의 과도한 견제는 결정을 늦출 뿐만 아니라,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의 불신을 가져와 조직의 활력마저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권한 위임’에 대한 착각 현장에 결정 권한을 위임한다고 무조건 결정이 빨라지지는 않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권한을 위임받거나, 역할과 책임이 모호하거나, 위험 부담이 큰 안건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기가 생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기 대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라탄은 이를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고 정의했다. 이 현상은 의사결정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직일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신속한 결단을 가로막는 고정관념 5> LG주간경제 참조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와 석사(조직 행동 전공) 학위를 받았다. 현대경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 휴잇 어소시엇츠를 거쳐 타웨스페린의 컨설팅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피플솔루션(www.pscnc.com) 대표로 조직·인사 분야의 컨설팅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