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광해군을 폐위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仁祖)는 왕위 승계에 대한 정통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집권 초기 반대 세력에 대한 지나친 보복에 나서 조정을 어지럽게 했다. 특히 전 정권의 핵심 세력인 북인을 강경하게 탄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상대적으로 죄가 크지 않은 이들까지 숙청하며 큰 반발을 불렀다. 또한 정책 측면에서는 호패법, 양전, 대동법 중 어떤 제도를 먼저 실시할지를 두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책임을 미루다 좋은 제도임에도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특히 인조는 생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조정을 논란에 휩쓸리게 했다.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보 등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인조가 불필요한 고집을 부린 탓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막지 못했고 역모도 연달아 일어났다.
어떤 정권이든 보통 집권 초기에 개혁의 드라이브를 건다. 이때만큼 강력한 힘이 뒷받침되고 구성원의 기대와 지지가 집중되는 시기도 없기 때문이다. 다소간의 혼란이 발생하더라도 양해를 받을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초기부터 성과를 냄으로써 지도자의 권위를 공고하게 만들고 이전 정권과 차별성을 드러내려는 목적도 있다.
‘반정(反正)’을 일으켜 숙부인 광해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도 마찬가지였다. 인조는 ‘즉위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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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경시(更始)의 교화를 펼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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