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Close Up

인간을 사랑한 神은 왜 고통과 죽음을 주었을까

서진영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오늘 소개할 책의 제목이 <잊혀진 질문>이다. 무슨 뜻일까? 저자인 차동엽 신부는잊혀진이라는 말은 잊혀져 있지만 다시 발굴되게끔 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어떤 질문이기에 <잊혀진 질문>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바로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께 보낸 종교와 삶에 대한 24개 질문이다. 그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駱駝)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영혼이란 무엇인가?

 

-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 종교인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2년 전 쯤, 24개의 질문이 적힌 다섯 쪽짜리 프린트물이 저자 차동엽 신부의 손에 건네졌다. “일방적으로 질문만 있었지 아마도 답변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박희봉 신부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는 적임자를 물색하다가 정의채 몬시뇰에게 이 편지를 넘겼답니다.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이 복사본을 받은 것이구요.”

 

나중에 저자 차동엽 신부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정의채 몬시뇰과 이병철 회장의 만남이 주선된 상태에서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말미암아 만남이 무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24개 질문에 차동엽 신부가 답한 책이 바로 <잊혀진 질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이 이병철 회장의 개인적인 질문만일까? 아닐 것이다. 사실상 이 질문들은 우리 고달픈 인생들의 흉금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정말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즐거운 시간도 많지만 인생에는 괴로운 시간이 더 많다. 그렇기에 술이 많이 팔리기도 한다. 독일의 유명 작가이자 시인인 에리히 케스트너는 인간의숙명을 군더더기 없는 단문으로 노래한다.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겪는다. 경제적 어려움, 이별, 상실, 질병, 사고, 좌절의 아픔, 외로움, 누군가로부터의 배척이나 소외 등등으로 잠을 뒤척이고, 괴로워하고, 신음한다. 정말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여기에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통의 진면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통에도 여러 기능이 있다.

 

첫째, 보호의 기능이다. 고통은 사람을 위험이나 파괴로부터 지켜준다. 고통이 없다면 겨울에 동사하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며 불장난을 하다가 손을 태워버리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또 고통은 우리 몸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이 신호 체계가 고장 난 병이 바로한센병이다. 한센병 환자들은 손이 썩어들어 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고통을 못 느끼니 조심도 덜 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많이 손상을 입는다고 한다. 이는 고통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둘째, 단련의 기능이다. 흔히 박지성 선수의 옹이발바닥, 발레리나 강수진의 붕대발가락을 고통이 가져다준 영광의 상징으로 여긴다. 저자는 언젠가 TV에서 골프 선수 최경주의 휘어진 엄지발가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하도 연습을 해서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휘어 그 안쪽을 수술로 절제해야 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연습의 고통을 거부했다면 오늘날의 그들은 없었을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도 그렇다. 고통을 감내하며 몸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광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영광 뒤에 숨어 있는 고통의 또 다른 비밀이다.

 

셋째, 정신적 성장의 계기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한마디로 고난 극복의 역사다. 고난과 역경에 대항해 싸우다 보니 오늘의 문명이 이뤄졌다는 말이다. 그 자신도 고통의 터널을 멋지게 통과하고 있는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에게 노름을 하기 위한 돈을 꿔달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를 문전에서 돌려보냈을 것이다. 고흐가 우리 옆에서 미친 눈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다른 데로 떠나주기를 강요했을 것이다. 이상이 우리 곁에서봉두난발한 머리로 한 아이가 뛰고 있다는 괴상한 시를 끄적이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미쳤다고 돌팔매질을 했을 것이다. …… 계곡이 깊어야 산이 높듯이 깊은 고통에서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서 버티고, 창조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신의 보다 큰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고통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위대한 정신적 성장을 가져와 오늘의 문명이 생겨난 것이다.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적절한 고통을 주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고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아주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너의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하여 인내하라. 그리고 문제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 ……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그것은 너에게 주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그 답과 더불어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대로 모든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 속에서 그대로 그냥 살자. 그러면 먼 훗날 언젠가 너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으로 나는 늘 세상의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도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사랑이며 그 사랑이 결국 모든 걸 소멸시키리라.”

 

고난예찬론, 어느 조경 전문가가 맞장구를 쳤다.

 

‘야, 저 소나무 굉장히 멋있다. 아주 멋지다해서 정원에 가져다 심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으로 발육된 나무라는 것이다. 풍파를 겪느라 뒤틀린 나무들 말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건강하고 곧게 쑥쑥 자란 나무들은 잘라서 건축 재료로 쓰이는데 풍파 겪으며 꼬인 나무들을아름답다!’ 하며 찬탄하다니. 고가의 나무들은 시쳇말로 기형들이다. 바위틈이나 그늘에서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느라 몸이 굽고 뒤틀려 자라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오묘한 멋스러움에 더 환호한다.

 

왜 인간은 그와 같은 소위기형 소나무에 끌리는 것일까? 인간 안에는 고난의 미학을 볼 줄 아는 천부적인 눈, 곧 심미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굴의 생존 의지로 살아남은 생태계의 영웅들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곁에 놓고 음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난을 빠져 나오는 문은 고난의이 아니라 고난을 보는새로운 눈에 있다 할 것이다. 주변을 보면 사람은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건강의 악화, 인간관계의 갈등, 학업의 부진, 사업의 실패 등 고통의 유형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야 한다. 뜻하지 않았던 고난이 고통을 동반하지만 고난은 우리에게 생존의 파워를 축적시킨다.

 

이런 의미는 맹자(孟子) <고자장구(告子章句)>를 읽으면 더 크게 와 닿는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하고 苦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고 窮乏其身行하며 拂亂其所爲하니 是故 動心忍性하여 增益其所不能하니라’ (천장강대임어사인야에 필선노기심지하고 고기근골하며 아기체부하고 궁핍기신행하며 불란기소위하니 시고로 동심인성하여 증익기소불능하니라)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24개 질문 중 하나의 질문,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가라는 질문 하나에도 많은 삶의 지혜를 느낀다. 언젠가 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디로 갈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이병철 회장이 생의 완성 시간이 가까워 왔을 때 왜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까? 지금 내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 왕자, 생떽쥐페리의 말대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는 살지 말아야 할텐데….

 

정말 잊혀질 뻔했던 이병철 회장의 삶과 종교와 철학에 관한 질문, 그리고 이에 대한 차동엽 신부의 답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책 읽고 행복하시길.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장(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 서진영 서진영 |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sirh@centerworld.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