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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남을 일어서게 하라

68호 (2010년 11월 Issue 1)

현재 세계 최강의 경제부국을 이룬 일본의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철학을 제대로 발전시켜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에도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석문심학을 완성시킨 이시타 바이칸, <논어와 주판>을 쓴 시부사와 에이치는 일본 자본주의 정신의 근간을 만들었다. 일본 근대 경제는 이러한 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부국강병과 근대적 자본주의의 길로 매진하던 일본에서도 거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펼쳐졌다. 이때는 윤리도, 도덕도, 공익도 망각한 채 오직 치부(致富)만을 위해 돌진하던 이들이 많았다.
 
이때 ‘일본 기업의 아버지’ ‘일본 금융의 아버지’ ‘일본 현대 문명의 창시자’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최고 영도자’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가 등장한다. 일찍이 그는 20대에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서방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산업 제도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몸소 체득했다. 그 후 일본의 조세, 화폐, 은행, 회계 제도를 선구적으로 개혁하며 500여 개의 기업체를 주도적으로 세웠다.
 
철학과 경제실무에 모두 통달했던 시부사와 에이치는 도덕과 경제는 서로 반(反)하는 게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굴러가야 ‘진정한 근대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어(도덕)와 주판(경제), 서로 다르게 보이는 이 두 가지를 융합하는 게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이 논의는 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치는 데서 시작한다.
 
부(富)는 부끄러운 것인가?
유학자들이 갖고 있는 공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공자가 부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논어>에서 인의왕도(仁義王道)와 화식부귀(貨殖富貴)는 서로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상극으로 해석된다. 맹자도 “부귀는 어짊과 멀고, 어짊은 부귀와 멀다(爲富不仁, 爲仁不富)”라고 했다. 당시에는 단순히 ‘장사=악’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부귀와 어짊은 서로 모순관계이자 상극이라는 오해가 조성됐다.
 
하지만 유교의 상업관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아니다. 먼저 공자가 한 말을 살펴보자. “부귀한 자는 인의왕도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반드시 부귀의 염을 버려라”는 말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논어> 20편을 샅샅이 뒤져봐도 그런 뜻의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부귀를 누리지 않아야 한다. 빈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지 말아야 한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이 말을 겉으로 들여다보면 부귀를 가볍게 여기라고 하는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귀를 업신여기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에 공자가 단지 부귀를 혐오했다고 이해한다면 오독이다. 이 구절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不以其道得之)”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부귀를 음흉하게 바라는 것을 경계하라는 게 이 이야기의 주지(主旨)다. 부당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지 말고, 정당한 인의도덕으로 부귀를 얻으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도리로 얻은 부귀가 아닐 바에야 오히려 빈천한 쪽이 낫지만, 만약 올바른 도리를 다하여 얻은 부귀라면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단언컨대 공자는 결코 부귀를 경시하고 빈천을 존중하지 않았다. 반대로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다면 드러내고, 도가 없다면 숨어라.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비천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나라에 올바른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고귀하다면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恥也.)”라고 말했다. 즉, 정당한 시대에는 가난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를 대하는 자세
논어의 정신에서 생각한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첫째, 사회의 행복과 일치하는 부를 쌓아야 한다.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진짜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이익을 주는 사업을 견고하게 발전시키고 번창시키지 않으면 진짜 사업가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가령 한 개인이 거대한 부호가 되더라도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빈곤의 늪에 빠지는 사업이라면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그 부호가 부를 축적한다 한들 행복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와 국가의 행복과 일치하는 부를 쌓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신뢰야말로 도덕과 경제의 중심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믿을 만한 점이 없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자는 신뢰에 대해 <논어>에서 15번이나 언급했다. 신뢰야말로 경제의 근간을 튼튼하게 하는, 그래서 기업가들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절실한 상도다.
 
셋째, 이타(利他)를 기억해야 한다. 공자는 “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남도 먼저 일어서게 하라”고 얘기했다.
 
본래 인이란 내가 일어서고 싶다면 남을 먼저 일어서게 해주고, 내가 이루고 싶다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내 입장을 비추어 남의 입장을 알아줄 수 있음이 바로 인을 실천하는 방책이라고 하겠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는 사회의 일, 인생의 일이란 게 전부 이렇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내가 일어서고 싶다면 남도 일어서게 해주고, 내가 이루고 싶다면 남도 이루게 하는 것”이란 말은 듣기에 교환적 의미가 숨어있는 듯하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참아야만 결국에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뜻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자의 참뜻은 다른 사람의 목적을 이루게 한 다음에 자신의 목표를 이루라는 것으로 행동의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이 책의 전체 결론을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에게 물어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답할 것이다. “재부를 증진시키는 근원은 ‘인의도덕(仁義道德)’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도리로 얻는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아름답지도 않고 영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로 동떨어진 채 놓여 있는 논어와 주판을 일치시키는 것이 오늘날 기업인들이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임무다.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부의 정당성을 생각해보고 싶을 때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 (Centerworld Corp.) 대표로 있으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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