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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겸의 Sports Review

하이라이트를 즐겨보는 당신의 착각

김유겸 | 295호 (2020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언제부턴가 우리는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상을 자주 접하고 있다. 기업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를 노출하기도 하고, 경기 관람을 놓친 팬들이 직접 찾아보기도 한다. 하이라이트 문화 강화는 스포츠 콘텐츠 노출과 홍보에 도움이 되며 상업적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어 스포츠 산업 발전에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 같은 하이라이트 문화 쏠림은 자칫 스포츠의 핵심 매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 하이라이트 문화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과 연결되고, 일상에서도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다리던 영화가 있어서 보려는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2시간이나 3시간 정도?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 공연을 관람하는 데 드는 시간은? 짧게는 2시간, 넉넉잡아 4∼5시간 걸릴 때도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중 밥 먹는 시간 빼고 대부분 공연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구 한 경기를 다 보는 데 얼마나 걸릴까. 2시간? 4시간? 비슷하지도 않다. 30초면 된다. 더 짧은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야구팬들은 대부분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도 예고편을 보면 되니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예고편을 봤다고 그 영화 봤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는 전날 스포츠 뉴스에서 편집한 15초짜리 하이라이트만 보고도 “어제 나도 그 경기 봤는데”라고 말하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 1%도 안 되는 극히 일부분, 길어봐야 1분짜리 하이라이트만 봐도 3시간짜리 경기를 모두 본 것과 다름없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사실 야구를 본다는 말은 야구장에 가거나 TV로 한 경기를 다 보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주요 장면을 편집한 짧은 영상, 즉 하이라이트를 본다는 뜻에 가깝다. 야구뿐인가? 축구, 농구, 육상 등 종목도 마찬가지다. 하이라이트를 포함하지 않는 관람 스포츠 콘텐츠가 거의 없을 정도다. 스포츠 관람 행동과 산업 중심엔 하이라이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이라이트 위주로 스포츠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는 사회, 경제, 미디어 환경 변화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2시간이나 되는 스포츠 경기를 다 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은 대안이 있으니 선택은 보나 마나다. 2시간이면 특정 종목 한 경기가 아니라 하이라이트로 그날 열리는 국내 프로 스포츠 경기를 전부 보고도 관심 있는 해외 스포츠 경기까지 찾아볼 수 있다. 시공간 제약을 덜 받고 싶어 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 미디어 소비 행태 변화와 맞물려 관람 스포츠 영역에서 하이라이트 문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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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언제, 어디서나, 손쉽고 빠르게 취향에 맞춰 즐기려는 것이니 하이라이트 문화 강화는 스포츠 콘텐츠 노출과 홍보에 도움이 되며 상업적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어 스포츠 산업 발전에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하이라이트 문화 쏠림이 관람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과 스포츠 산업에 긍정적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스포츠가 가지는 핵심 매력을 잃을 수 있다. 스포츠 관람은 다양한 혜택과 재미를 제공하는데, 특히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탁월한 여가 활동이다. 경기를 보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적당한 수준의 긴장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9회 말 투아웃에 3대3 동점인 경우처럼 긴장감이 높은 상황일수록 더 큰 감정의 정화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반복된 좋은 스트레스(eustress)의 생성과 정화가 나쁜 스트레스(distress)를 함께 해소해 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정화는 단순한 재미나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며 경기 과정을 경험하지 않는 하이라이트 콘텐츠를 통해선 얻을 수 없다. 지난 한국시리즈 9회 말 터진 오재일의 끝내기 안타가 주는 짜릿함은 가슴 졸이며 경기 내내 두산베어스를 응원한, 즉 시간과 마음을 투자한 팬들만 받을 수 있는 값진 보상이다.

스포츠팬들은 팀이 승리했을 때 자신이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대리성취(vicarious achievement)도 자신이 성과를 거둔 집단에 속해 성과에 이바지한 것이 있다고 느낄 때 가능하다. 경기장에서 같이 뛰지 않더라도 선수들과 동시에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참여한 팬들은 팀과 함께 승리를 거둔 것처럼 기뻐한다. 이와는 달리 하이라이트로 재밌는 장면과 결과만을 따로 확인한 사람들은 경기 중 팀과 한 일도 없으며 승리에 보탬이 됐다고 느끼기도 어렵다. 많은 스포츠 연구에서 밝혔듯이 성취감은 스포츠팀과 선수를 응원하고 경기를 관람하는 심리적 동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핵심 혜택인 성취감을 하이라이트 문화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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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겸ykim22@snu.ac.kr

    -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
    -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
    - 플로리다주립대 7년간 재직, 종신교수직(tenure)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 80여 편의 논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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