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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장자』의 坐忘처럼… 나를 잊게 하는 기술

박영규 | 261호 (2018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용함을 뜻하는 캄(calm)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의 합성어인 캄테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의 하나로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삶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더해주는 기술이다. 캄테크가 나 대신 신경을 쓰고, 나 대신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조절한다. 완전한 망각 상태에서 나는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 일찍이 장자가 일컬은 좌망(坐忘)의 경지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기계화로 인한 대량 생산 덕분에 의식주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러한 편리성은 질적으로 더욱 심화됐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문서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고 자동차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절약해줬다.

반대급부도 생겼다. 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신경 쓸 일이 오히려 많아졌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해킹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백신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자동차의 엔진오일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에어컨의 냉매 가스가 새지는 않는지 자주 점검해야 한다. 먹는 것도 그렇다. 가스레인지를 활용하면 편하게 조리할 수 있지만 외출한 후 혹시나 가스 불을 그대로 켜 두지는 않았는지 늘 신경이 쓰인다. 기존의 산업혁명은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줬지만 삶의 편안함, 안락함까지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의 하나인 캄테크(calmtech)는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삶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더해준다. 조용함을 뜻하는 캄(calm)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인 캄테크는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정보기술 연구기업 제록스파크 소속 연구원이었던 마크 와이저(Mark Weiser)와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이 공동으로 쓴 ‘디자이닝 캄 테크놀로지(Designing Calm Technology)’라는 논문에서 유래했으며 “일상생활 환경에 센서와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를 보이지 않게 내장하고 이를 활용해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뜻한다. 한마디로 캄테크는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주는 기술이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나 구글의 네스트 랩스(Nest Labs), 애플의 시리(Siri) 같은 캄테크 기기들은 사용자의 삶의 패턴과 기호, 사이클을 스스로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냉장고가 비면 내가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주문을 해주고, 에어컨 리모컨을 일일이 조작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최적의 실내온도를 알아서 유지해준다. 아침 기상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동으로 켜주고, 그날의 기상 정보와 교통상황을 미리 브리핑해준다. 출근할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시동, 주행, 제동, 주차 등 모든 동작은 캄테크 기기인 자율주행자동차가 알아서 해 준다. 점심시간에 ‘오늘은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마존의 추천 캄테크인 A9이 내가 좋아하는 메뉴별로 식당의 위치와 가격, 이용자 후기까지 알려준다. 아내의 생일, 무슨 선물을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A9이 알아서 추천해준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캄테크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장자는 캄테크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발에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허리에 꼭 맞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시비비를 잊는 것은 내 마음이 외물과 꼭 맞기 때문이다. 내적 동요가 없고 질질 끌려다니지 않는 것은 일이 때에 꼭 맞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꼭 맞으면 맞음 그 자체도 잊어버린다. 忘足(망족) 履之適也(구지적야) 忘要(망요) 帶之適也(대지적야) 知忘是非(지망시비) 心之適也(심지적야) 不內變(불내변) 不外從(불외종) 事會之適也(사회지적야) 始乎適而未嘗不適者(시호적이미상부적자) 忘適之適也(망적지적야)

― 『장자』 달생편


신발이 작으면 발이 불편하다. 그래서 신경이 쓰인다. 옷이나 허리띠, 장갑도 그렇다. 캄테크 기기들은 내 삶에 꼭 맞기 때문에 편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누린다. 캄테크는 마치 공기와 같다. 내 삶의 주변에 늘 함께 있지만 나는 그것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다. 캄테크가 나 대신 신경을 쓰고, 나 대신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조절한다. 완전한 망각 상태에서 나는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을 하지만 안전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고, 책을 보고, 창밖의 경치를 감상한다. 장자는 좌망(坐忘)을 도의 최고 경지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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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안연이 어느 날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는 배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래, 무엇을 깨달았느냐?” “저는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 “그래, 진전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다음 날 안연이 와서 다시 말했다. “스승님, 저는 또 한 걸음 나아간 것 같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무얼 또 깨달았느냐?” “저는 예악(禮樂)을 잊었습니다.” “그래, 진전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다음 날 안연이 다시 와서 말했다. “스승님, 저는 좌망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공자는 깜짝 놀라 물었다. “좌망이라니, 그게 무슨 경지냐?” “팔과 다리, 오장육부의 지각작용을 모두 버리고 눈과 귀의 감각작용을 모두 물리치고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졌을 때를 일컬어 좌망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지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게 되고 외물(外物)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 너는 참으로 현명하구나. 나도 너를 따르겠다.”
― 『장자』 대종사편


좌망(坐忘)의 반대 개념은 좌치(坐馳)다. 좌망은 모든 것을 망라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경지이고, 좌치는 외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부자유한 상태를 일컫는다. 3차 산업혁명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좌치와 좌망으로 구분된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보화 기술은 사람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함으로써 삶을 불안하고 부자유하게 만드는 좌치의 기술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캄테크는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좌망의 기술이다. 『장자』 천지편에서는 “사물을 잊고, 나를 잊는 사람은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忘乎物(망호물) 忘己之人(망기지인) 是之謂入於天(시지위입어천)”이라고 말한다. 『장자』에 의하면 캄테크는 낙원에 이르는 기술이다.

캄테크는 철저하게 인간을 배려하는 기술이다. “인간은 바쁘니까, 신경 쓸 게 많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해 드릴게요.”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저류에 흐르고 있는 캄테크의 모토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캄테크에 내장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의 망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인간의 직업을 빼앗거나 삶의 자율성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러나 허전하고 시린 인간의 마음 한구석을 넉넉하게 채워주고,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캄테크다. 어떤 문명이든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미래는 우리 안에서 변화하기 위해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다. 캄테크는 이미 와 있는 미래다. 20여 년 후면 캄테크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캄테크는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늘 두려움의 영역으로 남는다. 두려움을 새로운 기회와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캄테크가 가진 그늘진 얼굴이 아니라 밝은 얼굴에 눈길을 줘야 한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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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규chamnet21@hanmail.net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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