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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 성공의 첫 걸음

이치억 | 177호 (2015년 5월 Issue 2)

가정의 달이다. 1 12개월 중 어느 하나 가정을 소홀히 할 달이 있을까마는, 한번 더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봄날이 되라는 취지인 것 같다. 특히나 요즘같이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바쁜 세상에서 가족의 의미는 더욱 절실해진다. 험한 사회에서 부대끼며 성공을 위해 경쟁하며 달려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정은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휴식처가 아닐까? 유일하게 경쟁이 없는 곳,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곳,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곳, 바로 집이다.

 

동양의 사상가들은 집의 울타리 안쪽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그런 곳이기를 바랐다. 실제로 유학에서는 가족을 보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중국 북송대의 유학자 장횡거에 따르면 우주 자연은 하나의 가정이며, 그 구성원은 모두 하나의 가족이다. “하늘은 나의 아버지이고 땅은 나의 어머니다. 나는 조그마한 몸을 가지고 그 안에서 만물과 뒤섞여 살고 있다. 따라서 대자연을 가득 채운 기운이 내 몸을 만들고, 대자연을 이끄는 원리가 나의 본성이 된다. 모든 사람들은 나와 한 핏줄이고, 만물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장횡거, <서명(西銘)>)

 

전통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들과 우애 있는 일이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논어> ‘위정편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등장한다. 누군가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공자께서 대답했다. “<서경>에서 효에 대해 말하기를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해 정사에 베풀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역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거늘 어찌 꼭 벼슬하는 것만이 정치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부모는 내 존재의 근원이고 나는 부모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기에,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효란 나의 존재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같은 부모 아래 있는 형제들과 우애로운 것 또한 당연하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정감을 확대해 가면 우리의 큰 부모인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의 형제인 타인과 만물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발현될 것이다. 그것이 인()이다.

 

성공을 위해서 감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 세상의 떡고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내 몸을 살게 해주는 음식에게, 그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주위의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틔워주는 꽃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감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가족이고, 그 방법은 효(). 효는 부모가 호강하기 위해서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감사할 줄 아는 심성을 지닐 수 있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장횡거는 말한다. “하늘이 준 이 몸을 때에 맞게 잘 보존하는 것은 내가 대자연의 아들로서 부모를 돕는 것이고, 즐겁게 살면서 어떤 고난에도 근심하지 않는 것은 부모인 대자연에 순수하게 효도하는 것이다.”(<서명(西銘)>) 우주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효는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이 효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효가 백행의 근본이라고 말해 온 이유이다.

 

확대해 보면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거대한 우주 가족 시스템 안에서 보면 하나의 개체에 해당한다. 개인의 성공의 첫발이 효를 실천할 수 있는 인성에 달려 있듯 기업이나 조직의 성패 역시 큰 차원의 부모인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크고 힘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자그마한 개체로서 우주 가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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