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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현대인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먼저 우물 안에 갇힌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악도 각각 자아가 충돌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절대적 실체는 아니다. 개인이 변할 때 세상도 변한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기쁨은 어떤 외부의 쾌락에서 유래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올바른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행복하고 싶다면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은 대부분 일과 행복이 따로 존재한다. 일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숱하게 방황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 에너지가 발생한다. 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고통스럽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내면의 소리부터 귀를 기울여보라.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해당 업무에 대한 정확한 정의(definition)부터 내려봐야 한다. 고수는 주요 이슈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릴 줄 안다. 반면 하수는 그저 다른 사람이 내린 정의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기업 경영을 제대로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봐라.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부터 정확하게 내려봐라. 그렇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면 뒷날 ‘왜 내가 열심히 이 산을 오르려고 했는가, 이 산은 아닌 것 같다’라고 후회하기 쉽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다. 왜 사람들은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것일까? 인문학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나를 보는 공부다. 오늘은 행복에 관한 책을 소개한다. 고수 17명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그들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쓴 책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다.
갇힌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한국학을 연구하는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얘기다. 장자와 관련된 내용에는 이런 비유가 등장한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잘 놀고 있다. 어느 날 바다에서 살던 거북이가 찾아온다. 개구리는 거북이에게 우물 안이 좋으니 한번 들어와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거북이는 너무 커서 우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대신 거북이가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한 얘기를 한다. 너무 넓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물이 늘지 않았고, 몇 번이나 가물었지만 바닷물이 줄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개구리는 뭐라고 했을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좁은 우물에만 있다 보니 넓은 세상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해보지도 않은 것이다.
현대인이 그렇다. 현대인은 자기만의 좁은 자아에 갇혀 세상을 알려고 하지 않고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깰 것인가? 노자와 장자는 ‘곧 너 자신을 잊으라’는 뜻의 ‘좌망(坐忘)’을 키워드로 제시한다. 너의 상처는 너의 좁은 자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좁은 자아를 깨야 한다. 사회악도 각각 자아가 충돌해 만들어진 것일 뿐 절대적 실체는 아니다. 따라서 개인이 변할 때 세상도 변한다.
상처의 근원은 에고다. 상처는 누가 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가 강할수록 상처도 커진다. 공자는 어렵게 성장한 사람이다. 상처를 받으려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자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자신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은 듯하다. 바로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등 4가지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억측하는 의(意)가 없고, 반드시 일을 관철시키려는 태도인 필(必)이 없었으며, 완고함과 아집이 없었다.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없다는 건 열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의지가 없다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만든 그림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우리의 많은 문제는 자신의 좁은 틀에 다른 사람과 세상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데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
유교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지 않는다. 어떤 종교인은 상처를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힐링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유교는 모든 문제가 나로부터 나오고 나로 인해 일어난다고 말한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신랄(辛辣)하게 본다. 어떤 이에게 일어난 문제는 그가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습관, 태도 등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바꾸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야 한다. 유교는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위로라는 설탕을 너무 투여해 당뇨병에 걸릴 지경이다. 위로는 일시적인 마사지일 수 있다. 따뜻한 속임수일 수도 있다. 그럴듯하지만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용이나 대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과녁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투덜대지 말라는 말이다. 문제의 근원이 자기에게 있으니 그 문제가 뭔지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상처나 시련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원망만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수신이다. 자신을 갈고닦을 때 행복을 느낀다. 특히 배움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한국인은 노(怒)와 애(哀)가 주축이다. 희(喜)와 락(樂)이 약하다. 분노와 슬픔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희는 지속적이고 은근한 기쁨을, 락은 직접적인 기쁨이다. 희락이 곧 행복인데 희가 더 중요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열이 희를 뜻한다. 배우고 익힘은 스스로를 즐겁게 한다는 말이다. 노년에서 이런 영역이 없으면 남은 인생이 불행해진다. 인문학 공부는 희를 얻는 과정이고 노와 애를 불식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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