畫中有訓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 ‘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뱁새와 두더지
“뱁새의 둥지는 나뭇가지 하나로 넉넉하고, 두더지는 황하에서 물을 마시더라도 그 배만 채우면 된다. 만물은 자기 분수를 다함으로써 편히 여긴다. 어리석은 늙은이가 이런 분수로써 흐뭇해하노라.”
- 사마광, ‘독락원기(홀로 즐기는 정원에 대한 기록)’ 중에서
뱁새와 두더지라면 만물 중에서 지극히 천한 것들이다. 뱁새와 두더지 같은 것들이 무엇을 편안히 여기는지 우리의 관심이 될 수 없다. 이 문장의 글쓴이는 왜 이런 것들로 비유를 삼았을까. 둥지를 지을 만한 나뭇가지 하나와 배부르게 마실 만한 한 바가지 물이면 충분하니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얻어 보라는 메시지로 단순하게 읽고 말 수는 없는 문장이다. 뱁새나 두더지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 그것은 소박한 만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더할 수 없는 만족이기도 하다. 이 글 속에서 글쓴이는 그처럼 지극한 만족을 바라는 것 같다. 뱁새나 두더지라도 느끼는 만족이다. 글쓴이는 스스로를 ‘어리석은 늙은이’라고 낮춰 칭하면서 뱁새와 두더지의 존재에 서슴지 않고 자신을 비유했다. 스스로 편안히 여길 수 있는 조건을 낮춤으로써 진심으로 편안히 여길 수 있는 만족을 얻으려 한 것일까. 때는 송나라 신종 시절, 왕안석의 신법 프로젝트가 세상을 이끌고 가면서 반대파가 무참하게 공격당하던 때다. 뱁새와 두더지로 위안을 삼고자 한 이 인물은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다가 쫓겨나서 낙양에 거처를 정한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다. 그림 속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사마광을 가리켜 ‘어리석은 늙은이’라 부르겠는가마는 사마광이 그 시절 자신을 다스림이 이러했다.
자치통감
사마광이 낙양에 거처를 정한 뒤 이른바 뱁새와 두더지 같은 안식을 누리면서 저술한 책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자치통감’! 이 책을 자료로 삼아 세상을 경영하고 이 책을 거울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당시 송나라 황제는 사마광의 학식과 지혜를 저버리지 않았다. 황제는 그를 중앙관료로 불러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자치통감>을 완성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자치통감>은 사마광이 황제에게 바친 책이다. 이 책은 역사서면서 동시에 중국의 최고 통치자가 읽어 마땅한 학습서였다. 책 속에는 온갖 종류의 교활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등장하고 동시에 그 속을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인격과 솟구치는 기상이 등장하며 흥미진진한 논픽션 드라마가 숨 쉴 틈 없이 펼쳐진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사마광의 목소리가 개입한다. “신 광이 평합니다(臣光曰)”라고 문장을 새로 열고 사건의 전말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기술했다. 역사가 사마광의 판단을 토대로 책을 읽는 독자는 사건의 이치를 간파하고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의 학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숙독했고 조선의 왕실에서는 왕을 교육하는 교재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중국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첫 번째 책이다. <자치통감>을 줄여 엮은 <자치통감절요>만 봐도 책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독락’(獨樂)의 정원
그림 속에서 사마광이 앉은 곳은 그의 정원 ‘독락원’이다. 이 그림은 일본 나라(奈良)의 야마토분가칸에 소장된 <예원합진(藝苑合珍)>에 실려 있다. <예원합진>은 조선후기 왕실에서 관람하기 위해 제작된 책으로 이 그림 <독락원>은 화원화가 진재해(秦再奚, 1691∼1769)가 그린 것이다. 그림 곁 오른쪽 면에는 사마광의 ‘독락원기(獨樂園記)’ 일부가 정갈하게 베껴져 있다. 그 시절 조선의 명필 윤순(尹淳, 1680∼1741)의 글씨다.
‘독락(獨樂)’이란 홀로 즐김이다. 사마광은 알고 있었다. 혼자 즐기는 것보다는 몇몇 사람이 모여 함께 즐기는 것이 좋고, 몇몇끼리 즐기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즐기는 것이 더욱 더 좋다는 것을. 그것은 맹자(孟子)의 말이고, 다름 아닌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대의였다. 그러나 사마광의 글 ‘독락원기’는 기꺼이 ‘독락’을 추구했다. 말이야 두더지 같은 어리석은 늙은이라서 그랬다지만, 기실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그랬겠지만, 사마광의 ‘독락’은 그 나름의 세계를 구가하고 있었다.
사마광의 글 ‘독락원기’에 따르면 이 정원에는 그의 서재 독서당(讀書堂)이 있었다. 독서당에서 그는 홀로 책을 읽었다. 사마광은 책을 읽으며 옛 성현을 스승으로 삼았고 역사 속 인물을 벗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마광은 책을 덮고 생각했다. 모든 사회의 법도가 생겨나기 이전과 모든 사물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간, 즉 모든 사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했다.
독서와 사색으로 피곤해지면 그는 독락원을 거닐며 소일을 시작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낚아 반찬거리를 마련하고 마련해둔 밭에 앉아 나물과 약초를 캔다. 파놓은 도랑물로 꽃에 물을 주고, 스스로 도끼를 들어 잘 자란 대나무를 쪼개 둔다. 날이 저물면 도랑물에 손과 발을 씻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눈 가는 곳을 바라봤다.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며 뜻을 이룬 한 인물의 도도함에 한 치의 오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분주한 인물들은 사실상 사마광이 ‘독락원기’에서 묘사한 자신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맑은 바람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밤을 사마광은 홀로 맞이했다. 그는 그 순간 사물의 이치가 모두 그의 눈앞에 모여 있는 것을 느꼈노라고 감탄했고 또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폐와 간과 눈과 귀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니 하늘과 땅 사이 그 어떤 것이 이보다 즐거울까!”
사마광을 그리다
이 그림 속에는 독락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마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 왕실에서 그려본 사마광 독락원의 상상이다. 다만 화면 중앙에 푸른 바위가 솟아 있고 사마광 옆 탁자 위에 각종 값비싼 골동품이 진열돼 있는 점이 다소 의아하다. ‘독락원기’에는 이런 물건들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 속 푸른 바위는 태호석(太湖石)이다. 중국 강남 태호의 물속에서 떼낸다는 이 바위는 구멍이 숭숭 뚫린 기이한 모습이며 이른바 괴석(怪石)의 최상품이다. 그 표면을 푸른 이끼로 입히면 그림처럼 신비스런 푸른 바위가 된다. 조선의 화원화가가 무슨 이유로 푸른 태호석을 독락원 중간에 그려 넣은 것일까? 그것은 태호석의 기이한 멋이 조선후기 학자들과 국왕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호석은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 구하기 어려운 값비싼 물건이었기에 훗날 국왕 정조는 조그만 태호석 하나를 겨우 얻고 자연의 정수를 얻었노라 기뻐하며 글을 썼다. 말하자면 조선의 화원화가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사마광의 정원을 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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