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 ‘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소옹의 봄나들이
봄꽃 핀 나무 사이로 수레 타고 지나는 그림 속 인물은 소옹(邵雍, 1011∼1077)이다. 그가 죽은 뒤 받은 시호(諡號)가 ‘강절(康節)’이기 때문에 흔히 ‘소강절’이라 불린다. 그림 제목에서 ‘요부(堯夫)’는 소옹의 자다. ‘작은 수레(小車)’는 소옹의 수레며 그림 속에 그려진 바로 그 수레다. 소옹의 수레가 그 시절 다른 이들의 수레보다 작고 허름했기 때문일까. 소옹과 그의 부친이 모두 관직을 얻지 못했기에 가산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의 수레가 ‘작은 수레’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소옹은 자신의 수레를 스스로 ‘작은 수레’라고 불렀다. “꽃 감상의 마음은 작은 수레로, 쾌활한 뜻은 큰 붓으로(小車賞心, 大筆快志)”라며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시구를 보면 소옹은 허름한 수레로 꽃 감상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 ‘요부소거’는 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된 시화첩 <예원합진(藝苑合珍)>에 실려 있다. 그림 왼쪽 면에는 소옹의 시 두 수가 나란히 적혀 있다. 소옹의 모습이 화원화가 양기성의 솜씨로 그려졌다면 소옹의 시는 조선후기 명필가 윤순(尹淳)의 필치로 옮겨졌다. 시는 작은 수레를 타고 가는 소옹의 기분과 주변 분위기를 읊고 있다. <예원합진>에 실린 두 수 중 첫 수가 다음과 같다.
흥겹게 취함에 어찌 천일주가 없겠는가,
봄이 아쉬움은 사계절의 꽃이 다시 있을까 해서라오.
작은 수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기뻐하니,
낙양성 안 모두가 한 집안 같도다.
양기성(梁箕星) 그림, ‘요부소거(堯夫小車, 소옹의 작은 수레)’,
조선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x29.4㎝, 일본 야마토분가칸.
술이 좋고 꽃이 좋아 소옹은 흥겹다. ‘천일주’란 좋은 술이다. 한 번 마시면 1000일 동안 취한다는 천일주는 도가의 전설 속 명주였다. 옛날 중국의 유현석(劉玄石)이란 이가 천일주를 마시고 취해 깨어나지 않자 가족들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렀는데 3년이 지난 후 관을 열어보니 술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중국의 <박물지(博物志)>에 실린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일주’라 하는 술이 최고로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위 시에서 소옹이 노닐고 있는 낙양은 예로부터 꽃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낙양의 봄날은 아름다웠고 꽃은 봄날에 가장 화사하다. 낙양의 봄이 그저 아쉬운 이유다. 맛있는 술과 화사한 꽃으로 취한 소옹을 더욱 기쁘게 한 것은 낙양 사람들의 환영이었다. 모두가 소옹을 반겨주니 소옹에게 낙양성 전체가 집안처럼 편안했다. 위 시 속 자연과 사람들은 화창하고 따뜻하기 이를 데 없고, 소옹의 봄나들이는 즐겁기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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