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洗耳圖: 임금의 요청도 툭 내친 그 기상

147호 (2014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허유와 소보

 

그림 오른편 바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허유(許由). 허유는 귀를 씻고 있다. 당시 요순시절, () 임금이 허유에게 나라를 맡아 달라 청했는데 허유는 거절했다. 요 임금은 하는 수 없이 구주땅이라도 다스려달라고 청했다. 허유는 세상일을 떠맡으란 요청을 들은 것을 부끄럽다 여겨 자신의 귀를 씻어내느라 바위에 걸터앉았다.

 

소를 몰고 그 곁을 지나가는 인물은 허유의 벗 소보(巢父). 소보는 벗이 귀를 씻게 된 사연을 듣고는 대뜸 나무란다. “당신이 만약 높은 산 깊은 골에 살면서 진정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대를 알아볼 수 있었겠는가?” 은자랍시고 세상에 이름이 났으니 그런 권유를 받은 것 아니냐고, 더러운 세상일이 씻겨진 그 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는 소보는 소의 고삐를 당겨 끌고 간다. 귀를 씻는 허유도 심하다 싶지만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는 소보의 철저함이 더욱 심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소보는 그 이름처럼 나무에 새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옛 분들은 소보와 허유를 묶어소유(巢由)’라 했다.

 

‘세이도’

 

허유와 소보를 그린 그림을세이도(洗耳圖)’라 한다. ‘귀를 씻다는 뜻이다. 혹은 허유와 소보가 살던 곳이 기산(箕山)의 영수(潁水)라고 해서기영세이도라 했고 허유가 귀를 씻는다고 해서허유세이도라고도 했다. ‘세이도는 조선시대 내내 왕실로부터 저자거리의 민화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이 그려졌다. 한 폭의 그림 속에 두 인물이 함께 그려진 것이 통상적이지만허유세이도소보견우도가 각 폭으로 그려져 한 쌍을 이루는 것도 있다. 견우(牽牛)는 소를 끈다는 뜻이다. 지금 펼쳐 보는 이 그림은 18세기 전반에 조선왕실에서 엮어낸 고시문집 <예원합진>에 실린 한 면이다. 그림 왼편 상단에 제목이 희미한데소보거영(巢父去潁)’이라 쓴 것으로 보인다. ‘소보가 영수를 떠났다는 뜻이다. 그림 속 소보의 눈길이 서늘하다.

 

한 어린 소년은세이도를 보고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물 속에 또 물이 있다면 그 물을 씻어내겠지!” 이 시구는 조선의 문집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물이 그 물 같지만 씻어내야 한다는 정결함의 부각이 소보와 허유도 놀라게 할 만한 재주다. 그런데 이 그림의 뜻이 정결함에 그치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끙끙대며 손에 쥐려는 부귀와 권력과 재력을 헌 짚신짝 집어버리듯 무시했던 이들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세상을 경시한 그들?

 

임금이 부르는데 더럽다고 귀를 씻고, 그 물이 더럽다고 소를 끌고 가는 그림 속 두 사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 해석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조선 후기 박지원은 이들을 스님의 무리로 범주화했다. 소보와 허유가 요순시대(기원전 3000)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에 불교 사상이 들어와 스님들을 양산하기 전부터 스님 같은 사람들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소보와 허유를 그 예로 삼았다. 그 후 이규경은 이들을 신선의 범주에 넣었다. 도가의 신선을 몇 가닥으로 나누면서 소보와 허유를산거(山居) 신선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야기 속 허유와 소보는 분명 스님도 아니고 신선도 아니다. 고사 인물을 그린 조선시대 병풍의 첫 장면에 곧잘 등장하는세이도를 불가적 혹은 도가적 인물로 처리하면 곤란하다. 유가적 입장에서 이들을 논한 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 중기 선비 신흠은우습구나. 소보와 허유가 무슨 일을 하였던고. 평생 영수에서 요만 피하고 다녔으니라며 비아냥하듯 노래했고임금을 모시지 않고 자신의 정결만 지켰다고 비난한 이도 있었다.

 

이들의 절의를 칭송한 글은 더욱 많다. 현실의 벗을 칭송할 때 활용해 “(그는) 스승 아래 공부할 때는 안회처럼 했고, 은둔할 때는 소보와 허유처럼 했고, 조정에 나올 때는 강태공처럼 했다고도 했다. 얼핏 들으면 덕이 두둑한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율배반적 원칙들을 되는 대로 갖다 붙인 칭찬이다. 혹은 나무랄 때도 이용했다. 사소한 재리에 긍긍하는 이에게허유는 요나라도 마다했는데 당신은 반 푼으로 다투시나라 했고, 산 좋은 데를 사서 숨어 살겠노라 으쓱대는 벗에게소보가 산을 사서 은거했단 말은 들어보지 못 했는걸이라고 했다. 이런 칭찬과 나무람을 보면서 소보와 허유의 행실이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조선시대 이유원은 이 문제를 아예 과거시험에 출제했다. “세상에 임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적극적 참여와 피세적 은둔의()’()’를 논하라.” 은거의 문제를 논술 주제로 택한 것이다. 이 문제 속에는 소보와 허유의 의미를 묻는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현실을 비추는 그들

 

소보와 허유가 그림으로 자주 그려진 이유, 말하자면 이 그림을 볼 때 감상하게 되는 내용은 흥미롭게도 위와 같은 까다로운 해석의 문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으로 돌아가 보라. 어떠한가. 그들은 현실 속 우리의 숨은 내면을 비춰주는 명랑한 거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현실을 버리고 갔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오직 이 현실뿐이다. 현실은 더러워! 정말로 끔찍하게 더러워! 그들은 우리조차 몰랐던 세상의 치열한 욕망과 치사한 다툼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모든 즐거움이란 허망하며 더러운 것이라고 명백하게 깨닫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세상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겠는가.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에게 버거웠던 현실의 이면을 마음껏 들춰 조롱하고 있다. 우리도 조롱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더욱이 떠날 수 없는 처지를 보여주듯 유머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며 사실상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에서 낯설음보다는 친근함을 느끼고, 현실의 스트레스를 푸는 만족을 은근하게 맛본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혹은출세성공의 원칙을 정면에서 대응하고 경시하는 이들의 모습 앞에서 그림의 감상자는 사회의 책무와 투쟁을 객관화한다. 나아가 우리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보는 순간의 기상과 자존감을 키운다. 이 세상은 요순시대 태평시절이 아니다.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겼다는 가야산 정자에서 소부와 허유를 떠올렸다. 최치원은 세상을 떠나 가야산에 들었다. 시비 가르는 소리를 듣지 않고자 오직 물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노라고 한 시가 매우 유명하다. 허유가 귀를 물에 씻은 것과 연관된다. 김창흡은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 세상의 시비소리를 듣는다면 귀 씻을 시간이 부족할 게야.

 

요순시절 군주가 돼달라는데 귀만 씻고 앉은 모습, 그 물이 더럽다고 소를 몰아가는 모습. 조선의 왕실에서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리며 이 이야기를 가르친 이유는 무엇일까. 소보와 허유의 행적을 논하며 의미를 밝히는 글쓰기는 학자의 입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도덕적으로 따져서 풀 문제를 확장하기 위해 이렇게 그림으로 그리고 또 그려 감상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림으로 제공되고 이미지로 각인돼 사랑받은세이도문화에는 소보와 허유의 모습에서 위로받고 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 있다. 세상을 넌지시 바라보는 기상과 여유에 대한 기대가 이 그림이 던져주는 감동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허유와 소보만 한 기상과 여유라면 다난한 이 현실을 버티어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숨은 무엇을 비춰내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