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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건강한 까칠함’이 필요한 이유

양창순 | 100호 (2012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오랫동안 CEO들을 대상으로 심리클리닉 강좌와 상담을 진행해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 리더들에게 필요한 마음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경영자들이야말로 ‘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인생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다 새 책을 낼 때면 반드시 거치는 힘든 과정이 있다. 바로 책 제목을 결정하는 일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한눈에 반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듯이 책 제목도 저자의 마음에 들고 출판사의 마음에도 드는 제목을 단번에 찾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양쪽 다 본의 아니게 힘겨운 싸움(?)에 돌입해야 할 때도 있다. 대개는 내 편에서 먼저 지쳐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는 곧장 후회 모드로 돌입해 앓아 눕다시피하는 게 문제이긴 하다.
 
얼마 전 새 책을 펴내면서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책의 주제는 상처를 덜 받으면서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런 쪽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의견 교환을 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새삼 깨닫게 됐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제안한 제목은 ‘난 그래도 사람이 좋다’였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 결과 밝고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20, 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목이 너무 썰렁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좋다고? 당신이나 좋아해. 난 사람이 싫어”라는 반응들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제목은 ‘난 사람이 두렵다’였다.
 
나로선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에 약간의 충격이 없지 않았으나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덕분에 내가 생각한 제목을 길게 우기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상담할 때 호소하는 것은 그들의 얼굴이 다르듯이 상담 내용 역시 제각각이다. 잠이 안 온다, 입맛이 없다, 살기 싫다, 우울하고 불안하다, 나를 빼놓고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것 같다, 자신감이 없다 등. 하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국 그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인간관계’ 하나로 모아진다. 인간관계에 대한 상처가 거의 모든 정신적 증상의 숨은 원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참 모순이다. 우린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때가 많다 보니 오히려 인간관계가 두렵고 싫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부각하는 제목이면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나왔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반응은 “난 성장 안 해도 좋으니 상처받기 싫다”는 쪽이었다. 이번에도 이해가 됐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지만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의 심리
 
얼마 전 어떤 남성이 상담을 하러 왔다. 가족들 간에 상처가 너무 깊어 치유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가족들을 만나 보니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많았다. 문제는 그의 아내가 몇 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시작됐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그 후 남편은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돈을 더 벌어야 했기에 지방에서 혼자 근무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딸들은 딸들대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느라고 자기 생활을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멋도 부리고 남자 친구도 만나고 영어도 배우러 다니는데 자기들은 엄마 돌보랴, 아르바이트 하랴 삶의 낙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머니 병간호는 자기들한테 맡기고 집에 자주 오지도 않는다면서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긴 너무 아프고 힘든데 남편도 무심하고 딸들도 자기에게 신경질이나 부린다면서 이렇게 바보 꼴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가족 모두 서로에 대한 상처와 원망이 깊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버지대로, 어머니대로, 딸들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들을 갖고 있었다.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좋겠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사건들은 누구나 다 피해자의 상처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 가족처럼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일들이 인간관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더구나 인간관계의 상처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 주관적이라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끄집어내기도 어렵고 해결방법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만 억울하고 나만 희생하고 나만 상처 입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인간관계에서 입는 상처는 그것이 내게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의 심리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내가 가장 중요하고 그런 나를 세상과 사람들은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심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본능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요구하기 전에 미리 척척 해결해주기를 바라는가 하면 그 사람의 삶 속에 내가 전부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갈등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에도 내 상처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그것을 이해해 줘야 한다. 문제는 상대방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웬만해서는 쉽게 문제를 풀 수 없다. 따라서 이 나르시시즘의 심리를 이해하면 인간관계에서 입는 상처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나르시시즘의 심리가 좀 더 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어서 세상과 사람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으면 못 견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다 자신과 연관해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내 전화를 안 받을 경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상대방이 바쁘거나 뭔가 집중해서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내 전화라서 안 받나 해서 계속 받을 때까지 몇 십 번이고 걸거나 그래도 안받으면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를 한다. 그랬다가 마침 상대방이 받으면 마구 화를 낸다. 상대방은 그때 전화를 받을 상황이 돼서 받았던 것일 수 있다. 때로는 상대방이 내 전화를 정말 안 받고 싶어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을 권리도 인정해 줘야 한다. 어쨌든 내 전화를 안 받고 싶은 이유가 상대방한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 ‘어떻게 감히 날 싫어해’ 하는 생각 때문이다.
 
 
건강한 까칠함
 
우리는 세상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한테도 싫고 좋은 사람이 있는데 상대방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이 심리를 이해하면 앞서 예를 든 가족의 문제도 해결방법이 나온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자기가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가족들에게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올라오지는 못해도 자주 전화를 해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엄마는 긴 병에 효자 없으니 자기 병 치료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어렵게 일해 치료비를 대주는 남편과 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딸들은 아버지에게 올라오지 못해서 얼마나 속상하시겠는가, 혼자 지내며 일하시느라 힘드시겠다는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도 막상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분명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상담에서 가장 많이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내 의견을 분명히 상대방에게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이 앞설 때 우리는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럼 왜 우린 상대방을 두려워할까? 상대방이 나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생각해줬으면 싶은데 만약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어떻게 하지 싶을 때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거부 불안’이라고 한다. 우린 안다. 살면서 우리의 나르시시즘의 심리가 채워지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상처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강조한 것이 있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하자는 것이다. 우린 거침없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 이 친구, 꽤 까칠한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웬만하면 그 의견을 받아들여 준다. 우린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으면 본심을 모를 때가 많다.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지, 갈등을 회피하려고 그러는 건지, 상처받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린 내심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건강한 까칠함’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언가에 대해 간결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풍부하고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은 대개 중언부언이 되거나 오히려 그것을 덮기 위해서 더 큰 소리를 치게 된다.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사람만이 명확하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다. 둘째,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의 심리만 알아도 된다. 언젠가 인간관계에 대해 어려운 용어를 쓰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은 사실 나르시시즘의 심리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하며 그것이 채워지면 누구나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셋째, 끝까지 매너를 지키는 것이다. 음식도 날것으로 먹으면 소화장애를 일으킨다. 우리의 감정도 날것으로 부딪치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매너는 날것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이 세 가지를 갖추려고 노력할 때 우린 진정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즉, 건강한 까칠함은 자긍심과 통하는 감정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훈련을 하기로 결심했다. 까칠하게 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고 나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내 마음이 편해진 것은 물론이고 인간관계도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건강한 까칠함을 전파하는 사람이 돼볼까 생각한다. 이번에는 세대를 넘어서서 호응이 있는 것을 보면 용기를 내도 될 것 같다.
 
양창순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mind-open@mind-open.co.kr
 
양창순 원장은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로 현재 <양창순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주역과 정신의학, 리더십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ceo, 마음을 읽다> <미운 오리새끼, 날다> 등 자기계발, 대인관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책들을 10여 권 넘게 저술했다.
  • 양창순 | - (현) 마인드앤컴퍼니 대표
    -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미국정신의학회 국제의원
    -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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