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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감정적 질식상태에 빠진 한국남성

양창순 | 90호 (2011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오랫동안 CEO들을 대상으로 심리클리닉 강좌와 상담을 진행해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 리더들에게 필요한 마음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경영자들이야말로 ‘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인생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김성재(가명, 42세) 씨는 최근에 이혼할 뻔한 위기상황에서 어렵게 벗어났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데 있었다. 그는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폭음을 일삼았다.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먼저 거리를 두었다. 아내는 회사 측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다며 그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당분간 쉴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도 했다. 약간의 저축도 있으니 새로운 일을 찾을 때까지 경제적인 문제도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사회에서 강제로 떠밀려났다는 생각에 깊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노와 좌절감을 오로지 술로 풀었다. 평소에도 술을 자주 마시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달랐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은 그와의 술자리를 멀리했다. 그는 술을 사다가 집에서 혼자 마시기 시작했다. 그가 알코올 문제를 일으키면서 가족들 역시 힘들어했다. 비교적 정신이 말짱할 때면 그는 가족들을 외면하는 것으로 상처를 주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과 더 이상 눈길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대화도 꼭 필요한 말만 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가족들이 보는 것이 싫었다. 가장 역할을 못하는 이상 자신은 집안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내팽개쳐졌다고 생각했고 그건 지독하게도 우울한 감정을 동반했다.
 
아이들이나 아내가 내색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내는 그를 감싸고 위로하려고 애썼다. 아이들 역시 별말 없이 견뎌내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심각하게 자격지심에 시달렸고 술에 취하면 아이들과 아내에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결국 아내가 이혼을 하든지, 문제를 치료하든지 선택을 하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만 상담치료에는 거부감이 심했다. 그는 이제까지 한번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툭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지나치게 감정적인 면을 드러낼 것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남자로서 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간절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상담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마음을 치명적인 질식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고당하고 괴로움을 겪으면서 그의 마음에는 오로지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만이 쌓여 갔다. 그런 상황이 조금 더 계속된다면 결국 억울함과 분노에 압사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들을 후련하게 털어낼 필요가 있었다. 정신과에서는 그런 작업을 ‘마음의 환기’라고 한다. 우리가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듯이 마음에 쓸데없는 노폐물들이 쌓여 있을 때도 그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공기로 갈아 넣을 필요가 있다.
 
 
 
 남자답다는 것의 허상
 
우린 몸에 이상한 징후가 생기면 곧바로 병원부터 찾는다. 그것을 이상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무리 마음이 힘들고 질식해서 죽기 직전이라도 외부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한국 남자들의 자살률이 여자들보다 높은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셈이다.
 
미국에서 9.11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미국 정부에서는 생존자들에게 상담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 생존자들이 평생 동안 트라우마를 겪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남성들 중에서는 상담치료를 거부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상대방이 설령 의사라 할지라도 감정을 다른 사람한테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트라우마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터져 나오게 돼 있다. 그래서일까. 상담을 거부하던 사람 중에는 세계무역센터 자리에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것을 TV로 보고 있다가 갑자기 대성통곡한 일도 있다고 한다. 심리적 문제로 상담 받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꾹꾹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이 마치 둑이 터지듯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천만다행하게도 그런 식으로 감정을 터뜨릴 수 있었기에 그는 치료를 받지 않고도 어느 정도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많은 남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기를 강요당하며 성장한다. 가벼운 예로 달리다가 넘어져도 남자아이들은 목청껏 울지도 못한다. ‘사내 녀석’이 그만한 일로 울면 못쓴다고,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울음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 탓이다. 덕분에 싸움을 할 때도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지게 돼 있다. 남자애가 울음을 터뜨린다는 자체가 약해빠졌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편견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 무딘 사람이 돼 간다. 그뿐 아니라 남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것에도 별다른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 채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인생에서 복병을 만나면 한꺼번에 문제가 터져 나온다. 앞서 소개한 김성재 씨의 사례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평소 자신이 마초적이거나 가부장적인 타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 역시 남자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둬온 전형적인 케이스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건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주변에서 보아온 대부분의 남자들이 살아온 방식을 그도 답습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덕분에 그는 위기를 만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알코올에 의존했고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의 힘에 주목해라
 
나는 그에게 감정의 힘에 대해 설명해 줬다. 감정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신경 쓰지 않아도 눈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보게 해주고(시각), 귀는 듣게 해주고(청각), 코는 냄새를 맡게 하고(후각), 입은 맛을 느끼게 하고(미각), 몸은 내가 만지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촉각). 우린 그 감각세포들에게 왜 보이게 하느냐, 왜 냄새를 맡게 하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해 한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우린 몸이 다쳐도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요즘 개봉한 영화 <통증>의 남자주인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그 트라우마로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자해하면서(아무리 그래 봐야 통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미수금을 대신 받아주면서 살아간다. 맛도 느끼지 못해 계속해서 계란에 맨밥만을 먹는다. 한마디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이다.
 
통증을 비롯한 몸의 감각들은 우리 몸에 이상이 있을 경우 빨리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는 신호기 역할을 한다. 마음의 감각인 감정이 하는 역할도 똑같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것이 보내는 신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때 우린 마음의 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린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아야만 남의 마음이 아픈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내 마음이 아픈 것을 억압하는 사람은 남의 마음이 아픈 것도 억압한다. 그런 타입은 인간관계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심정적으로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는커녕 “그만한 일에 뭐 그렇게 힘들어 하는가”라고 면박을 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 뇌에서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것이 ‘거울신경세포’다. 그런데 이 세포를 작동시키는 것은 생각이 아닌 감정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공감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하는 것이다.
 
김성재 씨는 감정의 역할을 알게 되자 힘든 순간에는 누구라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감정을 계속 억압해 알코올 문제와 우울증이 더 깊어졌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실, 그는 실제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만약 그때 실제로 자살을 감행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감정적인 질식상태에서 벗어났고 마음의 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그 결과 아내와 아이들과도 예전 관계를 회복해가고 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조그맣게 사업도 시작했다. 특히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남자답다는 것의 허상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아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누구에게라도 힘들다고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감정을 억압하고 참는 것보다 오히려 더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도 물론 말해줬다.
 
 
양창순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mind-open@mind-open.co.kr 
 
양창순 원장은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로 현재 <양창순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주역과 정신의학, 리더십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ceo, 마음을 읽다> <미운 오리새끼, 날다> 등 자기계발, 대인관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책들을 10여 권 넘게 저술했다.
  • 양창순 | - (현) 마인드앤컴퍼니 대표
    -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미국정신의학회 국제의원
    -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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