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경영

CEO의 또다른 이름은 CBO

86호 (2011년 8월 Issue 1)

 

 
나는 발레공연 관람을 즐기는 애호가다. 물론 몇 년 전만 해도 문외한(門外漢)이었던 내가 발레의 세계를 어깨너머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과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이라는 훌륭한 예술가 두 분과의 작은 인연 덕분이다. 일단 발레를 가까이에서 보고 나니 그 엄청난 매력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본 작품들을 꼽아보면 ‘지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롤랑프티의 밤’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죽음’ ‘왕자 호동’ ‘발레 심청’ 등이다. 바쁘게 사는 내 형편으로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셈이다.
 
나는 경영자다. 어릴 때부터 예술과 친하지 않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예술은 더더욱 멀게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비용 대비 효용이라는 그래프들이 가득했고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바쁜 일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은 내게 요즘 아이들 용어로 ‘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라카미 류식으로 표현한다면 달달한 예술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인생도 상상 이상으로 변했다.
 
경영의 영원한 숙제 ‘영감 찾기’ -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몇 년 전 ‘inspiration(영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 두산백과사전에 나온 영감에 대한 해석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백과사전에 실린 inspiration의 정의는 ‘주로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실’이었다. 물론 100%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주로’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말 그대로 영감은 대부분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은근히 내게 상처로 다가왔다. ‘뭐야,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영감도 갖지 말라는 건가?’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었나 보다. 최근 네이버 사전에서 영감을 검색해보니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착상이나 자극’이라고 정의돼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것이 예술과 만나는 단초였다. 그즈음에 나는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이 새로운 생각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열망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예술을 만나게 됐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나는 밤마다 최고경영자(CEO)들을 모시고 와인공부, 미술공부, 사진공부, 음악공부, 영화공부 등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연히 ‘inspiration(영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읽었을 때 “그 정의는 정말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영감과 예술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나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숙명에서 찾는다. 항상 최초(最初)이자 최고(最高)를 만들어내야 하는 예술가들의 고뇌는 범인(凡人)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만나서 새롭고 독특한 융합을 시도해나간다. 그러기에 모든 예술은 진보적이고 실험적이다. 끝없는 고뇌의 산물과 다른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에서 생겨나는 것이 ‘inspiration(영감)’이다. 즉 새로운 영감을 만나려면 먼저 고뇌를 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세계와 만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다르다. 우리의 일들은 무한 반복되는 루틴(routine)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고민할 시간도, 다른 세계를 만나러 갈 시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영감을 갈망하지만 쉽사리 만나기 어렵다.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참 멋진 말이다. 이종결합을 하려면 여러 장르의 친구들과 만나서 놀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배워야 한다. 물론 아무나 만나면 탈이 난다.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레퍼런스(reference)를 흡수해야 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영감. 이것은 결국 한 세계와 다른 세계의 ‘교차점’에서 나온다. 그러니 영감을 얻으려면 낯선 세계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강연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대가로 알려진 개리 하멜(Gary Hamel)은 세계의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 테두리 밖에서 온다.” 이것은 비단 경영학자의 견해만은 아니다. 함민복 시인도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경영과 미술과의 위대한 만남 - ‘샤또 무똥 로칠드 (Chateau Mouton-Rothschild)’
경영과 예술이 만나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사례는 너무나 많지만 와인과 미술이 만난 ‘무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술과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증표’다.
 
1855년 프랑스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개최됐을 때의 일이다. 보르도를 대표하는 메독 지방의 와인 61개가 박람회에 참가했다. 그 와인들은 나름대로의 품질등급 심사를 통해 1등급에서 5등급까지 5단계로 평가돼 박람회에 선보였다. 그 이후로 와인 생산자들은 이때 정해진 품질등급에서 보다 상위등급으로 격상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개의 등급변동도 허락되지 않았다. 보수적이라는 수준을 넘어 불합리하고 경직된 평가시스템의 결과였다.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는 1855년 당시 메독 2등급 와인으로 평가됐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사또 무똥 와이너리의 오너는 안타까움과 억울함, 그리고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고 한다.
 
‘First I can not be, second I do not choose to be, Mouton I am.’
(일등은 될 수 없고, 이등은 내가 갈 길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무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샤또 무똥 로칠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으로 프랑스 메독 와인 역사상 유일하게 등급분류를 변경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무려 50여 년간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1973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Jacgues Chirac)의 승인으로 무똥은 메독 1등급 와인으로 승격됐고 그들은 자신들의 도도한 자존심을 이런 문구로 표현했다.
 
‘First I am, Second I was, Mouton does not change’
(무똥은 현재 일등급이고, 과거엔 이등급이었지만, 무똥의 맛은 변하지 않았다.)
 
무똥이 프랑스 메독 와인의 유일한 예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품질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그것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매력적인 라벨’ 덕분이라고 많은 와인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똥은 매년 와인이 출시될 때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카소, 달리, 샤갈, 칸딘스키, 워홀 등 당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라벨로 활용했다. 이는 수많은 와인 마니아들에게 ‘올해는 어떤 화가가 등장할까?’라는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다양한 스토리로 이슈를 만들어가면서 소장가치를 극대화했다. 즉 ‘와인 테크’ 1순위 품목으로 혁신한 덕분에 유일하게 등급이 변경될 수 있었다.
 
샤또 무똥 로칠드 1945년 라벨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승리의 V’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샤또 무똥 로칠드의 ‘아트 라벨’의 시초가 됐다. 특히 1945년 빈티지는 영국의 유명 와인잡지 <디켄터(Decanter)>에서 세계 정상급 와인 전문가들이 뽑은 ‘죽기 전에 마셔야 할 100대 와인’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45년 빈티지는 현재 남아 있는 와인이 거의 없고 희귀해 2007년 2월 뉴욕의 소더비 옥션에서 31만700달러(약 4억5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또한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된 1973년 라벨은 피카소의 그림으로 특히 유명하다.
 
샤또 무똥 로칠드가 그들의 운명을 바꾸고 역전에 성공한 사례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그 길이 보이는 듯하다. 비운의 2등급 신세를 넘어서 영원한 1등급 와인으로 팔자를 바꾼 비장의 무기는 바로 와인과 미술을 결합시킨 레이블 전략 겸 마케팅 전략에 있었던 셈이다. 경영과 예술이 만나면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

 
영혼을 위로해준 ‘세라젬 콘서트’
세상사 무슨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마어마한 예술의 힘을 조금씩 지켜본 나는 직원들과 함께 예술의 힘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직접 예술을 만나고 체험하는 감수성(感受性) 넘치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0년 7월15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에 위치한 우리 회사(세라젬) 강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사장인 본인부터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들까지 200여명 전 직원이 참석한 음악회였다. 나는 임직원 모두에게 클래식의 감동을 선사하고 싶어서 먼저 그랜드 피아노를 1대 구입했다. 세계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베토벤 피아노 콩쿨 우승자인 유영욱 연세대 교수를 초빙했다. 특별한 감상을 위해 200명이 피아노를 둥글게 에워싸고 앉을 수 있도록 피아노를 강당 한가운데 배치했고 사방에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피아노 뚜껑은 아예 벗겨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원들을 위해서 비교적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을 선곡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베토벤은 때로는 산들바람으로, 때로는 격렬한 폭풍우로 우리의 영혼에 스며들어왔다.
 
유영욱 교수의 혼신을 다한 연주로 베토벤을 만난 직원들의 얼굴은 조금 상기돼 있었지만 표정은 한결 부드러웠으며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이날의 감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 생애 첫 피아노 콘서트였지만 어떤 공연에서도 이보다 더 큰 감명을 받을 수는 없을 것, 우리 모두를 예술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만들었던 시간.” - 구매팀 안동균 사원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연주. 피아노를 다시 배워 보고 싶은 욕망 가득, 앞으로 어떤 공연이 또 있을지 너무나 기대되고 흥분.” - 인사총무팀 조선미 주임
 
“가까이서 본 연주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해서 마치 허밍버드의 날갯짓을 보고 있는 듯. 오늘 나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셨기에 ‘아픔을 들여다보는 힘’과 ‘기쁨을 보태는 힘’이 한껏 커진 기분.” - 신규사업실 정우익 과장
 
단 한명의 예술가를 통해 만난 악성(樂聖) 베토벤이 치열한 삶에 지친 200명의 고단한 영혼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준 ‘아름다운’ 밤이었다.
 

전 직원이 모두 미술가, 아트페어 200
‘아트페어 200’은 ‘200명 모두가 미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미술에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가도록 인도해주는 세라젬의 예술 프로젝트이다. 우리는 대부분 중학교 때 미술과 인연을 끊은 사람들이다. 심하게 말하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을 돌아보면 즐기는 기쁨보다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를 나는 데생(소묘, drawing) 능력을 비롯한 테크닉의 부족에서 찾는다. 실물과 비슷하게 ‘잘 그리기’에 치중하다 보니 데생을 제대로 못하면 점수는 뻔했다. 색이 선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됐고 교과서에 실린 것과 다른 것을 그리면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미술과 친해지기 어려워지고 고흐와 고갱,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시험지 속 미술가로 전락했다. 미술은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술을 다시 접하게 된 나는 미술이란 내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정답이 없는 오묘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그 후 기회가 되면 직접 그림도 그려보고 크로키도 해보면서 내가 본 오브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보니 왠지 내게 미술적 감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도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나도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미술과 친해졌다. 자신감이 생기고 미술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늘 보던 일상의 사물, 이를테면 식탁과 의자는 물론 볼펜까지 자꾸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요리조리 뒤집어 보고 여기저기 만져보고 하면서 물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떠올렸다. 이러한 과정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혹은 새로운 제품을 만날 때 아주 좋은 감각이 됐다. 이런 느낌을 우리 직원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트페어 200’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과거의 아픔을 들춰내는 데생은 없다. 대신 잡지를 가위와 칼로 오려서 풀로 붙이는 ‘콜라주(collage)’를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물로 일인당 잡지 2권, 가위, 칼, 풀을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아트페어의 시작 역시 간단했다. 작품성이 뛰어난 콜라주 작품들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난 다음 “현대미술은 개성적인 생각과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 한마디를 덧붙인 것이 다였다. 그것이 미술에 반보(半步) 빨리 들어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전부였다.
 

그리고 딱 1시간이 흘렀을까. ‘오려 붙이기’를 하고 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혹시나를 능가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대를 초월하는 멋진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200명이 저마다 ‘아니 저 사람에게 저런 재능이 있다니’ 하는 얼떨떨한 놀라운 표정과 ‘나도 제법 하는 걸’ 하는 벅찬 자신감에 흥분된 표정이었다. 마치 승전보를 전하러 개선문에 들어서는 장군의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아트페어 200’을 통해 우리 200명은 미술이란 결코 부담스럽거나 두려운 종목이 아니라 엄청나게 즐거운 활동이라는 데 깊이 공감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독특한 생각과 감각이 있기에 꾸준히 조금씩 가꾸어간다면 남다른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발레 ‘백조의 호수’ 3번 본 이야기
발레 애호가인 나는 지난 해 12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3번이나 봤다. 총 6일 동안의 공연 중 3일을 가서 봤고 혼자만 본 것이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을 매번 초대해 송년모임을 겸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 날 함께 관람한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 불필요한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사실 저는 오늘이 3번째 관람입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질문이 돌아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똑같은 공연을 왜 3번씩이나 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평소 내가 갖고 있는 발레에 대한 철학과 같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것 중 하나가 바로 발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발레란 평생의 노력을 통해 아름다운 몸과 근육을 만든 뛰어난 무용수 수십 명이 모여야 하고 최고의 안무가가 만든 아름답고 극적인 춤과 동작을 오랜 시간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발레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고의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 수십 명 음악가들의 연주, 환상적인 무대, 조명, 의상까지 더해져야 한다. 단과반이 아닌 종합반이고, 종합반 중에서도 ‘슈퍼 종합반’인 발레는 이런 이유로 쉽사리 만들어질 수 없기에 대단히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 같은 공연을 3번씩이나 보다 보면 이 아름다운 공연에 비해 내가 만드는 제품이 얼마나 부족하고 초라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분명 깊은 상처와 멍울을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통해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실제로 그 아픔을 느끼며 나는 내가 만드는 제품도 어떻게 하면 이처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발레 공연 관람이 기업 경영에 있어 끊임없이 자극받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발레는 미()적 감각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끊임없이 단련할 수 있는 ‘감각 피트니스센터(fitness center)’이다.
 
CEO는 CBO(Chief Beauty Officer)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움을 만드는 전쟁 중이다. 마치 예술품처럼 탁월한 아름다움을 지닌 명품(名品)을 만들어야 하고 같은 값이라면 경쟁자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누구든 매혹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세상은 감각의 세상이고 느낌의 세상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놀이터’에서 쉼 없이 놀아보며 경험해 보고 느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만져 보고,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태권도, 유도, 바둑 등에 초단, 2단, 3단 같은 단수가 있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만드는 실력인 미학(美學)에도 단수가 있다. 사람마다 미학의 단수가 다르다. 나의 미학은 과연 몇 단일까? 또 개인별로 미학의 단수가 있는 것처럼 기업도 미학의 단수가 있다. 우리 회사는 미학 몇 단일까? 그 기업의 미학 단수는 CEO의 미학 단수와 같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아트디렉터나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또 그들이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낸다 해도 만일 CEO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제품은 최고가 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뷰티테크(beauty-tech)’야 말로 최고의 첨단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이 이토록 대단해진 이유는 스티브 잡스라는 미학 8단인 CEO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드는 뷰티 파워로 전 세계를 유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CEO의 또 다른 이름은 ‘CBO(Chief Beauty Officer)’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생각의 지지자를 만날 때만큼 기쁜 일은 없다. 백만대군보다 더 쟁쟁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반세기 전 백범 김구 선생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모두 이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계와 경계를 넘는 초월적인 발상을 통해 새로운 오리진(origin)을 만드는 ‘창조강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이 예술과 만나야 한다. 기업이 찾아 헤매는 여러 가지 것들이 바로 예술 속에 있다. 또 기업은 예술을 격려하고 키우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비록 당분간은 맞선 보러 나온 남녀처럼 어색함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두 젊은이는 서로 만나서 인사하고 교제해야 한다. 그리고 빠른 시간에 서로 사랑하고 또 결혼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경영이라는 집안과 예술이라는 집안, 이 두 가문이 만약 결혼한다면 최고의 결혼이 될 것이다. 이른바 선진기업들이 상상도 못하는 초월적인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창조해 ‘코리아 르네상스’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강신장 ㈜세라젬 부회장·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 이사 ksj5130@naver.com
강신장 부회장은 삼성그룹 인력개발원, 비서실, 구조조정본부에서 인사 및 교육을 담당한 경영자로서 특히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CEO커뮤니티 SERICEO를 기획한 제작자이다. 경영과 미술, 음악, 사진, 영화, 그리고 인문학을 접목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재)플라톤 아카데미 이사, 국립오페라단 후원회 부회장, 예술의 전당 후원회 이사직을 수행하며 경영과 예술, 인문학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저서로는 <오리진이 되라>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